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신라면배
수렁에서 건진 박영훈의 3연승!
농심배 부산투어 관전기
2006-11-28 오후 5:47:14 입력
| 원성진의 대국을 스카이 바둑 TV로 본 심정은 착잡했다. 3전 전패. 이제 한국의 남은 기사는 박영훈, 이창호 고작 2명이질 않은가. 중국은 아직도 4명. 1승에 이토록 목메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녕 조훈현, 최철한, 원성진이 빈손으로 돌아갈 위인이던가. ‘이건 아니잖아?’ 우승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심하게 무너진다는 생각이다. 당장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구세주 박영훈이 나서서 3연승을 내달아 준다. 펑첸의 5연승에는 덜 미치지만 ‘보리흉년’에 3승이 웬 말인가.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겨우 응원단 1명이 더 합류했을 뿐인데^^)
첫째날, 제5국(펑첸 : 이마무라도시야) 펑첸 3연승! 일본 4장 이마무라도시야는 애초에 펑첸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0줄에 들어선 그는 그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대로 밀려버린다. 이마무라는 초반 잠깐 적극적인 포석을 펼치다가 중반에 등장한 착각수로 말미암아 일찌감치 129수만에 불계패. 불길을 잡는 것은 고사하고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만 얹어준 결과였다. 펑첸은 연승상금 1000만원까지 획득. 대국 후 한국 선수단은 다음 타자로 원성진을 내정한다. 그 대국 결과에 따라 다음 타자도 정한다는 것. 원성진이 지게 되면 박영훈이 다음 타자로 나올 것이고, 이기면 이창호가 나온다고 결정을 본 상태였다. 농심신라면배 사상 이창호가 주장이 아닌 순번으로 나올 뻔했던 것이다. 둘째날, 제6국(펑첸 : 원성진) 펑첸 4연승! 원성진은 초반전투에서 신수를 선보이며 발 빠르게 실리를 차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쿵제로부터 중반초입에 “아마도 다음 기사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수모를 당한다. 150수에 이를 즈음 김수장도 역시 “흑이 아주 힘들다.”며 패배를 알렸다. 펑첸은 2000만원의 연승상금까지 타냈다.
인터넷을 타고 올라온 팬들의 원성은 컸다. 중국은 랭킹 16위 이내의 기사가 선발전을 벌여 4명을 선발하고 한국에게 자신감이 충만한 천야오예에게 시드배정을 하여 드림팀을 구성했는데, 한국은 이세돌을 뽑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 다수였다. 펑첸의 4연승이 확정되자 중국의 2장으로 내정된 쿵제는 즐거운 부산여행을 마치고 새벽 일찍 귀국길에 오른다. 반면 한국은? 주장까지 대기 시켜놓아야 한다. 한국기원 사무처가 바빠진다. 이미 중국에서는 대리배가 치러지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파견 간 직원이 있고, 한국에서는 최대기전 GS칼텍스배 도전기가 치러지기 때문에 사무국은 눈 코 뜰 새가 없다. 그 와중에 이창호를 수소문하여 내일 중으로 데려와야 한다. 중반 초입까지 그런대로 야마다는 잘 짜나갔으나, 후반에 추격을 허용하여 백중세. 결국 끝내기에서 펑첸은 월등한 기량을 선보이며 233수만에 백 3집반승. 농심신라면배 최다 연승인 5 연승 타이기록을 세우며 연승상금이 3000만원으로 불어난다. 갑자기 검토실은 또 펑첸의 상금가지고 한바탕 화제가 된다. 대국이 6판까지는 예정되어 있으므로 각 300만원씩 해서 1800만원. 연승상금 3000만원. 만약 중국이 우승하기라도 한다면 1인당 3000만원. 게다가 중국기원에서 주어지는 특별 상여금 + 알파. 최소 4800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가능하다는 결론. 아닌 게 아니라 농심에서도 연승상금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자실의 입방아는 펑첸이 계속 3집반승을 거두는 것에 ‘뭔가’가 있다는 주장이 나돌기 시작한다 . 하긴 펑첸이 5연승을 거두는 동안 백으로 3집반을 이긴 것이 4번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민심도 흉흉한 법이다.
