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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칭위엔 다시보기, 이창호 바로보기

우리 시대의 기린아 이창호는 어디쯤 왔나?

2006-10-30 오후 3:05:47 입력

새로운 질서를 찾았다는 점에서 두 기사의 공통점 - 吳는 포석, 李는 끝내기에 강

요즘 새롭게 바둑을 접하는 팬들 중에는 우칭위엔(한자를 독음해 '오청원'이라고 하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설혹 안다고 해도, 우칭위엔이 위대한 기사였다는 정도의 단순 사항만 알 뿐이라고 한다. 허나 조금 더 마니아 수준에 올라오면 우칭위엔의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집안에 우칭위엔이 저자로 되어있는 바둑서적 하나쯤은 서재에 꽂혀있을 뿐 아니라, 우칭위엔이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한국기원 기사실에서는 낯익은 기사들이 두꺼운 ‘우칭위엔전집’을 열심히 놓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우칭위엔은 바이블이다.

현대바둑의 초석을 놓았다는 우칭위엔은 바둑의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를 열어 젖힌 인물이다. 시대를 달리 하는 영웅들과 늘 비교되었지만 비교우위를 차지했던 출중한 기재이며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땅에 탄생한 지, 태어난 지 1세기가 다 되어가는 ‘살아있는 기성’ 우칭위엔을 돌이켜 보고 우리 시대의 기린아 이창호는 어디쯤 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º 우칭위엔은 누구인가
우칭위엔이 1914년 생이니까 올해 93세, 아직 생전에 있다. 조남철 선생과는 9년, 사카다 에이오보다 6년 연상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응씨배 같은 빅게임이 있으면 검토실의 상좌를 차지하고 검토에 열중하는 살아있는 기성이다. 그는 전성시절인 30~50년대 사이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쌓았다. 우칭위엔의 위대함에는 승부사로서의 업적과 바둑관의 확장에 힘쓴 양면이 모두 포함된다.

신포석. 그의 업적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신포석'이다. 1930년대 초반 우칭위엔은 조치훈의 스승인 기다니 미노루와 함께 현대바둑의 효시가 되는 신포석을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 흑을 들고서 화점·삼삼·천원을 삼각편대로 형성하는 기발한 포진이었다. 특히, 천원에 돌을 갖다 나른다는 것은 당시 본인방가에서는 착수를 금기시하는 신성불가침이었다. 그에게는 바둑은 반상 아무 곳이나 두어도 된다고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족쇄의 해결이었다. 천원은 두고 나면 둘 수 있는 것이지만 두기 전에는 둘 엄두가 나지 않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곳이었다.

신포석은 바둑계의 갑신정변이라 할 만큼 초 개혁적이었다. 당시 동네기원의 바둑 팬들은 서로가 흑을 잡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숱한 화제에도 불구하고 ‘3일 천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해괴한 신포석법으로 우칭위엔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우칭위엔의 기력이 출중했기 때문이지 결코 지나친 중앙의존은 결코 승부를 펼쳐나가기 용이한 착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포석이 죽은 것은 아니다. 신포석의 정신적 기반에서 오늘날의 현대 포석이 속도와 중앙 중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소목만이 최고선인 줄 알았던 시절에 화점을 세상에 이끌어낸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화점바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

치수고치기 10번기. 승부사의 업적은 치수고치기 시리즈에 모두 담겨있다. 일본은 전쟁의 와중이라 격변의 시기였다. 세인들의 눈을 돌릴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던 일본은 당시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야구와 바둑의 프로화를 앞당기게 된다. 바둑과 야구 모두 요미우리라는 대기업이 앞장섰다. 지금도 바둑에서는 요미우리가 가장 큰 기성전을 개최하고 있고, 야구에서는 이승엽 선수가 활동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최고의 인기구단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만든 치수고치지 10번기는 승부바둑의 절정이었다. 승자에겐 무한한 영광이 돌아오지만 패자에겐 기사생활이 송두리째 앗아버린다. 10번기 무대에서는 기사는 당대 일류였으며 일류가 되기 위한 십 수년의 노력까지 송두리째 거는 승부였다.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뚫고서 우칭위엔은 번번이 승리자가 되었다.

