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반집의 우주를 찾아서
천하의 구리를 두 번 잡은 안조영
2010-06-20 오전 3:43:28 입력 / 2010-06-20 오전 4:17:00 수정

▲ 최철한, 이창호 9단과 함께 LG배 8강에 오른 안조영 9단(오른쪽)
S#1. LG배의 스타 안조영
작년 LG배 결승전 이세돌과 구리의 대결을 앞두고 우리는 ‘첩혈쌍웅의 대격돌’이라 부르며 진정한 바둑 지존이 누구인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때까지 이세돌과 구리는 쌍방 50%의 상대승률을 기록하며 천하를 양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결과는 어이없게도 구리의 완승으로 끝나버렸다.
이후 이세돌은 휴직계 파동과 함께 기나긴 동면에 빠져들었다.
이제 세상은 구리의 것으로 보였다.
최강의 파워를 지닌 이세돌을 정밀하게 요격한 구리의 내공을 그 누가 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 체념했건만 희한하게도 구리는 LG배 우승을 정점으로 급격한 하향세를 그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구리 : 작년 2월 비씨카드배 16강전에서 한국의 안조영 9단에게 반집을 져 탈락했습니다. 이상하게 그 이후로 바둑이 풀리지 않더군요. 국내기전 성적도 좋지 않았고 세계대회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LG배에 참가한 구리 9단의 고백이다.
실제로 구리는 중국에서 콩지에 9단에게 랭킹 1위 자리를 빼앗겼고 천야오예 등에게 타이틀을 상실했었다.
그러는 사이 올해 복귀한 이세돌은 놀라운 기세로 연승행진을 거두며 자존심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기사의 10번 기가 준비 중인 가운데 엘지 배 32강전에서 공교롭게 맞닥뜨린 라이벌.
그런데 구리는 이세돌을 꺾어 천적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가장 믿을 만한 호프 이세돌을 잃은 한국 팀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바로 이틀 뒤 구리 앞에 안조영 9단이 등장했다.
대국 전 인터뷰에서 안9단은 조심스럽게 임전소감을 밝혔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입니다. 끝내기 승부로 가면 기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참으며 묵묵하게 구리의 강펀치를 회피하고 견디며 긴 승부로 이끌었다.
이윽고 끝내기 단계에 접어들자 구리 9단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반집 정도 구리가 유리한 상황인데 사소한 수순의 미스로 안조영 9단에게 틈을 주고 만 것이다.
아직 둘 곳이 더 있다 싶은데 구리는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져버렸다.
그래서 천하의 구리를 상대로 2연속 반집승을 거둔 안조영 9단이 월드컵 시즌과 함께 바둑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S#2. 바둑은 혼자 두는 것이 아니잖아요?
현재 한국 랭킹 11위, 20승 5패를 기록하고 있는 안조영 9단.
항상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으면서도 굵직한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해 제대로 바둑언론매체의 조명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림자와 같은 기사다.
1993년에 입단했고 1997년 1기 SK가스 배 신예프로 10걸전에서 우승했고 1999년 최고위전 준우승, 2004년 비씨카드 신인왕전 우승, 2006년 기성전 준우승, 2007년 원익배 십단전 우승 등의 기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창호 9단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종반능력을 발휘해 ‘반상의 진드기’‘반집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전성기로 불리는 2002년 무려 10 판이 반집 승부였고, 반집을 다투는 판은 거의 이겼다.
그렇게 치열한 반집전투를 통해 정상권에 진입한 안조영은 패왕전 도전권을 거머쥐고 이창호의 아성을 두드렸다.
결과는 0:3 스트레이트 패배.
뼈저리게 아픈 것은 이창호 패왕으로부터 두 차례나 반집 패를 당한 것.
반집의 마술사 위에 훨훨 날고 있는 반집의 패왕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명인전 도전자가 된 안조영은 다시 이창호 앞에 섰다.
겨우 한 판은 건졌지만 세 판을 내리 져서 1:3으로 패배.
