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풍경, 치수고치기
요즘은 사라져가는 바둑 풍경가운데 치수고치기가 있다. 얼마 전 세계기전 5관왕에 올라있는 구리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세돌과 10번기를 제안한다면 언제든지 대결하고 싶다고 말해 다시금 생각난 치수고치기 10번기.
구리가 꼭 치수고치기라는 말은 넣지 않았지만, 10번기라고 하면 다들 치수고치기라는 명분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당대 최고수로 판명된 두 사람이 치수고치기 10번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10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빅매치가 될 것이다.
10여 년 전. 일인자 이창호와 장시간 이틀거리 바둑의 일인자 조치훈 간의 매치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제한시간 5시간짜리의 패자는 이창호였고 제한시간 8시간짜리 바둑은 조치훈이 패자였다. 따라서 제한시간을 6시간 정도로 해서 두 사람의 매치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처럼 치수고치기는 일종의 라이벌전이랄까. 정상급 기사가 한판 맞대결을 하야 직성이 풀린다. 팬의 입장에서는 호쾌한 경기를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선수의 경우는 그 한판 승부로 인해 쓸쓸히 링을 떠나게 되는 ‘데드레이스’라서 현역 기사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그런 시합은 종종 있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있어도 좋으리라.
누구라도 치수가 오르락내리락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조치훈의 전매특허 ‘3패 후 4연승’은 아마추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 쪽이 열 받으면 10연패를 하다가도 또 다른 한 쪽이 불을 받으면 11연패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세계에서는 치수가 호선으로 고정되어있어서 치수가 바뀌는 일은 도무지 안 일어난다.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사실 치수고치기의 원류는 일본이다. 일본의 전후(戰後)바둑계는 그 유명한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의 역사라고 할 만큼 팬들의 눈과 귀를 한곳에 모아두고 있었다. 일단 타이틀전도 드물었고 전쟁의 와중이라 일본국민들의 불안한 맘을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고 또 반대급부로서 패잔병도 만들어 놓는 구도를 시대가 원했다.
1939년부터 1955년 사이의 오청원의 바둑인생은 온통 치수고치기10번기로 점철되어있다. 당시 후지사와호사이․ 다카가와가쿠․ 하시모토우따로 등 당대최고수는 모조리 오청원의 쟁기(爭棋)에서 스러져갔다.
오청원에게 패해 치수가 내려가는 치욕을 당했던 일본의 최정상급 기사들은 하나같이 기사 생명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채 하나 둘 승부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당시는 4승 차이가 나면 치수를 반 단계씩(호선→선상선→정선) 고치는 완만한 방식을 택했음에도 결과를 둘러싸고 엄청난 파장이 있었다.
한번 자극받은 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려면 더욱 더 센 자극이 필요하다는 베버의 법칙(Weber's law)처럼 더 이상의 이벤트는 60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는다.
●…9단과 초단은 두 점 치수?
프로는 왜 기력차이가 엄연히 있음에도 계속 호선으로만 두어야할까? 아주 촌스런 원론적인 이 물음에 답을 구하다 보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마케팅적인 요소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두 점을 절대 같은 프로끼리는 있을 수 없는 치수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1983년 일본에서 당대 최고수인 조치훈과 신예 유망주간에 치수고치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 신예는 고바야시사토루, 왕리청 그리고 야마시로히로시가 덤볐다. 조치훈은 그들에게 두 점까지 만들었다. 즉, 정선에도 이겼다. 사실 우스운 것은 그 이벤트 대국이 있기 며칠 전 본선대국에서 야마시로에게 흑을 들고서도 패한 조치훈이지만 치수고치기에서는 이겼다.
또한 일본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상급 9단과 갓 입단한 프로들과는 두 점 치수라는 등식이 이미 성립되어 있었다. 한때 일본의 주간바둑신문인 슈칸고에서는 10년 전 만해도 갓 입단한 신예와 타이틀홀더급은 아닌 중견 9단과 2점에 기념대국을 하곤 했다. 한국적 상황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신예군은 2점에도 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요즘은 프로가 워낙 세어져서 정상급 프로는 빼고 신예기사와 아마기사간의 치수고치기도 해봤고 여류기사와 아마강자들과의 10번기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판판이 아마추어가 패하게 되니까, 두 점에도 지고 세 점에도 위험한 단계까지 이르자, 슬그머니 이 좋던 기획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치수고치기
사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수고치기를 한 것은 1956년 조남철과 당시의 2인자그룹이었던 김봉선 김명환이었다. 55년도 국수전이라는 타이틀이 생기자, 라이벌의식을 느끼던 연합신문사에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오청원 치수고치기 10번기를 흉내 내었다. 물론 오청원과 조남철을 ‘오버랩’시켰던 것이다.
