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바둑처럼 외국인에게 차별성을 띄지 않는 종목도 없을듯하다. 축구, 야구 등 어떠한 종목에서도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경쟁심이 경기력보다 앞서는 게 현실이다. 일본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한국적 상항'에서도 바둑만큼은 국적을 추월해서 그들을 존경하는 종목이 또 있으랴.
일본을 상징하는 가장 일본적인 기사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60대는 조그만 키에 호탕한 오다케히데오를 꼽겠고 50대는 다소 비굴한 모습이나 언제나 실익을 챙기는 고바야시고이치를 꼽겠다. 현역기사인 요다노리모토에게는 40대 이하의 몰표가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가장 일본적인 기사 요다를 생각하는 연유는 후지쯔배의 20번째 주인공이 가려질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애증의 기억들 요다노리모토라는 이름을 처음 대한 것은 1990년대 초입이다. 최강국 일본의 대표신예로서 지금은 이름조차 희미한 고마쯔히데끼라는 청년과 쌍두마차로 자주 국제전에 등장했다. 그 즈음 생겨났던 SBS세계바둑최강전,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등에 단골로 출전하며 다케미야, 오다케, 고바야시 등 쟁쟁한 선배들을 앞세우고 그들은 훗날을 대비하여 싸움 기술을 익혔다.
7~8년이 흘러 그들을 이끌었던 선배들은 힘이 쇠약하여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예정대로 새끼사자들은 앞장서서 무리를 이끌지 못했다. 한 사자의 이름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요다사자'만 겨우 일본의 화려했던 기억을 혼자서 이끌어 갔다. 선배들처럼 같이 놀면서 뒹굴 친구가 없었다. 42세의 나이임에도 아직 왕좌에 즉위 못했으니 이름 하여 '늙은 황태자'이다.
마치 결투를 앞둔 무사의 시선처럼 두 눈을 부라리고 대쪽 같은 기세로 반면을 내리 찍는 폼. 작열하는 태양아래 돋보기로 벌레를 잡아 태울 듯한 집중력으로 반면을 응시하던 모습. 요다의 결의에 찬 대국 모습은 마치 일본의 추락하는 바둑을 원망하는 몸짓이었다.
10여년 전에 조훈현과의 대국에서 귀마개를 착용하고 나타났을 만큼 신경전도 피하지 않는 그였다. 한·일 대결이라는 느낌이 강했을까. 요다의 하오리하카마와 조훈현의 모시적삼이 절묘하게 대비되던 그 때 부터 왠지 요다는 한국인과 대결 할 때만은 늘 하오리하카마였다.
심지어 일본기전에서도 류시훈이나 조치훈과의 대국사진을 보면 그러한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린듯한 복장. 이런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한국 팬이 볼 때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요다는 일본바둑계의 파수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고집도 강한 사나이였다. 2~3년 전 쯤에는 NHK에서 요다가 지각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NHK속기전에 제외시키겠다는 '위협통고'를 보낸 적이 있다. 요다는 도를 중시하는 바둑에서 '일개의' 방송PD가 '이래라 저래라'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불참을 선언했었다. NHK배는 그가 수차례 우승한 애착이 가는 속기전. 바로 그 덕에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에서도 3회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요다이다.
 ▲ 1999년 제11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 모습. (출처-월간바둑) | 요다노리모토는 친한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후지쯔배 제주대국이었다. 전날 밤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요다와 마주쳤다. 기자 정신을 발휘해서 따라 붙었더니 그가 당도한 곳은 호텔 카지노. 어설픈 미행을 눈치 챘는지 빙긋 웃으면서 같이 하자고 권유했던 적이 있다.
잠깐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 중 지금도 기억나는 얘기 두 가지가 선명하다. 국보 이창호에 대한 걱정과 그가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 때문이었다. 대충 이런 뜻으로 기억한다. "이창호가 자신이 맘껏 하고픈 것을 하면서 살기 원한다. 남의 시선부터 의식을 하는 듯하다. 하고 싶은 대로 살길 원한다." (1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의 이창호와 딱 어울리는 충고가 아닐까 싶다.)
찰나의 대화에서 필자는 그의 인간미에 반해 버렸다. 그의 진심은 또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길을 가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바둑 팬이 있다.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나는 프로기사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프로는 신이 날 까닭이 없다. 이런 한국이 좋다." 그와 대화를 나눈 지 그 이듬해인가 그는 제주에서 재혼을 올린 것으로 기억한다. 요다는 대표적인 친한파이다.
요다의 절정기는 1997년 요다도 절정기가 지난 기사이다. 그의 바둑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1997년 유창혁과 벌인 80만 달러의 결투였다. 당시 삼성화재배와 응씨배에서 나란히 결승에 올라 자웅을 겨루었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응씨배는 유창혁의 품으로, 그리고 삼성화재배는 요다의 품에 안겼다.