아아, 이창호는 과연 명불허전 돌부처요 철벽과도 같았다.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기를 쓰고 두어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대로 여겨져 막막했지요. 그러나 좌절하진 않았습니다. 전설적인 이창호 국수님과 겨뤘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비슷한 기풍의 이창호 9단에게 쓴맛을 봤지만 전투력의 화신 이세돌 9단과의 역대 전적은 뜻밖에도 비슷하다고 한다.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반반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안조영에게 ‘이세돌 킬러’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으니 이쯤 되면 안조영의 기풍은 확실히 연구대상 아닌가 싶다.
세계최강의 쌍벽 이세돌과 구리가 불편해하는 상대 안조영.
아무리 끝내기에 강미가 있다 해도 정상급 기사들의 강펀치를 흘리고 장기전을 이끌 수 있다는 건 포석과 행마, 전투도 약하지 않다는 뜻이리라.
필자 : 자신의 기풍을 설명한다면?
안조영 :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바둑입니다.
필자 : 큰 곳을 빨리 선점하는 게 유리하잖습니까?
안조영 : 어차피 바둑은 둘이 한 번 씩 나눠 두잖습니까?
필자 : 그래도 아직 젊은데 기백 넘치는 바둑을 두어야 팬들이 좋아하죠.
안조영 : 원래 성격이 그렇습니다. 상대를 윽박지르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항상 먼저 싸움을 걸진 않습니다.
필자 : 거참, 묘한^^ 성격이시네!
안조영 : 하하 그래서 최정상에 오르지 못하나 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지만 한국바둑의 수비 형 미드필더로 포진해 상대의 스트라이커를 꽁꽁 묶는 안조영 9단의 존재는 고맙고 든든하지 않은가?

S#3. 좌우명 - 초과회복(super conpensation)
안조영은 1979년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출생했다.
7급 정도의 애기가인 부친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는데 9세 무렵 백을 빼앗을 만큼 기력이 향상되자 공주산업대 이일연 교수(타이젬 7단 수준)가 사부 역할을 해주었다.
넉 점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호선으로 올라오는 기재를 보여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보내게 된다.
안양의 작은 아버지 댁에 머물며 88년부터 5년간 원생 시절을 보내고 93년 프로에 입단했다.
그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나서 '어쩐지' 싶었다.
어쩐지 기풍에 충청도 느낌이 묻어났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바둑. 그러나 도발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의기(義氣). 항상 빙그레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는 안조영 9단.
좌우명을 물었더니 ‘초과회복’이라고 대답한다.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단련하고 휴식을 취하면 전보다 나은 모습으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인체에 그런 신비한 매카니즘이 있다고 해요. 좌우명이라기보다 그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 한국기원 근처에 있는 충암연구실에서 안조영 9단이 후배 기사들과 연구를 하고 있다. 왼쪽에는 아시안게임 여자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슬아, 김윤영 초단과 오른쪽에는 박영훈 9단이 앉아있다.
대국이 없는 날은 소소회 연구실이나 목진석 연구실에 들러 동료들과 함께 기보 검토와 바둑계 정보를 나눈다는 안조영 9단.
삼십 대 기사로서 어느덧 바둑계의 중간허리가 되어버려 알게 모르게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바둑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체계적이 교재가 나왔으면 좋겠고요. 바둑이 두뇌에 미치는 효과..같은 연구 자료가 발표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바둑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야 투자도 늘 테니까요.
연구생 18세까지 입단하지 못하면 퇴출되고 그 이후는 방치되는 시스템도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입단에 실패했을 뿐 실력은 거의 프로급이고 한국기원에서 공들여 키운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 년 들여 조종사를 키워내고도 아까운줄 모르고 버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레슨프로..라는 제도를 만들든지 해서 계속 바둑계의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습니다.
초급 중급자, 말 그대로 바둑을 순수하게 즐기는 인구를 늘리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안조영 9단과 대화를 하다 보니 어렴풋이 그의 미덕이 뷰파인더에 들어온다. 그의 바둑의 요체는 '존중'으로 느껴진다.
자신을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바둑.
투쟁보다는 조화를 통해 화음의 기보를 만들어가는 기사.
이대로 성실하게 자신을 절차탁마하고 바둑계의 일원으로 걸어가다 보면 천하지존보다 품격이 덜하지 않는 따뜻한 승부사로 완성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