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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바둑 3급이 제자만 3백명

바둑은 클레멘스의 생활 중심

2009-12-04 오전 9:22:24 입력 / 2009-12-04 오후 1:39:44 수정

1. 클레멘스 - 바둑제자 3백 명

나는 뮌헨(Munchen)에서 그 곳 바둑회장 필립(Philip Hillers)과 작별한 후 여류기사 한해원, 이하진과 같이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행 기차를 탔다. 하이델베르크에선 클레멘스가 우리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다. 칼스루어(Karlsruhe)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안내방송이 독일어로만 나오기 때문에 그만 프랑스 국경도시 킬(Kehl)까지 가고 말았다. 갈아타야 할 곳에서 한 시간쯤을 더 지나왔다.

거기에다가 이 시골 마을 사람들이 독일어와 프랑스어만 하고 영어는 하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 보는데 고전을 했다. 유럽 국경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곳 옆 나라 말도 하는 게 상례다. 내가 클레멘스에게 전화하여 기차를 잘못 타서 킬에 와 있으니까 약속시간에 하이델베르크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 한해원, 이하진 사범

그런데 내 독일어 발음이 키일(Kiel) 이라고 들린 모양이다. 키일은 독일 최북단 덴마크 옆에 있는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6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다. 내가 클레멘스에게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아는 대로 다시 전화 하겠다고 하고 끊었다.

그 동안 클레멘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크리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크리스는 키일에서 오는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우리가 8시간쯤 늦을 거라고 계산했다. 그는 오늘 저녁모임의 취소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곧 바둑 관계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행사를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한 편 우리는 다행히 기차가 곧 와서 다시 칼스루어로 가서 담슈타트 행을 갈아탔다.

내가 도착시간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클레멘스가 그 이야기를 한다. 내가 여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까운 거리라며 마을 이름의 스펠링을 불러주었더니 그제서야 클레멘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가 시간 절약을 위해 그가 살고 있는 담슈타트로 직접 오는 게 좋겠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훨씬 가깝다. 나는 담슈타트에 몇 번 가 봤는데 그 곳도 아름다운 곳이다. 오히려 하이델베르크는 관광지라 상업화 되어 있는데 이 곳은 순수한 데가 있다. 우리가 도착하니까 역에서 클레멘스가 기다리고 있다. 클레멘스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서 영어가 아주 유창하다.



▲ 루이센 광장(Luisenplatz) 담슈타트

클레멘스 빈클마이어(Clemens Winklemaire)는 프랑크푸르트에서 20~30분 거리에 있는 담슈타트(Darmstadt)에 살고 있다. 그는 30대 초반으로 고등학교 수학선생이다. 그는 여러 해 째 담슈타트 바둑회장을 지내며 많은 활동을 해 왔다. 내가 전에 그의 집에서 몇 번 묵으면서 그의 부모와 가까워졌다.

그의 아버지가 나와 연령이 비슷해서 내가 아들처럼 대하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나 같은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때부터 나는 그를 “내 독일 아들”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부엉이 장식 수집이 취미다. 각 종 부엉이 모습의 장식품을 400 여 개나 수집했다. 온 집안이 부엉이 천지다. 이번에 클레멘스를 만나니까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왔다고 한다.

그의 기력은 3급 밖에 안 되지만 그는 한 때 약 300명의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그의 생활은 바둑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그런데 얼마 전 그의 14살 된 제자 한 명이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중국계 6단에게 6 개월 이상 지도를 받으면서 실력이 많이 늘어 많은 학생들 앞에서 그와 호선 바둑을 두자고 도전해 왔다.

클레멘스는 그 바둑에서 참패를 한다. 그의 제자가 “바둑을 가르치려면 실력 좀 더 늘이라”며 선생에게 충고하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 학생 중 몇 명이 낄낄대며 그 버릇 없는 제자에게 동조를 하자 클레멘스는 바둑에 대해 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바둑을 끊고 재스밴드(Jass band)에 들어가서 드러머가 되어 몇 달 간 매일 북만 때리고 살고 있다가 내가 여류기사 두 명과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곳 재스 계는 독일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바둑보다 나와 인간관계 때문에 우리 안내를 맡았다.

