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오바마 대통령의 바둑판 선물
미국바둑협회 "선물준비로 바빴다"
2010-06-13 오전 1:26:23 입력 / 2010-06-13 오후 5:25:26 수정

▲미국의 수도는 아니지만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
미국의 경제력은 세계의 40%, 군사력은 50% 이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1차대전 후에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선 미국은 2차대전 후에는 전 세계가 덤벼도 안 될 만큼 초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미국은 제 5 대 먼로 대통령이 주창한 전통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버리고 ‘패권주의’ 국가로 변신한다. 과거 로마(Pax-Romana)나 영국(Pax Britania)이 최강국이었을 때 그 국가에 의해 세계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Pax Americana’ 시대일까?
☞관련기사 바로가기
내가 미국에 있을 때 흑백 인종문제로 사회가 진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라는 연설을 듣고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흑백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이 고조되어 있을 때 킹 목사와 말콤 엑스, 두 사람 다 백인들에게 암살 당하고, 나는 인종문제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 타임즈 스퀘어(Times Square)에서 상영된 ‘누가 저녁 식사에 올까요? (Guess who’s coming to dinner?)’라는 영화였다. 세계 최초개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부유한 백인 집 대학생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자 그녀의 부모가 좋아하면서 그 남자친구와 부모를 저녁에 초대한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 흑인 가족이었다. 당황해 하는 백인부모(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 더 당황해 하는 흑인부모가 자기 자식들과 대화를 통해 인종문제를 다룬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선 흑백결혼을 금지시켜 왔다. 당시만 해도 남부의 여러 주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흑인부모에게 아들(시드니 포이티어)이 “아버지는 자신을 흑인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소리치며 항변하는 장면에서는 극장이 떠나갈듯한 박수 소리와 흑인들이 발을 구르며 지르는 괴성과 휘파람 소리에 내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무섭기까지 했다. 사방에서 “그래, 네 말이 맞아(Yeah, you are right!”)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영화를 본지 얼마 후 뉴저지 주의 뉴어크(Newark)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1967년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친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뉴어크로 달려갔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서였다. 사방에서 불이 나고 있었고 시가지는 전쟁을 방불케 했다. 내가 경험한 4.19 혁명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1861년에 일어났던 남북전쟁이 그때까지도 끝난 것 같지 않았다.
당시 내 생각으로는 “흑백갈등은 앞으로도 몇십 년은 더 계속될 것이고 100년 안에는 미국에 흑인 대통령은 절대 안 나온다” 였다. 그래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을 적에 나의 ‘충격’은 남 달랐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게 미국사회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나와 친한 어네스트 브라운(Ernest Brown) 박사의 얼굴이 밝아진 건 큰 변화였다. 그는 미모의 백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과거엔 그에게 ‘승자(Winner)’ 같은 분위기가 없었다.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오바마 당선 이후 학생들이 나에게 더 정중해졌다”면서 웃었다. 오바마 이후 분명히 어네스트의 기(氣)가 승해졌다. 그는 바둑 아마3단으로 샌프란시스코 바둑계의 리더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어네스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심리학 교수인데 피아노도 잘 친다. 프로기사 재니스 킴도 왔다.
미국의 흑인은 4200만 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13% 정도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인구가 약 5000만 명, 14.5%로 흑인보다 조금 많다. 이들 유권자 중 흑인의 95%, 히스패닉의 66%, 아시아 인의 62%가 오바마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인종폭동 후, 미국에 갈 때마다 흑인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다. 과거엔 흑인을 ‘Negro’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African-American’이라고 부른다. 현재 미국의 흑인만 떼어내어 독립국가로 만든다면 세계 16위의 부자 나라가 된다. 지난 부시 정권의 두 국무장관인 파월과 라이스가 다 흑인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 /바둑판을 제작 중인 샐런트리

▲바둑판 뒤에 있는 오바마의 서명 돌, 통, 판
2009년 11월 오바마가 중국을 방문할 때 후진타오 주석에게 바둑세트를 선물로 가져갔다. 바둑판, 돌, 통을 다 미국에서 제작한 것이다. 오바마가 중국문화를 존경한다는 표현으로 문화의 최고의 산물인 바둑을 택했다고 한다. 바둑 두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샐런트리(Frank Salantrie)라는 바둑 두는 목수가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일주일 만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백악관으로부터 바둑판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고 너무 긴장되었다”고 한다. “미국바둑협회가 이 선물준비로 한 동안 바빴다”고 AGA회장 애브램슨은 말한다.

