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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특집 진기명기10 ①

2003 상반기결산 묘기 퍼레이드

2003-09-14 오후 4:04:33 입력

축구에서 그림같은 바나나킥 한방이 관중을 열광시키듯 바둑에도 신출귀몰한 묘수가 반상을 쥐락펴락한다. 야구에서 어이없는 '알까기' 실책으로 팀 전체가 무너지듯 무심코 둔 착각 한 수에 대마가 오락가락한다.
2003년 상반기를 장식한 묘기·착각 10선을 추려 한가위 특집으로 구성해본다.


묘기 ①
이창호의 '조용한 묘수'

[제4회 농심신라면배 우승결정국]
○이창호 9단 ●뤄시허(羅洗河) 9단
(2003. 1. 23, 백 불계승)



장면(1억5천만원 짜리 묘수)

농심배 우승이 걸린 건곤일척의 한판에서 터진 이창호의 묘수가 비중 면에서나 기발함 면에서 단연 묘수 넘버원으로 꼽힌다.

백대마(○)가 풍전등화에 몰린 상항에서 터진 백4가 한국의 농심배 4연패를 완성시킨 '1억5천만원 짜리 묘수'! A도, B도 아닌 가만히 이은 이 '조용한 한수'가 백대마를 유일하게 살려내는 토출용궁(兎出龍宮)의 묘수였다.



참고도(흑, 무리)


백△가 묘수인 이유.
흑1로 한사코 대마를 잡으러 가는 것은 무리. 백2 다음 A와 B가 맞보기라서 도리어 흑이 망한다.



실전진행(백대마 엑소더스)

흑은 별수 없이 흑1·3으로 물러섰으나, 백2·4로 엑소더스 성공!
빈사지경의 대마가 오히려 요석을 빵때림하고 살아가서는 백의 우세가 확립되었다.




묘기 ②
쎈돌의 축 매직쇼

[2003 KAT시스템배 한국바둑최강전 4강전]
○홍장식 4단(전북) ●이세돌 6단(전남)
(2003. 4. 23, 흑 불계승)



장면(이세돌의 축머리 착각?)

늘 기발한 착상으로 팬들을 매료시키는 이세돌. 과연 이름에 걸맞게 바둑사에 남을 '작품' 하나를 창조해냈다.

백△에 걸려 축이 안되는데도 거침없이 흑1~5로 몬 것이 기이하다. 어찌된 영문인가.
"어! 이세돌이 축머리를 착각했나?" 관전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 흑7이 두어졌다.
기기묘묘~ '바둑서커스'가 시작되는데….



참고도(백, 망함)

계속해서, 백1로 잡는 것은 흑2·4로 회돌이 친 후 흑6으로 몰아 백이 결딴난다.
흑24까지 절묘하게 축에 걸려 양쪽 백이 '합동장례식'을 당하는 것.



실전진행(흑, 대성공)

하릴없이 백1로 나갔으나, 이세돌의 축 매직쇼는 이미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흑22까지 몰아붙인 다음 흑24로 잡는 데까지가 그 대단원.
잡혀있던 흑●들이 거꾸로 상하 백을 잡으며 부활해서는 흑의 거대한 '음모'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흑의 압승!
이 모든 수순이 40초 초읽기 1회의 초속기 TV바둑에서 등장한 것이라 더욱 기막혔다.




묘기 ③
조치훈의 '부활 강시'

[제8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조치훈 9단 ●원성진 5단
(2003. 8. 29, 백 불계승)



장면(죽었다 살아나는 미이라)

'남의 땅'에서 수내는 데 1인자 조치훈이 모처럼 그 솜씨를 단단히 보여주었다. 수 자체 보다는 그 타이밍이 기막혀 두고두고 화제가 된 바둑이다.

초반 하변전투에서 백이 크게 실패한 탓에 흑이 우세한 중반. 백은 불리하다면서 백1·3으로 떼를 쓰고, 흑은 2·4로 '부자몸조심'을 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백7·9가 놓이자 백 선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죽은 줄만 알았던 미이라가 부활한 것이다.



실전진행(조치훈의 강심장)

흑1에는 백2가 준비된 묘수. 결국 백대마는 간단히 살아가버렸다. 형세도 당연히 역전.

오래 전에 이 수를 보고도 백△로 강짜를 부리는 등 무려 30여수를 진행한 끝에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린 조치훈의 강심장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참고도(흑이 놓친 필승기회)

흑은 진작에 흑1로 '확인사살'해야 했다. 이곳은 자체로 20집 가까운 역끝내기. 그랬으면 흑의 낙승이었을 것을….




묘기 ④
조훈현의 '8연패' 수렁탈출

[제37기 왕위전 도전자결정국]
○이세돌 7단 ●조훈현 9단
(2003. 6. 30, 흑 불계승)



장면(1석3조의 묘수)

'대 이세돌 8연패'의 수모를 당해온 조훈현이 연패 탈출에 성공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사방에 흑집이 철철 넘치는 가운데 흑대마(●)의 사활이 승부. 그런데, 주위 백이 워낙 튼튼해 두 집 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쎈돌한테 또 걸렸나?"라는 말이 나돌 무렵 놓인 흑1이 회심의 묘수. 백A의 치중을 방지하면서 백△를 포박한 유일한 생명선이었다.



참고도(바꿔치기는 흑승)

한사코 백1로 치중해 잡으려 들면 흑2·4로 뚫는다.
흑6까지 바꿔치기가 되는데, 좌하 백집을 초토화시킨 이득이 커 이 그림은 흑승이다.



실전진행(흑, 타개성공)

이세돌 7단은 완강히 저항하며 결국 패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말이 패일 뿐 흑에게는 살자고 하는 수가 모조리 팻감이라서 사실상 대마는 산 것이나 마찬가지.
결국 승부도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조9단에게는 '8연패 탈출'과 '왕위 도전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값진 묘수였다.




묘기 ⑤
쎈돌의 만방펀치

[제16회 후지쯔배 세계선수권 16강전]
○이세돌 6단 ●하네 나오키(羽根直樹) 9단
(2003. 4. 14, 백 불계승)



장면(무지막지한 이세돌의 필살기)

상식을 초월한 초강수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곤 하는 이세돌의 무지막지한 핵펀치가 정통으로 꽂힌 바둑이다.
백1로 노골적으로 파호한 것이 의표를 찌르는 강타. 거대한 흑대마(●)를 반드시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백5가 강수 2탄.



참고도(무난한 타협)

백1로 받는 것이 무난. 사실 이렇게 두어도 백은 둘만 하다. 그러나 파워와 수읽기에 자신이 넘치는 이세돌에겐 이처럼 무난하게 타협하는 게 싱거웠을까.



실전진행(공룡대마 함몰)

하네 9단은 흑3으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설마 '대마불사'인 줄 알았으리라. 그러나 이6단이 지구 끝까지 잡으러가자 대책이 없어졌다. 백28에 이르러 백이 완생(A와 B가 맞보기)하면서 공룡같은 흑대마는 결국 명을 다하고 말았다. 속칭 '만방'이 터진 것이다.

TYGEM/김창호 gigung@tyg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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