내가 그 얘길 듣고 “우리나라는 한 번 선생은 영원한 선생이다. 예를 들어 권갑룡 도장 출신 중 이세돌, 최철한 등은 그의 스승보다 바둑이 강해져서 세계챔피언이 된 후에도 선생 앞에선 쩔쩔맨다”고 하니까 그가 “그런 유교식 인간관계가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드는 사회 같다” 며 한국을 부러워한다. 내가 “일부 못 된 학생들에게 지질 말고 대부분 착한 학생들에게 그런 가치관을 심어 주도록 노력하라”고 충고 했다.



▲ 클레멘스가 뒤로 보이는 담슈타트 영주 별장에서 독일바둑대회를 유치해 개최했다며 이리로 우릴 데려왔다.

서양에선 실력이 뒤쳐지면 선생의 권위가 금방 땅에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호주 태권도 사범 중 한 명이 나에게 자기는 비장의 무기를 감추고 있다가 그의 제자 중 유단자 한 명이 제자들 앞에서 공개 스파링 도전을 해 왔을 때 그의 갈비 뼈 하나를 부러 트려 놓았더니 모두 다시 자기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야 한 동안 도전을 안 받고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바둑도 봐 주면 자기가 누구에게 이겼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내 경험으로는 서양인들은 철저히 밟아 주어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 러시아 공주가 담슈타트 영주에게 시집온 기념으로 지었다는 러시아 정교회

내가 그가 총각인 걸 알고 “여자친구가 생겼느냐?”고 하니까 클레멘스가 “No!”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들이 한참 웃었다. 내가 “너희들이 예쁘니까 지금 목소리와 얼굴에 힘주고 다니는데 내가 그런 질문을 하니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하니까 해원이와 하진이가 또 웃기 시작한다.

이 두 명은 뭐가 좋은지 기차를 잘못 타고 프랑스 국경에 갔을 때도 나는 열 받아 있는데 계속 웃어댔다. 클레멘스의 특징은 말 총 머리인데 이번에 만나니까 예수와 같은 수염과 머리를 하고 있다. 레오날드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와 거의 비슷하다. 하진이가 예수 같다고 하니까 자기 학생들도 그런다고 대답한다. 자기 컨셉트를 그렇게 잡은 것 같다. 예수 같다는 소릴 들은 후 표정관리도 약간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

나는 클레멘스에게만 걸리면 최소 두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그는 걷는 것과 설명하는 것이 취미라 잘 못 걸리면 네 시간도 넘어 걷게 된다. 2003년 유럽에 사상 최고의 더위가 찾아 왔다. 18 명의 명지대 바둑학과 팀을 클레멘스가 안내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8월 초라 너무 더운데다가 바둑학과에 걷기가 불편한 학생이 있어서 내가 그에게 많이 걸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금방'이라고 하면서 8km를 돌았다. 클레멘스에게 걸리면 최소 그 정도는 걸어야 한다. 준비 해온 자료들을 읽으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그를 보면 원망할 수도 없게 만든다. 그가 “지금 두 시간쯤 여유가 있으니까 그 동안 담슈타트를 열심히 보자”고 하길래 내가 속으로 “이거 또 걸렸구나” 했다. 오늘도 결혼기념탑에 왔는데 엘리베이터를 보니까 7층까지 있다.

그 다음이 옥상이다. 그가 “옥상에 올라 가면 담슈타트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한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하니까 그가 또 한번 큰 목소리로 “No!” 한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또 웃기 시작한다. 나는 옥상까지 걸어 올라가느라고 힘이 들었지만 나 혼자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겠다며 우기면 분위기를 깰까 봐 그대로 달팽이식 계단을 따라 올라 갔다. 그는 각 층 마다 서서 그 곳에 진열된 그림, 사진 등에 대해 설명을 한다.



▲ 결혼 기념탑 입구



▲ 옥상에서 보는 담슈타트



▲ 미술관입구



▲ 약간은 가우디 풍의 아방가르트 식 아파트. 창문은 입주자 각자가 알아서 장식하도록 했다.

