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게임

기획기사

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1)

바둑 개혁의 주체는 누구, 대상은 누구?

2009-04-14 오후 1:38:01 입력 / 2009-04-28 오후 4:38:51 수정

이광구 바둑기고가가 '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최근 바둑계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기사는 1, 2, 3편으로 나뉘어 14일, 15일, 28일에 소개된다.

상반된 얘기들이 들리고 있다. 한쪽에선 바둑계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쪽에선 지금은 위기라고 한다. 바둑계 개혁의 소리는 양쪽에서 들리고 있다. 계속 발전하려면 개혁해야 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그와 함께 바둑은 무엇인가, 바둑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논의해 보자는 소리도 들린다. 아닌 게 아니라 바둑계로선 지금이 뭔가 기로 혹은 변환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낙관의 근거는 무엇이고, 비관의 이유는 무엇인지. 개혁을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지. 개혁의 주체는 누구고, 개혁의 대상은 무엇인지.

정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러자 조금 더 어지러워졌다. 바둑계는 좁은 동네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고, 그들 사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사안 하나 하나를 따로따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려해야 할 항목들을 한번 열거해 보았다.

바둑팬과 프로기사.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 프로기전과 상금제. 프로 입단과 연구생. 바둑의 체육화. 바둑 교육 종사자들과 바둑 산업. 세미프로 실력의 아마강자들. 바둑언론과 인터넷과 기원. 바둑학과와 바둑학회. 바둑 세계화. 바둑 룰과 용어의 정립. 세계화를 위한 세계통합룰. 단-급 체계 표준화. 중국과 일본.

이런 것들이 한 줄기에 매달려 있고 얽혀 있다. 어느 것 하나만 따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 것들이 모두 딸려 올라온다.

바둑 동네의 한 사람으로서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다. 다른 지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편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타이젬에서 연락이 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 보라는 것이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고마울 따름이었다. 귀한 지면을 허락한 타이젬에 감사하며, 바둑 비관론으로 얘기의 실마리를 삼아 보겠다.

바둑 위기설은 벌써 꽤 된 얘기다. 크게 보아 바둑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종목이 되고 있으며 그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얘기는 이런 거다.


▲ 바둑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 예전엔 언필칭 1000만 바둑팬이었는데, 요즘은 그게 300만인지, 100만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현저히 감소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

▲ 프로기전이 갈수록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있다는 것. 많은 프로기사들이 도대체 대국이 없어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는 것.

▲ 기원은 말할 것도 없고, 바둑도장, 바둑교실 등 바둑 교육의 일선 종사자들도 운영난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

▲ 우리 바둑이 세계 최강이라고는 하나 근래 중국 바둑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조만간 실력 면에서도 추월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 등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바둑은 조만간 컴퓨터 게임에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아울러 지난 시절 세계 바둑계를 이끌었던 일본 바둑이 언제부터인가 정체 혹은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비관하는 쪽의 얘기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바둑 인구가 예전에 비해 감소한 것, 특히 젊은 층에서 감소하고 있는 것은 피부로 느껴진다. 다만 아직은 비관할 계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선 예전에, 1980년대 후반부터, 누구나 말하던 1000만 동호인이라는 것, 그건 산술적 계산만으로도 분명 허수였다. 어떤 레저 분야의 동호인 숫자는 그 분야의 전문잡지 구독 인구가 얼마냐 하는 것으로 추정-산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잡지 구독자에 100을 곱한다는 것.

우리 ‘월간 바둑’이 가장 많이 나갈 때 월 3만부쯤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 바둑 동호인은 약 300만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는 잡지나 책을 잘 안 사본다는 걸 감안하면 400만~500만이다. 그쯤이 맞을 것이다. 300만이라고만 해도 엄청난 숫자다. 500만은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저변 확대의 새로운 방법을 연구할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신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요즘은 인터넷 바둑 동호인들의 번개, 정모가 전국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만나야 바둑을 둘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만나지 않고도 바둑을 둘 수 있다.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채 바둑을 두다 보니 친해지고, 진해지니 상대가 누군지 보고 싶어진다.

바둑 동호인들의 만남과 모임은 오프라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온라인 모임의 활성화가 오프라인 모임을 활성화에 자극제 역할을 한다. 오프라인 시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 간다.

덩달아 아마추어를 위한 오프라인 대회는 또 얼마나 많아졌나. 요즘은 주말이면 전국 어느 곳에선가는 바둑대회가 열린다. 지자체들이 바둑의 효용에 눈을 뜬 까닭이기도 하다.