희한하게 농심신라면배의 전신인 진로배에서 서봉수가 9연승을 한 스토리와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진로배 5회 대회에서 위빈이 초반 2 연승한 뒤 서봉수가 9연승을 일구었는데, ‘펑첸도 혹시?’ 앞으로 4판을 더 이기려면 확률이 16분의 1. 고개를 연신 가로젓게 된다. 9연승은 두고두고 생각해봐도 대단한 기록이다. 펑첸의 ‘손톱 물어뜯기’가 화제가 되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데도 아랑곳없고 시도한다. 이번 대회에서 연승을 하면서 계속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는 양쪽 손톱 모두를 물어뜯는다. 대국이 이토록 많았음에도 아직 물어뜯을 손톱이 남아있는 지 의문이 들 정도. 궁금하면 못 참는 필자가 아니던가. 대국 후 검토실에 들어와서 음료수를 찾는 펑첸에게 다가가서 용의검사를 실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톱이 거의 다 상해버려 몹쓸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도 검사의도를 아는지, 슬쩍 손을 빼면서 ‘씨~익’ 웃고 만다.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라고. 저녁 만찬이 있었다. 농심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만찬자리에 주장 이창호가 허겁지겁 내려와 자리를 같이했다. ‘아이고…드디어 우리 팀 주장이 제일 먼저 자리를 빛내구나…’ 인물로야 요다노리모토도 잘 생겼고 구리도 잘생겼는데, 이것 고작 1승도 못 올린 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박영훈이 만찬자리에 안 보인다. 내일 등판할 박영훈은 연구를 하느라 객실에서 혼자 식사했단다. 만약 그마저 진다면, 한국바둑의 조종을 울려야 할 계제이다. 상상해보라. 4연패. 박영훈은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가 가슴을 그렇게 짓누를 줄이야 … ‘ 잠이라도 잘 자야 하는데…’ 넷째날, 제8국(펑첸 : 박영훈) 박영훈 1승! 예감은 좋다. 이번 판은 지게 되면 우승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한편 이미 5연승을 거두면서 연승상금 3000만원까지 챙긴 펑첸은 한 번도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펑첸은 또 백을 들었다. 기분이 묘하다. ‘백 3집반승…’ 이날 대국에서 초반 백을 쥔 펑첸은 좌상귀와 하변의 실리를 벌어들였고 흑은 좌변 실리를 챙기며 이에 맞선다. 70여수가 진행될 무렵 검토실에서는 백이 약간 편하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박영훈은 두터움이 지나쳐 중복의 형태를 만든다. 불안하다. 게다가 우하귀에서 백을 너무 쉽게 수습까지 해주어서 절망적이다. 천야오예는 “곧 끝날 것 같다 .”며 백의 승리로 예측한다. 검토실에 이창호가 들어왔다. 그의 등장이 오늘은 반갑지 못하다.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그도 박영훈이 나쁘다고 한다. ‘이 일을 우예 하노?’“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지구나. 성진이도 신수 깨나 연구한 것 같던데…”, “영훈이도 엊저녁에 만찬도 참석하지 않고 연구하더니…” 검토실의 김영삼은 또 요상한 말을 한다. 불안하니 평소실력대로 두지는 못하고 뭔가 무기를 하나 더 들고 전장으로 행해야 한다는 생각 탓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토실이 곧 황량해진다. 이창호도 떠나고 김영삼, 한종진, 홍민표 등 다들 떠나버린다. 흔히 떠나버리는 것은 바둑이 기울었다는 반증이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특유의 힘을 내기 시작하는 박영훈이다. 진득한 특유의 끝내기에 질려버린 펑첸은 슬금슬금 양보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반집승부까지 몰고 간다.
박영훈의 강인한 끝내기 솜씨는 아직 펑첸은 일류가 되기에는 조금 모자란다는 깨우침을 던져 준 것이다. 펑첸은 연승을 계속하다보니 꼭 이겨야 한다는 맘이 풀어졌던 것일까.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한다. 281수만에 박영훈의 흑 1집반승. “역시 다 이긴 바둑을 이기는 것이 가장 힘들어.” 필자의 한마디가 검토실을 모처럼 웃음 짓게 했다. 다섯째날, 제9국(박영훈 : 다카오신지) 박영훈 2연승!
썩어도 준치이다. 결전을 앞둔 사무라이가 비장한 심정으로 인사한다. 절도가 있다. 바둑은 초중반에는 매서웠다. 그는 중반까지 실리를 한참 당겨놓아서 유력한 형세를 만들었으나, 박영훈의 세력에 끝내 뛰어들지 못하며 우물쭈물한다. 바둑이 피차간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중반을 넘기자 박영훈의 자세도 꼿꼿해지고 형세도 넘어온다. 확실히 일본 바둑은 치열한 맛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실리를 많이 확보했다면 중앙에서 뭔가 살아가는 수를 연구해야 했던 것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중앙의 철문이 그냥 닫히고 마는 것 아닌가. “형세판단이 부정확하던, 용기가 없던 둘 중 하나이지…” 걱정이 되어서 어젯밤 부랴부랴 부산으로 향했다는 조훈현의 말이다. 판세가 좋아지자 필자가 한마디 했다. “박영훈이 앞으로 1승만 더 해주면 이창호가 2승은 해주겠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요즘 창호도 못 믿어. 영훈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주어야 해.” ‘아… 언제부터 이창호가 그렇게 되었지.’ 여하튼 조훈현이 검토실에 나타나면 활기가 넘친다. 마지막 날, 제10국(박영훈 : 천야오예) 박영훈 3연승!
박영훈은 ‘소신산(小神算)’의 면모를 과시한다. 3연승이다. 대국 전날 타이젬 정기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1주일째 검토실을 지키다 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까요? 대국도 하지 않으면서 피로 할 것 같은데요.” “창호형이 있지만 나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 3연승을 거둔 박영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한국바둑의 꺾인 자존심을 되찾는 일에만 생각이 미치는 듯했다. 애국심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다. 연승상금도 관심 없단다. 남은 일정 - 시작이 반이다.
여전히 중국의 가능성이 제일 높다. 3차전도 박영훈과 요다노리모토부터 대국을 시작하니 말이다 . 일본은 요다가 4연승을 해야 하고 한국은 3승을 2명이서 해결해야 한다. 반면 중국은 2명이 2 승을 책임지면 된다. 그러나 기세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어린 왕자 박영훈이 그야말로 황제가 되느냐의 기로에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