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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옥션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마지막 주자 조훈현 벌써 4연승-압도적 리드하던 여자팀 비상

2007-06-13 오전 10:02:38 입력 / 2007-06-13 오전 11:11:40 수정

주목받는 지지옥션배

부상을 당한 주인공을 병풍처럼 둘러싸며 창끝을 겨누고 있는 뭇 적병. 카메라는 주인공의 위를 한 바퀴 서서히 돌아가면서 계속 침묵이 흐른다. 다 돌았다 치면, 곧 “이얍!” 기합소리와 함께 화면은 요동친다. 주인공의 휘두르는 칼날에 엑스트라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가는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무협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항상 이런 식이다.

두 사람의 전력이 같다고 가정하고 1명과 8명이 차례로 싸운다. 그렇다면 1명이 이길 확률은 2의 8제곱이니 256:1이다. 아직 여자팀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상대가 천하의 조훈현이라면 조금 상황은 달라진다. 세상에는 객관적인 확률이나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당해낼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

요즘 세간의 화제는 단연 지지옥션배이다. 시니어팀(45세 이상)과 여자팀이 ‘맞장’을 뜨는 대회방식부터가 흥미롭다. 요즘 들어 다양한 형태의 기전이 생겨나지만 ‘불완전매치’ 성대결이 시도된 것은 처음이다. 대회 초반은 여자팀들의 압도적 우위로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조훈현의 대활약으로 뉴스의 초점이 옮겨진 것이다.

시니어기사와 여류기사끼리의 12:12의 ‘맞장 뜨기’는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힘을 쓰는 관록의 카리스마 조훈현 덕분에 이미 최고조의 즐거움이 생겨나고 있다.막판에 몰린 그는 어느새 4연승-. 이제는 조훈현은 상수(常數)이고 남은 여자선수들이 종속변수로 등장 할 것이다. 6월 들어 완전히 입장이 바뀌어버린 것.


예상을 빗나간 연승 연패
애당초 팬들의 예상과 전문가들의 예상은 당연히(?) 어긋났다. 팬들은 아무래도 이름이 익숙한 시니어가 선전할 것이라는 쪽이었다. 김수장·장수영·오규철 등과 마지막에 포진해 있는 서봉수· 조훈현이 타고난 맹장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상대적으로 여자팀은 조혜연·박지은·루이나이웨이· 김혜민·이민진 정도가 시니어와 대등할 것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열대성저기압도 서서히 태풍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초반 3연승을 이끈 입단 6개월차 박지연(정대상·김석흥·김동엽 승), 입단 1년차 고주연(이홍렬 승리), 백지희(장수영 승) 등 세 초단은 쟁쟁한 9단진을 꺾은 것이 힘이 되었다. 따라서 점점 여자팀은 자신감으로 충만 되었고, 시니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 여류팀 박지연(오른쪽)은 1번 타자로 출전해 3연승을 거두며 기선제압을 했다.

또한 고작 2단인 김수진은 권갑룡 김일환을 꺾었고 본 대회 최고의 히로인 김은선은 김종준·김수장·오규철·서봉수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어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그가 시니어의 마지막 주자 조훈현마저 꺾었다면 올해 최고의 여자기사상은 따 논 당상이었을 것이다.

팬과 달리 전문가의 예상은 냉정했다. 심지어는 동료기사들까지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나이를 먹으며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여자팀 편을 들고 나섰다. 작년 전적을 보더라도 여자팀이 89승72패로 앞서며. 본선멤버 24명의 성적만을 집계한 결과는 11승4패로 여자팀이 우세하다. 물론 붙어본 기사의 전적만 집계되었기는 하지만.

