지난 연초에 세계바둑계의 4강 라이벌전을 유니크한 구성으로 조명한 특집 [기왕사신기]의 김종서 작가가 기축 년 설날을 맞아 다시 한 번 타이젬 회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붕전설]이다. 지난해에 억대바둑판 소송사건으로 새삼스럽게 바둑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 고(故) 김영성 한국기원 이사의 삶과 바둑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설 연휴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될 [이붕전설]을 통해 우리 바둑계를 뒤숭숭하게 흔들었던 바둑판 사건의 전모와 배경, 그리고 바둑계에 무한한 사랑을 바쳤으나 아스라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고마운 은인(恩人)한 사람의 존재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1월 24일 : 제1화 - 이붕 선생을 아십니까? 1월 25일 : 제2화 - 바둑애호가 김영성과 잉창치 1월 26일 : 제3화 - 바둑판이 말을 하다 1월 27일 : 제4화 - 仙과 俗의 경계에서 안타까운 논란
바둑판 소송이 3심까지 이어지면서 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센 여론의 폭풍이 회오리쳤습니다. 법정으로 간 증여논쟁으로 바둑계에 큼직한 분화구 하나가 생성됐습니다. 그 틈을 메울 타이밍은 이미 놓친 듯싶습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바둑TV같은 매체를 통해 100분 토론으로 끝장을 보면 어떨까요? 어차피 알려질 내용은 어느 정도 알려졌는데 불길하고 찜찜한 표정으로 최종결과를 기다린다는 것도 참 우스운 노릇입니다.
원고와 피고를 비롯해 모든 증인들의 명예가 걸려있어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자는 의견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명예를 소중하게 인식했다면 처음부터 이런 사건이 야기되지도 않았겠지요. 가만 보면 이 사건의 본질은 명예를 담보로 어떤 가치를 교환하려 했던 의도가 일파만파 사건으로 확장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확장된 이상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축소와 은폐도 어렵고 호도(糊塗)와 과장도 통할 리 만무합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지만 자신의 신념이 확실하다면 장작을 뽀개듯 의지를 밝혀야 옳은 일이겠지요. 이 사건에 선과 악을 구분하는 건 우습지만 보이는 눈에 그리 보인다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지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중도의 양비론은 악의 편이다.’라구요. 본질을 흐리고 모두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이야깁니다.
 ▲ 윤기현 9단의 기자회견 모습. | 현재 3심까지 올라간 바둑판 소송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사안은 서너 가지 되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 과연 이붕 선생은 세고에 바둑판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을까? 이 부분에 관해 양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지만 대부분의 바둑 팬들은 인정 상 이붕 선생의 가족들 주장을 믿는 것 같습니다.
윤 9단은 30년 우정을 들어 증여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생이 생전 30년 동안 친하게 지낸 분을 가족들이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 믿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해법 때문에 배반감을 느껴 이의를 제기한 것이겠죠. 그렇다면 모든 바둑 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처럼 법리적 용어를 난사하며 일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그냥 세고에 반을 돌려주면 간단하지요. 이미 팔아버려서 곤란하다면 받은 금액을 돌려주거나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밝히는 게 순서 아닐까요?
바둑판을 가져간 쪽과 비밀을 지키기로 했기에 그 것만은 밝힐 수 없다는 주장을 견지하면서 오로지 증여받았다는 사실만을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안타까워 보입니다. 어차피 영수증이 없고 유언장이 없으므로 증인들의 증언을 모아야 하는데 여기에 또 증인들이 명예를 걸고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점입가경
2심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므로 피고는 판매대금 1억을 유족들에게 지분에 따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그 1억의 규정도 참 애매합니다. 1억에 판매했다는 증거가 없는데 피고의 말에 따라 1억을 설정합니다. 그 1억이 어떻게 나왔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붕 선생이 지병인 간암에 시달릴 때 피고에게 바둑판을 보내 처분을 의뢰하고 가족들에게 1억 정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지요. 물론 이는 피고의 주장입니다. 처분하는 대로 고인의 유지를 이행하려 했는데 소송이 벌어져 우칭위엔 반을 유족들에게 돌려주었으니 1억에 대한 마음의 부채는 사라졌다고 셈합니다.
세고에 반의 권리는 자신에게 있으므로 어떻게 처분하든 문제 삼지 말라는 거죠. 그러면서 3심 상고이유서에 아주 묘한 증언 하나를 첨부합니다. 필자 주관으로 볼 때 향후 바둑계에 아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 같아 여기에 거론하고자 합니다.
