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06 서봉수를 추억하다
삼성화재배 4강에 오른 서봉수에 관하여
2006-11-10 오후 6:57:38 입력
| 2006년 그의 나이 54세, 한국랭킹 35위로 추락한 서봉수에게 더 기대할 것이 남았을까? 모든 이의 관심이 이창호의 부진과 한국바둑의 위기에 쏠려있는 마당에 서봉수가 쇼킹한 것을 보여줄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삼성화재배 8강전이 열리던 9일.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정각부터 대회장인 유성으로 차를 몰았다. 아침도 굶고 논스톱으로 달려간 이유는 순전히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분명 보여줄 것이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누군가는 말한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있어도 2인자는 되었을 것이고 5부 리그같은 허접한 곳에서도 2인자는 되었을 것이라고. 결코 쓰러지지 않은 오뚝이 인생 서봉수는 그 흔한 천재기사 소리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입단을 해야만 대성한다.’라는 지당한 말에도100%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18세의 늦은 나이에 입단한 서봉수 때문이다. 타이틀을 무수히 가져본 적은 별로 없지만 하나는 꼭 허리춤에 가지고 있으려 했던 사람. 서봉수는 늘 조연이었지만 주연급 대우를 받는다. 작품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흥행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70년대 그가 혜성처럼 등장할 때는 특이하게도 ‘순국산’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었다. 80년대에는 세계최고의 천재기사 조훈현의 독주천하가 계속되자, 그는 밟힐수록 더 강하게 일어나는 잡초정신으로 무장한 승부사로 변신한다. 90년대 이창호 유창혁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 같을 때도 그는 막 뒤로 몸을 가렸다. 그러다 국가대항전인 진로배에서 자신을 낮추어 2장으로 참가한 다음,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9연승 신화를 일구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서봉수는 막상 이겨주어야 할 때 이겨주는 재주가 있다. 대국 개시-물수건의 추억 한판에 3억이 걸린 큰 판을 앞두고 진정이 안 된 까닭에 물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그였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그는 애꿎은 물수건을 얼굴에서 떼어내질 못했다. 긴장하여 홍조가 가득한 상태인 얼굴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오늘은 ‘고작’ 8강전인데 93년의 기억처럼 여전히 이토록 떨려오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터. 그가 비록 백전노장이고 만인이 익숙한 세계대회라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오랜만에 찾아오는 낯선 자리이다. 그래서 그는 떨린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애꿎은 시계만 자꾸 바라본다.
93년에는 제일 강하다는 조치훈을 이기고 응씨배 결승에 올랐고, 오늘은 중국이 자랑하는 신병기를 녹여버리고 이 자리에 올라왔다. 중국의 15세 유망주인 장웨이 17세 천야오예를 연파한 서봉수. 조훈현과 이세돌을 거푸 꺾어 이번 대회에서 최대의 이변을 일으킨 왕야오라는 젊은이를 앞에 두고 있다. ‘그래, 자신 있어. 서봉수는 중국기사 킬러잖아.’ 기자실에서 최명훈과의 여러 대화 최명훈은 서봉수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지금은 비록 후배들이 너무 잘 두지만 저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리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서명인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죠. 서명인의 랭킹이 35위이니까 35위 이내의 기사들은 세계8강에 올라갈 수 있다는 뜻도 되잖아요. 저도 기회가 올 것 같아요.” 필자는 서봉수의 우승확률을 놓고 최명훈과 설왕설래했다. 그는 세계대회 16강은 운으로도 갈 수 있고 8강은 기본실력이 갖추어져야 가능한 단계이고 4강에는 무조건 우승후보군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아직까지는 고민이 된다는 얘기. 그러나 최명훈은 8강전이면 조심스레 5대1까지 예상해봐도 되지 않겠냐고. 만약 4강에 올라간다면 예상은 3대1 정도라고 한다. 4강전에서 3대1이든 8강전에서 5대1이든 서봉수의 가능성을 산술적인 확률보다 높히 산다는 것이리라. 좌변에서 선수를 잡고 손을 뺀 뒤, 우변의 집이 박스형으로 되자 서봉수의 바둑이 좋아진 듯했다. “저 손을 보세요. 손이 떨리는 것을 보니 서명인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최명훈의 한마디에 기자실의 눈은 전부 다 모니터로 향했다. 서봉수의 떨리는 손길은 93년 잉씨배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최악의 바둑에서 '역전'이라는 단어를 걷어 올릴 때 심장이 떨리고 그의 손이 덩달아 떨리는 것을 필자도 목격했다. 오다케의 실수로 역전의 빌미를 찾은 서봉수는 승착을 놓기 이전에 자신도 모르게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기를 십 수차례. 오히려 이를 본 상대 오다케가 ‘허 허’ 웃어넘겼다. 오늘 서봉수가 손이 떨리는 것은 뭔가를 봤다는 증거란다.
그를 몇 십 년 간 보아온 프로기사도 조훈현에게는 강자의 카리스마가 배어있다고 한다. 양재호를 제외하고는 조훈현에게 제대로 말을 붙이는 기사는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바둑판 주위에 둘러서 있지만 양재호와 조훈현의 대화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오히려 조훈현이란 거인을 보기위해 몰려든 팬들도 다수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의 휘날리는 흰 머리카락에도 카리스마를 느낀다고 한다. 50대가 되어도 카리스마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서봉수는 자연인이다. 종로 한국기원 시절 그는 늘 입던 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래서 바지의 엉덩이 부근이 반질반질하여 헤어질까봐서 괜히 옆에 있던 사람이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그에게 말을 건네면, 대답에는 1초도 안 걸린다. “떨어지면 바꿔 입지. 뭐...” 15년 전쯤이다. 월간바둑에는 후지쓰배의 전야제 사진이 실렸다. 사진 속에는 각국의 기사들이 양복을 입고 근사하게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유독 한사람만이 편한 와이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고교생이던 이창호도 정장차림으로 나왔는데도 40대의 서봉수만이 여전히 전투복 차림이었다. 서봉수는 추우면 움츠리고 두꺼운 옷을 입는다. 그는 철저한 자연인이다.
93년 응씨배 때만해도 복기하기 싫어했다. 속으로는 열불이 터지는데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하는 것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 그 이유. 당시 오히려 역전패한 오다케가 복기를 요청하자 억지로 행하긴 했다. 복기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관계자에게 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기억도 있다. 오늘 싹싹한 청년 왕야오는 야릇한 웃음을 띠며 복기에 임하니 이 또한 흐뭇하다. 왕야오의 입장에서는 절대 지지 않아야 할 노장에게 패했다며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즐거운 듯 시종 상냥하게 웃어가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그래도 각자 자국 언어로 잘도 통한다. 13년 전과는 입장이 바뀐 것이다.
에 져도 내상이 없다고 한다. 충분히 충격을 흡수할 두께가 있다는 뜻이었다. 기자가 기사만 쓰지 않으면 좋은 직업이듯 승부사가 패배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커다란 복이다. 돌아오는 길의 상념-서봉수는 기량이 아니라 기세로 승부하는 사람 그는 변신의 귀재이다. 그가 변신을 하는 이유는 정글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초강자는 구태여 변신할 이유를 못 느끼지만, 서봉수는 보호색으로 자신을 위장하기도 하며 은폐 엄폐를 장기로 삼는다. 때로는 긴긴 운기조식의 겨울잠을 자기도 하면서, 모자라는 힘을 전부 쏟을 시기를 조절한다. 자신에게 주어질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가진 힘을 120%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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