다만, 팬이나 전문가나 조훈현·서봉수가 대기하고 있는 후반부로 가면서 승부가 꽤나 재미있어지겠다는 정도였다. 5월까지의 결과처럼 남은 기사가 8:1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선수들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


여자팀의 성장-초단돌풍의 진원지
이렇듯 여자팀이 놀랄만하게 리드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단 부담감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자팀은 경력이나 네임벨류로 보나, 설사 패하더라도 앗길 것이 없다는 편한 자세로 나선 반면, 시니어로서는 그 반대로 해석하면 되겠다.

또한 기본기량에서 여자팀이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여자팀은 승부에 대해 민감한 쪽이다. 따라서 거의 다 도장에서 연구회를 가지는 타입이며 막강 신예들과 계속 스파링을 하며 기량을 향상시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시니어들은 살벌한 전장에서 반발 짝씩 후퇴한 사람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민진·고주연 등은 유창혁 도장에서 거의 출근 도장을 찍는다. 또 박지은·이영신 등은 양건도장에 나와서 연구회를 가진다. 또한 나머지 여자선수들도 저마다 입단한 도장에서 끊임없이 기보를 놓아본다. 아직은 공동연구의 힘을 느끼고 산다는 점에서, 여자팀라고 굳이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신예기사인 것이다. ‘남자신예’에 비해 조금 기량이 달리는 풋풋한 ‘여자신예’이다. 평소 보급 활동을 주로 하다 ‘평소실력’으로 싸운 시니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초속기라는 점도 무시 못 한다. 시니어는 역전패를 많이 당했다는 점이다. 서봉수의 패배도 그러하지만 장수영·김수장·이홍열·정대상 등의 대국이 거의 다 역전이었다. 시니어들은 한번 기울어진 형세를 돌이킬 힘이 부족한 반면, 팔팔한 신예들은 기울어진 바둑을 역전시킬 힘이 있다. 역전된 바둑을 유지할 힘이 있다.


▲ 여류팀 김은선(왼쪽)도 4연승 행진을 벌이며 승승장구. 시니어팀은 믿었던 서봉수(오른쪽) 마저 잃게 되어 궁지에 몰린다.


여자팀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리트머스지
5월28일 김은선이 시니어 부주장 서봉수를 불계로 꺾으며 4연승을 질주한 것은 거의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김은선은 대국 후 “뒤에 언니들이 많이 남아있어 우리가 우승할 것 같다” 며 신예답지 않은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과연 산술적인 확률이 256:1이므로 어떻게 해도 이기지 않겠느냐는 강한 자신감이었다. 조훈현과 대동소이한 서봉수도 이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며, 마지막 용 그림에 점을 찍을 것인가. 여자팀은 6월에 들어서자마자 내리 4연패를 당했다. 혹시 서봉수가 예상외로 쉽게 넘어갔다고 해서 조훈현도 쉬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여자팀은 비로소 긴장하기 시작한다.

기세로만 뭉친 팀은 한 번 꺾이기 시작하면 계속 쓰러지는 법이다. 구심점을 점점 잃어간다. 상대가 천하의 철권 조훈현이라는 이름 석 자에 많이 꿀리는 느낌이다. 초조감은 정관장배 5연승의 이민진이 쉽게 물러나자, 고참 기사 윤영민도 불계패, 급기야 국내최강자라고 할 조혜연 마저 물러났다. 4연패한 대국 모두 불계라고 할 만큼 조훈현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간 여자팀은 시니어팀에게 거의 매번 종반 들어 행운의 역전승으로 승리를 가져갔지만 유독 조훈현에게는 먹히지 않은 것이다.

조혜연이 등판하기 전, 또한 남아있는 기사로 봤을 때 이영신이 조혜연의 앞에 나오지 않을까 예상을 했지만 흐름을 넘겨주면 안 된다고 보고 조혜연이라는 강타자를 앞에 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장애물신세가 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남은 기사에게 상당한 데미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시니어팀의 마지막 선수 조훈현(오른쪽)은 투혼을 보이며 4연승째.

