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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독일로 시집간 윤영선 사범

유럽국가 중 가장 활발한 바둑활동을 보이는 독일

2009-11-18 오후 6:05:31 입력 / 2009-11-23 오전 11:18:55 수정


▲ 함부르크 시청. 안팎이 다 아름답다.

함부르크는 인구 180만으로 독일 제2의 도시며 최대 항구다. 도시 외곽까지 합한 메트로 인구는 430만 명이다. ‘독일의 부산’이다. 유럽에서는 로테르담에 이어 두 번 째 큰 항구이며 하역양은 유럽 최대다. 항구는 발틱(Baltic)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강 하구에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다. 13~17세기에 북부 유럽 상업도시들이 공동이익을 위해 한자(Hansa)동맹을 맺는다. 함부르크는 이 동맹의 중심도시였다. 함부르크엔 ‘리퍼반(Reeperbahn)’이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창(公娼)이 있다.

내가 처음 함부르크에 갔을 때 음악가 브람스(Johannes Brahms) 집 주소를 찾아 갔더니 리퍼반 한 복판이었다. 브람스 집을 찾는데 창녀들이 호객을 하는 등 창녀촌 분위기 때문에 포기하고 그냥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리퍼반의 다른 부분에서는 음악홀, 카페, 겔러리 등이 있어 활발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틀즈(Beatles)도 유명해 지기 전에는 여기에서 노래를 불렀고 내가 갔을 때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캐츠(Cats)’가 장기공연 중이었다. 항구도시라고 해도 공원과 호수가 발달되어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이 곳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독일바둑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여류국수였던 윤영선 사범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 홍등가리퍼반

▲ 엘베 강의 야경

▲ 엘베강 하구의 항구 제자 김선기 6단 / 바둑클럽 카페(바) 주인 4단

1. 독일로 시집간 윤영선 사범
여류기사 윤영선5단은 내 제자다. 영선이는 명지대 재학시절 바둑학과 강의 말고도 교양학부에서 하는 내 강의도 다 들었다. 영선이는 바둑이 강할 뿐 아니라 학습능력도 뛰어났다. 강의 이해능력이 빨랐다. 과제물도 충실히 해 오고 특히 단어처럼 외워 오는 일에도 항상 점수가 좋았다. 그래서 학교 성적이 좋았다. 어느 날 같은 반 학생 한 명이 나에게 “영선이는 조금만 노력해도 다 아는 거 같아요” 하며 부러워하던 생각이 난다.


▲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 폴란드 투홀라 대회장 선수단 버스

영선이가 자기와 친한 하호정, 김민희, 강승희랑 4명이 짝을 지어 2001년 아일랜드 더불린(Dublin) 유럽바둑 콩그레스(대회)에 참가했다. 평소 그들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이런 행마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네 명을 2003년 러시아에서 만났다. 이 때 패어 바둑을 내가 러시아인과 한 조가 되어 하호정 조와 대국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유럽대회에 한국 미녀 ‘4인조’가 나타나면서 유럽 바둑인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남자 바둑인에게는 이 들의 등장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러시아 상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느 젊은 유럽 친구가 나에게 “한국 여류기사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내 바둑이 너무 약하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벌써 이들 네 명은 유럽 바둑계에 명물이 되어 있었다.

다음 해 폴란드의 작은 마을 투홀라 콩그레스(Tuchola European Go Congress)에 ‘4인조’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이 유럽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모습을 내가 지나 다니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름이라 그들은 옥외 테이블에서 주로 지도를 했다. 그 중 한 명이 라스무스였다. 나중에 영선이에게 들은 얘긴데 폴란드에서 라스무스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 방영부, 최준원, 송중택, 하호정, 필자, 김민희, 조창삼, 강승희, 이기봉, 윤영선, 스베타 – 폴란드 2004

▲ 하호정 왼 쪽이 라스무스 오른 쪽이 윤영선(머리 끝만 보인다^^) 폴란드 대회

▲ 영선이 건너편이 라스무스 – 그가 이렇게 영선이 근처에서 계속 얼쩡거린 걸 나중에 사진으로 알았다

▲ 한국인 각 조 입상자: 챔피언 윤광선7단 양 옆에 이정애, 이승현 자매. 맹인 챔프 송중택 5단 딸

▲ 한국 여류 프로들의 지도다면기(폴란드)

