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덴소배
이세돌, 황금돼지 잡다
벼랑 끝 승부 즐기는 타입-자유로운 발상 이세돌류
2007-01-11 오전 11:27:38 입력
| 엊그제 벌어진 제3회 도요타덴소배 결승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이세돌의 투혼은 새해 벽두 바둑가를 감동시키기엔 최적이었다. 팬들은 3번기에서는 1국을 지고서 2,3국을 이겨 역전승하는 구도가 가장 짜릿한 승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응원하는 쪽이 이긴다는 보장만 있으면. 꼭 그렇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이세돌은 승부 자체도 가장 매력적으로 치러낸 기사이다. 작년 세계대회의 부진을 씻고 07년 첫 세계대회 우승을 기록하게 된 이세돌의 쾌거는 한국바둑계로서도 길조. 도요타덴소배는 1회 때 이창호가 우승을 차지한 이래, 이세돌이 2,3회를 연속 우승했다. 9연패를 이어오는 후지쓰배와 더불어 한국은 일본주최 세계기전을 완전 정복하는 중이다.
최근 일본 기전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독이 잔뜩 올라있는 장쉬. 2년 전 LG배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는 강타자이다. 일본기사로는 드물게 모양바둑에서 탈피한 몇 안 되는 기사여서 일본 기사 중에서는 가장 강한 상대로 꼽힌다. 그의 기풍이 와일드한 쪽이라서 어쩐지 어려운 상대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공이 울리자마자 장쉬는 타고난 인파이터 이세돌을 의식한 듯 길게 가면서 잔잔한 바둑을 이끈다. 그렇다고 못 이길 이세돌이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권법으로 기꺼이 임한다. 그래도 큰 승부의 관록 차이인지, 점점 차이가 벌어져서 중반 승부처에 이르러서는 반면 10집의 격차까지 벌어진다. 이젠 이겼다 싶었다. 중앙만 마무리가 되면 바둑은 끝이었다.
최근 일본 기전에서 연거푸 타이틀을 잃으며 하락세를 보였던 장쉬와의 첫 대결은 패배한다.99년 고지마고토에게 이긴 후 06년 하네나오키까지, 무려 일본기사에게 21연승을 기록하며 ‘일본기사 킬러’로 군림했던 이세돌. 그의 연승 기록이 1국의 반집패로 인해 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랴…. [ 도요타덴소배 1국 하이라이트 - 새해 첫대국서 반집에 울다] 2국-180수 끝/ 이세돌 불계승 백을 잡은 이세돌은 초반 포석에서 실리를 먼저 차지하고 상대방의 진영에 뛰어드는 전형적인 실리작전으로 방향을 잡았다. 실리에서 앞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리를 앗아버리고 나면 상대가 초조해서 싸움을 걸 테니까 자연스레 전투가 일어난다고 본것이다. 자신의 페이스로 이끌겠다는 얘기였다.
형세가 유리해지면, 조급해지고 불안하고 빨리 타협하고 싶은 속성은 하수나 상수나 매한가지이다. 이세돌은 그러한 심적 동요를 일으킬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이세돌식 대시는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불안한 면도 없진 않지만, 그것이 확실히 승기를 놓치지 않는 길이라면 그 또한 이겨가는 좋은 방법이리라. [도요타덴소배 2국 하이라이트 - 짜릿한 쎈돌의 급소 일침] 벌써부터 역전극이 기대된다. 이세돌은 절벽 끝 승부를 즐기는 간 큰 사나이 가 아닌가. 단판승부라고 보면 될 듯하다. 단판승부로 벌어지는 유일한 세계대회인 후지쓰배에서 이세돌은 무려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어쩌면 딱 한판만 두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이세돌이다. 물론 번기에는 이창호가 있다. 장쉬도 열이 오른다. 어차피 뒤가 없는 막판이므로 그 긴장도는 극에 달한다. 2국과 마찬가지 진행을 보인다. 17번째 수에서 비튼다. 장쉬는 그 수가 어제의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여기서는 평범한 정석이 최선이라는 검토실의 결론이었으나, 이세돌은 ‘그래? 한번 해 보자’라고 선언하듯 새로운 길을 가본다. 처음 보는 수를 과감하게 둔다. 최소한 세계대회에서는 처음 보는 신수. 이세돌의 배짱이다. 그 신수를 대하는 장쉬도 처음이라 어색하지 않겠냐는 전투적인 마음으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수를 선뵌다. 이세돌은 체질적으로 익숙한 길에서 싸우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발상이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신수는 장쉬의 반발을 불러와서 초반부터 속칭 ‘망한다.’ 만약 망한 주인공이 이세돌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여기서 끝났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터움을 허용했다. 신수는 불발로 끝이 난 것이다. “이세돌은 역전을 잘 시키는 기사이기 때문에 아직은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TV해설자나 인터넷 해설자 등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과거 이창호를 대하는 기사들의 반응이 생각났다. “이상한 수이긴 한데 이창호가 둔 수라서…” 일인자의 수읽기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불리한 바둑을 잘 뒤집는 기사가 이세돌이란다. 심지어 김만수는 “이세돌이 불리하지 않다.”며 이세돌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였다. 조금 유리해지자 오히려 끝을 생각했을까? 장쉬의 바둑이 오그라들기 시작한다. 야금야금 양보를 하는 것이다. 조그만 유리함에도 승리라는 글자가 비추기 시작하여 타협만을 일삼게 되는 것이 ‘벼락부자’들의 기본자세가 아닌가. 프로의 해설을 십 수 년 간 받아본 필자의 경험으로는, 한쪽의 실수에 다른 쪽의 실수가 흔히 이어지곤 한다. 그것은 ‘의식한다.’는 얘기이리라. 장쉬의 지나치게 두텁게 둔 완착 두 번에 어느새 국면은 어울렸다. 이세돌의 힘자랑은 그때부터 계속 판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큰 승부는 심장싸움이라 했거늘 장쉬의 심장은 그날따라 나약했다. 잘 뒤집는다는 표현은 거꾸로 말하면 상대가 이겨가질 못한다는 뜻이다. 역시 ‘다 이긴 바둑’을 이겨가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증명되는 순간이다.
흑이 승부수를 던진다. 하자는 대로 해주지 않아도 이세돌은 무난하다. 그러나 이세돌이 누군가. 옥쇄를 각오한 덤비는 장쉬에게 기어코 사약을 내린다. 중앙에서 돌 수 39개의 대마를 모두 잡아버린다. 장쉬는 이세돌이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큰 기술로 패하고 만다. [도요타덴소배 3국 하이라이트 - 세계제패로 쓴 신년 연하장] 맺으며- 외줄 위에서의 승부를 즐기는 이세돌은 발상이 자유롭다. 남들이 주목하고 있으면 더 잘 둔다. 상대가 원하는 권법으로 확실히 제압해준다. 이런 그가 늘 위태위태하지만, 이세돌 나름의 이겨가는 최단코스인 것이다. 이제는 이세돌식 경영에 믿음이 간다. 일단 작년과는 너무 다른 출발이다. 이세돌이 새해 첫 선물을 안겨주며 올 한해 확실한 부활 조짐을 보여주었다. 6개월 동안 세계대회 우승에 목말라했던 한국으로서도 무한한 힘을 얻게 되었다. 이세돌이 5개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작은 뉴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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