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경기복도 한번 고려해 볼 시점
요즘 바둑TV를 보노라면 유니폼도 그럴싸하게 입고 나오고 해설자도 스포츠 중계 캐스터처럼 입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큰 대회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유명무실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각에서 제기 되는 프로들의 유니폼 착용에 대해서 오히려 스포츠로 진입한 지금도 명쾌한 답을 못 내리며, 요즘은 그러한 이야기도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바둑이 스포츠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전통의 방식이 남아있어서 경기복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아무도 관심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다. 프로들의 경기복 에 관해 잡다한 기억을 들춰보고자 한다.
●…서봉수의 '무패션' 패션
프로들은 대게 간편한 복장으로 대국장에 나타난다. 넥타이에 Y셔츠를 빳빳하게 다려 입은 완전한 정장보다는, T셔츠라든지 아니면 Y셔츠라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프리하게 나타난다.
서봉수는 수수한 사람이다. 그의 바둑은 참으로 독한 수들로 가득하고 그의 일상대화에도 신랄한 면이 담겨있으나 그의 옷매무새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흐트러져 있는 편이다. 그의 복장은 자유롭다기보다는 별 ‘생각이 없는’ 쪽에 가깝다. 그는 언제나 양복바지에 T셔츠를 입고 나타나는데 바지는 엉덩이 부분이 늘 반짝반짝하여 단벌 신사처럼 보인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90년대 초 바둑잡지 양 페이지에 걸쳐 후지쯔배 개막식이 화려하게 진행된 사진이 실렸다. 그 사진 속에는 각 국의 기라성같은 참가선수들이 모두 단상에 올라와 한꺼번에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전부들 개막식인 관계로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사진 빨'을 의식하고 있었는데, 유독 한 명 만이 와이셔츠차림으로 편하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봉수였다. 그 사진 속엔 10대 이창호도 보였고 20대 유창혁도 정장차림이었는데 말이다.
서봉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같은 옷으로 입어도 참 맵시가 안 나는 사람이다. 같은 값이면 좀 매무새도 단단히 하고 분도 바를 땐 좀 바르고 해야 하지만, 그냥 걸치고 나오는 타입이라 어떤 옷을 입어도 그럴싸해 보이지는 않는다. 된장바둑 서봉수와 몹시 어울리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말쑥한 정장을 꼭 차려입는 신사는 아무래도 김인 심종식 양상국 천풍조 박진열 등 60대 기사들이다. 이들은 한여름에도 신사답게 꼭 정장을 고집한다. 아무래도 일상에서도 워낙 자주 입던 차림이라 대국에도 별 지장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들은 의자 등받이에 윗도리를 걸쳐둔 채 대국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합죽선이 소도구로 애용된다.
●…유창혁과 생활 한복
10년 전엔 기사들 사이에서 생활한복이 상당히 유행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프로는 유창혁. 본래 유창혁은 총각시절부터 패션에는 비교적 날카로운 감각을 선보인 핸섬보이였는데, 그는 날씬한 몸매라서 그런지 콤비 차림의 노타이 캐주얼 정장이 아주 쌈빡했다. 그래서 그는 바둑잡지에 실리는 사진이 늘 모델 뺨치게 장식되곤 했다.
그러던 유창혁이 40대에 들어서면서 나잇살도 좀 불었고 얼굴도 통통해진 그는 이제 몸을 쉽게 가눌 수 있는 ‘펑퍼짐한' 생활 한복이 퍽 어울린다.
생활 한복은 앞으로도 더욱 인기를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단 소파에 앉을 때도 그 구김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고 대국 중에 열이 좀 나게 되면 팔을 쓱쓱 걷어붙이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
서봉수와 유창혁이 나란히 생활 한복을 입고서 전투를 벌인 적도 있다. 남양주에 위치한 고즈넉한 수종사 대웅전에서 벌어진 99년 LG정유배 결승3국이었다. 아마 지금 기원이나 바둑교실에 그 걸개그림이 걸려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유창혁과 서봉수가 생활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법당 안에서 대국에 임하는 사진 말이다.
서봉수는 한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닌다고 눈치를 받았던 사람이고, 유창혁은 핸섬한 마스크에 단아한 옷차림으로 늘 댄디보이로 비쳐줬던 사람이 공통적으로 생활한복으로 전투복을 삼았다는 건 이채롭다.
그 외 생활 한복을 입는 기사로는 장두진 문명근 장수영 등이다. 공통점은 몸집이 당당한 기사들이라는 점인데 푸짐한 몸매를 살짝 가려주기도 하니 그들로서는 제격이다.
●…유창혁과 요다의 만남
요다는 일본의 전통의상인 하오리하카마를 걸치고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나온 것은 96년의 일이다. 응씨배 삼성화재배에서 66년생 동갑내기가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먼저 치러진 응씨배에서는 유창혁이 요다를 보기 좋게 꺾었다. 그 다음 벌어진 ‘80만 달러전' 후반전으로 삼성화재배에서 만났다.
처음 1국은 유창혁이 반 집 승을 거두며 너무나 신나게 출발한다. 그런데 요다는 힘든 바둑을 끝끝내 따라붙으며 1집 반의 승리를 거두며 제2국을 이기며 승부의 저울추를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건곤일척의 한판에서 요다는 비장의 무기 하오리하카마를 입었다. 그가 세계대회에서는 통상 양복이 보통의 경기복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판에 요다는 대범하게 전통의상을 입음으로서 일본 대표선수임을 환기시키며 배수진을 쳤다.