▲ 나와 영선(스웨덴 렉산) / 렉산 대회장 안내

폴란드 유럽 콩그레스에 뒤 이어서 스웨덴 렉산(Leksand) 대회가 열렸다. 거기에도 라스무스가 왔다. 여기서 연기(連棋)와 패어 바둑 등을 같이 두며 영선이와 더 가까워 졌다고 한다. 나는 독일에서 따로 자동차를 빌려 육로로 렉산에 가서 이들과 합류했다. 다음 날 나는 렉산 근처에 있는 유명한 야외 음악당 달할라(Dalhalla)에 네 명의 여자 프로와 김선기, 홍승희 등을 데리고 갔다. 3억 년 전에 이곳에 운석이 떨어져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일부를 노천 음악당으로 쓰고 있는데 좌석이 4000석이나 된다. 이런 커다란 웅덩이를 음악당으로 쓰겠다는 발상이 멋지다. 달할라에 도착하니까 입구엔 나비부인, 라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까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지다. “천정은 하늘이고 벽은 바위인데 어떤 울림이 나올까? 이런데 오면 음향을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음악 하는 사람들의 생리다. 내가 매니저에게 허락을 받고 무대에 가서 노래를 했는데 음향(Acoustics)이 생각보다 훌륭하다.


▲ 4천 석 좌석에 한국 미녀들과 저 뒤편에 관광객 30여명이 청중의 전부였다.

▲ 달할라(렉산 Leksand) 3억년 전 운석으로 생긴 웅덩이를 음악 홀로 쓰고 있다

나는 스웨덴에서 ‘4인조’와 헤어진 후 제자 김선기와 홍승희만 데리고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거쳐 다시 독일로 와서 라스무스의 고향 하노버(Hannover)에 갔다. 하노버는 프로이센에 합병되기 전까지는 왕국이었다. 이 곳 바둑 계의 중심인물은 크리스토프 겔락(Christoph Garlach) 6단이다. 그는 멋쟁이 컴퓨터 전문가로 좋은 집에 살고 있다. 나와는 E-메일만 주고 받다가 처음 만났다. 그는 우리 일행을 맞이하여 자기 집에서 묵도록 해 주었다. 그 날 밤 자기 집에서 교류전을 가졌다. 거기에 라스무스가 왔다. 내가 다음 날 하노버를 구경하겠다고 하니까 라스무스와 린다가 안내를 자청하고 나선다. 우리는 다음 날 하노버 역 기마상 앞에서 점심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하노버 공원과 시청을 미리 돌아 본 후 역으로 갔다.


▲ 바둑TV 홍승희 PD / 여기에서 역을 어떻게 가죠? 하노버 시청 하노버역 기마상 앞.

▲ 린다와 라스무스. 기마상 앞 아이스크림 집 / 라스무스 3단과 필자

▲ 겔락 6단과 김선기 6단 / 필자와 린다 3단

라스무스 부흐만(Rasmus Buchmann)은 키 197cm에 미남에다가 성격도 좋다. 영선이가 반할만 하다. 내가 “톰 크루즈와 닮았다는 얘길 들어 봤느냐?” 하니까 “들어 봤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린다가 날 보고 고개를 저으며 자기 생각엔 안 닮았다고 한다. 그는 기마상 앞 노천 아이스크림 집이 하노버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며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쏜다. 정말 맛이 좋다. 그 후 하노버의 구 시가지(Altstadt)를 4km 이상 걸어서 돌며 우리에게 하노버를 소개한다. 구 시가지는 선을 따라 돌도록 시에서 색칠해 놓았다.

내가 유럽에서 제일 즐기는 곳이 각 도시의 옛 중심지(Old town)다. 3~4백 년 이상 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면 너무 아름답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해 놓고 살았을까?” 이 날 우리는 500년 이상 된 건물도 여러 개 보았다. 이 후 이 두 명은 하노버 왕궁과 식물원에 우리를 안내한다. 두 시간 이상 라스무스와 대화를 한 나는 이 청년에 대해 감을 많이 잡았다. 당시 라스무스는 하노버대학 수학과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판사, 어머니는 교수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란 청년이다.

