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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천만 바둑을 자랑하는 바둑인의 몫①

회성…취석 바둑판을 찾아서

2007-09-21 오후 3:41:05 입력 / 2007-09-27 오후 5:29:07 수정

바둑의 기리에 대한 기록이 있는 임상정(1681-1755)의 '자오록초' 읽고 있는데 방문객이 있다. 태풍이 한참 북상중인 하수상한 시간에 마당가에 뱀이 어슬렁 거리는 산간벽지를 찾아온 사람은 타이젬의 정연주, 이정환 기자다.

'저기 있잖아요. 돌바둑판 말이에요. 소백산에도 있고 원주에도 있는 그거말이에요."
비교적 인터넷 어법인 정기자가 방문 목적을 말한다. 추석 연휴기간중에 뉴스란을 공란(?)으로 방치 할 수 없어 고민 고민을 하다가 대학시절(바둑학과) 들은 바가 있던 암각 바둑판을 아이템으로 떠 올리고 암각 바둑판이 역사와 관계가 있을듯 하여 필자를 찾아 왔다는 것이다.
알아주니(?) 고맙긴 하다. 그러나 필자는 27세의 동년배의 기자들이 바둑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더 고맙고 반갑다.


신선(神仙)과 공유하던 바둑.
중국의 사서 목천자간(죽서기년)은 제을(帝乙)의 순행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은의 왕 제을이 삼산(三山)에 가 하늘에 제사하고 얼마간 오락을 즐기다가 돌아 왔다는 것이다. 산해경은 제을이 순행을 간 산이 고종산이라 특정한다. 고종산의 바둑판 돌 앞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바둑판 돌은 제을지석(帝乙之石)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곽박', '주법고', '소천탁치' 등 발군의 학자들이 석국(石局)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고증을 했다.

제을의 시대는 서기전 10세기다. 어림잡아 3천년전의 사람이니 바둑의 역사가 지극히 오래 되었다는 말이겠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속에 무을을 기록하고 있다. 무을은 제을의 아들로 은의 마지막 왕이다. 역천의 마음으로 살던 무을의 바둑의 또 다른 표현인 사천(射天)의 에피소드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좌전, 사기, 죽서기년 등 중국의 고대 사서(史書)들에 기록된 바둑이 한국의 역사에도 기록된 것은 당연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등 우리의 고대 사서에는 예외 없이 바둑이 등장한다. 중국의 24사(史) 곳곳에도 한국의 바둑을 증거하기도 한다.

바둑은 동양의 중심 국가였던 한국, 중국 사이에는 서열을 정할 수 없을 만큼 역사와 수준에서 차이가 없었다. 바둑은 양국의 문화 오락으로 기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수준을 넘어 철학적 신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존재기도 했다.

바둑은 하도(河圖) 천문 등과 비교되는 역(易) 또는 역(歷)의 사상으로 이해되는 한편 '난가' '규중'등의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한중 양국의 역사속을 약진한다. 자연(自然)에 만들어진 석국(암각바둑)은 바둑 구경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난가지몽'의 다른 표현이다.


한국의 석국(암각바둑판).
국내에서 발견된 오래된 석국은 대략 20여곳인데 서울, 원주, 삼척, 장수, 서산, 담양, 강진 등 전국에 고르게 분포한다. 석국은 그야말로 산수 좋은 노천(路踐)의 암반을 깎고 다듬어 만든 것으로 실제로도 바둑을 두어도 무방 할 정도로 정교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예술적으로 뛰어난 곳은 방학동의 석국이고 제작 연대와 사유등을 가늠할 만한 기록이 있는 것은 강진 월남사지 석국과 휭성 수동계곡 석국 정도다.

방학동 석국은 암반위에 박둑판을 양각으로 조각하고 바둑통까지도 깎아 놓은 명품이나 아쉽게도 조각자는 물론 제작 연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월남사지(月南寺地) 석국은 범상치 않은 내력을 품고 있다. 월남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진각국사 혜소(1178-1234)가 창건하여 조선초에 파괴된 사지다. 절터에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가 외롭게 서있는데 이규보가 지었다는 비문은 판독 불능이다. 다만 진각국사는 중국 유학을 한 승려로 전남 일대의 여러 사찰을 창건 했고 그의 시문에 바둑을 노래한 시가 한편 있어 월남사지에 있는 석국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월남사지가 있는 강진은 옛날 탐진이라 부르던 곳으로 바둑과 매우 밀접한 고장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바둑의 기록이 그것을 증거한다.

-'조정이 늙어 탐진에 내려와 있는데 어떤 노인이 매일 찾아와서 바둑을 두었다(曺精老居耽津有白頭翁日來訪圍碁). (동국여지승람 강진조.)

이 기록을 '권문해'가 지은 '문집에는 매일 조정을 찾아 와 바둑을 둔 노인이 남해의 용이었다는 것으로 발전(?)하여 이 지역의 전설이 된다. 조정은 고려사에 나오는 국수 '조정통'을 연상 시킨다. 충렬왕 때 원의 쿠빌라이의 부름을 받고 원나라에 원정을 갔던 바둑 고수가 바로 조정통이다.

