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80년 봉천동관악산 부근의 봉천동(奉天洞)은 지대가 높아 ‘하늘을 받든 마을’로 명명됐다.
오래 전 그 이름은 달동네의 대명사로 통했으나 최근 재개발 붐과 함께 고층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1980년 휴교령과 함께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 S운동권 핵심인물로 수배되었던 친구의 하숙집을 찾아 비탈진 언덕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던 이후로 봉천동은 처음이었다.
큰 길이 뚫리고 시원하게 규격화된 아파트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어도 봉천동을 다시 찾은 감회는 80년과 다르지 않았다.
그 곳 언덕배기 아파트 26층에 늘 꿈을 꾸고 사는 이가 살고 있다 들었다. 몸이 불편해서 바깥출입을 하기 어렵고 항상 모니터를 벗 삼아 꿈의 지도를 탐색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의 아이디를 찾아 ‘유저수첩’에 소개하고 싶다 전하니 정중한 사양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 여름에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제가 너무 웅크렸나 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볼 테니 안내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찾아간 봉천동, 하늘과 닿은 집에서 그를 비로소 만났다.
풍경의 꿈 1단. 두 단어를 조합한 네 글자에 불과한데도 뭔가 느낌이 아련하다. 풍경이 꾸는 꿈은 과연 어떤 것일까?
 ▲ 에이미 케이시의 '꿈속의 도시' 풍경 |
“장석이란 시인이 1980년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발표한 시 제목입니다. 그 시를 읽었을 때 뭔가 강렬한 충동이 끓어오르더군요. 타이젬 이름을 정할 때 문득 그 시가 생각나서 택했습니다.”
풍경의 꿈 1단이 맑으면서 굵은 바리톤의 음성으로 설명했다.
80년 봉천동의 기억과 맞물리는 우연이다.
어떤 시일까? 검색 창을 열어본다.
풍경의 꿈 - 장 석(1957)
나는 한낮의 성숙한 하늘에 부조되는 장엄한 무늬를
보았다. 나의 것인 뜨거운 꿈 하나가
그 근처에 벌써 앉아 있었다.
구름의 흰 살에 일어나는 물결들.
나는 원했다. 삶의 한 순간의 質인
강렬한 빛의 혼례를. 설레이는 분만의 풍경을.
끝없이 겹쳐 오는 모든 계절들의 힘을.
더럽혀진 풀의 형상으로
대지의 낮은 중심에서 새들이
눈뜨고 있었다. 빛 한가운데로
소리의 騎士가 말 달리며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온다. 흩어져라. 단단한
풀씨들이여. 사랑의 熱들이여.
날아올라라. 한없이 힘센 세력이여. 흰 욕망들이여.
나는 부풀어갔다. 장엄한 문양과 내 꿈이
숨쉬는 따뜻한 열이 나를 상승시켰다.
풀이 일어선다. 녹색의 무리들, 삶을 환히
밝혀주는 불붙는 표피여.
나는 부끄러워 눈물 흘렸다. 내 꿈은
나에게 입맞추어주었다.
S#2. 가족이라는 이름
그가 26층 아파트 거실에서 휠체어에 탄 채 맞아주었다.
구자길(1956년생) 오랜 병마에 시달려 야위었지만 눈빛이 형형하고 음성이 맑아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어때요? 평수가 작은 아파트지만 전망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그가 숙련된 솜씨로 휠체어를 조종해 필자를 베란다 쪽으로 안내했다.
관악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나가진 못 하지만 여기서 바라보면 저 풍경이 전부 내 것인 셈이죠. 하하하”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는 긍정의 힘을 오롯이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는 창밖을 보며 풍경을 예찬하지만 그와 풍경을 동시에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어쩐지 눅눅해진다. 비 내리는 오후의 봉천동 대기처럼.
“어떻게 불편하신가요?”
“아아 제 몸이요? 30년 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답니다. 하반신을 못 쓰게 됐는데 95년도에 욕창을 앓아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그가 담담하게 아픈 추억을 들려주었다. 사고도 사고지만 이후 합병증 때문에 콩팥과 방광이 상하면서 복부에 튜브를 꽂아야했다.
부산 구포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나온 구자길 씨는 해양대학교에 지원해 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다. 수험 공부를 하던 재수생 시절에 교통사고를 당해 청운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방 그늘에 누워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몇 번이고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은 불구(不具) 삶 또한 신이 내린 운명인지라 여기까지 왔노라 답한다.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 중에 고마운 은인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큽니다. 얼마 전에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님은 30년 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셨는데 제 딱한 처지를 듣고 무료로 변론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승소했지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 분을 영원한 은인으로 모십니다.”