▲절을 배운 오바마가 후진타오 주석과 일본 천황을 만나고 있다. 동양문화를 아주 잘~ 배운 것 같다 ^^
<바둑 세계화의 대부>

▲이와모토 가오루 9단(Iwamoto Kaoru, 本人坊 薰和)
‘한 사람의 꿈이 역사를 만든다’. 1902년 생인 이와모토 가오루(岩本熏) 9단은 어린 시절을 한국 부산에서 보내며 일찍이 외국생활을 경험한다. 그는11세인 1913년 일본으로 돌아가서 1917년 입단한다. 그는1929년에 프로기사 생활을 접고 사업가로 성공하려고 브라질로 이민 가서 커피농장을 경영한다. 농장경영에 실패한 그는 3년 후인 193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는 중국에 기재가 출중한 소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중국에 가서 오청원 소년과 시험기를 두고 그를 일본에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1945년 8월 6일.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이다. 이와모토는 본인방 전 도전자가 되어 타이틀 보유자인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郎)와 7번기를 둔다. 히로시마 교외에서 제 2국을 두고 있을 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하면서 바둑 두던 두 명이 기절을 했다. 한참 후 일어난 그들은 흩어진 바둑돌부터 제 위치로 돌려 놓고 다시 바둑을 두었다. 대국 후에 알고 보니 히로시마에서 15만 명이나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 투하였다. 바둑에 ‘전 인간적 몰입’을 하고 바둑이 목숨보다 더 중요한 사람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후일담인데 원래 도전기 장소가 히로시마 시내였다. 그러나 경찰 한 명이 와서 무슨 이유인지 규칙을 내세우며 교외로 장소를 옮길 것을 강요했다. 경찰과 필요 없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교외로 장소를 옮겼다. 그 경찰 자신은 폭격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바둑인의 목숨은 구해준 결과가 되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묘하다. 그 경찰이 아니었으면 원폭 이후 하시모토나 이와모토 같은 바둑역사를 바꿔놓는 거물은 없었을 거 아닌가.

▲원폭 후 히로시마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두 방의 원폭은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는다. 전쟁 중 폭격으로 기원건물이 사라진 도쿄 일본기원은 1945년부터 이와모토의 기원을 임시 사무실로 쓴다. 1946년 본인방에 오른 이와모토는 1947년에는 기타니 미노루 (木谷實)의 도전에 타이틀을 방어하고1948년에는 오청원과 ‘10번기’를 둔다. 그는 일본에서 바둑강자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머리 한 구석에는 ‘바둑 해외보급’이란 꿈이 항상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본인방전 도전대국 중에 원폭이 떨어진 사건이 이와모토 9단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바둑을 ‘세계평화의 도구’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뜻을 세운 후 그의 외국여행 횟수가 점점 잦아진다. 그는 1961~1962년 미국 뉴욕에 가서 바둑보급 활동을 하며 1년 반이나 지낸 적도 있다. 1985년 그가 소유한 도쿄의 기원 땅 값이 폭등하여 돈을 많이 벌자 그는 전 재산을 일본기원에 기증하면서 그 자금으로 해외에 바둑센터를 짓기 원했다.

바둑센터 건립 장소로 그가 가장 먼저 원한 곳은 그가 이민 가서 살던 브라질의 상파울로(San Paulo)였다. 그의 뜻을 받들어 일본기원은 상파울로에 센터를 세우고 그 외에도 미국 동부의 뉴욕(New York)과 서부의 시애틀(Seattle)에 바둑센터(Go Center)를 설립한다. 유럽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Amsterdam)에 바둑센터가 선다. 일본기원의 자금지원도 있었다고 한다. 이 네 개의 바둑센터가 오늘날 서양에 바둑이 존재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 온다.
유럽 암스테르담 센터의 설립과정을 예로 들어 본다. 네덜란드 바둑협회에서 후보지를 찾은 후 이와모토 9단을 초청했다. 1992년이니 그가 90세 때였다. 그는 네덜란드에 와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 시내부터 전차를 타고 가길 고집했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이 쉬운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20분 만에 센터에 도착한 그는 차, 버스, 전차, 지하철 심지어 자전거까지 오기가 편한 걸 확인한 후 기뻐하며 그 장소를 승인했다고 한다.