한편 렉산대회 이후 영선이는 한국에 돌아와서 라스무스와 메일을 주고 받았다. 이 무렵 영선이가 내 바둑영어 교실에 나와 영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열심이라 가르치는 내가 놀랐다. 초보자를 위한 보충수업까지 빠지지 않고 영선이는 나왔다.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데다가 승부사라 독하게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한 것 같다. 영선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내 경험으로는 프로기사들이 공부하겠다고 맘을 먹으면 보통 사람 보다 더 지독한 면을 보인다. 그 해 11월 나는 스카이 바둑 텔레비전 팀의 단장으로 유럽 취재에 나섰다. 일행은 스카이 TV 조남철 본부장, 윤영선, 강승희, 김선기 등이다. 선기는 나와 해외 여행을 같이 많이 했고 운전경험이 많아 필수 요원이었다 ^^


▲ 코블렌츠 구 시가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우리는 내 안내로 곧장 라인강 유역을 돌아 중심도시 코블렌츠(Koblenz)에 갔다. 이 곳 옛 시가지를 한 바퀴 걸어서 돈 후 영선이가 “유럽에서 본 구 시가지 중 가장 인상이 깊어요” 한다. 이 날 무슨 불길한 일이 일어나려는지 내가 빗길에 운전하다가 내 일생 처음 자동차 사고를 내고 300유로나 벌금을 냈다. 나는 이런 일은 얼른 잊어 버리기로 하고 일행을 데리고 코블렌츠 성(城)으로 올라 갔다. 옛 성을 유스호스텔로 개조한 곳이다. 내가 알기론 ‘세계에서 가장 좋은 유스호스텔’이다. 1년 반 전 내가 명지대 팀을 데리고 와서 잔 곳이다. 그 때는 사람이 수 백 명이 있었는데도 여학생들은 분위기를 무서워했다.


▲ 라인강에서 올려다 보이는 코블렌츠 성

▲ 문(굴)을 셋이나 거쳐 들어 온 내부. 이 넓은 곳에 우리만 달랑 있는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 성에서 내려다 보는 라인강과 코블렌츠

▲ 어둠이 깔린 후

이 날은 겨울이라 그런지 문을 안 열어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둠 컴컴한 굴을 몇 개 지나 중세 성으로 들어 서자 뭔지 으스스하다. 달 빛 아래 성이 주는 분위기에 영선이와 승희가 겁을 먹었다. 성안 빈 방에 침구가 있는 걸 보고 내가 “오늘은 여기서 공짜로 잔다” 했더니 여자들이 질색을 한다. 특히 겁 많은 승희가 “전 가위 눌려서 이런 데서 못 자요. 교수님, 제발 시내로 내려 가요” 하며 애원 한다. 내가 짓 굳게 “무서우면 한 방에 침대가 6개나 되니까 남자들이 같이 자 줄게” 하니까 옆에 있던 선기가 “나도 같이 자 줄게” 하니까 “그럼 더 싫어요” 한다. 영선이가 “교수님, 오늘은 제가 호텔 값 낼 테니까 제발 시내로 가 주세요” 하며 애원한다. 내가 못 이기는 척 하며 시내로 내려와서 잤다. 지금도 그 일로 나는 가끔 “우리 다시 코블렌츠에 가서 그 성에서 한번 자 볼까?” 하며 두 명을 놀린다.

우리가 베를린에 간 후 회의 도중 나는 부친상을 당한다. 충격 받은 나에게 독일인들이 “무얼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하길래 “빨리 한국으로 돌아 가야 한다”고 하니까 한 사람은 전화로 가서 비행기표 예약을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공항에 가는 길을 자기가 잘 아니까 차를 아래층에 대기 시켜 놓겠다고 한다. 내가 텔레비전 팀이 유럽을 돌아야 할 텐데 나 없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자 “이 팀이 가는 코스에 있는 유럽 도시마다 우리가 연락을 해 놓아 영어가 부족해도 일이 잘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며 날 안심시킨다.