그 다음 클레멘스는 우리를 건축가 촌에 데려 간다. 옛날 건축이 취미인 이 곳 영주가 유럽 각지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이 마을을 건설했다. 건축가들에게는 자기가 사는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어서 살도록 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한 건축물이라 그런지 모두가 특징이 있고 멋지다.

담슈타트에는 13세기 성(城)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이 곳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인조인간을 만들어 낸 후 일어나는 일을 그린 소설인데 나도 어려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담슈타트는 많은 연구소와 과학단지가 있어 ‘과학도시’로 불린다. 클레멘스가 나에게 “다음에 오면 구텐베르그 고향 마인츠(Mainz)를 열심히 공부한 후 안내 하겠다”고 한다. “또 나를 몇 시간이나 걷게 하려고 이런 음모를?”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성(城)

2. 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두 시간 동안 담슈타트를 돈 후 우리 일행은 차로 30분쯤 달려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아직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비를 맞으며 클레멘스를 따라 다시 시내를 한 시간쯤 걸어 돌아다녔다. 2천여 년 전에 로마 지배시절 목욕탕 자리, 옛 시청 건물, 독일통일의 산실 연방의회 건물 등을 돌아 본 후 바둑 모임 장소로 갔다. ‘괴테의 집’은 관람 시간이 넘어 못 들어 갔다.



▲ 클레멘스 안내로 프랑크푸르트 구 시청 옆을 지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는 북부 라인강(江)의 지류인 마인(Main) 강(江)을 끼고 있는 상업도시이다. 문호 괴테의 출생지로 18세기까지는 국왕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현재의 독일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중 도시의 83%가 파괴되어 그 자리에 현대식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고 많은 은행의 본점들이 이 곳에 있다. 근년에 와서는 교통의 요지로 이 곳 공항은 유럽의 관문이다. 우리에겐 프랑크프루트(손가락) 소시지(Sausage)로 유명한 곳.



▲ 문호 괴테 집 근처



▲ 프랑크푸르트



▲ 현대와 과거가 어울린 프랑크푸르트



▲ 프랑크푸르트 바둑클럽 근처

바둑 클럽에서 20여명의 현지 바둑인들이 우리를 반긴다. 나는 이 곳 클럽을 7~8차례 이상 와서 모두 낯이 익다. 다만 항상 나를 반기던 미모의 중국계 짜오페이 6단이 상해에 가서 살고 있어 안보였다. 섭섭했다. 이 곳의 5~6단 고수들은 다 중국계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7~8명씩 맡아 다면기를 두고 있는 동안 나와 바둑 회 간부 몇 명은 앉아서 바둑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베를린과 뮨헨에서 우리가 한 일을 샅샅이 알고 있는 걸 보니 독일 바둑계가 얼마나 좁은지 알겠다.

바둑행사가 끝난 후 나는 팀(Tim) 네 집에 가고 해원이와 하진이는 크리스(Christian)네 집에 숙소가 배정 됐다. 주차가 힘들어서 팀이 3블록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나는 비를 쫄딱 맞았다. 팀네 방은 없는 바둑책이 없다. 일본에서 출판된 바둑책은 다 산 것 같다. 팀의 부인까지 합세하여 치즈를 곁들인 와인 한잔하며 바둑얘기를 새벽 1시까지 하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을 먹고 크리스의 아파트로 해원이와 하진이를 데리러 갔더니 이 집 아침은 진수성찬이다. 크리스가 미녀 두 명을 위해 새벽에 시장에 가서 뭘 잔뜩 사왔다. 맛있는 음식이 많길래 나는 아침을 또 한번 먹었다. ^^

독일 바둑계는 특징 있는 바둑인이 많다. 프랑크푸르트에는 클레멘스 외에 바둑 책(Stein und stein - 돌과 돌)을 몇 권 쓴 딕펠트 3단과 바둑에 대한 자료는 무엇이든지 다 있는 크리스 3단이 있다. 크리스는 나중에 황인성 사범이 프랑크푸르트에 와 있을 때 자기 집에 묵도록 해주었다.