요다는 14세에 입단하여 17세에 일본신인왕에 오른다. 그리고 29세에 십단전 우승으로 빅 타이틀 홀더가 된다. 이 과정이 비교적 늦었다. 젊은 시절 방황과 이혼 등이 그를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30세였던 1997년 이후의 성적이 좋다. 36세에 명인전에서 우승하며 처음으로 '빅3' 타이틀에 올라섰으며 40세에 농심신라면배에서 처음으로 이창호를 뉘고 일본에 우승을 안겼다.
그가 무척이나 아끼는 후배 이창호. 애증이 교차했던 승부의 현장에서 그와의 첫 대면은 1991년 벌어진 한일최강신예대항전이다. 당시 이창호는 3관왕이었고 요다는 일본 신인왕. 격이 맞지 않는 매치였으나 우리의 보배 이창호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일 기쁨에 일단 붙여놓고 보았다. 한국서는 1대1을 기록했으나 일본으로 간 16세 이창호는 맥없이 두 판을 더 내어주고 무너졌다. 25세 요다는 일본바둑의 저력을 보여주며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 후 이창호와는 악연이 계속되었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승리를 가져갔다. 막상 세계대회 결승에서는 맞대결을 펼친 적은 없었다. 미니 기전인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1999년에 한 번 만나 이창호가 패했다. '이창호 킬러'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2006년 농심신라면배 마지막 대국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명승부였다. 농심신라면배 '레전드' 이창호와 맞선 요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우승을 첫 우승을 안긴다. 도저히 우승전력이 아닌 일본에게 말이다.
현재 위치는 무관? 약관 20세를 맞은 후지쯔배에서 애당초 우승후보를 거론할 때 요다는 꼽히지 않았다. 후보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가? 대개는 자국에서 1~3위 안에 속하는 기사가 꼽히곤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요다는 일본 내에서 무관이니 그럴 법하다.
그러한 '기계적인 판단'은 그 기자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최소한 일본에서는 우승후보를 거론할라치면 요다와 장쉬 정도가 세계대회 랭킹 1, 2위일 것이다. 기성 야마시타게이고, 명인·본인방 다카오신지보다 밖에서는 여태 보여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요다야말로 일본기사답지 않게 한·중 정상급에게 눈에 띄는 승리를 많이 거둔 것을 잊었는가. 이번 후지쯔배에서 리저, 구리, 왕시를 거푸 꺾고 올라왔다.
일본의 '빅3' 보유자인 그들은 국제전에서는 너무나 열세이다. 다카오신지는 2005년 본인방 획득한 이후 국제기전에서 연패를 거듭해 현재 1승 10패를 기록 중이다. 야마시타게이고는 2003년 기성을 획득한 이후 2승 5패를 당했다. 따라서 난파선에 몸을 맡긴 일본 바둑계가 믿을 건 오직 요다 밖에 없는 것이다. 단판 승부에 강한 그는 누구도 꺾지 못할 위인은 없다고 믿는다. 바로 이창호에게 강세를 띄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상대전적 8승 10패.
최근 일본은 잔치집 분위기란다. 오랜만에 일본기사가 4강에 2명이나 진출해 한국과 태그매치를 벌이게 된 것. 그런데 일본의 최강기사라고 할 장쉬와 요다가 속해있기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우승의 부푼 꿈을 가지고 있다. 일본 팬의 속내는 '메이드 인 저팬' 요다노리모토가 한국의 대소신산(大小神算) 이창호, 박영훈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 지난해 2월. 농심배 최종국 이창호 9단과 요다노리모토 9단의 대국 모습. | 요다노리모토 VS 이창호 맞대결 기대 예전 같지 않은 요다노리모토와 흔들리는 이창호가 이번 후지쯔배에서는 같은 목표가 있다. 후지쯔배 10년 만에 우승이라는 동시목표이다. 이창호는 개인적으로 10년 만에 도전하는 셈이며 요다노리모토는 10년 만에 조국 일본에게 타이틀을 가져다주고 싶은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무관의 위기에 봉착한 이창호는 위기의 7월이라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1년 전과 비교하여 국수전, 십단전, 바둑왕전, 춘란배 등의 우승컵을 후배들에게 내어주고 현재 왕중왕전과 왕위전만 갖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남은 두 개도 마지막 한판씩 남겨놓고 있다.
일찌감치 무관으로 전락한 요다노리모토. 그러나 그는 조국 일본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진정한 열도의 자존심이 아니던가. 이창호가 독야청청하면 할수록 그와의 승부에서는 강했던 자. 언제든 누구든, 살기 넘치는 사무라이의 눈매에 주눅이 드었던 기억들. 이창호와 요다간의 맞대결을 기원해 본다. 만약 성사된다면 세계타이틀을 놓고 만나는 마지막 기회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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