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하룻밤의 감금 "대구 좀 급히 내려 오실랍니꺼? 북부경찰서 형사 한 분이 김 작가를 긴급수배한다는데."
"헉!"
대구 사람들의 통화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대구바둑협회에서 온 전화였는데 역시나 수배의 내용을 자상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요청에는 시시콜콜 이유를 묻지 않고 KTX를 타는 게 그네들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법.
동대구 역에서 내려 약속장소인 6번 출구로 나가자 강렬한 눈빛의 사내가 서 있었다.
직감적으로 손을 들었더니 그 쪽에서도 번쩍 손을 들었다.
"어서 오이소. 김 형사입니다."
대구 북부경찰서 강력계 김영진 수사팀장.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심더. 다름이 아니라 뭐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예."
한적한 공원으로 가더니 그가 대뜸 두툼한 원고뭉치를 건넨다.
엄청난 분량의 원고 표지에는 “형사여, 수사에 혼을 실어라!”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제 형사 생활 25년의 기록입니더. 이걸 후배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데 책으로 만들어 주이소."
"어휴, 뭘 이렇게 많이 기록하셨습니까? 먼저 읽어봐야겠군요."
숙소에 들어가 원고를 읽는데 첫 장부터 동공에 피로가 안개처럼 엄습한다. 마치 빈틈없이 가득 쌓아올린 벽돌 블록처럼 단 한 줄의 여백 없이 빽빽하게 적힌 수사기록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한 장 두 장 쪽수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마약, 강도, 강간, 살인, 사기, 납치, 도박, 방화, 폭력, 등등 무수한 범죄 사례와 그에 대응하는 한 형사의 좌충우돌, 종횡무진, 동분서주의 궤적이 알뜰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재밌능교?"
그가 모텔 소파에 앉아 필자의 독서를 감시한다. 한 줄이라도 대충 넘어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눈빛이다.
거참, 민완형사 앞에서는 멀쩡한 사람도 괜히 주눅이 드는 듯싶다.
"아, 예, 재미있네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읽고 있는 대목에 관한 보충설명이 발칸 포 탄피처럼 쏟아진다.
그런 감시구도 아래서 밤을 꼬박 새워 두 권의 기록을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 그나마도 속독을 해야 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데이. 근데 소감이 어떤교?"
"아, 예......(약간 시니컬해진) 띄어쓰기 좀 하시지. 안구가 튀어나올라카넹."
"형사가 뭘 알겠능교. 그냥 죽어라 열심히 썼을 뿐."
내용은 차치하고 일단 이 엄청난 원고 작업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형사 김영진. 그는 대구 강력계 팀장으로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꼴통'으로 통한다. 소년 시절에 축구를 했고 태권도 3단에 각종 무술로 다져진 탄탄한 체구가 당당하다. 범인을 검거하느라 왼팔에 칼을 맞은 적도 있고, 주먹을 교환하는 건 밥 먹듯 겪어왔다.
과잉진압으로 인해 검찰이나 상사들에게 자주 문책을 당했지만 그런 열혈기질 때문에 6건의 살인사건 및 수백 건의 강력범죄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했다. 경찰청 본청 표창 9회와 지방경찰청 표창 8회에 빛나는 영광보다 팔뚝에 난 칼자국이 훨씬 리얼한 훈장이라며 씩 웃는다.
야성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사나이다.
S#2. 절묘한 응수타진
그의 파란만장한 수사일지는 언젠가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니 그 때 소개하기로 하고, 그의 타이젬 아이디 [킹콜롬보 6단]의 바둑야화를 전하는 게 우선이리라.
경북 울진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우리의 김 형사는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마친 뒤 강력계 형사로 따끈따끈하게 사회 데뷔를 했다.
바둑은 고교1학년 때 1급 두는 친구한테 8점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두기만 하면 대마가 사로잡혀 가슴에 열불이 났다. 기도(棋道)고 뭐고 따질 것없이 무조건 그 라이벌 친구를 격파하는 게 일생일대 가장 큰 소원이었다.
어떤 일이든 맘먹으면 줄자를 대고 일직선으로 좌악 그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휘발유 성격의 김 형사. 그날부터 두 달 반 동안 25권의 바둑서적을 탐독하고 기원에 살다시피 매달리며 바둑에 눈을 뜨게 된다.