베를린에는 룽어씨 말고도 발두인이라는 4급 두는 사람이 있다. 전직이 정원사였는데 전문학교에서 아동교육학을 이수 한 후에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제자가 600명쯤으로 늘어 자기의 직업이 됐다. 그는 문제아 터키계 학생이 많은 초등학교마다 찾아가서 교장에게 바둑을 가르치면 애들이 말썽을 덜 피운다고 설득하여 과외시간(Extra Curricular Activities) 바둑교실을 만들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어 인기가 높다고 한다. 내가 발두인을 만났더니 그는 6백 명 학생의 카드를 일일이 만들어 그 학생의 기력, 발전속도, 특징들을 써 놓았다. 본인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보인다.

바둑 룰만 공부하는 약간은 이상한 친구 야시크(Robert Yasiek)도 베를린 사람이다. 내가 며칠 전 베를린에 있을 때 그가 나를 향해 걸어 온다. 나는 당연히 나에게 인사하러 오는 줄 알고 미소로 쳐다보고 있는데 내 앞에 오더니 첫 마디가 “난 당신 제도를 싫어한다(I don’t like your system)” 한다. 내가 “왜 싫어하냐?” 했더니 “바둑 원칙에 어긋난다” 한다. 내가 “바둑원칙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느냐? 내 대회에 출전해 봤느냐?” 하니까 “내가 그런 대회에 참가할 것 같으냐?” 하더니 다른 데로 가 버린다. 그는 나에게 “Hello!” 한 마디도 안 했다.

나는 2000년부터 그와는 세미나에서 두 번을 만난 걸 비롯 거의 매년 만나고 있고 나와는 대화도 많이 한 친구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독일 바둑인들에 의해 이 얘기는 전 유럽에 퍼졌다. 야시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배를 잡고 웃는다. 룽어 회장이 나에게 “그게 전형적 야시크다(That’s typical Yasiek!)” 한다. 내 생각으로는 야시크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데 이런 식 처세 때문에 유럽 바둑계에서 왕따 당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내가 베를린에서 5일간 그의 집에서 묵은 베언트(Bernd Schutze) 5단도 있다. 그는 변호사인데 사무실을 닫고 중국에 가서 1년간 바둑공부만 하고 돌아왔다. 그는 대회성적이 좋아 벌써 5단으로 승단했는데 자기 생각으론 4단이라며 승단을 거부하고 있다. 이 외에 하노버의 겔락, 함부르크의 펠릭스 등 이름을 열거 하려면 한이 없다.

인성이가 독일에서 1년 이상 바둑을 가르친 후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제가 관찰해보니까 유럽에서 바둑이 5단 이상이면 가정, 집, 직업 중에 하나는 없어요” 한다. 사회적 적응력이 부족한 마음 약한 지식인들이 바둑에 빠지면 인생에서는 패자(Loser)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바둑이 더욱 그들의 피신처가 된다. 내가 유럽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니까 반가운 이메일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클레멘스가 보낸 거다. 내용은 “바둑활동을 다시 시작했음”.

3. 독일 바둑역사
유럽인들이 바둑을 접한 것은 꽤 오래 전이고 그 중에서 독일의 바둑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다. 1868년 시작 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일본의 사회구조를 전면 개혁한다. 그들은 구미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유학생을 선진국에 보내고 외국학자들을 일본에 초청한다.

이 때 바둑이 일본문화의 일부로 서양에 소개되었다. 1876년 독일 화학자 오스카(Oskar Korschelt)가 일본에 건너가 동경대의 부교수가 되었다. 1880년 그가 아팠을 때 바둑을 배우게 된다. 그 후 그는 ‘동아시아 문화에 관한 정보’ 라는 독일어 논문에서 바둑을 처음으로 서방에 알렸다. 여기에서 바둑역사, 바둑룰, 바둑문화, 사활과 포석, 끝내기 이론이 설명되었고 실전대국 12국 (Game)을 소개하였다.

또한 바둑판 선에 아랍숫자와 라틴어(A.B.)로 표기했다. 그는 최초로 독일어로 된 바둑논문 저자이며, 영어로 번역하여를 발간했다. 나도 호주에서 이 책을 사 보았는데 오래 전에 썼는데 놀라울 정도로 바둑을 잘 소개했다.

