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익명의 섬, 타이젬에는 오늘도 수많은 정겨운 이름들이 표류하고 있다. 대화창에는 수시로 8도 걸물들의 포복절도할 촌철살인이 흐른다. 그곳엔 7년(?)의 동거를 거치며 명멸한 낭만기객들의 이야기, 동네 철학자들의 얽은 초상들, 짐짓 희대의 악당으로 가장한 가슴여린 이들의 승부일지와 저릿한 비음으로 뭇 사내들의 가슴에 불면의 가슴앓이를 안겨주었던 만인의 연인 음방장들의 비망록까지도 들어있다.
포항의 북부해수욕장. 춥지 않은 초겨울 바람이 유저(User)를 만나러 떠난 필자의 마음처럼 살랑거린다. 백사장의 모래가 고와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받는다는 동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이다. 둥그렇게 휘돌아나간 이국적인 반월형의 넓은 백사장을 따라 횟집과 까페 노래방들이 줄지어 작은 성냥갑처럼 들어서 있다.
시원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물회국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환여횟집’.
수첩에 기록된 첫 유저 ‘접대용아뒤’ 1단이 운영하는 횟집이다. 겨울바다가 운치 있게 내다보이는 2층에서 마주앉아 마수걸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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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것도 괜찮겠더라구요. 통신바둑 초창기 넷바둑에서 시작해서 네오스톤, 라이브를 거쳐 타이젬까지 오게 되었는데, 베팅대국 이전엔 가장 빈발한 문제가 과도한 승부집착에 따른 ‘계가 거부’와 마우스 미스를 빙자한 인한 ‘무르기’였습니다. 서로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욕설이 오가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도배하고… ㅠ.ㅠ 그래서 만든 아이디가 ‘접대용아뒤’죠. 이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져주자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네오스톤의 경우 1백승에 3만 패로 최다 대국 1위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40대 중반으로는 흔치않은 우리말식 이름 김만남이다. 어렸을 때는 그래서 놀림도 많이 받았단다. 당시 유행하던 나미의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라는 노래가사 때문에 ‘빙글빙글’이 되었다나. 다행히 노사연의 ‘만남’은 뒤에 유행해서 피폭 정도가 심하진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만남이라는 본명과 접대라는 호패가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대놓고 져주면 좋아할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져주는 기술이 필요하죠. 처음엔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도 있어요. 더러는 다른 아이디로 대국 신청한 뒤, 제가 던지기 전에 먼저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수작(秀作)이 ‘접대의 묘수’입니다.”
타이젬의 자유게시판에도 실려 있는 그의 이론에 의하면 예의 ‘접대의 묘수’는 요순 이후 고금 3대의 묘수인 지도쿠(安井知得)의 공배의 묘수, 조와(丈和)의 3묘수, 슈사쿠(秀策)의 이적(耳赤)수를 이은 최고의 묘수다. 구체적으로 보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손 따라 둔다.’ (그래도 이길 경우가 많다고 한탄하고 있다) ‘판 전체라도 물러준다.’ ‘계가 거부 시 언능 기권을 누른다.’ ‘욕을 하면 그의 것이므로 받지 않아 되돌아가게 만든다.’ ‘시간을 지연하면 외려 시간패를 당하여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수상전이 되면 절묘한 자충수나 후절수를 둔다.’ ‘어쩔 수 없이 이기게 되었을 때는 황급히 전원 코드를 뽑는다.’ 등이다. 모두 상대 대국자를 배려하자는 차원의 공자님 말씀이다.
접대용아뒤는 타이젬 최다 대국 5위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와 있다. 2007년 12월 둘째 주 현재, 총 32,677판을 둬서 17,978판을 이겼고, 14,658판을 졌다.
얼추 계산해도 2005년 말부터 5년간 거의 매일 2판씩을 뒀다는 이야기다.(그는 라이브 초창기 시절 최초로 3패빅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3패빅도 집이 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라는 바둑의 규칙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네오스톤에서의 1백승 3만 패에 비하면 적정한 승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도하게 공경하는 건 외려 예의가 아니니 타이젬에서는 억지로 지려고 애쓰지는 않는가 보다. 그렇지만 주변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실력은 5단급. 만취 바둑이면 모를까 현재의 1단은 그에게 너무 헐렁한 옷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대국량이 덧없는 승부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 준 것이었을까?