바둑 시를 남긴 진각국사가 창건한 절에 석국이 있고 관찬지리지와 각종 야사에 바둑과 관계된 기록이 있는 것은 월남사 주변 강진 영암 일대에 바둑이 흥성했다는 반증이다. 우연하게도 조선의 대국수 정운창이 보성 사람이었고 조훈현 김인 국수등의 출생지가 인근인것도 이 지역의 바둑의 내력을 짐작케 한다. 월남사지 석국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사지 인근 향토음식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담양에 있는 소년암(少年巖)을 기록하고 있다. 담양의 어느 산간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어떤 아이가 그곳에 갔다가 어떤 노인과 바둑(장기)을 두게 되어 날을 세웠는데 호랑이가 와 그것을 지켜보고 갔다는 내용이다. 호랑이 발자국이 지금(동국여지승람 편찬시)도 남아 있어 소년암이라 한다는 것이다. 쌍계사 근방에는 최치원과 진감선사(진각국사와 다른 인물)의 바둑 설화가 전한다. 귤속에서 최치원과 진감선사가 바둑을 두면서 귤을 주어 까본 사람에게 지금이 어느 시대냐 물었다는 당나라 시대의 고송유수간(古松有水間) 설화와 비슷한 내용이다.

석국은 담양 구례뿐 아니라 예천에도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예천 청량산에 석국이 있는데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학자이면서도 선학(단학) 계열에서도 추앙을 하는 인물인 것을 보면 최치원이 바둑 설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짐작 된다.


횡성에 있는 취석대 석국은 조선시대 선비였던 최문발(1607-1673)이 수동계곡에 집을 마련하고 평생을 은둔하여 시문을 짓던 곳이다. 횡성 서원면에 있는 수동계곡에 있는 취석정(80년대 새로 조성) 부근에 있는 석국은 취석(醉石)이란 양각된 커다란 글씨 옆에 19선이 선명하다. 취석은 술과 돌이란 뜻으로 바둑을 풍류로 인식한 조선의 선비들의 문집 속에 빈발하게 등장한다.

서거정은 술이 없으면 바둑을 두지 못한다했고 정규삼은 술이 깬 직후가 바둑 두기 가장 좋다 했다. 유본학은 국수중의 국수 김석신(金錫信)을 기록하며 친구들과 더불어 술을 나누어 먹고 바둑판 앞에 앉아는데도 자세가 단정하고 바둑을 두는 손이 흐트러짐이 없었다(與朋友其醉飽其對局注目端坐手不弄碁) 했다. 수동계곡의 암반 위에 바둑판을 그려 놓고 취석이란 글자를 새겨 놓고는 음풍농월하던 최문발의 안빈낙도가 선연하다.

두견새 소리만 청산에 있느니.
사람 그림자 조차 만나기 어려워라.
오직 들판에 핀 꽃과 마주보고 웃고.
종일토록 말 없으니 스스로 한가하다.
- 최문발.

최문발은 수동계곡의 하루를 이렇게 읊고 있다. 옹벽진 강원도 산간 계곡에 살면서도 자꾸만 세상으로 향하는 관심과 욕망에 스스로 놀라는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이 완연하다. 스스로 은둔했어도 수많은 시문을 남긴 것이 그들이다. 그들은 은둔속에서 오히려 내일을 향해 힘찬 용트림을 하던 사람들이다. 시문과 저술로 미래와 만난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최문발의 은둔의 삶에 유일한 위안이었던 석국(암각바둑판)이 태풍을 따라온 세찬 비바람속에서 부끄럽게 필자를 반겨준다. 과연 누가 이 벽진 산간 계곡에 있는 저를 찾아 주었을까.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무관심이 오히려 4백년 풍상을 버팅기고 살아 남은 이유일까. 그러나 수동계곡의 석국이 있는 부근에 식당 하나가 눈에 뛰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산간오지까지 불어온 난개발의 광풍앞에 석국의 내일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오늘날 남아있는 석국은 몇 곳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바둑을 두기에 불편하다. 햇빛과 비 바람은 고사하고 밤이면 등불에 의지 해야하는 자연 노천에 위치한 것을 보면 실생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둑이 역(易)과 역(歷)의 다른 범주인 선도와 풍류의 보급 과정에 전국에 걸쳐 만들어진 탓이다. 그속에 은둔자의 안빈낙도의 모습도 선연하다.

오늘날 전국에 걸쳐 남아 있는 20여곳의 석국들 중 문화재 자료로 등재된 것은 단 한점도 없다. 책임있는 기관의 전수 조사 조차 한번 해본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이 자연에 방치되어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이것들 중에서 방학동 석국이나 월남사지 석국, 수동계곡 석국만이라도 시급하게 보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일은 과연 누가 할 것인가. 석국이 있는 동네 사람들인가. 아니면 천만 바둑을 자랑(?)한다는 바둑인들의 몫인가.



TYGEM / 이청 바둑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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