▲ 바둑 두는 김 형사. |
"투쟁심으로 바둑을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기초는 부실합니더. 남들이 그라는데 노림이 강하다카데예."
근무하는 경찰서 안에서는 최고수로 군림하면서 틈틈이 기원에 나가 대구의 바둑 인들과 교분을 나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범죄 때문에 25년 동안 비상대기 인생을 살면서 그런 긴장을 바둑으로 풀었다고 밝힌다.
"수사할 때 바둑의 전술이 긴요하게 응용되기도 합니더. 증거가 없어 막막할 때 머릿속으로 바둑 복기하듯 사건의 수순과 참고 도를 차분하게 그려 본다 아입니꺼."
그의 수사 일지에서 눈에 띄는 사건 하나.
살인사건이 터지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점찍었는데 그의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했다.
한 점의 증거도 없어 체포할 수는 없는 상황.
그때 휘발유 김 형사의 감각적인 응수타진이 떨어졌다.
용의자를 조용히 밀실로 데려가서 다짜고짜 막말과 욕설을 섞어 추궁하기 시작한 것.
"어이 씨 발라 먹는 수박 같은 넘아. 왜 사람을 죽였노?"(이런 식으로 10여 분 발칸포 사격)
그러자 심약한 용의자가 그 응수타진에 깜빡 넘어가 고개를 떨구고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동료들이 용의자의 차량에 루미놀 반응검사를 실시해 혈액의 흔적을 찾아냈다.
자칫하면 미궁에 빠질 뻔한 살인사건을 그의 방식으로 해결한 것.
용의자가 3선을 한 칸 씩 뛰어 완벽하게 지어놓은 집을 우격다짐 응수타진 한 방으로 쑥밭을 만들어 버린 거였다.
"인권침해의 여지가 없잖아 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더. 근데 일반인들이면 알리바이가 확실해도 허점이 있는 법인데 그 양반은 지나치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문제였심더. 마치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깔끔한 게 더 미심쩍더만요."
S#3. 수사기록 5천 매, 바둑 5천 판
25년 동안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해왔고 지금도 대구 거리의 사회악을 분리수거하기 위해 매서운 눈초리를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킹콜롬보 6단.
밤낮가리지 않고 일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범죄기록을 타이핑하고 바둑으로 머리를 식히는 민완수사관 김영진 팀장.
 ▲ 전화 받는 김 형사. |
원고 5천매에 실린 파란만장한 이야기들만큼 바둑 5천판에도 사나이의 투쟁심이 회오리쳤을 것이다. 열혈파 김 형사의 캐릭터가 자못 흥미로워 ‘가상 체포’ 실험을 해보았다. 필자를 범인이라 치고 몇 초 만에 제압해 수갑을 채우는지 테스트해 본 거였다. 아띠, 그런데 우리의 휘발유 김 형사는 ‘레디 고’하자마자 우왁스럽게 덤벼들더니 찰칵 수갑을 채운다.
거기까지는 그럴듯해서 몇 커트 촬영하고 끝내려는데 웬걸! 수갑의 열쇠가 맞지 않아 두 사람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엮어버렸다.
"와따 답답한데 빨리 좀 풀어봐욧!"
"분명 열쇠는 맞는데! 우쒸, 내가 왼팔에 수갑을 차야 오른 손으로 쉽게 여는기라. 아무 생각 없이 오른손목에 걸어버렸다 아입니꺼."
하하하 왼손으로 어설프게 열쇠를 돌려 수갑과 씨름하는 민완형사의 표정이 어찌나 순진해보이던지.
수만 명이 넘는 타이젬의 유저들.
우리들은 바둑이라는 취미 하나로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고 만난다.
이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각각 자신의 삶에 충실히 살다 바둑이 고프고 기우가 그리운 시간에 바람처럼 스며들어온다.
어쩌면 대구의 김 형사가 추적하고 있는 용의자 몇 사람이 익명의 그늘 아래 바둑을 두고 있을 지도 모른다.
수사에 바둑의 기법을 접목한다는 김 형사, 또 바둑에 수사의 기법을 적용해 상대의 한 수 한 수를 내밀하게 탐색하는 김 형사. 눈빛은 한없이 뜨거우나 19로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와도 친구 아니냐며 껄껄 호탕하게 웃는 그를 오늘 유저수첩 한 갈피에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