“머니가 이전되던 시절, 티머니 1억을 걸고 공모를 했습니다. ‘타이젬을 | | |
한마디로 요약한다면…?’이라는 주제였죠. 거기서 마음에 들었던 이름이 ‘시골장터’입니다. 무질서한 듯 시끌벅적해도 구석구석이 활기 넘치고 정겨운…”
그래서 그는 주로 시골장터 분위기의 대기실 대화창에서 논다. 자유게시판은 부 놀이터. 논단은 너무 전문적이고 수준이 높아서 되도록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물론 업무 여건상 줄창 모니터를 뚫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대기실이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실에서 놀다보면 짬짬이 퀴즈가 나오고 현상금이 걸린다. 기다리던 역 대합실의 빈털터리들은 느긋하게 모로 누워 농을 즐기다가 배식이 시작되면 쏜살같이 튀어나온다. 와르륵 순식간에 쏟아지는 정오답의 길고 긴 줄… 퀴즈 응모자도 대개 매양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만 출제자도 고정인 경우가 많다. ‘접대용아뒤’도 단골 출제위원이다. 그는 머니 이전의 자유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수백억을 풀었다.
“제 지갑은 공용입니다. 달라고 하면 되는대로 주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더러 못주면 빚쟁이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하. 아는 프로기사나 큰손들에게 한 뭉치씩 얻어서 나눠 주거나 아이템을 사서 부족 재원을 마련하고 베팅에 골몰해서 증식된 재산으로 충당해왔습니다. 아무래도 베팅에 약간의 소질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는 자유게시판에 ‘절대 보지 마세요. 보시면 열 받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열어보니 속내엔 베팅 20전 연승 승전보 캡쳐 화면이 들어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많은 것은 물론이다.
자유게시판은 그의 신명을 부채질 하는 또 다른 놀이터. 대기실 대화창이 묵묵히 타인의 생각을 듣고 받아들이는 공간이라면, 게시판은 타인으로 향해 그의 생각을 펼쳐 내는 창이다. 그는 자유게시판에 2003년부터 지금까지 200여건이 넘는 글을 올렸다. 글의 대부분은 회초밥 생선회 등 음식에 관한 정보.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곁들인 선명한 고화질의 사진들은 여지없이 유저들의 혀뿌리를 젖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물고문 전기고문 고문도 많지만 음식고문은 첨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의 게시 글은 보통 조회 수가 평균 1000회에 달할 만큼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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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보약입니다. 언능 식사 챙겨드세요”
점심때가 다가오면 어눌한 음식고문관인 그도 대창에 한마디 한다. 하 많은 세월을 수만 판의 바둑에 쏟아 부었으니 오죽하랴. 기우들이 오로삼매에 빠져 때를 거르고 건강을 망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을 일찍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바둑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입니다. 친구로부터 9점 놓고 배운 뒤, 100권도 넘게 책을 봤죠. 월간바둑, 바둑세계, 바둑신문 등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9점 상수였던 친구는 얼마 안 되서 넘어서게 되더군요. 늦게 배운 도둑질에 세월 가는 줄 모른다고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시절 내내 뭘 배웠는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전기계통의 일을 했다. 교통신호등을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일이었다. 그가 설치한 신호등이 성남지역을 비롯한 경기도의 여러 곳에서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사업기반은 10년 전의 IMF로 일시에 날아가 버렸다. 당시 한신공영의 하도급을 하고 있었는데, 부도로 감당키 어려운 채무만 지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인터넷 온라인 바둑으로의 몰입이었다. 그는 자나 깨나 바둑만 붙들고 지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축축하고 어두운 터널에 웅크린 채 바둑만을 끼고 살던 세월이었다.
