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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족구(足球)와 수담(手談)이 인생의 절반

수복강령 6단

2009-04-21 오전 11:23: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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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유저수첩의 주인공 수복강령 6단.

S#1. 나는야 북청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하고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파인(巴人) 김동환의 대표적인 시 ‘북청 물장수’를 기억하시리라.
물이 귀했던 시절 서울의 물 시장은 함경도 북청 사람들이 장악했었다. 근면하고 조직력이 강한 그네들은 물을 팔아 생계를 해결하면서 한편으로 수도권 서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했다.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기다리는 서민들에게 물장수의 발자국 소리와 물 붓는 소리는 희망의 효과음이었을 것이다.
먹는 물을 파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물을 파는 사람들의 끈끈한 조직력 또한 아직까지 살아있다.
수도권 전체를 관할하는 생수시장의 병참본부는 일산 초입의 들녘에 자리한다. 그곳에 다양한 상표의 생수들이 집결했다 수요자들에게 공급된다. 주문을 받으면 차량으로 신속하게 공급하는 서비스 맨들이 바로 오늘의 북청물장수들이다.
일제시대나 50년대처럼 고요히 꿈길을 밟고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단한 삶을 아름다운 땀방울로 채워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는 방법에 감탄한다.

S#2. 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갑니다.

타이젬의 수복강령 6단. 물을 다룬다고 해서 바둑을 물 6단으로 보면 오산이다. 짱짱한 6단 맞다.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판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상당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아침부터 출근해 물을 나르다 보면 어깨도 뻐근하고 다리도 후들거리는데 그 피로를 바둑으로 씻다 보니 저절로 6단이 되어버렸다고 밝힌다.

바둑을 두다 배달 주문이 오면 어쩔 수 없이 판을 접어야 하므로 포기한 바둑도 많았다.
그런 기권패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심야에 목욕재계하고 승률을 회복한다.
숨 돌릴 틈 없이 흘러가는 하루의 마침표를 바둑으로 찍는 셈이다.
그러니 다른 잡기나 잡념에 시선을 줄 시간도 없다.

그는 타이젬에서 1급부터 시작했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각종 강좌를 섭렵하며 바둑의 본질을 깊숙이 들여다 본 결과 빠른 시일 안에 6단까지 도달했다.
수복강령 아이디에 6단 마크가 찍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가슴 속이 충만해졌다고 고백한다.

"사나이가 이 넓은 세상에 어찌 웅지를 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 동안 많은 일들을 접했었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물장수가 천직인 모양입니다. 물을 팔아 아들과 딸을 버젓이 키워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죠."

얼굴에 성실함이 가득 고여 있는 수복강령6단.
그는 물 집결창고의 북청물장수 멤버들 사이에서 ‘회장’으로 통한다.
나이(52세)가 일단 윗길이기도 하지만 야성적인 그 바닥의 서비스 맨들을 운동으로 묶어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S#3. 타이젬 족구동호회 어때요?

“바둑은 마인드스포츠지만 실내에서 두뇌만 쓰다 보면 몸이 둔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중년의 나이에 격렬한 운동을 하긴 곤란하고 등산이나 낚시는 멀리 나가야 하니까 번거롭고, 족구가 안성맞춤인 것 같아요.”

수복강령6단은 족구마니아다. 배달하기 바쁜 ‘북청 물장수’ 멤버들로 이뤄진 족구 클럽을 4년째 이끌어 왔다.

초보바둑이 그렇듯 족구도 처음 시작할 때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법 틀이 잡혔다. 공격수들은 트릭과 강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었고 수비수들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어지간한 볼은 다 받아낸다.

수복강령6단은 세터다. 토스 전공인데 인사이드로 깔끔하게 올리는 수직 토스가 일품이다. 그렇게 올린 볼을 공격수가 멋지게 킬로 성공하면 온몸에 전율이 짜르르 흐른다.

“수도권 기우님들 중에서 주말에 시간이 괜찮은 분들은 고양시 화정동 시민공원으로 나오면 됩니다. 목요일과 주말 오후에는 항상 족구 코트가 열려 있으니까요.”


▲ 수복강령 6단.

그 공원에는 3면의 족구 코트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데 주말에는 전국 최강으로 통하는 족구 팀들이 가끔 나와 연습을 한다. 발등으로 찍어 내리는 가공할 스파이크와 세팍타크로 스타일 오버헤드킥도 구경할 수 있다.

초보라도 서너 달 연습을 하면 멤버들과 호흡을 맞춰 게임을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 사내들이야 군대에서 군화 족구를 안 해 본 사람들이 드물 테니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볼 감각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

족구를 체계적으로 벗들과 함게 하고 싶은 분들은 수복강령 6단 아이디에 쪽지를 보내 보시길 바란다.
오래 살고 복 받고 건강하고 편안하길 기원해서 수복강령(壽福康寧)이라 이름을 붙인 내력을 이제 알 법도 하다. 수담으로 피로를 풀고 족담으로 체력을 유지하며 근면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또 한 수를 배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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