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오후 8시 타이젬 동양생명배 서버에서 한·중 수퍼대결 3탄 조훈현 9단 대 녜웨이핑 9단의 대결이 열린다.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은 중·일 수퍼대항전을 통해 일본의 강자들을 연파하면서 ‘철의 수문장’이란 칭호를 획득한 바둑 영웅이다. 수백년 동안 바둑문화를 가꿔오면서 바둑의 본산임을 자랑해왔던 일본의 콧대를 꺾으며 중국 바둑의 저력을 유감없이 떨친 주인공이 바로 녜웨이핑 9단.
그 무렵 절정기에 올라있던 녜웨이핑 9단을 제1회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전 결승에서 3대2로 꺾으며 바둑황제에 등극한 조훈현 9단 또한 변방에 있던 한국바둑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웅이다.
조훈현 9단이 잉씨배 우승을 차지하며 바둑황제에 등극하기 까지의 과정을 김종서 작가의 화려한 필체로 되짚어 본다. 다시보는 제1회 잉씨배 결승전은 8월 4일 부터 7일까지 계속된다.
바둑올림픽인 응창기배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일본이 한발 먼저 개최한 후지쯔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 대회는 1988년 4월 2일 동경에서 테이프를 끊었다.
한국대표 선수는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장두진 6단 세 사람.
얼마나 기다렸던 큰 승부였던가?
안으로 오랫동안 갈고 닦았던 한국바둑의 기량을 유감없이 떨쳐보이리라.
4월 1일 전야제 행사 때 1천여 명의 바둑팬들이 주목했던 것은 중·일 수퍼대항전의 영웅 녜웨이핑과 자국의 고바야시 고이치였다.
추첨 결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상대는 한국의 조훈현 9단.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평했다.
조9단은 내 입단동기이다. 20년 만에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어려운 상대인 줄 알지만 꼭 돌파해보겠다.
고바야시 9단은 그렇게 임전소감을 밝히고 입술을 한 일자로 굳게 닫았다. 겉으로 자신감과 투지를 밝혔지만 내심으로는 대진추첨의 불운을 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고바야시는 전야제의 약속을 확실히 이행해냈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우세를 빼앗기지 않고 5집 반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조훈현은 그렇게 첫 세계대회의 첫 판에서 손맛을 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서봉수 9단, 장두진 6단도 각각 린하이펑과 마샤오춘에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바둑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일전이었다.
한국선수단은 전원 1회전 탈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총총히 귀국길에 올랐다.
엄청난 기대를 걸었었던 언론과 바둑팬들은 그 참담한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역시 아직은 안되나?
며칠 전부터 요란하게 세계바둑대회의 개막을 예고했던 신문들은 아무 일없었다는 듯 일제히 1단 기사의 몇 줄로 후지쯔배의 참패를 쑥스럽게 알리는 것으로 민족언론(?)의 책무를 다했다.
조훈현은 그 날 이후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머릿 속의 그림대로였다면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 반대편 시드에 포진한 조치훈과 결승에서 만났어야 했는데….
아니,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위세를 떨친 녜웨이핑을 꺾어 일본의 콧대를 눌러주는 대리만족감을 즐겼어야 하는데….
고바야시와 나누었던 한판 승부의 기보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통증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중국(당시에는 중공)의 간판스타 녜웨이핑은 후지쯔배 1차전에서 유럽대표인 약체로날드 슐렘퍼를 꺾고 8강에 올랐다.
그 무렵 중공 정부는 그에게 기성(棋聖) 칭호를 수여했고, 중공의 신문들은 중국바둑계의 공자(孔子)라는 최상의 칭호를 선사하며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중공의 녜웨이핑, 일본의 고바야시가 그 시기 양국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훗날 조훈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더욱 빛내게 만드는 황금분할의 삼각구도라고 해도 좋았다.
제1회 후지쯔배의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다가올 응창기배의 승부를 위해서는 어쩌면 이 때의 참패가 보약이었는지도 몰랐다.
1988년 8월 20일.
중국 북경의 샹그리라 호텔.
대망의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이번에 한국대표는 조훈현과 조치훈 두 사람 뿐-.
후지쯔배에서 나타난 각국의 전력을 참고해서였을까?
조치훈이 일본기원 소속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대표는 오직 조훈현 한 사람뿐이었다.
대회가 열리기 전, 조훈현과 한국기원은 주최측의 횡포에 격렬한 항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주최측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싫으면 불참하라고 배짱이었다.
응창기배는 주지하다시피 대만의 재벌 잉창치(應昌期) 씨가 1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해 만든 최대의 기전. 이 대회의 저변에는 바둑종주국 중국이 최근 부쩍 일본에 근접하자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개최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 룰을 배제하고 새로운 응씨 전만법(塡滿法)을 적용하고 참가인원도 중국계 기사가 절반(녜웨이핑, 오송생, 마샤오춘, 강주주, 린하이펑, 왕리청, 왕밍완)을 차지한 것으로도 쉽게 증명된다.
억울하고 자존심이 구겨졌지만 조훈현은 단기필마로 북경을 향했다.
첫 번째 상대는 대만대표 왕밍완.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조훈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8월 23일 8강전-
상대는 역시 대만대표 왕리청을 물리치고 올라온 고바야시 고이치.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대진이었다. 바둑의 신은 어쩌면 이리 심술 맞을까? 한참 후에 만나게 해도 충분한 강자들을 초전에 붙여놓다니.
그러나 알고보면 이 대전은 바둑의 신이 절묘하게 장치해놓은 시나리오의 반전요소였다.
고바야시는 아주 편안한 표정이었다.
입단 동기 조훈현의 매서움은 20년 전에 익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한국으로 건너가 비교적 손쉬운 상대들과 노니는 동안 칼날이 무뎌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후지쯔배에서 이미 그대의 초식과 내공의 깊이를 들여다보았노라. 본인방전이나 기성, 명인전처럼 큰 물에서 놀아보지 못한 그대는 나의 진정한 적수가 아닐 듯싶네. 내 평가가 억울하다면 어디 한 번 들어와 보시게.
지하철 바둑으로 정평이 난 고바야시는 철저하게 실리를 파고 나중에 타개하는 스타일. 그를 상대로 초반에 한 수라도 삐끗한다면 결코 역전하기 힘들다.
그런데 조훈현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투지가 조급함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무리수를 두고 만 거였다.
상대의 실수를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포착한 고바야시는 일거에 우세를 점하고 야금야금 승부의 변수가 될 요소들을 차례로 반상에서 지워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간, 옆 자리에서는 조치훈과 녜웨이핑의 대국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한국대표 두 사람이 중국, 일본의 정상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있는 장면.
이 장면이 바둑삼국지의 프롤로그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형세는 우리의 양조가 철저하게 불리한 상태였다.
검토실의 한국선수단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조치훈은 초반부터 컨디션 난조로 일방적으로 밀렸고, 조훈현 역시 단 한 수의 실수 때문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상대가 다름아닌 고바야시, 덤 정도 부족한 상태라면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바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훈현의 눈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이래 지나 저래 지나 질 수밖에 없다면 길게 갈 거 뭐 있으랴. 그의 운석이 격렬하게 용틀임했다.
좌충우돌, 종횡무진, 천방지축, 한 수 한 수가 뜨겁고 처절하고 끈적끈적한 승부수였다.
검토실의 관전객들은 모두 다 조훈현이 돌을 던지기 위한 수순으로 단말마적인 몸부림을 치는 거라고 단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