“방황하고 있던 와중에 작은 누님이 포항에 횟집을 열게 되어 같이 일을 하게 되었죠.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이 ‘너는 누구 아들이냐’라고 물으시면 ‘군산댁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어머니는 고향에서도 음식솜씨가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큰 누님도 지금 일산에서 음식강사를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솜씨를 빼다 박은 사람은 작은 누님입니다. 작은 누님의 솜씨 때문에 포항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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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여횟집의 물회국수는 어머님이 물려준 가전비방에 따라 만들어진 음식이다. 광어를 주 재료로 쓰고 있는데, 물회국수를 하는 집들이 많아도 환여횟집이 최고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맛대맛, 맛있는 TV, 화제집중 등 최고의 맛 집으로 7차례나 방송에 소개되었다.
필자도 감격스럽게 물회국수 한 상을 대접받았다. 회와 국수, 김과 깨소금, 파와 고추 그리고 명품 배가 어울려 내는 차가운 국물 맛이 일품이다. 어떻게 이 맛을 표현해야 하나... 어떤 탐방기자는 마음에 낀 꺼끌한 백태까지 씻어내는 시~언한 맛이라고 극찬하고 있었다.
그는 프로기사는 아니지만 밥과 바둑을 동일시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바둑은 타이젬 횟집은 환여횟집’이라는 그의 슬로건은 타이젬 유저사회에서 이제 너무 유명해졌다. 그는 미상불 타이젬에서도 싫어하지 않을 이야기를 앞에 턱하니 붙여놓고 뒤에 횟집은 환여횟집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타당성과 객관성을 이끌어내는 이것을 누가 모략(?)이라고 을러댄다 해도,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아끼는 마음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
실제로 그의 접대 논리에 동조한 유저들은 ‘접대회’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진저리를 쳤지만 예의 표어를 대기실 대화창에 도배하는 민망한 사태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재치 있는 유저가 패러디한 ‘만남은 환여횟집 접대는 물회국수’가 더 절묘해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온라인의 구름에 자주 끼어들다보면 필경은 오프라인의 비를 맞게 되기 십상이다. 그의 집엔 기우들이 많이 찾아온다. 사람 좋고 맛있는 음식 있으니, 불원천리 먼 길 마다치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는 실생활의 접대부(?)가 된다. 숙소 잡는 일, 음식접대는 기본. 기우끼리 만나면 1차 술집, 2차 노래방, 3차 PC방으로 가서 밤새 음주바둑에 몰두했다가 해장국 한 그릇 때린 뒤, 흩어지는 게 정해진 코스다. 그는 지난 세월동안 아무래도 젊다보니 늘 모임의 뒷심부름을 맡는 접대의 자리에 서있었고, 묵묵히 그 역할을 즐기며 바둑과 함께 40 중반의 고개를 넘었다.
“저는 라이브 초기부터 한 가지 아이디로 버티고 있지만, 열댓 번 씩 아이디가 바뀐 분들도 있습니다. 왕래가 있는 분들은 변천사를 좀 꿰고 있는 편인데, 더러 자꾸 바뀌다가 아예 사라지고 마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도 분명 새 이름으로 접속하고 있을 텐데... 알 수 없으니 서운하죠. 400명 풀을 채운 등록 친구들도 사라지는 아이디 때문에 일정 주기로 걸러줘야 합니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그에겐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다. 그에겐 유난히 따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주 져주고, 전대를 열어 티머니를 베풀어서만이 아닐 것이다. 바늘이 있어야 실가고 마음이 있어야 몸 간다. 무엇보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려하고 다가가려는 어진 성정이 유저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명된 탓이라고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서 바둑은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온 힘이었으며, 밝은 내일의 만남을 열어가는 즐거움의 통로였다. 그리고 그 만남을 올바르게 떠받치는 밑받침이 접대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 김만남을 “열받아서 아~ 머리에 김 나네”를 세 글자로 줄인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즉 ‘김 만남’이 아니고 ‘김만 남’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겸손과 달리 그의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울화의 ‘홧김’이 아니라 언제나 주변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훈김’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오로지 한길, 난폭한 살생바둑만을 일삼아 온 필자는 생각했다. 앞으로 비록 자장이나 우동 먹을 때라면 식성을 바꾸지 못할지 몰라도, 적어도 한식 먹을 때만큼은 조심조심 접대 한두 판 해보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