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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회1-황야의 고독한 늑대

기호회1-황야의 고독한 늑대

2007-11-16 오전 10:11:38 입력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에 남량특집 '전설의고향’을 시청하다가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달밤에 울려 퍼지는 구슬픈 늑대의 울음소리와 귀신에게 쫓겨 다니면서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그네의 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의 저편에 묻혀있는 것 같다.

 

늑대는 개과의 포유류이다. 이 늑대라는 동물은 주로 밤에 활동하기를 좋아하는데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보통은 가족단위로 생활하지만 겨울에는 여러 가족이 모여 큰 떼를 형성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타이젬의 수많은 고수들 중에서 기호회1은 꽤 많은 팬들을 거느린 기사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인기 기사들의 대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기호회1의 대국을 관전한다. 그들은 베팅된 티머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언제나 전력을 다하면서 대국에 임하는 기호회1의 모습을 보면서 짜릿한 감동을 받는다. 설령 그가 대국에 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저마다 격려의 말을 보낸다. 기호회1은 다른 고수들보다 비교적 안티팬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기호회는 서울의 A대학교의 바둑동아리 명칭인데 아이디 뒤에 1을 붙인 것을 보면 단체전을 나갔을 경우 주장은 바로 자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고 실제로 대회바둑 단체전에서도 좋은 승률을 보이곤 했다.

 

필자가 서울로 유학을 와서 처음으로 바둑대회에 나갔단 시절이 있었다. 보라매공원 안의 한 체육관에서 열렸던 문화부장관배였다. 그 대회에서 기호회1이랑 대국을 했는데 이것이 기호회1과의 첫 인연이었다. 물론 대국은 나의 패배로 끝났다. 당시 그는 나보다 넉 점 정도의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국 어린이 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기린아였다.


나는 한때 바둑이 늘고 싶어서 다른 대학교의 아마강자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통신바둑이 없었던 시절이라 요즘의 인터넷 대국실과 비교하면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 중에는 C대학교의 P선배가 있었는데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성격이 자상했던 그는 찾아갔던 나에게 바둑을 둬주면서 나의 바둑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은 서울의 바둑모임을 소개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D는 구수한 해설과 더불어 국제기전에서 바둑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사건을 가끔 터뜨려 인기를 모은 전문기사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기호회1이 어렸을 때부터 기재가 출중해 바둑 수업을 더 받아 입단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바둑계가 어려웠던 시절이라서 부친의 반대가 심했다. 이로 인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던 중에 가출을 하고 D의 집에 찾아가 바둑을 가르쳐달라고 할 만큼 그는 당찬 소년이었다. D는 소년과 여러 번 대국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주며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냈다. D는 생전에 도장을 운영하거나 내제자를 받은적이 없으니 기호회1이 그의 제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몇 년 전에 그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으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뒤로 실력이 더 늘었는지 입단대회에 나갔는데 최종 본선리그로 가는 길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역시 프로의 길은 험한가 보다.

 

한동안 방황을 하던 그가 타이젬에서 많은 고수들과 겨루면서 내공을 쌓더니 얼마 전에 어느 전국대회 단체전 주장으로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파안대소하는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문득 D가 떠올랐다. 아마도 저세상에서 기뻐할 것 같다.

기호회1은 포석 감각이 좋고 중앙행마가 힘차다. 그는 상대방이 터럭만큼의 빈틈을 보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단숨에 형세를 결정짓는다. 완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상당히 센 상대와 붙더라도 가끔씩 대박을 터뜨리면서 아이템을 쓴 회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그는 기질상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 보다는 홀로 조용히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나는 그의 바둑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달밤에 황야의 고독한 늑대의 울음소리가 떠오른다.  그는 밤의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대마를 포획하며 승리를 만끽한다.
참고도1

우상귀에서 흑1로 씌워 흑9까지는 한국 바둑의 맥을 이어나간 조이사제 대결에서 나왔던 정석이지만 지금은 고풍스러운 느낌마저든다.

참고도2

백1로 하변을 차지하자 흑2로 좌하귀에 걸쳐왔다. 백은 선수를 잡아 우하귀를 마무리 지으려고 힘차게 백23으로 밀어올렸다.

참고도3
참고도처럼 흑1로 먼저 들여다보는것도 있다. 만약 백2로 이어주면 흑3으로 깊게 들어가서 싸우는 그림인데 흑은 백이 잇지 않고 '가'로 반발하는것이 싫은 듯하다.

참고도4

백2로 철주를 내렸을때 흑3으로 일자로 비킨 수는 중급자들이 잘 알아두어야 하는 수다. 그냥 한칸으로 달아나면 흑9로 들여다보고 이을때 모자 공격을 당해 흑이 무겁다. 실전에서는 패가 발생해 팻감이 누가 많은지가 관건이다.


참고도5

우하귀 백1로 끊자 흑이 하변 패를 해소했다. 흑은 두점으로 키워죽인 후에 흑10으로 어깨를 짚으면서 달아날 태세다. 흑14는 이런곳에서 형태의 급소다. 다시 패가 시작돼 팻감이 많은 백이 편한 국면이다.


참고도6
흑1로 지킬때 백2로 들여다본 것이 흑에게는 아프다. 백8로 막으면서 백은 뿌듯했을것이다. 하변의 백집이 불어나면서 흑을 계속 공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있을까!  흑13으로 굴복하자 우상귀에서 끝내기로 이득을 본 후에 상변을 삭감하러 들어갔다.
참고도7
흑은 좌상귀를 밀고 들어가 백2로 벌리는 틈을 타 흑3을 활용하자고했는데 여기서 백4가 흑에게는 아팠다. 흑이 좌변을 받으면 상변의 백이 달아나므로 어쩔수 없다. 흑은 좌변을 선수로 당하더라도 상변 백 한점을 크게 공격했다. 백12로 씌운 수가 흑모양의 급소를 찔러간 호착이었다.
참고도8

흑이 단수치고 잇자 백은 좌우를 상쾌하게 가르고 나간다. 흑 11으로 다시 모자를 씌워 상변 백을 노려본다. 만약 백10을 두지 않으면 어떨까?

참고도9
만약 백1로 달아나면 상변은 무사하지만 흑2로 뚫고 나오면 좌하귀 백이 걸릴지도 모른다. 물론 백대마가 잡힐말은 아니지만 형세가 유리한 백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참고도10
흑은 중앙 백을 계속 공격해 보았지만 백은 상변의 몇 점을 버리는것으로 타협했다. 이하 49까지 중앙의 흑이 안정하는 동안에 백은 승세를 굳혔다. 전체적으로 하변과 우변의 패싸움 중에 찾아온 승기를 놓치지 않고 잘 마무리한 기호회1의 완승국이다.   

한동안 타이젬 대국실에서 빠르게 질주하던 기호회1이 며칠 전에 8단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곧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그가 다시 9단으로 복귀하는 날 얼마나 화려한 수를 반상에 수놓을 것인지를 상상해보면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TYGEM / 북악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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