당시 8단이던 조남철은 그야 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이창호나 이세돌보다도 더 2인자 그룹과의 기력차이가 났었다. 5단이었던 김봉선과는 3단차이가 나므로 정선에서 시작하여 5:1로 물리쳤다. 또한 김명환 2단은 3단격으로 인정하고서 정선으로 도전하여 5:1로 조남철의 완승이었다.
그 후 신호열 장국영 민영현 등 노국수출신의 고수가 잇달아 덤볐으나 조남철의 실력만 뽐내는 기획이 되고 말았다.
●…위험대결을 기억하는가
한국에서는 80년대 치수고치기 붐이 일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들을 끼워넣어서 자주 시도했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겨루는 ‘프로아마대항전’이란 이벤트에서는 정선에 치수가 바꿔지면 두 점으로 올라가는 형식을 띄었다. 당시에는 2대국 만에 한 치수가 오르락내리락거리니 상당히 살벌한 면이 있었다.
1985년 월간‘바둑’ 주최로 열린 조훈현: 도전5강의 치수고치기인 ‘위험대결'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실 팬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위험대결은 당시 한국바둑계를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훈현을 정점에 두고, 3인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도전5강’이(당시 2인자 서봉수) 정선(定先)치수로 도전하는 형식이었다. 단, 2연승시 치수를 고치는 스피디한 방식을 채택한 것이 특징.
장수영․ 서능욱․ 강훈․ 김수장․ 백성호로 구성된 연합군은 정선이면 조훈현을 무찌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마자 연전연패하며 두 번이나 두 점으로 내려가는 수모를 당했다. 결과는 비록 제자리인 정선으로 끝났지만, 정상급을 자부하던 도전5강으로서는 톡톡히 망신을 당한 꼴이었다.
물론 한국기원에서 주최하는 이벤트이니 당연히 돈과 관계없이 열성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갸륵할 뿐이다. 조-도전5강은 지는 쪽은 대국료를 아예 안 받기로 했다고 한다. 당시 대국자들은 개인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둑팬들이 기다린다는 한마디에 오케이사인을 냈던 것.
위험대결이 인기를 끌자 월간‘바둑’은 이듬해 당시 신예유망주로 각광받던 ‘신풍3강(양재호 유창혁 조대현)'을 내세워 ‘탐험대결'을 개최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신예들이 기대 밖으로 분전하면서 정선과 호선을 오르내리는 양상을 보인 끝에 정선으로 끝났다.
비록 정선 치수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루키 유창혁이 천하의 조훈현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두어 될성부른 나무임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타이젬에서는 2003년 최초의 여자정상치수고치기를 기획했다. 바로 루이나이웨이와 당찬 여자 박지은의 대결이었다. 루이와 박지은의 대결은 치수고치기 이전까지 8승2패라는 상대 전적이 말해주듯 객관적인 전력상 루이가 한 수 위였다.
박지은으로서는 어차피 루이를 넘지 못하고서는 정상도 없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박지은은 루이와의 대결에서 도합 5승5패를 기록했으나 루이가 박지은에게 정선으로 밀리는 결과를 보여주어 실제로는 박지은의 승리를 끝이 났다.
●…치수고치기는 팬들의 마지막 로망
과거 70년대 김현과 허버트강의 빅 매치. 그리고 유제두와 임재근의 강타자대결. 80년대에는 박종팔-라경민의 빅 매치가 있어왔다. 라이벌전이 있었을 때가 복싱의 전성기였음을 안다. 그리고 그들의 승부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복싱팬은 덩달아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바둑승부가 따분하다. 쇼킹한 승부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기존의 시합들이 맨송맨송하여 재미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뭔가 자극적인 반응이 있다면 이 무지와 나태함에서 벌떡 일어날 것인데 말이다. 한 번 쯤은 그러한 고정관념과 일탈을 범해보고 싶은 것인 팬의 맘이리라.
요즘은 또한 치수고치기의 패자라고 해서, 마치 가면을 빼앗긴 레슬러처럼 그리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기사 생명을 건 승부처럼 인식되는 것도 사실 아니다. 앞으로 부담 없는(어찌 안 가질 수가 있겠냐마는) 일류기사들의 치수고치기 라이벌전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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