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수첩
19로의 실크로드를 향해-Bohemiers 9단
방내기 달인에서 바둑 선생님이 되기까지
2008-04-21 오후 4:17:56 입력 / 2008-08-19 오전 11:07:18 수정
S#1. 그의 아이템은 네잎 클로버 아직도 네잎 클로버를 따고 벗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 다분히 소녀 취향이지만 아직도 네잎클로버에 깃든 행운의 상징을 굳게 믿고 제철만 되면 풀밭을 누비며 그것들을 수집하는 초로(初老)의 신사가 있다.
S#2 방내기의 달인, 접바둑의 마귀 70년대에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의 기원을 순례하면서 소시민 하수들과 내기바둑을 두어 용돈을 벌어 썼던 흑도(黑道)의 고수가 있었다. 아마 바둑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강자가 아니었기에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그는 중1때 바둑을 배웠는데 기재가 있었는지 1년이 채 안되어 기원 1급 실력에 도달했었다. 그 덕분에 청소년기의 영양보충은 자장면으로 원 없이 때울 수 있었으며, 군대에서도 사령관의 바둑 사범으로 남들보다는 편하게 생활했었다. 그러다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바둑을 수단으로 몇 년 동안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찾아 다녔던 것이다. 하도 내기바둑을 많이 두다 보니 방(10집)을 맞추는데 귀신이 됐고, 무수한 하수들과 상대하려니 접바둑의 무공이 날로 업그레이드됐다. 전성기 때 프로기사들과 같은 치수로 하수들을 요리하곤 했었다. 한 판에 수백만 원을 상회하는 방내기의 기록도 갖고 있던 그가 음습한 흑도의 길에서 유턴한 시점은 30대 초반이었다. 그렇고 그런 복마전 난장판에서 그와 같은 꾼들이 우연찮게 한데 모여 온갖 괴 초식을 발휘하며 현란한 한판 승부를 펼치던 밤이었다. 시쳇말로 참가자 모두 상대를 잘못 만나 재수에 옴 붙은 상황이었다. 그 밤의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를 찍고도 남을 만큼 엎치락뒤치락 반전이 거듭됐으나 결말은 유혈참극으로 매듭지어졌다. 그는 군자금을 다 갈취당하고 처절한 린치까지 덤으로 엎어 써야 했다. 처참하고 부끄럽고 허무했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사건 이후 절친한 검사와 인연이 닿아 원주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바둑 사부'란 호칭을 듣게 되었다. 왕년에 전국을 주름잡았다는 건달들이 '사부님'으로 부르며 깍듯이 예우를 갖추는데 옷매무시 하나라도 흐트러진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원했던 길을 아니었으나 운명은 그렇게 그를 19로로 자꾸 밀어냈다.
S#3. 주변이 있어야 중심도 있는 법 번뜩이는 기재에 날개를 달지 못한 준재들에게 바둑은 형벌인지도 모른다. 앞서 살았던 세대에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들이 바둑계의 주변에서 좌절했듯 요즘도 입단에 실패한 준재들은 커다란 상처를 안고 방황할 것이다. 바둑경제가 빈약하기에 좀처럼 시스템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프로기사는 아니지만 40년 가까이 바둑으로 밥을 먹었으니 바둑인인 셈이죠. 바둑계 언저리의 주변인으로 늘 중원을 응시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갈증을 느낍니다. 갈증을 달래려면 샘을 파야하지 않겠어요?" 샘 파는 일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거였다. '바둑 놀이'에서 '바둑교육'으로 방향타를 정한 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청춘을 올인했다. 국내 최초로 어린이 바둑교실을 열었고, YMCA 여성바둑 전임강사, 순천향대와 단국대 전임강사로 활동했다. 1986년 전국바둑교실협회 초대회장을 맡았고, '어린이 바둑교실'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한국기원 온양지원과 고양시지부를 개원했고, 프로기사 서화전, 도예전을 기획하기도 했었다. 그의 바둑교실을 통해 최명훈, 김만수, 오재호, 김승준, 김민희, 안성진 등의 영재들이 배출되었다. 지금은 신갈에서 새천년 바둑학원을 차려 40여 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S#4. 동심(童心)이 동력(動力)이다 Bohemiers 9단은 어린 제자들을 타이젬에 풀어 실전훈련을 시킨다. 강호에 날고기는 유단자들은 저마다 독특한 기풍과 희한한 꼼수를 아이들에게 과시한다. 사부는 끙끙 앓는 아이들의 표정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는다. 바둑이 끝나면 기보를 활용해 차근차근 복기하며 정석과 함정수 대처법 등을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스펀지와도 같아서 하나를 가르치면 둘 셋을 쭉쭉 빨아들이지요. 그럴 때 아주 희열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기력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 농부의 성취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실감하곤 해요. 평생 아이들과 함께 살다보니 저도 동심에 젖을 때가 많아요." Bohemiers 9단의 웃음에서 문득 소년의 미소가 보인다. "대국실이나 음방에서는 어린이들처럼 깔깔거리고 격의 없이 즐깁니다. 익명의 즐거움이 쏠쏠하잖아요?" 정말 그가 음방에 들어서니 음방장이 친구처럼 명랑한 인사 멘트를 날린다. 좋아하는 트로트 몇 곡을 신청하고 기우들과 대화창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독수리 타법치고는 상당히 빠르다. 이 코너 유저수첩에 소개되는 순간부터 Bohemiers 9단이 대국실에서 즐기는 익명의 자유는 다소 제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자유의 스트레스 또한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인다. 타이젬을 통해 만난 기우라면 언제든지 바둑 한 수, 국밥 한 그릇, 소주 한 잔쯤은 오케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네잎 클로버 선물도 뒤따를 것이다. 언제나 유쾌한 Bohemiers 9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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