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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사신기

황해대전-한·중 4인방의 시대①

2008 라이벌 열전! 기왕사신기

2008-12-29 오후 2:39:08 입력 / 2008-12-31 오전 10:02:28 수정

2008년 삼국의 고수들이 총출동해 파란만장한 승부의 드라마를 연출했으나 정상 8부 능선의 윤곽을 보면 4인의 강자가 포착되었으니 그들은 이창호, 이세돌, 구리, 창하오.

타이젬 간판 김종서 작가가 올 한해 바둑계 승부의 드라마를 황해대전(한·중 4인방의 시대), 유아독존(이세돌vs구리), 첩혈쌍웅(이창호vs이세돌), 와호장룡(이창호vs창하오), 19로의 風車 등 5개의 스토리로 나눠 화려한 필체로 구성됐다.

타이젬에서 준비한 강력한 연말·연시특집은 12월 29일 부터 1월 2일까지 차례로 연재된다.




2008년은 격년제 메이저 세계대회가 집중되어 한·중·일 정상급 기사들이 사계절을 통해 전면전을 펼친 한 해였다.
삼국의 고수들이 총출동해 파란만장한 승부의 드라마를 연출했으나 정상 8부 능선의 윤곽을 보면 4인의 강자가 포착된다.
전사(戰史)의 두루마리를 펼쳐보자.

1월, 전년으로부터 이월된 제12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이세돌 우승
(상대기사 - 박영훈)

2월, 제9회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항전에서 창하오의 4연승으로 중국에
첫 우승컵을 바침.

2월,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 우승
(상대기사 - 한상훈)

3월, 제7회 춘란배 예선에서 이창호를 제외한 한국대표 전원 탈락.
(8강 중 7명이 중국기사)

6월, 제20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에서 이세돌 9단 우승으로 2연패.
(상대기사 - 조한승)

6월, 제12회 한·중천원전에서 원성진 우승.
(상대기사 - 구리)

7월, 제21회 후지쯔배 선수권전에서 구리 우승.
(상대기사 - 이창호)

8월, 제8회 도요타덴소배 8강전에서 한국대표 이세돌, 조한승, 목진석 탈락
(중국의 구리, 파오원야오 결승 진출, 내년 1월 결승.)

9월, 제13회 삼성화재배 16강전에서 이창호, 이세돌 승리, 8강 진출.
(중국은 5명 진출)

9월, 제6회 잉씨배 준결승에서 이창호, 최철한 결승 진출
(상대기사 - 이세돌, 류싱)

10월,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 개인전 강동윤 우승
(상대기사 - 박정상)
단체전 한국 우승(중국 상대 4:1)

10월, 제10회 농심신라면배 1차전에서 중국의 퉈지아시 4연승

11월,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에서 이세돌, 구리 결승 진출
(상대기사 - 박영훈, 이창호)

11월, 제10회 농심신라면배 2차전에서 강동윤 파죽의 5연승.

11월, 제7회 춘란배에서 이창호, 창하오 결승 진출
(상대기사 - 콩지에, 저우허양)

12월, 제13회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 쿵제 결승 진출
(상대기사 - 황이중, 저우루이양)


세계대회 랭킹 포인트로 보면 단연 이세돌이 앞선다.
그리고 구리와 이창호가 추격하면서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고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와 잉창치 배 트로피와 농심신라면배 우승으로 대륙의 바둑 팬들을 열광시킨 창하오를 외면하기 어렵다.
후반기에 월드마인드스포츠 우승과 농심신라면배 5연승 및 국내기전에서도 맹활약을 보인 강동윤과 잉씨 배 결승에 진출한 최철한, 한·중천원전에 등극한 원성진 등도 주목하게 되지만 2008년 세계바둑계의 판도는 이세돌, 구리, 이창호, 창하오 4인방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 4인방은 거의 모든 대회 본선 대진표 윗길에 명패를 걸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데 각자 흥미로운 라이벌 관계로 얽혀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세돌VS구리-한·중 1인자 라이벌

한국과 중국에서 실질적인 1인자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세돌과 구리.
각국의 거의 모든 프로기사들이나 바둑관계자들은 이 두 사람의 쌍벽시대가 열렸다고 입을 모은다.
섬광과도 같은 수읽기, 가공할 펀치, 하늘을 찌르는 기세, 모든 면에 있어서 두 사람은 흡사한 구석이 많다.

나이도 동갑이고 생일까지도 이세돌(3월 2일), 구리(2월 3일)로 묘하게 닿아있다.