프로기전 쪽의 사정은 맞는 것 같다. 이미 여러 개가 없어졌다. 올해는 특히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탓이 크겠지만, 한국 프로기전의 대표주자인 국수전과 왕위전마저 중단되었다. 지난 1989년, 조훈현 9단이 제1회 잉창치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 바둑 비약의 원년으로 기록된 그 해, 국내 최초의 억대 기전으로 창설된 기성전도 소식이 없다. 프로기사들의 한숨이 엄살만은 아니다.
기원이 사양길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바둑도장, 바둑교실이 운영난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1997년에 세계 최초로 명지대학교에 바둑학과가 생겼다.

바둑계 발전을 낙관하고 있는 쪽에서는 "우리도 바둑 위기설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고도 있지만, 크게 보아 미래는 어둡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처럼 바둑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 바둑전문 TV 방송이 두 개나 있고, 이제 곧 IP TV라는 게 나오면 세 개가 된다. 대학에 바둑학과가 있고, 바둑학회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 등 동감이다.

아울러 최근 바둑계 개혁의 목소리가 공강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것. 바둑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며 변화와 개혁을 통해 비전을 찾자는 것이 그들의 얘기다. 그들이 제시하는 개혁의 방법, 개혁의 방향, 개혁의 밑그림에 이른바 바둑의 체육화가 있다.

바둑의 체육화가 바둑계 발전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가 되었으니 바둑은 앞으로 전국체전에도 정식 종목으로 참가할 것이고, 바둑올림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둑 교육 쪽도 활성화할 것이다.

프로기전도 스포츠의 형태로 바뀌면서 스폰서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바둑계가 점차 풍요로워질 것이며 프로기사들이나 바둑교육 종사자들의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좋은 얘기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바둑계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는 것은 바둑계 사람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다만 바둑이 체육의 옷을 입는다고 과연 생각처럼 그렇게 윤택해질 것인지, 윤택해지면 어떤 모습으로 윤택해질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나는 낙관하는 쪽이다. 그러나 미리 말하자면, 요즘 낙관하는 쪽에서 낙관의 근거로 꼽고 있는 바둑의 체육화에 공감하기 때문에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바둑 체육화에 대해 내 경우 처음부터 잘 공감이 되지 않았다. 바둑이 체육화에 성공했다고 하는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 수긍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바둑이 체육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바둑의 장래가 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바둑의 체육화와는 관계없이, 다른 이유로 낙관하고 있다.

나는 바둑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바둑은 수천 년을 면면히 흘러온 인류의 문화유산인데, 그게 쉽사리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다 보면 기복도 있을 수 있고, 양지와 음지가 바뀌기도 한다. 그걸 위기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둑은 수천 년을 그렇게 흘러왔듯,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다만 현실은 늘 부조리하고, 그런 현실이 버거운 것뿐이다.

바둑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유사 이래 우리가 정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불러왔던 모든 것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거야 어쩔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보면 앞으로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의 낙관은 낙관이 아니라 소망이요, 희망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바둑 체육화’의 내용은 무엇일까? 바둑이 체육으로 되면 보급이 더 쉬워질 것이고 그러면 일자리 같은 것도 많이 생길 것이다, 그건가? 프로기전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기원은 당연하고, 대한바둑협회도, 프로기전 활성화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좀 헷갈린다.

바둑 체육 전환을 주도한 것은 원래 한국기원이었다. 그때는 대한바둑협회라는 단체는 없었고 한국아마바둑협회란 게 있었다. 한국아마바둑협회가 대한바둑협회의 전신인 셈이다.

지금은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가 되어 바둑의 체육화를 주도-주관하고 있으며 한국기원은 기전 개혁-활성화를 위해 바둑의 체육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둑의 체육화에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열매를 나누자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바둑협회는 현재 홍익동 한국기원 회관 안에 방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 대한바둑협회 회장은 한국기원 부이사장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바둑계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건 보기에 좀 그렇다. 어색하다.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루 빨리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최근에는 다시 통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통합이란 말은 좋지만, 그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모양이 더 이상해질 가능성도 있다. 통합이 된다면 가령 한국기원은 프로연맹이 되어 대한바둑협회 산하 여러 종류의 연맹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인지.
통합보다는 명확하게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쉽고, 지금으로선 그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후에 바둑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작업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바둑의 정체성 정립. 사실은 이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그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2006년 대한체육회 김정길 회장(오른쪽)과 대한바둑협회 양성모 부회장이 대한체육회에 바둑협회가 준가맹 단체가 되면서 축하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우리 바둑의 경우, 정체성 확립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도 아닐 것이다. 바둑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바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바둑인들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고 말해 왔던 것들을 집약하고 정리하면 된다.