이제 남은 것은 조훈현과 루이 박지은·김혜민·이영신 뿐이다. 조훈현은 남은 여자팀원 중에서 루이와 가장 대국을 많이 했을 뿐(5승3패) 박지은(1패), 이영신(1승) 등 입단 10년을 넘긴 기사들마저도 변변찮은 대국기회조차 없었다. 박지은이 조훈현에게 거둔 1승은 2000년도의 바둑왕전이라는 속기전이다. 박지은과 루이와의 대국이 타이틀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날짜
승자
패자
결과
1국
2007년 4월 9일
● 박지연
○ 정대상
239수 끝, 흑 불계승
2국
2007년 4월 11일
● 박지연
○ 김석흥
199수 끝, 흑 불계승
3국
2007년 4월 16일
○ 박지연
● 김동엽
150수 끝, 백 불계승
4국
2007년 4월 19일
● 이홍렬
○ 박지연
287수 끝, 흑 1집반승
5국
2007년 4월 20일
● 고주연
○ 이홍렬
241수 끝, 흑 불계승
6국
2007년 4월 21일
● 권갑룡
○ 고주연
276수 끝, 흑 8집반승
7국
2007년 4월 29일
● 김수진
○ 권갑룡
342수 끝, 흑 1집반승
8국
2007년 5월 5일
○ 김수진
● 김일환
92수 끝, 백 불계승
9국
2007년 5월 7일
○ 장수영
● 김수진
224수 끝, 백 불계승
10국
2007년 5월 12일
● 백지희
○ 장수영
191수 끝, 흑 불계승
11국
2007년 5월 14일
○ 김수장
● 백지희
280수 끝, 백 3집반승
12국
2007년 5월 16일
○ 김은선
● 김수장
295수 끝, 백 반집승
13국
2007년 5월 21일
○ 김은선
● 오규철
305수 끝, 백 2집반승
14국
2007년 5월 22일
○ 김은선
● 김종준
226수 끝, 백 불계승
15국
2007년 5월 28일
○ 김은선
● 서봉수
186수 끝, 백 불계승
16국
2007년 5월 29일
● 조훈현
○ 김은선
237수 끝, 흑 불계승
17국
2007년 6월 7일
● 조훈현
○ 이민진
243수 끝, 흑 불계승
18국
2007년 6월 9일
● 조훈현
○ 윤영민
195수 끝, 흑 불계승
19국
2007년 6월 11일
● 조훈현
○ 조혜연
274수 끝, 흑 5집반승


조훈현의 여유만만
김은선과의 대국 다음날. 우연히 필자는 명지대 10주년 기념식장에서 조훈현을 만났다. 지지옥션배 얘기가 어찌 빠지겠는가.
“아무래도 대회가 조·서를 괴롭히려고 기획된 것 같은데…?”
“너무들 했어. 한판씩은 이겨줘야지. 너무 많이 남겨놨어…”
“이제 7판 남았는데, 어떨 것 같습니까?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카운트하지 마!”

공교롭게 1주일 뒤 이민진과의 대국을 앞두고서 기사실에서 인터넷 기보검색중인 조훈현을 또 만날 수 있었다.
“심심치 않게 대국 많아서 좋겠어요.”
“응. 오랜만에 바빠…”
“너무 많이 남았지요?”
“오(규철)사범이나 서명인(서봉수)이 그래도 도움 좀 줘야 했는데…”
그 여유로움은 자신이 모조리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자기에게도 남은 힘을 과시할 기회를 잡은 것이 즐겁다는 눈치였다.

20년 동안 국가대표에이스로서 활약한 조훈현의 클로저로서의 능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클로저라고 해도 상대는 중심타선으로 들어선다면 그 끝을 자신할 수 없다. 아직은 아웃카운트가 4개나 남아있는데 말이다. 과연 조훈현의 바람을 가르는 카리스마를 보게 될 것인가. 여자팀으로서는 일단 15일에 이영신이 등판한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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