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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복기부터 하고 대국은 추후속개?

ㅇㅇ

2009-09-20 오후 9:02:43 입력 / 2009-09-21 오후 2:07:41 수정

●…대국 중 계가의 일반적인 습관

대국 도중 형세판단을 할 적에도 프로들은 개성이 있다. 휴직중인 이세돌은 형세판단을 위해 계가를 할 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곤 한다. 집 수를 헤아릴 때는 ‘하나, 둘, 셋…’ 셈 소리가 모기소리 만큼 삐져나오는 타입.

또 유창혁은 돌 통에 얹어놓은 오른손으로 집 수를 카운트한다. 오른손이 돌 통을 덮은 상태로 장단은 중지가 들썩거리며 맞춘다.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제일 긴 중지로 돌 통을 가볍게 톡톡 때리면서 장단을 맞추면 그래도 유리한 형세라고 보면 된다.

그런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자칫 모범적인 자세에서 벗어날 때가 간혹 있다. 5년 전 쯤 연구생 출신 꼬맹이 기사와 그의 스승인 K가 공식시합에서 만났다. 공식시합에서 사제가 어떤 승부를 벌일지 흥미롭게 관전 중이었다. 그런데 그만 목불인견(目不忍見)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바둑은 제자가 불리했으나 점점 후반으로 갈수록 스승은 형세가 고단해지기 시작한다. 흐름상 제자의 역전 분위기. 그런데 한판의 승리를 위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스승의 뚜껑에 담긴 사석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제자의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자기 돌 통 뚜껑에 담긴 사석도 손으로 만지며 몇 개인지 헤아리는 것은 물론이요, 더 가관인 것은 스승이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 아예 자기의 뚜껑에 담긴 제자의 사석을 몇 개인지 보기 좋게 펼쳐 보이는 ‘아량’을 베풀었던 것. 그때서야 제자는 정확한 계산이 되었던지 즐거운 표정으로 다시 정좌를 하게 되었다.


●…남의 바둑 구경이 재밌어

또 흔한 대국 습관은 상대가 장고하는 시간에 남의 바둑을 구경하는 것. 프로든 아마든 자신이 장고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도 상대의 장고시간은 기다려주기 힘든 법이다. 한 수의 최장 장고는 일본의 다케미야마사키(武宮正樹)가 80년대 본인방전에서 기록했던 기록한 4시간여.

도전기 같은 주목받는 한판을 두게 되면 제한시간도 넉넉하게 주어지는 고로 더더욱 기다리기가 지루하다. 그러다 보니 ‘분주한’ 조훈현은 대국장을 아예 비우는 경우도 잦았다. 물론 비운 사이 상대가 착수를 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제한시간을 모조리 까먹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좀이 쑤셔서 못 앉아있는 타입이다.

그럼 조훈현은 대국 중에 자리를 이탈하면 어디를 가는가. 예선대국장으로 직행하여 이름모를 신인들의 바둑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린다. 역시 눈이 빠른 사람이라 그 예선대국을 드르륵 훑어보고는 국후 그들과 복기까지 합세하는 초능력을 과시한다. 그가 예선대국장에 뒷짐을 진 채 흥얼거리고 나타나면 자신의 바둑이 좋다고 보면 된다.

예선대국장에만 가는 건 아니다. 그는 상대가 장고할 때면 어김없이 나와서 남의 기보를 한 두 개씩 놓아보면서 소일한다. 보통의 기사가 총보 형태의 기보를 놓아보려면 약 3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단번에 바둑알을 두 세 개를 집어 들면서 기보를 놓아보는 조훈현은 정말이지 귀신같은 손놀림이다.


●…돌려보면 안 되나요?

고바야시고이치(小林光一)는 전성시절 매너가 나쁘다는 평을 들었다. 바로 그가 가진 습관 때문이었다. 대국도중 기록하던 연구생에게 기보를 달라고 하는 습관이 있었다. 자신이 둔 기보를 좀 보여 달라는 것이 어째서 매너문제가 되는가?

흑을 든 사람 입장에서 보는 것과 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관점의 차이에 털끝만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왜, 인터넷 바둑에서 ‘판 돌리기’ 기능을 사용하다 보면 방금까지 내가 두던 바둑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판이 뒤틀려있음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고바야시는 약간의 착시마저도 하지 않으려는 철두철미함을 보여준 것이다.