정체성에 대한 논의와 해답에 바둑인들이 공감하게 되면, 우리 바둑이 어떤 길로 가야할지, 그에 대한 해답도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이니 일은 참 쉽고 재미있어질 것이다. 굳이 바둑도 체육이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고,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바둑팬들을 헷갈리게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바둑팬들을 즐겁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헷갈리게만 해서야 되겠는가.

바둑의 속성은 다양하다. 우리는 그걸 하나의 명제처럼 아무 거부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바둑은 그저 승부를 다투는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바둑의 체육화를 선도하는 쪽에서도 “바둑은 승부니까, 바둑도 체육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분들도 바둑이 승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체육으로 가기 위해 승부의 면을 강조했을 것이다.

바둑 체육화의 목적에는 경제적 효과라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바둑이 체육이 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경제적 효과 얼마나 나타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바둑은 승부라는 점에서 체육의 하나라고 해도 막상 바둑에 체육의 옷을 입히고 경제적 효과와 연결시키려 할 경우, 바둑과 체육은 같은 점 못지않게, 다른 점도 많이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바둑의 체육화를 주장하는 쪽에서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이런 것. 경제적 효과라는 게 요는 돈이다. 흥행이다. 그런데, 흥행이 되려면 이른바 ‘현장의 동시 감응’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바둑은 우선 그게 어렵지 않은가.
야구는 홈런 한 방에 수만의 관중, 수십만의 시청자가 동시에 일어나 환호성을 지른다. 축구는 골 한 방에 전국이 떠나간다. 바둑은?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이 천하의 묘수를 두었다 해도, 착점의 그 순간 우리는 환호할 수가 없다. 모르니까. 누군가, 이창호 이세돌 못지않은 실력자가 먼저 감탄을 하고, 그가 설명을 헤 주어야 한다.


▲ 2006년 전국체전 전시종목으로 참가한 바둑.

음악도 그렇다. 음악회에 가서 우리는 기립박수를 치고, 때로 연주자와 함께 순간 순간, 혹은 음악회 내내 열광을 한다. 바둑은 기립박수를 언제 쳐야 하는지, 언제 함께 열광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그림과는 좀 비슷한데, 그림은 그래도 보는 순간 감동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바둑은 기보를 보면서 즉석에서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소설이나 시도 그렇다. 직접 소설이나 시를 쓸 만한 실력이 없어도 읽고 느낄 수 있으며 감동도 받는다.

요컨대, 바둑은 실기가 따르지 않으면, 실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이해는 물론 감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문학 음악 미술은 실기를 못해도 감상은 할 수 있다. 포커나 고스톱 마작도 룰만 알면 신나게 구경할 수가 있다. 감상하고 즐기며 비평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다르다. 설명을 듣고 이해할 뿐이다. 그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바둑이 체육이 되어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들어가면 바둑의 위상을 또 좀 더 높이고, 바둑에 대한 인식을 또 좀 더 좋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다. 지자체들도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체육에서도 가령 육상 같은 것은 아직 돈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육상이 중요하니 관중이 없더라도 배려해야 한다고 호소하듯이 바둑도 그렇게 호소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럴 거라면 굳이 어색한 변신을 꾀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바둑 독자적으로 지자체 대항전을 열면 안 되는 것일까. 체전이라는 큰 조직에 들어가 수많은 좀목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 바둑 독자적으로 가는 것보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인지.

(2편은 4월 15일 계속됩니다)

TYGEM / 이광구 바둑기고가

관련기사

SNS 간편로그인

(주)컴투스타이젬    대표이사:이승기    사업자등록번호:211-86-95324    사업자정보확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빌딩 4층

제호: 타이젬    등록번호: 서울 아04168    등록(발행) 일자: 2016.10.4

발행인: 이승기    편집인: 정연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장성계

전화: 1661-9699 (상담시간:10:00-18:00)    FAX : 070-7159-2001    이메일보내기

COPYRIGHTⓒ Com2uS TYGE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타이젬 일본
  • 타이젬 중국
  • 타이젬 미국
  • 타이젬 대만

2019 인공지능대상 수상

등급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