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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를 넘어야 李가 산다

잉씨배 4강전 개시-이창호:이세돌 LG배 이후 5년 만에 ‘빅쇼’ 재연

2008-09-19 오전 9:09:11 입력 / 2008-09-23 오후 6:13:57 수정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다음 주 태국 방콕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바둑팬의 눈과 귀가 쏠릴 것이다. 대망의 잉씨배 4강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9월23일 태국에서 속개되는 제6회 잉씨배 4강전의 대진은 이세돌-이창호, 최철한-류싱. (3판 2선승제. 23, 25, 27일 타이젬에서 김영환 9단과 김만수 7단이 생중계 예정.)

결승도 아닌 4강전에 이렇게 국내외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은 21세기의 패자 이세돌과 20세기말의 패자 이창호가 5년 만에 ‘빅쇼’를 재연하기 때문. 실절적인 결승전 이이전쟁(李李戰爭)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 전기대회 결승1국, 최철한(오른쪽)과 창하오가 대국을 끝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철한:류싱, 다시 돌아온 독사
지난 5월 벌어진 8강전에서 3명이 4강에 올라 산술적인 우승확률 75%를 차지하여 최강국의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한중전으로 벌어질 류싱-최철한의 대결은 두 사람 공히 첫 대결이라 쉽사리 예측하긴 힘들다.

중국랭킹 12위에 올라있는 류싱은 중국랭킹 1위 구리와 상대전적에서 6승6패로 팽팽한 양상을 보이는 중국바둑의 새로운 아이콘. 이미 후지쓰배에서 4강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중국 최고기전인 창기배에서 준우승(구리1:2)에 오르는 등 랭킹이 나날이 향상되는 신병기. 특히 이번 대회 8강에서는 박영훈의 대마를 때려잡은 괴력을 자랑한다.

지난 5회 잉씨배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1:3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무른 후 기나긴 슬럼프를 겪은 최철한이 류싱을 잡으러 나선다. 최철한의 선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약진이다. 도요다덴소배 결승진출자 구리와 박문요를 KO시키며 잉씨배에 재차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큰 시합의 경험은 아무래도 최철한이 한 수 위일 것으로 전망 되지만, 최철한의 최근 성적이 내세울 것이 없다는 점은 또 다른 불안 요인.


이세돌:이창호, 실질적인 결승전
이세돌은 어떤 대회에서도 전력상 4강까지 무난하게 진출할 것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든든한 에이스이다. 다만, 해마다 시즌 초에는 바짝 성가를 높이다가 중반 이후에는 힘이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경계사항. 이번 대회에서도 24강전 후야오위, 8강전 쿵제에게 시종일관 불리했다가 마지막에 역전을 시키는 등 불안한 전력을 노출시키고 있다. 또 최근에 끝난 도요타덴소배 후지쯔배에서 연속으로 씨에허 구리에게 패한 것도 부담이다.

최고의 셋업맨 이창호는 올 들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창호는 춘란배에서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8강에 올랐고, 삼성화재배에서도 역시 8강에 오르는 등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상승세이다. 올 들어 열린 세계대회에서도 훌륭한 승률(12승4패)을 자랑하고 있다. 다만 3년째 세계대회 우승 맛을 보지 못한 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 2003년 LG배 결승에서 만난 이창호(오른쪽)와 이세돌.


李李戰爭-01년, 03년 LG배 결승에 이은 3라운드
21세기의 시작인 2001년에는 이창호와 이세돌이란 두 거성은 자연스레 조우했다. 2001년과 2003년의 LG배 세계기왕전은 역사에 남는 매치로 아직도 팬들의 뇌리를 자극하고 있다.

01년은 이세돌이 32연승을 달리면서 ‘포스트 이창호’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 1국에서 예상을 뒤엎고 이세돌이 먼저 1,2,국을 승리하여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싶을 때 이창호는 괴력을 발휘했다. 두 달 후 벌어진 3~5국에서 전열을 정비한 이창호는 내리 3판을 연속으로 따내면서 역전 우승을 일군다.