내가 베를린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니까 내 좌석을 제일 앞 자리 좋은 데로 마련해 주고 기장이 와서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한다. 이미 베를린 바둑협회가 연락을 해 놓았다. 내가 부친상을 당한 걸 안 후 독일인들이 하던 회의를 중단하고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날 돕는 모습에서 선진독일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내가 서울로 떠난 후 그들은 스카이TV 팀을 하노버로 가는 고속도로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나마 지난번 같은 코스를 나와 같이 운전하고 돌아 본 선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하노버에 도착하니까 거기부터는 라스무스가 나머지 유럽일정 전체를 동행하여 우리 팀이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때 여러 날을 같이 여행하며 영선이와 라스가 본격적으로 가까워 진다. 영선이 말로는 “얼굴이나 잠깐 볼까 했는데 라스가 아예 짐을 싸 들고 합류했어요” 한다.

두어 달 후 겨울방학에 라스무스가 한국에 왔다. 내가 이 둘을 압구정에 있는 삼원가든에 식사초대를 했다. 이 때 처음으로 영선이가 나에게 자기네 둘이 사귄다는 얘길 한다. 나는 라스와 잘 아는 사이라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영선이는 자기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없다. 나 같으면 한국 바둑 1인자를 몇 년 했고 세계챔피언(호작배)까지 되었으면 마구 뽐낼 텐데 영선이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라스가 너무 반가와 한다. 자기도 마음 속으로 항상 그 생각을 하고 있다며 영선이에게 “당신은 잘 났으니까 더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다. 라스무스가 연하라도 영선이를 챙기고 아끼는 모습을 보니까 이 둘의 장래가 괜찮을 것 같다. 라스는 한국음식 중독자다. 매운 음식을 영선이보다 더 밝힌다. 불고기, 갈비, 삼겹살도 좋아하지만 혀가 얼 떨떨 해지는 불 닭을 제일 즐긴다.


▲ 우리 교실에 온 영선이와 라스무스

2006년 4월에 파리에서 프랑스 한국대사배만 참가하고 영선이는 독일로 떠났다. 함부르크에 있는 독일어학원에 등록했기 때문에 우리 일정을 따라 올 수 없었다. 나는 한해원, 이하진만 데리고 네덜란드로 갔다. 영선이는 다음 해 9월 라스무스와 결혼한다. 함부르크에 사범으로 있던 조석빈이 군복무를 위해 귀국하면서 자연히 영선이가 지존으로 자리를 잡는다. 얼마 후 강승희가 함부르크로 가서 윤영선과 1년쯤 같이 바둑 활동을 한다. 함부르크에는 함부르크 바둑클럽, 랄슈테트 클럽 외에 함부르크 대학 클럽, 하부르크(Harburg) 클럽이 있다.


▲ 한해원, 윤영선, 주철기대사, 필자, 이하진. 파리 2006. 4 /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뢰커 성당.


▲ 영선, 라스 부부

2. 윤사범의 바둑활동
1) 함부르크 바둑클럽: 매주 월요일에 나가 다면기 및 강의를 한다. 한 달에 두 번은 다면기, 나머지는 강의. 저녁 7~9시. 수강생은 보통 30~40명 정도. 원래 클럽 멤버는 약 200명.
2) 개인, 그룹레슨: 주중에 한다. 학생은 6살부터 40대까지. 직장인은 저녁에 하고, 학생과 어린이는 오후에 한다.
3) 세미나와 토너먼트: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는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 가서 세미나를 하거나 토너먼트에 참가해 가르친다. 요즘에는 장거리 여행 때문에 조금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윤사범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바둑을 가르친 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4) 인터넷 강의: 금년 5월부터 시작. 매 달 독일어로 KGS에서 한다. 한번은 유료 테마강의(약 20명~30명 유료회원) 한번은 프로바둑을 소개하는 코너(약 160~180명)가 있다. 5) 세미나: 1년에 한번 크게 하는데 바둑계 마당발 토비아스 베르벤 4단이 운영자다. 약 30 명이 합숙하며 세 개조로 나누어 5일 간 지도한다.