우칭위엔의 생애 중 하이라이트이자 승부바둑의 극단 10번기에서 17년간(1939년~1955년) 11번의 10번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를 전부 하수로 전락시켰다. 쓰러져간 상대 중에는 기다니 미노루(라이벌이자 신포석을 같이 개발한 주인공), 하시모토 우따로(관서기원의 총수), 후지사와 호사이(최초의 9단), 사카다 에이오(통산 타이틀획득 64개), 다카가와 가쿠(본인방 9연패) 등 영롱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당시 10번기는 4승 차이가 나면 치수를 고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당대 초일류끼리 맞붙은 대국이라서 좀처럼 치수는 고쳐질 이유는 없었다. 특히 덤이 없는 시대였으므로 치수를 바꾼다는 것은 어렵게 느껴질 때였다. 누구라도 ‘흑번무적’일 시절에 백을 들고도 상대를 제압했다. 그만큼 우칭위엔의 기력이 상위에 있었다는 방증이다.

악습관행 철폐 일조. 바둑이 예도에서 스포츠로 바뀌는 길목에서 바라보면 우칭위엔의 미래지향적인 안목은 대단하다. 장시간 바둑에 대한 비판, 제한시간의 단축주장 등은 이미 1930년대부터 우칭위엔이 꾸준히 이의를 제기를 했던 문제이다. 그는 또 장차 국제대회를 위해서도 1일 마감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한시간의 단축과 대국자 외의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는 행위엄금 등의 문제는 지금도 완전 개선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기원이 곧 전통의 본인방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통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불경한 짓이었다. 우칭위엔은 얼마나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던가를 살필 수 있는 요소이다.


º 우칭위엔과 이창호는 닮았다

근 100전전의 기사이자 기성 중의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엔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영웅 이창호를 비교해보자. 한 명은 세계 속에 우뚝 선 화려한 현역기사이고 또 한 명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기사. 현재와 과거가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15년 세월동안 바둑으로 즐거움과 놀람을 선사해준 이창호이기에 두 거장을 함께 불러내어 본다.

빠른 나이에 입단. 우칭위엔은 이미 10세 언저리에서 중국 최고수가 되었다. 중국은 프로제도가 당시엔 없었기 때문에, 기량을 파악하기는 뭣하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14세 때던 훗날 동문사형이 되는 하시모토 우따로 4단에게 정선으로 2연승을 거둔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단위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때여서 4단이면 초단과는 정선에 두는 치수. 실제로 그해 우칭위엔은 일본으로 건너가 곧장 3단을 인허 받을 만큼 출중한 기재를 인정받는다. 아마 프로제도가 있었더라면 조훈현 (9세 입단) 이창호(11세 입단)와 비슷한 시기인 10세

전후에 입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은 그가 일본이 아니고 중국소년이라는 배경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기재 못지않은 노력형. 일류기사가 되려면 기재 체력 노력 등 3박자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조훈현은 최근 5대3대2의 비율로 그 중요도를 구분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조훈현·이창호·이세돌·조치훈 등 불멸의 승부사들은 다들 입단한 시기가 상당히 빠르다. 그러나 재주라는 면에서는 우칭위엔이 이창호보다는 조금 앞서는 정도라는 중론이다. 다만 체력이란 부분으로 들어가면 이창호가 다른 어떤 선배기사보다도 낫다.

무거운 기보집 때문에 양쪽 중지가 휘어져있는 우칭위엔의 노력을 무엇으로 이기겠는가. 다만 조훈현의 내제자 시절 새벽까지 밤의 적막을 깨는 바둑돌 소리의 주인공 이창호도 이에 필적할 정도는 되리라. 천재란 비기를 익혀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기술이라도 수천 수 만 번을 반복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속적인 단련을 통한 노력이라는 부분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승부사. 다른 모든 타이틀이 중차대 하더라도 타이틀을 잡느냐 못 잡느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치수고치기 10번기는 훗날 생겨난 어떤 기전보다도 필사적인 승부이자 처절한 전투이다. 그러나 이 진검승부의 승자는 우칭위엔 뿐이다.