80년데 다케미야와 고바야시의 대국에서도 고바야시가 그러한 시도를 했다. 연구생에게 기보를 달라고 한 뒤,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더니 금세 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다케미야는 이런 모습에 대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니 기보를 보는 행동을 지양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고바야시는 타케미야 앞에서는 기보를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 버릇이 그냥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엔 일어서서 상대방 편에서 바둑을 쳐다보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상상해 보라. 나의 듯편에서 상대가 수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진개진’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긴 다케미야와 고바야시는 한국의 조훈현 서봉수만큼이나 신경전이 날카로웠던 사람들이다. 웅혼한 기상을 과시했던 ‘우주류’ 다케미야는 고바야시의 바둑을 꿈이 없는 ‘도교지하철’이라고 폄훼했으니 말이다.


●…대국 도중 좌담회는 싫어요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의 생전 대국을 관전하다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 많았다. 아무래도 어른이다 보니, 승부에서 후학들과 대결할 때가 많았는데 상당히 낭만적으로 대국을 했다. 따라서 그의 대국은 조용할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안부 인사부터 바둑에 관련된 얘기 등 생각나면 수읽기 도중에라도 수시로 ‘좌담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80년대 조남철 조훈현의 본선시합 장면이다. 두 사람 모두 국수계보를 잇는 거장이지만, 조훈현이 이길 때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대국을 하게 되면 마치 스승과 제자처럼 정다웠다. 따라서 거장답지 않은 소탈한 좌담회가 열리곤 했다.

대국도중 난해한 정석이 나오자 조남철은 난감해한다. 난감하면 난감한대로 두어가는 게 순리이거늘, 조남철은 대뜸 제자 같은 조훈현에게 묻는다.
“자네, 이것 신수인가?”


“…신수라니요. 책에서 본 수입니다.”


“어허, 역시 공부하는 사람은 못 당하겠군. 난 생각이 전혀 안 나네 그려”


“이거 선생님이 쓰신 실전정석정해라는 책에 있던 것인데요?”


(글쎄, 책에 뭐라고 나와 있어?)


●…대국도중 복기부터

워낙 기사들은 서로 친하기 때문일까. 대국 중 잡담을 넘어 심도 깊은 연구까지 한 예도 있다. 96년 비씨카드배 8강전에서 당시 이창호의 위력에 버금가던 최명훈과 유창혁의 대국.

15년 전의 일이니 일반의 예상은 당시 전성기였던 유창혁이 당연히 우세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돌하르방’ 최명훈도 실질 랭킹2위까지 치솟은 강자였다. 따라서 바둑가는 누가 이길 지 알 수 없는 팽팽한 대국을 예상했다.

치열한 대마 수상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이전에서 유창혁은 바꿔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안 되는 한 길로 그만 가고 말았고, 수상전은 최명훈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시각이 오전대국을 마칠 시간인 오후 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니 2시에 속개해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엔 오전 10시부터 대국을 하니까 오후 1시면 거의 3시간을 둔다. 대충 끝날 바둑은 3시간 전에도 끝이 나기에 점심시간동안 바둑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래야 오후 반나절동안 다른 일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프로들의 묵계였다.

유창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손목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등 분위기는 이미 돌을 거둔 것 같았다. 두 대국자는 물론 함께 구경하던 필자와 기록을 맡고 있던 연구생까지 어울려서 그 바둑의 상황에 대해 돌을 놓았다 뗐다 하는 것이었다. 꼭 복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관계자들도 들어와서 주섬주섬 기보를 정리하는 등 파장분위기였다.

“아까 역시 바꿔치기를 했어야 했나?”

“저도 그렇게 두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냥 국후담에 그치고 말았느냐? 이윽고 반상의 바둑돌을 뜯어내면서 본격적인 복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승자 최명훈은 자기가 머리 속에 그려두었던 이후의 참고도에 대해 주르륵 그려보였다.

“제가 이렇게 두면 이렇게 두려고 했었어요.” 

복기를 대략 30분쯤 했을까? 이제는 밥도 먹어야 할 때가 되었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유창혁의 멘트 한방에 최명훈, 기록계, 그리고 필자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최)명훈아, 밥 빨리 먹고 와서 (오후 대국)두자!”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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