공격적 기풍도 흡사하고, 호방한 성격도 닮았다.
전적도 14전 7승 7패로 호각을 이룬다.
“아마 제가 몇 판 더 이겼을 걸요?”
구리의 말이다. 시시콜콜 통산전적 따위는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자신이 앞선 걸로 믿고 있는 눈치다.
이세돌은 씩 웃는다.
“내가 그 친구한테 갚아야 할 빚이 좀 있지요.”
절대패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실하게 승부를 내야 할 상대이기에 총구의 가늠자 한가운데 올려놓고 있다는 암시다.
이들의 승부는 다음 편에 집중 조명한다.


이세돌VS이창호-신·구 라이벌

아직 제 위에 이창호 사범님이 계십니다.”
최근 이세돌은 인터뷰를 통해 선배를 예우했다.
과거 LG배 2차 대전을 통해 강렬한 야성과 도발적인 자극이 무엇인지 보여줬던 검객 이세돌이 알게 모르게 달라진 느낌이다.
질풍노도의 에너지를 넘어 태양의 온기가 감지된다.
정상에 다다르면 깨우침을 얻는 법인가?
이창호는 여전히 관음의 미소로 한 자리에 정좌해있다.

그 누구도 최고를 손꼽으라면 이 영웅들을 놓고 엄지와 검지의 선택에 망설일 수밖에 없으리라.
태국의 잉씨배배에서 이창호가 부드럽게 2연속 반집승으로 신산(神算)의 경지를 보여주자 이세돌은 깊은 내상을 입었다.
귀국해서 비틀비틀 이리저리 5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방콕 수코타이 호텔 대국실에서 두 사람은 무려 두 시간 동안 복기를 했다.
승부를 떠나 안개 속에서 바둑의 미로를 함께 찾았던 것이다.

이세돌은 얼마 뒤 삼성화재 배 리벤지 매치를 통해 기어코 이창호에게 아픔을 되돌려주고 만다.
스피드와 기다림으로 압축되는 양웅의 라이벌 전은 서로의 장기와 특질을 탐색하면서 흡입-압축-폭발-배기로 이어지는 고출력 레이스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이창호VS창하오

1989년 제1회 잉씨배 결승에서 천운을 놓치고 이마를 쳤던 대륙의 수문장 녜웨이핑은 이를 악물고 선언했다.
“졌다. 하늘도 돕지 않았고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 장차 중국 바둑이 세계를 호령할 것이다.”
그 호랑이 새끼가 바로 창하오였다.

그 발언을 듣고 나서 초대 바둑황제 조훈현은 왕관을 고쳐 쓰며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흐음, 희한하네. 나도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는데……”
조훈현의 호랑이 새끼는 벌써 그 무렵 이유식을 마치고 쫄깃쫄깃한 육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스승의 타이틀을 하나둘씩 물려받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중의 라이벌 구도는 2대 사제 관계로 무협지처럼 전개됐다.
결과는 복사판이었다. 창하오는 주요 세계대회 결승 문턱에서 이창호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라이벌한테 당한 정도가 아니라 백발이 희끗희끗한 라이벌의 사부까지 덤벼들어 돌아가면서 때리는 바람에 청춘을 통증으로 기억한다.
자꾸 지다보니 중국 내에서도 후배들에게 밀려버린 창하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바둑을 사랑하고 함께 대결한 라이벌을 사랑하는 품성을 지녔기에 끝내 신(神)의 호명을 받고야 만다.
이창호와 창하오, 이들은 서로의 부진을 염려하는 동맹군이다.


이렇게 4인방이라 불렀지만 창하오가 각각의 상대전적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구리에게는 9연패, 이세돌에게도 번번이 쓴맛을 보았다.
거의 천적관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창하오는 완연하게 되살아나 모든 기전에서 진군하고 있다.
그는 이창호와 이세돌은 구리와 닮음꼴이다.
이세돌과 구리, 이창호와 창하오.
국경이 없다면 그런 묶음이 현실적이나 양쪽에 창과 방패의 전사들이 골고루 포진해있는 그림도 오묘한 맛이 난다.

21세기 접어들면서 바둑에 시간제한과 덤의 변수가 작용해 한층 격렬한 게임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사들마다 특유의 기풍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 기풍은 상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도 나온다.
창을 가진 자가 방패도 갖추고 방패를 가진 자가 창도 꼬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세돌, 이창호, 구리, 창하오-
세계바둑계를 짊어진 이 네 바퀴는 앞뒤를 다투면서 흥미진진한 주행의 드라마를 우리에게 보여리라 믿는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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