요다는 극한(克韓)의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다. 김수장 조훈현 김성룡 양재호 등 한국기사만 4명을 차례로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온 위인이었으니. 바둑은 그러나 요다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비장한 요다의 눈매나 기합이 듬뿍 실린 착점 소리 등 TV화면 속에 비친 요다는 유창혁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국처럼 후반 들어 유창혁은 특유의 낙관무드가 젖어들면서 바둑은 또 다시 1집 반의 역전에 이르고 만다. 종합전적 1승2패로 유창혁은 요다에게 삼성화재배 40만 달러를 넘기고 만다.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자 방송국에는 유창혁에 대한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요다는 하오리하카마를 입고 민족혼을 일깨우며 대결했는데, 왜 유창혁은 캐주얼 복장으로 나왔는가.”
유창혁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다기보다 요다가 워낙 민족적 색채를 띠는 바람에 졸지에 ‘덜' 애국인인 것처럼 보여 지고 만 것이다. 어쨌든 삼성화재배 첫 해 우승은 일본의 요다에게 돌아갔고 하오리하카마를 걸친 모습은 역사 속에 간직될 것이다.
●…조훈현의 모시적삼과 요다의 하오리하카마
한일 양국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마주친 적은 없다. 그러나 마주칠 뻔한 적은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94년 동양증권배 결승으로 조훈현과 요다노리모토의 대국에서이다. ‘귀마개 사건’이 있었던 그 시리즈에서다.
요다는 반드시 조훈현을 이기고 시상식에서 입을 요량으로 전통의상을 지참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둑은 좋지 못했다. 조훈현의 특유의 흔들기가 작렬했고 조훈현의 중얼거림 때문에(?) 그는 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만 것.
그런데 재미있는 건 조훈현의 태도. 하오리하카마 얘기를 이미 들었던지, 2-0으로 리드하고 있던 제3국에서 조훈현은 한국의 전통의상인 모시적삼을 입고 나타났다. 조훈현은 그렇지 않아도 모시적삼을 자주 입는 편이지만 당시 필자는 분명 요다의 기(氣)를 꺾기 위한 복장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유도선수 김재엽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셨다는 한복을 입고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간 장면과 마라토너 이봉주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에서 우승한 다음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오른 장면과 비슷한 상황연출이었다.
조훈현은 서울서 벌어진 제3국을 이기면 우승이니 그때 그는 김재엽과 이봉주처럼 모시적삼으로 우승트로피를 치켜세울 참이었을 게다.
“혹시 김재엽처럼 하려고 모시를 입고 나왔죠?"
“넘겨짚지 말어. 그냥 더워서 입은 거야"
그러나 그 날 하루만 특별히 더운 것도 아니었고 다분히 조훈현은 요다의 기를 꺾을 요량으로, 또는 자신이 한국대표기사임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였음이 틀림없다.
모시적삼을 주로 입고 대국장에 나타나는 이는 장수영과 노영하 문명근 등 주로 중후한 기사들이 자주 입는다. 그들은 꼭 맵시를 내기위해 합죽선을 세트로 가지고 다닌다. 올 여름 에도 모시적삼을 대국장에서 볼 수 있으리라.
●…우칭위엔의 인민복?
현역에서는 물러났지만 세계바둑인들의 우상이 된 우칭위엔은 ‘인민복’을 입고 대회장에 나타난다. 우칭위엔은 일본으로 한때 귀화하기도 하는데 또 다시 중국국적을 재취득하기도 하는 등 국적에 있어서는 참으로 괴로움이 많은 인물이다. 따라서 우칭위엔은 과거 일본서 활동할 시절에 일본 전통복장인 하오리하카마도 당연히 입었다.
정확하게 그 복장의 이름이 인민복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지만, 공산당원들이 공식석상에서 입고 나오는 복장이다. 우칭위엔은 젊은 시절 한때 홍만교라는 종교에 귀의한 바 있어 홍만교 복장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추리닝도 유니폼이여?
난데없는 트레이닝복으로 대국에 임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이야 교류가 많이 된 탓에 중국에서는 체육이기 때문에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90년대만 해도 엄청 낯설었다.
98년 중국 상하이에서는 한중신인왕전이 열렸다. 그런데 전야제에서 한국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중국의 유망주 후야오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땟국물이 흐르는 트레이닝 차림으로 전야제에 나타난 것이다. 다리 양쪽선에는 굵직하게 흰줄이 3줄로 박힌 그 ‘추리닝’ 말이다.
이 17세 소년이 갑작스레 불려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한중신인왕전이 개막되는 대국장까지 그 복장으로 고집한 탓이다. 이건 사건이다.
후야오위는 상하이에 집이 있어서 대국장에서 자기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꼭 자다가 그대로 달려온 듯했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전야제에서는 슬리퍼였는데 대국장에서는 운동화로 바뀌었다는 것.
어쨌든 이 사건은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결코 생기지 않을 하나의 난센스일 것이다. 자국의 국기를 달고 나타나는 국가대표가 트레이닝복에 티셔츠 차림으로, 게다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타나 건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 망신이 아닐까 싶다.
그 후로는 2002년 뤄시허가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이창호를 이겼다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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