1890년대 독일로 유학간 일본학생들이 훔볼트대학에서 바둑클럽을 열었다. 기록을 보면 독일바둑잡지(DGoZ: Deutsche Go-Zeitung)가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100년이 다 되어간다. 2년 전인가는 윤영선 사범의 얼굴이 커버에 보여 반가웠다.

미국에 처음 바둑보급을 하고 1930년대에 미국 바둑협회를 창립한 사람도 독일인 라스커 박사다. 바둑역사가 오래 된 독일의 바둑인구는 2만 여 명 정도다. 바둑인구가 유럽에선 가장 많다는 독일에서도 대부분 사람들은 바둑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바둑을 보급할 시장이 아직 넓다는 얘기도 된다.

한국이 독일에 바둑을 보급한 역사는 긴 편이다. 1960년대에 프로기사 이창세 사범이 건너 갔다. 그러나 그는 바둑보급 보다는 사업으로 성공한다. 그 후 유종수 사범이 독일에 유학 가서 8년간 있으면서 유럽의 1인자 노릇을 했다. 지금도 나이 먹은 사람들은 유사범 얘길 한다.

최근에는 독일인이 된 윤영선사범 외에 강승희 사범, 연구생 출신 조석빈 사범이 있고 다니엘라 초청으로 단기간이지만 순회지도를 한 이기봉 사범, 김세영 사범이 있다. 내 교실에서는 독일로 파견 된 연구생 출신 황인성 사범, 홍슬기 사범, 오치민 사범이 베를린에서 1년씩 체류하고 돌아 왔다. 현재는 군에서 제대한 황인성 사범이 다시 베를린에 가 있다.



▲ 황인성사범/ 홍슬기 사범/ 오치민 사범



▲ 에센 바둑대회로 가는 중 열차 대국/지도 중인 김세영 사범



▲ 한국인 이선화씨 남편 디쿠트 6단/ 에센 바둑대회

4. 바둑클럽
바둑협회에 총180여 개의 클럽이 가입되어 있다. 클럽의 대부분은 경우 레스트랑, 카페/바, 대학클럽, 문화시설 이용하여 모인다. 아래 지도에서 검은 점이 클럽이 있는 곳.



▲ 지도

5. 독일바둑협회 DGoB (Deutscher Go Bund = German Go Federation)
모든 클럽이 이곳에 속해있다. 각 담당부서:(federal-league, high-performance sport, Hikarunogo, profi-coordination, tournaments, rules, law, marketing 등)

● DGoB회장: Michael Marz = E-Mail: mmarz@dgob.de
● 부회장: Matthias Terwey = E-Mail: mterwey@dgob.de


6. 최근 대회
독일에는 대회가 너무 많아 2009년 11월 20일 이후 대회만 성적표와 소개한다.
1) Go to Innovation (Hahn System대회) Berlin
20-22 November 2009



▲ Go to Innovation (Hahn System대회) Berlin

2) Berliner Kranich(백조대회)
28-29 November 2009



▲ Berliner Kranich(백조대회)

3) Japanischer Generalkonsul-Pokal Duseldorf(일본 총영사배)
21-22 November 2009



▲ Japanischer Generalkonsul-Pokal Duseldorf(일본 총영사배)

※ Korean Insei League on KGS - Join now!
2009년 11월 30일자 독일 바둑지 ‘Go Bund’에 보면 디너스타인(사샤-한국기원 프로)가 운영하고 보조사범 쉭시나(스베타 동생) 두 명이 지도하는 “한국식 연구생제도”를 KGS에서 운영한다는 광고가 나 있다. 한 번에 4~5명이 지도다면기를 받는다. 1조는 호선, 2조는 두 점, 3조는 3점 식이다. 한국 인터넷 바둑사이트도 빠른 시일 내에 영어화하여 이런 식으로 인터넷 지도를 국제적으로 해야 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7)276-5878)



▲ 가브릴로프 EGF(유럽바둑연맹) 부회장, 필자, 사샤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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