다만 이창호는 시대가 다르다. 이창호도 당대의 승부사로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92년 동양증권배를 필두로 22개의 세계타이틀을 획득했다. 국내에서도 14세부터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세돌·최철한·박영훈 등 기라성 같은 기사들을 상대로 총 131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결코 10번기 보다 그 위력이 못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록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단체전에서 한국에게 우승을 안긴 것도 수차례 된다. 그 과정은 우리가 보아왔기 때문에 잘 안다.



º 부분보다 전체를 본 것은 동일

지난 92년 우칭위엔은 이창호-유창혁의 왕위전 대국을 기보를 통해 보고는 '나의 20대 전성기보다도 훌륭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이창호의 나이는 17세였다. 과거 본인방 시대의 전통과 관습을 과감히 깬 우칭위엔의 나이도 그 즈음부터였다.

특히 포석단계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우칭위엔은 소목 위주의 패턴인 당시 바둑계에서 화점을 들고 나와 과거와는 다른 스피드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면은 동문사제인 조훈현의 기풍도 닮아있다.

이창호는 이미 우칭위엔이 초반구도를 잡아 놓은 이후 세대이기 때문에 우칭위엔에 비해서 개발하거나 연구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점은 있을 수 있다. 현대에는 귀 주변에서는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상태이니까. 따라서 이창호는 초반신수가 별로 없다. 그 나마 있는 신수도 화점 정석에서 파생된 것이다. 기껏해야 접바둑 정석이라고 불리던 붙여 막기 정석과 날일자로 걸쳐온 수의 협공에 관계하는 부분 정도. 온고지신의 신수 말이다.

오히려 전체를 보았기에 귀 부근의 신수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부분보다 전체를 중시하는 태도는 우칭위엔의 ‘바둑은 조화’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90년대 조훈현과의 바둑에서 수도 없이 출몰했던 한국형 정석이 그 일환일 것이다. 더불어 ‘포석 겸 정석’이라는 신조어도 이창호 시대에 생겨난다.


º 극초미세의 계산력이 자랑
이창호는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않았던 신천지 개척의 공로가 있다. 경계선이 그어지지 않은 중앙의 셈법과, 당장의 실리와는 상관없지만 훗날 실리로 연결이 되는 두터움의 영역과 가치를 제대로 측량해낸 점이다.

사실 우칭위엔도 형세판단력이 뛰어났다. 이를 테면, 국면이 좋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패싸움을 잘하는 우칭위엔의 습성을 감안하면 그도 당대에는 형세판단력의 대가였다. 그러나 우칭위엔의 사석작전으로 대변되는 돌의 능률에다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극초미세한 추상적인 부분까지 계산기를 들이 댄 공로는 분명 이창호에게 있다.

이창호 예찬론자인 서봉수는 말한다. “지금은 귀 부근에서 일어나는 형태는 모든 프로기사가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형세판단(끝내기)이란 부분은 기사마다 다 다르다. 그 중 제일 정교하게 계산하는 사람이 이창호이다. 수많은 승리가 이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º 보여줄 것이 남은 이창호
바둑계에는 오래전부터 3대 거장이라고 하는 인물이 있다. 4세 본인방 도샤쿠, 15세 본인방 슈샤쿠, 그리고 우칭위엔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있어온 지 50년 이상이 흘렀고 일본위주의 가치관이 팽배해 있을 때 나온 말이다. 지금쯤 당연히 업그레이드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

예리함이나 화려함으로는 기존 강자에 비할 수는 없지만 색연필 같은 뭉툭함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는 진정한 바둑의 깊이를 가르쳐 준 이창호도 거장의 한자리를 차지해도 되지 않을까. ‘천재는 이러 이러한 형상을 하고 있다’라는 통념마저도 허물어 버린 이창호. 이창호가 더욱 대단한 것은 우칭위엔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고 이창호는 아직도 보여줄 것이 남았다는 점이다.

[사진-월간바둑 제공]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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