3. 함부르크 4 대 바둑대회
1) 3월: 환격대회(Mausefalle-Snaback)
2) 5월: 비마대회(Affensprung-Monkey jump)
3) 10월: 기도 컵(Kido) 한국 주최
4) 11월: 천원대회(Tengen)

이상 4 개의 함부르크 대회에 보통100~200 명이 참가한다. 매년 7월 마지막 주와8월 첫 주에는 유럽대회(EGC)가 열린다. 이 때 유럽 바둑인은 거의가 유럽대회가 열리는 도시로 모인다. 독일에서는 거의 매 주 바둑대회가 열린다. 윤사범이 대회를 방문하면 독일 바둑협회에서 절반의 보조비가 나온다. 얼마 전 열린 독일바둑 챔피언대회에는 윤사범이 독일어로 라이브 인터넷 강의를 했다. 이 대회에서 3위를 한 디쿠트 6단도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다. (다음은 성적표)

Rang
Name
Ort
1
Christoph Gerlach
6D
Hannover
2
Benjamin Teuber
6D
Hamburg
3
Franz-Josef Dickhut

6D

Mönchengladbach
4
Marco Firnhaber
5D
Berlin
5
Zhang Yi

4D

Leipzig
6
Robert Jasiek
5D
Berlin
7
Christian Stodte
4D
Hamburg
8
Matthias Terwey

4D

Münster

4. 바둑 분데스리가
독일의 바둑 분데스리가는 2004년 독일의 한 바둑광이 제안해서 만들어졌는데 매년 9월 15일에 시작해서 이듬해 5월 31일에 막을 내린다.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팀에 4명씩 구성되는데 후보선수도 있다. 팀 수는 총 50개로 10개씩 1부에서 5부까지 나뉜다. 상위리그의 하위 2팀이 하위리그로 내려가고 하위리그의 상위 2팀이 상위리그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특히 1조는 경쟁도 치열하지만 실력도 상당해서 대부분 아마 4단 이상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대국은 일본이 운영하는 ‘KGS’라는 바둑 사이트에서 이루어진다. 팀 간 서로 상의 하에 시간 약속을 한다. 현재 리그 1위는 함부르크 팀이 달리고 있는데 2위와 3위가 베를린 팀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5. 기도 컵
한국기업이 후원하는 바둑대회가 처음 유럽에서 개최되었다. 지난 10월 3~4일 이틀 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럽바둑연맹, 독일바둑협회, 함부르크바둑협회가 주관하는 ‘제1회 Kido Cup 유로피안 바둑 챔피언십(Kido Cup European Baduk Championship)’이 열렸다. 이번 대회는 한국의 (주)기도산업이 스폰서이고 해외바둑 보급의 선두업체인 오로미디어(주)가 주관했다. 240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대회를 마쳤다. 독일에서는 가장 큰 대회였다고 한다. 이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일을 윤 5단이 해 냈다.


▲ 기도 컵 대회 2009. 10월

▲ 기도컵 초청기사 백성호 9단 윤 5단이 제작한 한국기사 소개 판

▲ 지도다면기

▲ 기도 컵 대회 여성부

<나가며>
한국 여류 바둑의 간판스타였던 윤영선 5단이 독일로 시집가서 그 곳에서 한국바둑보급에 힘쓰고 있다.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윤 5단은 초기의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이제는 독일어로 강의까지 한다. 그 동안 영어로 바둑 책도 몇 권 썼다. 서양 바둑인의 약점을 보충해 주는 책이 앞으로 몇 권 더 나올 것 같다. 앞으로 윤 5단은 한국바둑 유럽진출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한국사범이 유럽에 진출할 경우 윤사범이 모든 면에서 선례가 될 것이다. ‘한국바둑의 세계화’가 화두인 요즘 윤 5단은 한국바둑 ‘세계화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 이 보다 더 큰 민간외교가 또 있을까? ‘유럽 한국바둑보급의 선구자’ 영선이에게 갈채를 보낸다.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7)276-5878)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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