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시평
조선의 가객 신재효, 바둑을 노래하다
4음 4보에 50행으로 한탄조의 사설 가요
2007-06-12 오후 3:12:54 입력 / 2007-06-12 오후 5:26:34 수정
| 구한말 전설로 전해지는 가객들 중 신재효(1812-1884)는 특별하다. 그는 고창 사람으로 득음의 경지를 일찌기 이루어 조선 제일의 가객으로 일컷는 한편 노래까지 스스로 지어 여러권의 작품집을 남겨 더욱 유명해진 사람이다. 신재효는 가객의 왕으로 불린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노래가 전하는 가곡원류와 같은 저작 때문이다. 신재효는 구한말 일반 민중들의 꿈과도 같은 사람이었던 듯하다. 고종은 물론 대원군, 김좌근 등의 상층 사회는 물론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 한번 보고 노래 한곡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할 정도로 인기 만점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노래들 중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던 두편의 노래가 얼마전 임형택의 손에 의해 학계에 보고 되었다. 그 중 한곡이 바둑의 노래다. 바둑의 노래는 신재효가 직접 지은 노래로 4음 4보에 50행의 비교적 길지 않은 노래로 내용이 조선의 어느 바둑 시보다도 찰지고 튼실하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보면 꽃피고 새우는 곳에 집을 짓고 거문고와 바둑판을 준비하고 찾아 오는 벗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사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가객 신재효는 조선의 뒷담화(?)를 이렇게 노래했다.
바둑의 노래는 먼저 사서삼경과 육도삼략을 배워 부귀공명을 도모해야 할 조선의 사내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풍류로 나마 질탕하게 세상을 노닐며 염병을 떨다가 문득, 취몽에 깨어 보니 세상사 속절 없다는 한탄조의 사설 가요다. 신재효는 말년에 고향 고창에 내려가 한약방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생가가 그곳에 있다. 신재효는 가객이었지만 바둑에도 조에가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둑에 대한 이런 심층적인 속내를 피력할 수가 없다. 이 노래속에 바둑이 옷소매가 일으키는 맑은 바람이란 말과, 국상의 전쟁등은 신선 하고 참신하다. 특히 순장을 말하며 한자 旬(열흘순)을 쓰고 장자는 한글로 쓴 것도 순장이란 한자의 고증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오늘의 현실을 증명하는 듯하다. 환격이나 자사, 그리고 축 등의 바둑 언어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것은 바둑의 연구 자료로도 유용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한글과 한자를 겸용하여 쓰고 있기에 한역을 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로 따져보면 조용필이나 나훈아 정도가 바둑을 소재로 유행가를 지어 불렀다는 의미겠다. 유행가는 허접한 것이지만 당대의 문화 코드를 나타내는 지표인 이상 조선시대를 통 털어 바둑이 얼마나 융성했는 지를 우리는 이 노래 한 곡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 조선 시대에는 바둑이 대중들의 가장 넓은 저변을 나타내는 대중 가요로도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둑의 전성기는 오히려 오늘날 보다 그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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