03년은 좀 더 팔뚝이 두꺼워진 이세돌이 이창호와 비로소 대등하게 나서는 시기였다. 1승1패로 대등하게 출발했지만 3,4국은 내리 따낸 이세돌의 승리.


이세돌은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잦을 것 같던 두 사람의 대결은 의외로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혹 본선대국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타이틀을 걸고 꼭대기에서 마주친 적은 없다. 이세돌은 정점에 있었지만 이창호는 건강악화와 더불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때마침 대국방식의 변화도 조우를 뜸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도전기가 사라지고 선수권전으로 변경되는 통에 두 사람의 맞대결이 가물에 콩 나듯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어쨌든, 도전기 및 결승에서 이세돌이 이창호를 이긴 적인 단 한차례뿐이다. 통산 5번을 만나서 바로 03년 LG배에서 승리한 것이 끝이었다. 이세돌이 모든 기사는 다 물리쳤어도 이창호만은 자신의 손으로 물리쳐본 적이 드물다는 얘기이다.

01년 바둑왕전 0:2로 패했고, 2)LG배에서 통한의 2:3 역전패로 마감했다. 02년은 역시 왕위전에서 2:3으로 패했다. 03년 LG배에서 3:1로 승리했다. 이후 이세돌은 이창호를 서서히 극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04년 왕위전에서 3:0으로 이창호가 또 이겼다.

99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남 중에 03, 06년 두 해만 이세돌이 앞섰을 뿐이다. 05년 이후 두 거성의 간극은 시간이 걸수록 점차 더 멀어졌지만, 이창호는 이세돌과의 전적에서만큼은 5할에 균형을 맞춰놓고 있었다. 05년은 2승, 06년은 2승4패, 07년은 1승1패(이창호 기준). 2008년은 아직 한 번도 맞붙은 적이 없다. 역대전적은 24승19패로 이창호가 앞섬.


▲ 올해 5월에 열린 잉씨배 8강전.


과연 2008년의 승자는 누구일까?
이세돌은 틈만 나면 “이창호는 아직 일인자이다. 그와의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다.”며 이창호와의 조우를 고대하고 있다. 언제까지 빚을 진 상태로 일인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이세돌은 이창호가 더 쇠잔해지기 전에 그를 꺾어야 하는 난제를 떠안고 있다. 바로 정면 대결해서 그를 이기는 것이 꿈이다.

08년 잉씨배는 01 03년 LG배와는 판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10개월이나 연속으로 랭킹1위를 독주하고 있는 이세돌이 힘의 비교우위를 보유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신구 양웅의 자존심 대결이 될 것이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을 둘러싼 ‘일인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LG배 이후 가장 큰 승부에서 만나게 되었으므로. 그 만큼 큰 기대가 서려있는 한판이자 그만큼 부담으로 다가오는 일전이 될 수 있다.

이세돌은 명실공이 이인자를 제친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것이며, 이창호는 ‘아직도 너는 나를 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두 사람도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수읽기는 되어있었다. 최근 1~2년 사이에 공개된 석상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기다린다는 말로 맞대결을 기다려왔다.

이세돌이 상승세를 타며 일인자를 논할 적마다 “아직은 이창호가 한 수 위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고, 이창호도 “올해는 이세돌을 겁나게 해주고 싶다.”며 선전포고를 이미 했던 적이 있다.


하반기 최고의 빅카드, 개봉박두!
이창호는 아직 이세돌에게 밀리지 않았음에도 이인자가 되어버린 ‘이상한’ 판도를 바로 잡고 싶다. 분명 이세돌은 현역 최다관왕으로서 일인자이건만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결코 흘러가는 물을 되돌린 사람은 없다. 이창호도 그날이 온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이세돌은 바로 그 점이 주홍글씨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의식하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이창호를 이긴’ 이세돌로서 우뚝 설 차례다. 이창호를 보란 듯이 제압해야만 일인자로서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또한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로 이어지는 황금계보를 계승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공교롭게 51승13패로 승률 다승 1위를 달리는 이창호. 50승15패로 그와 1게임차로 2위를 달리는 이세돌. 결전을 앞둔 지금 두 거성간의 우정은 사치에 다름 아니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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