그 묘한 증언이 뭐냐면 바로 바둑판을 만드는 장인이 등장해 바둑용품 가격이 의외로 저렴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장인은 자신이 여태 억대가 넘는 고가의 바둑판이 거래되는 장면을 본 적이 없고 유명한 프로기사들의 사인이 적힌 바둑판도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일전에 가수 김장훈의 바둑판 가격을 감정하면서 바둑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던 그 문제의 장인이 느닷없이 이 소송에 개입해 바둑판 값, 그 까이꺼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서류로 제출했습니다. 그 장인을 이 소송에 참고인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뭘까요? 세고에 반이나 우칭위엔 반의 가격이 세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비싸지는 않다고 주장하기 위한 증언이겠지요.
이미 세고에 반을 일본인에게 1천만 엔을 받고 처분했다면서 그런 참고자료를 첨부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1천만 엔이 적은 돈입니까? 세고에 반의 값이 1천만 엔이라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이런 걸 아이러니라고 해야겠죠?
 ▲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김영성 이사. | 나눔에 관해서
바둑판 증여와 관해 거론되는 정황이 2심에서 조명되었습니다. 이붕 선생은 삶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지인들에게 아끼는 바둑용품들을 나눠주었습니다. 선생은 산과 바둑을 좋아해 평생 많은 등산용품과 바둑용품을 모았습니다. 자택의 방 하나에 등산용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것들이 전부 후배 산악인들에게 돌아갔겠죠.
그리고 바둑용품은 부산의 기우들에게 골고루 선물했습니다. 희귀한 바둑판과 프로기사들의 휘호가 적힌 부채 등을 여러 사람이 받았습니다. 부산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이붕 선생을 도와 바둑협회 이사로 함께 했던 함중아 씨도 잉창치 바둑알을 받았습니다.
 ▲ 故김영성 이사가 함중아 씨에게 선물한 바둑알. | 잉창치 옹으로부터 받은 바둑알을 이붕 선생이 함중아 씨에게 선물한 겁니다. 아주 특이한 형태지만 플라스틱 통을 보면 그다지 값비싼 용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함중아 씨는 이 바둑알을 가보로 간직하는 중입니다. 알을 좀 볼 수 없느냐 부탁했더니 포항 안강에 있는데 직접 가기 어려우니 친형님한테 전화해 가져오겠다고 하더군요. 한참 만에 함중아 씨의 형님이 보따리에 바둑통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아이고 말도 마소. 이 돌로는 바둑도 몬 두게 한다 아입니꺼.”
형제의 기력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바둑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는 점까지 닮았습니다. 형은 아우의 심부름을 기꺼이 해주면서 투정을 합니다. 어찌나 바둑알을 아끼는지 행여 깨질까 흠집 날까 안달이라네요. “바둑알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이 거 영원히 간직할 생각입니다. 이붕 선생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정말 바둑 인들이 우러러봐야 할 은인이십니다.”
필자는 함중아 씨의 우직하고 투박한 의리에 감명 받았습니다. 이붕 선생을 비롯한 부산의 바둑 인들은 저런 정과 의리로 항도의 바둑문화와 정신을 지켜왔을 겁니다. 증여를 받았다면 저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보관하는 것이 옳겠지요. 설마 이붕 선생이 귀한 바둑판을 일본에 되팔라고 줄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길고도 긴 이붕스토리를 간절하게 적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仙과 俗
사람이 산으로 오르면 선계에 들고 계곡으로 내려가면 세속에 든다지요. ‘선과 속’의 한자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영취산 반야암 앞산 등성이에 잠든 이붕 선생은 신선이 되어 지금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진실은 당신만 아실 테지만 진실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어서 또 이렇게 뒤범벅되고 있는 바둑판 사건도 세상의 섭리라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는 우리들이야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다’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릴 때 당신은 ‘이도 옳고 저도 옳다’라며 빙그레 웃고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이 자꾸 곪은 상처를 갉아 잊혀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괴롭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건, 터졌더라도 빨리 아물었어야 할 사건이 이토록 오래 질척거린다면 바둑 팬들도 최소한의 정의를 찾고 싶은 욕구와 권리가 있노라 믿습니다.
 ▲ 통도사에 있는 故김영성 이사의 공덕비. | “진실을 가린다는 점에서 재판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둑판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유품을 온전히 되찾을 수만 있다면 전부 바둑계에 기증하기로 가족 모두 뜻을 모았습니다.”
기축 년 새해에 이붕 선생의 가족들이 전한 말입니다. 선생의 장남 김한상 군은 이 번 겨울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선생의 장녀 김연수 양은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집을 떠나면서 어머니와 그런 뜻을 나눴다고 합니다.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실 확인이라는 이야깁니다.
설 연휴에 긴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이붕 선생에 관한 미담과 에피소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로 매듭을 지을까 합니다. 바둑계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어도 지방에서 바둑문화를 지키고 바둑 인들을 후원했던 이붕 선생과 권재룡 박사 같은 분들을 우리가 지키고 기리고 이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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