그의 컴퓨터 초기화면에 노 대통령의 사진이 큼직하게 박혀있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구자길 씨가 안방 문을 열고 어르신들을 소개한다.
87세의 부친 구정회 옹은 침대에 누워 계셨다. 척추 어느 곳에 혈관이 눌려 전혀 거동을 못한다고 했다. 인상이 지적(知的)으로 보여 전성기를 탐문하니 김해에서 유명한 수학 교사로 활동했던 분이라고 했다.
역시 연로한 모친께서는 하루 일상 전부를 성경 읽기로 보내신다.
“가족들 모두 편치 않으신데 어느 분이 돌보시나요?”
“여동생이 가장이지요.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올해 52세의 구영란 씨가 부모와 오빠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아아,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여인의 마음은 또 어떤 빛일까? 아쉽게도 그녀는 일 나가고 집에 없었다.
S#3. 엎드려 30년, 길을 찾다
“누추하지만 여기가 제 방입니다.”
좁은 방 가운데 소변 통과 물통이 눈에 들어왔다.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하고 소변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필수품인 것이다.
“이렇게 엎드려서 타이젬에 접속하지요.”
 ▲ 모니터를 켜는 풍경의꿈. |
그의 팔꿈치에 군살이 선명하다. 비스듬히 누워서 타이젬 생활을 즐기므로 오래 접속해도 바둑은 하루에 두 판을 두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타이젬 창사 때부터 접속했습니다. 여기서 바둑을 통해 또 다른 삶의 통로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둑의 진보도 좋았고 바둑 동호회 친구들과 정을 쌓은 것도 소득이었다.
“한바다 동호회 모임 때문에 철원, 유성 여행을 했습니다. 살면서 그런 여행은 꿈에도 꾸기 어려웠는데 기우님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줬습니다. 승용차로 태워줬고 모임에 나가면 모든 분들이 힘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기우들과 교류하면서 타이젬은 구자길 씨의 가장 주된 생활공간이 되었다.
즐그은호박 9단, 여우의 포도 9단 등이 바둑을 가르쳐주었고, 시나리오 작가인 꽃이핀다 9단은 가끔 만나서 유익한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을숙도7 선배는 구자길 씨에게 강한 자극을 전해주었다.
그는 감전사고를 당해 38년 동안 두 팔과 다리 하나를 잃고 오로지 한 다리로만 살아온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래도 갈고리를 이용해 컴퓨터에 접속하고 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을숙도7 선배는 바둑 정석 책과 행마법에 관한 서적을 선물하면서 한 마디를 건넸다.
“아무 때라도 죽으면 죽는 거지. 살아 있는 동안은 강하게 살아야 해요.”
둘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그 선배 덕분에 용기를 얻어 구자길 씨는 30년 만에 고향을 다시 찾았다고 했다.
“타이젬에서 길을 찾은 셈입니다. 어떻게 살아도 나쁘지 않은 인생인데 그 동안 너무 의기소침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갇혀 살았어요. 지금 심정이 마치 권투 경기 15라운드 종료를 앞둔 기분입니다. 터지고 깨지고 온몸의 정력이 완전 소모될 때까지 싸워보고 싶은데 곧 공이 울리는......그런......”
 ▲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직접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
“권투보다 요즘은 종합격투기가 대세 아닌가요? 거기서는 공이 울려도 판정이 애매하면 반드시 연장전을 치르지요. 연장전을 준비하시면 될 겁니다.”
“하하 그런가요?”
“이제 타이젬에 더 자주 접속하세요. 많은 분들이 반갑게 인사하실 겁니다. 불편한 사실이 알려졌다 해도 괘념하지 마시구요. 사이버 세상에서는 마음만 보이니까 풍경의꿈님은 누구보다 밝고 건강한 낭만기객이십니다.”
“네에. 그러지요. 오래 고민했습니다만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데 혹시 사소한 고민에 눌려 힘들어 하시는 분들 계시면 힘내시라고 나온 겁니다.”
찾아갈 때 조심스러웠던 기분이 헤어질 때 자연스럽게 풀렸다.
필자가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올 때 풍경의 꿈 1단은 26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제스츄어가 ‘화이팅!’이라는 것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P.S : 타이젬을 건강한 사회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구성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풍경의꿈님께 타이젬 평생회원권을 증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