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바둑의 세계화'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해외 바둑시장 상황 설명과 함께 한국바둑이 해외 바둑시장 개척을 위한 정책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옳은 문제제기이지만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해외 시장개척에 앞서 우리 바둑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내실'이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둑을 접하는 학생들에게 바둑의 효능에 관해 막연하게 '좋다'하는 식으로 알려줄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구체적 실증사료를 보여줘야 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승려 도림과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뒀다는 얘기가 적혀있고, 고려사 악지에는 내기바둑으로 자신의 부인을 빼앗긴 예성강곡이 전해진다. 구한말 김옥균의 바둑판과 기보집이 남아있고, 조남철 선생의 손 때 묻은 바둑판과 조훈현 9단의 서재에 쌓여있는 기보 등도 충분히 보존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삼국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바둑역사를 자랑하고, 입으로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박물관이나 전시회 등에서 만날 수 없다.
요즘 외국에서 바둑을 배우러 오는 유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연 한국바둑의 진면목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한다. 언제까지나 바둑 최강국이라는 말로만 한국바둑을 내세울 수 없다. 어떤 종목이든지 문화의 옷을 입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그들에게 '우리만의 바둑'을 과시해야 한다.
그간 우리 바둑의 뿌리를 찾아서 발굴해 낸 사료들 대부분은 몇몇 개인의 노력 덕분에 빛을 봤다. 개인 소장품으로 한국바둑 역사물을 대신한다는 것은 최강국의 명예에 손상이 가는 행위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야 한다. 어설픈 세계화만 외칠 것이 아니라 내실 있게 바둑문화를 가꾸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한 국가의 총체적인 수준이 도서관 수에 달려있다면, 바둑문화의 총체적인 수준은 바둑박물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후학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바둑박물관을 건설해야 할 때다. 한국기원 로비에 조남철 선생의 흉상이라도 세우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9월 19일자 부산일보 [진재호의 바둑 풍향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