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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시평

이창호, 기왕 산보에 나섰다면 여유롭게 하시라

왕필과 이창호, 천재들이 사는 법

2007-07-10 오전 11:23:55 입력 / 2007-07-10 오후 1:09:44 수정

경방은 상하사방고금왕래라 했고 반고는 엉뚱하게도 바둑판에서 땅의 모습을 보고 바둑판의 줄에서 덕의 본질이 신명임을 알았다고 했다. (上下四方古今往來. 局必方正象地則也.道必正直神明德也. 경방역전, 반고기국문)

경방은 우주라는 절대의 공간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3차원의 자각을 했고, 반고는 이 3차원의 자각을 바둑판으로 표현하려 했다. 표현은 언어와 문자라는 상징과 기호 체계속에서 눈사태 정석마냥 천변만화한다.

동중서, 정현, 묵자, 공자등 언어 학자들은 말로 사물을 기르키면 名이라 했다. 名이 곧 字라는 것이다. 설문은 名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라 한다. 임의광도 이에 동조를 했다.

좌전에 臣妾多逃라는 말이 있다. 신하들과 첩들이 도망 갔다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글귀다. 다시 좌전에 男爲人臣女爲人妾이 나온다. 신첩다조로 본다면 이 말의 뜻은 남자는 신하고 여자는 첩인것일까. 설문(설문해자)은 동중서, 묵자, 공자, 정현 등이 말한 名이다. 명은 사전이란 뜻이다. 이 설문은 신과 첩을 이렇게 말한다.

臣- 牽也事君也.象屈眼之形.

정현은 臣謂因孚가 臣이다 해석한다. 臣은 곧 포로로 잡은 노예를 말한다. 첩은 포로로 잡은 여자 노예다. 臣과 妾을 포로로 잡은 노예로 해석 할 때 좌전의 저 두 문장은 명쾌해진다. 춘추시대 臣 妾 畜은 같은 의미였다. 남자 노예, 여자 노예, 가축은 같은 의미다. 臣과 妾이 신하와 데리고 사는 여자로 격상된 것은 따질 일이 아니다. 노자는 천재가 있다고 했다. 설문은 천재를 특별한 존재라 한다.

구당서는 천재를 말한다. 열살 된 왕자가 논어를 이해하니 천재가 아니냐는 것이다. 율곡행장에는 율곡이 다섯살에 시를 지었을 정도로 천재라 한다. 천재는 하늘이 낸 사람이란 뜻이고 어린 재목들에게 세상의 기대를 당부하는 덕담으로 곧 잘 쓰이는 말이다.

어린 재목에게 바라는 세상의 덕담이 천재라면, 어린 나이에 세상의 기대의 정점에 선 사람을 천재라 일러 과찬이 아닐 것이다. 나는 역사속의 모든 인물들 중 천재 두 사람을 꼽으라면 왕필과 이창호를 꼽겠다. 이 두 사람은 20대 초반에 한 세계를 완전히 제압했던 사람들이다.

왕필(226-249)은 위진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노자주'라는 저서를 통해 오늘날 세상에 전하는 노자 담론의 9할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 어떤 학자가 노자를 운운 해도 결국은 왕필의 보법안에서 좌충우돌 할 뿐이다. 왕필은 또 다른 저작 '주역주'를 통해 4세기에 이미 상수주역의 견강부회와 치졸성을 털어 내는 혁명적(?)인 주역관을 펼쳐낸다.

- 올무는 토끼를 잡기위한 목적이니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버려도 좋고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위한 도구니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도 좋다. 언어는 象의 올무이고 象은 意의 통발이다. 하여 언어에 집착 하면 象을 얻기 어렵고 象에 집착 하면 意를 얻기 어렵다.
得意忘象.

저 유명한 득의망상은 동양 철학사의 한 축으로 군림하며 아직도 전혀 식상하지 않은 담론이다. 노자와 주역이란 담론 안에서 왕필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문적 업적을 이룬 그가 죽은 나이는 23세다. 왕필은 23세에 이미 공자를 심각하게 몰아 부치며 유가보다 학문적 우위에 섰던 사람이다. 적어도 당대에 그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면에서 현대를 살고있는 이창호도 예외가 아니다. 이창호의 23세는 바둑이라는 세계 안에서 천의무봉이다. 명징함과 조화로움으로 현대 바둑의 아버지로 통하는 오청원과 쾌속 행마로 질풍노도했던 조훈현도 '잠식완색'의 鈍刀의 그것에는 부족했다. 바둑이 스포츠의 범주에 속하는 탓에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 인식은 하지 말자. 이 또한 이창호의 출현으로 생겨난 말에 불과하다.

이창호가 득세를 하기 전에 바둑은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3~40대에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이창호는 달랐다. 11살 또랑또랑한 눈으로 프로의 문턱을 넘었고 그 때 부터 왕필의 23세까지 일방 독주였다.

나이 23세면 대학을 졸업하던지 겨우 군대를 다녀온 나이로 자격증이다 취업 시험이다 공사가 다망할 때이다. 그런데 왕필은 이 나이에 동양 2천년 철학사의 주역이 되었고 이창호는 아예 바둑의 神이 되어 버렸다. 이 두사람은 인생을 천년만년 살 필요가 없음을 온 몸으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왕필은 요절을 한탓에 아쉬움이 있고 이창호는 30대에 와 산보를 하고 있다.

이창호는 산보 중에 수많은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이다. 잡식성 도서로 알려져 있다. 요즘에는 주역을 읽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창호를 왕필에 비교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바둑과 철학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바둑과 철학은 서로 통한다. 특히 동양 철학이 그렇다. 어떤 사람은 작취미상에서 바둑과 철학을 말하기도 하지만 바둑과 철학은 외연과 내연에서 분명 궁합이 맞는다.

하여 이창호 국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기왕 산보에 나섰다면 여유롭게 충분히 하시라고.

바둑계의 책임이고 뭐고 그런것 잠시 접어 두고 한 2~3년, 아니면 몇 년 더 편한 산보를 하면서 편한 휴식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다시 등장하여 바둑계에 쓰나미를 한 번 일으킨 다면 아예 이창호는 苦山(삼황오제가 살던 곳)의 碁神이 될 것이다.

TYGEM / 이청 바둑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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