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그곳으로 가는 길
[연금술사]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직접 걸으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됐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최근 국내 여행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프랑스 국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의 들판과 구릉지대를 횡단해 대서양 연안의 산티아고 성당에 다다르는 800Km의 여정은 평화로우나 단조로운 시골길을 한없이 걷는 코스다.
그 길을 걸으면서 순례자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빠른 스피드를 강조하는 패스트 시대에 슬로우 라이프의 미덕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산티아고 가는 길'
타이젬의 동네주선 9단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산티아고 가는 길'이 떠오른다. 느릿하고 단조롭고 평화롭고 고요하다. 그는 중학교 때 바둑을 접하게 된 후 60이 다 된 지금까지 19로의 위를 계속 걷고 있는 중이다.
프로 바둑계에 비해 기반이 미약한 아마바둑계에서 그의 존재는 대부로 통한다. 임동균, 그의 이름 석 자 뒤에 사범이란 호칭이 꼭 따라 붙는다. 아마 전국대회를 제패한 강호들 중에서 임동균 사범은 원로급이다. (프로기사들 중 양상국, 강훈, 김희중 사범 등과 친구다.)
물론 그도 젊을 때 프로 입단을 꿈꿨었다. 절에 들어가 미친 듯이 바둑 공부도 하고 입단대회에 출전했으나 그때마다 그 시기의 라이벌들에게 등용문을 양보해야 했었다. 그래도 바둑에 좌절하지 않고 실패한 자신을 증오하지 않고 천천히 19로를 따라 걸어 왔으니 대단한 뚝심이 아닐 수 없다.
S#2. 바둑 한 판, 술 한 병
그의 아이디는 동네주선이다. '동네'는 타이젬 동호회 이름이다. 동네좌섬이나 동네주선 등을 비롯해 타이젬 9단들이 즐비한 바둑 양산박이었다. '주선'은 말 그대로 술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칭호다.
1950년 생으로 청소년기에 바둑과 술을 접하게 된 후 지금까지 바둑 판 수만큼이나 소주병을 비웠다고 하니 주량을 계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많은 술병을 홀로 비웠을 리는 만무하고 항상 기우들과 함께 대작했으니 술친구가 곧 바둑 친구고 그 친구들이 전국에 두루 포진하니 동네주선 9단은 전국구로 대접받는다. 전국 어디를 가도 친구들이 맨발로 튀어나올 정도라고 한다.
77년 한국기원 총재배 전국아마십강전 준우승 83년 제17회 아마국수전 준우승 92년 제11회 세실배 전국아마바둑선수권 우승 96년 제1회 지송배 우승
동네주선 9단의 입상기록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아마 정상권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이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력이 강한 시점은 항상 오늘 이 순간 아닐까요? 전적이나 실적은 상대적인 것이지요. 나는 늘 진화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나보다 강한 이들이 빨리 진화하니까 돋보이지 않을 뿐, 나는 항상 늘고 있다고 봅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한다. 멋진 표현이다. 그리고 아직도 바둑에 강한 애착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런 당당함이 프로가 아닌데도 그를 바둑 인으로 우뚝 서게 만든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는 철저하게 바둑을 통해 생활해 왔다.
청주, 강릉을 비롯해 서울 각지에 기원을 차렸었고 부인과 함께 무던히도 떠돌아 다녔었다. 하는 기원마다 비교적 영업이 잘된 편이었지만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수익보다 지출이 더 많은 게 문제였다. 그래도 결코 잃지 않은 철학 하나!
'바둑에 돈을 걸지 않는다'
그는 내기 바둑을 두지 않으며 다른 잡기를 곁눈질하지 않았다. 바둑은 게임의 속성이 강해 누구나 내기 한번쯤 하게 되어 있지만 그는 그 원칙을 올곧게 지켜왔다. 그래서 바둑이 그를 배반하지 않고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기원 홍보부 직원으로 일을 하기도 했고 바둑 TV 해설자로 지금 활약하고 있다. 또 평택 여성기우회에 강의를 나가며 부인은 한국기원 1층에서 바둑전문서점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들 부부야말로 제대로 된 바둑인 아니겠는가?
S#3, 동네주선 VS 여주선
유저수첩이 임동균 사범 부부를 만나러 간 날은 삼성화재배 예선이 열리던 날이었다. 한국기원 서점은 일본, 중국기사들의 방문으로 분주했다.
"우와, 대박이네요?"
"오시는 날이 장날이라 그래요."
바둑서점은 경기의 리트머스 용지라고 한다. 경기가 민감하게 반영된다는 뜻이다. 장사가 잘 안되는데 마침 세계대회 예선이 진행되어 해외의 젊은 기사들이 한국의 바둑정보를 구하기 위해 서점에 들러 북적거린다는 이야기였다.
바둑 서적은 일본기사들이 왕창 구입해준다고 한다. 그들은 단체로 와도 철저하게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각각 사고 싶은 책을 산다. 그러나 중국기사들은 단체로 한국기원에 구입하는 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할인율이 적용될 테니까.
 | "바둑을 사랑하는 부군과 함께 바둑서점을 하며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
"그런가요? 하긴 바둑으로 만나 결혼했으니......"
여주인이 부부의 내력을 살짝 털어 놓는다. 관철동에 한국기원이 있던 시절 그녀는 여성기우회 멤버로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그때 아마 강호 임동균 사범이 여성기우회에 자주 들러 바둑을 가르쳐주었다. 특별한 요청이 없었는데도 자주 들렀다는 것은 아마도 그녀를 만나기 위한 구실이었으리라.
바둑수업이 끝나면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을지로와 퇴계로를 관통해 남산으로 향했다. 어렵던 시절 남산의 계단을 지겹도록 걸으며 사랑을 다졌다. 결혼을 하게 되자 그는 잠시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바둑으로 생활이 어려워 중동의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이란에 고속도로를 가설하는 현장으로 나가 몇 년 동안 일하며 집으로 생활비를 송금했다.
그녀는 친정으로 대피해 얹혀살며 남편이 땀 흘려 받은 돈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자 그 자금으로 아파트를 사고 기원을 차렸다.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기원을 했지만 술 때문에 사람만 잔뜩 얻었을 뿐이지 돈을 모으긴 어려웠다. 그래도 늘 바르게 바둑을 대하는 남편의 카리스마가 싫지 않아 50대의 나이에 바둑서점을 지키며 살아도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요즘도 술을 좋아 하시나요?"
"밥 한 공기에 술 한 병은 기본이죠."
그녀가 진저리를 치며 고자질한다. 그래도 밉지 않은 표정이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그가 끼어든다.
"동네주선보다 내공이 강한 분이 누군 줄 아십니까? 여주선이랍니다."
"여주선이라뇨?"
"저 마눌님께서 요즘은 나보다 더 술을 즐긴다니까요. 젊은 날 복수를 하는가 봐요."
쌍방과실인 줄도 모르고 부부가 증언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흠집을 내는 듯하다가 이내 타협을 하고 만다.
"옛날에는 밖에서 술 마시느라 세월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은 집에서 저 이와 함께 안주를 만들어놓고 술잔을 기울입니다. 그게 최고의 낙이니 이제 주선도 늙었나 봐요."
동네주선 9단이 그렇게 매듭을 짓자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서점 문을 닫고 왕십리 뒷골목을 걸어 빠져나가는 부부의 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부부의 걸음에 '산티아고 가는 길'이 오버 랩된다. 누군가와 함께 동행하는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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