▲유럽 바둑센터 전경 /필자와 이하진 3단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1992년 5월 9일. 그는 센터 개원식에 와서 암스테르담 시장과 같이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유럽 바둑센터 매니저 프랑크 얀센은 자주 이와모토 선생 사진 앞에 와서 합장하며 절을 한다. 감사와 존경의 표시다. 이 곳엔 월급 받는 직원이 네 명이 있다. 이 센터는 장소가 넓어 체스, 브리지, 체커 클럽에 세를 내 주고 그 수입으로 운영한다. 일본인들의 서예, 동양화, 꽃꽂이 등 문화활동을 위한 장소로도 자주 쓰인다. 그는 90세부터 96세까지 네 군데 바둑센터를 돌며 바둑해설을 왕성하게 하며 활동하다가 1999년 97세를 일기로 영면한다.
클럽을 빌릴 돈이 없던 서양 바둑인들은 바둑센터가 생기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들은 이와모토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바둑보급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와모토 선생은 바둑이 무언지도 모르는 서양에 바둑 센터를 지어 바둑보급의 ‘전초기지’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이런 뜻이 맺은 결실이 바로 ‘4대 바둑센터’의 설립이다. 네 개 중 두 개의 센터가 미국에 선 것은 그가 미국을 그만큼 비중 있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센터들은 현지에서 ‘일본기원 지원’ 역할도 한다.

▲홀1 /훈화(薰和) 실/ 홀 2
암스테르담 센터는 세 개의 큰 홀과 한 개의 작은 홀이 있다. 이 외에 사무실이 세 개, 바둑 바(Go Bar)가 두 개, 창고가 있다. 유럽 바둑연맹(EGF)과 네덜란드 바둑협회 사무실도 이곳에 있다. 주차 공간도 아주 넓다. 건물 중심에는 일본식 다다미 방이 있는데 이름이 ‘훈화(薰和)’다 이와모토 9단이 본인방이 된 후 사용한 이름이다. 이 방은 일본 주요기전 도전기에 사용하는 방과 똑같이 만들었다. 실제로 이 방에서는 주요 대국이 많이 두어지고 있다. 네 개의 센터 어디에나 ‘훈화’란 다다미 방이 있다. 나와 같이 센터를 찾아간 한해원, 이하진 사범이 나에게 “여기가 한국기원 보다 좋은데요” 한다. 일본기원 소유로 되어 있는 이 바둑 센터들은 주로 세를 받아 자생하고 있다. 최근에 시애틀센터의 아래층에 세가 안 들어 와서 고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2008 ‘시애틀 한국총영사 배’ 입상자들의 기념촬영. ‘훈화’ 방 앞. 필자 우측(검은 셔츠)이 우승자 고주영

▲훈화실 내부 필자와 얀 볼리 6단의 대국

▲시애틀 바둑센터. 안영길, 필자, 얀 볼리(매니저) 이하진, 장비

▲건물 2층을 사용하고 있다. 1층은 세를 주고 있다

▲1995년에 설립된 뉴욕 바둑센터/ 내부 1

▲내부 2 이향미(왼쪽 앞)사범이 지도기를 두고 있다
이와모토가 쓴 ‘바둑 입문서’는 이제는 유명한 고전이 되었다. 서양인은 대부분 이 책으로 초보시절에 공부했다. 그가 해설한 ‘1971년 본인방전’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인기가 높아 매진되었다. 지금은 아마존(Amazon.com)에서 $135에 팔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실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와모토 9단은 90세에 이르러 ‘자기의 꿈’을 실현했다.
<유명인과 바둑>

▲아인슈타인 게이츠 베리 부쉬넬 스튜어트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프린스톤 대학에 있을 적에 일본인 과학자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그는 일본기원으로부터 초단 면허를 받았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바둑의 세계 일인자가 되는 게 자기 일생의 꿈 중에 하나였다. 그는 1997년 자기회사 웹사이트에서 “그렇게 못 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의 회사 마이크로 소프트사에는 바둑 클럽이 있다.
다니엘 배리(Daniel Barry)는 우주인인데 최초로 우주에서 일본인 승무원과 바둑을 둔 사람이다. 아마추어 2단. 놀란 부쉬넬(Nolan Bushnell)은 ‘Atari (단수)’란 회사의 창시자로 바둑애호가다. 그는 회사가 여럿인데 그의 회사 전체를 바둑용어로 이름을 지었다. ‘Sente(선수)’라는 회사도 있다. 그는 유타(Utah) 대학 시절에 체스 2인자였는데 바둑을 배운 후 체스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1960~70년대 허스키 중에서도 ‘긁는 목소리’로 유명한 팝 가수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는 1950년대에 호주에 바둑을 처음 보급한 제프리 그레이(Geoffrey Gray)에게서 바둑을 배워 여행 다닐 적에 비행기에서 바둑을 두며 다녔다. 이 외에도 수십 명의 유명인들이 바둑을 애호하고 있으나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미국 바둑협회가 하는 일(AGA Activities)
- 바둑저널(The American Go Journal)과 E-Journal 정기발행
- 미국 대회(U.S. Go Congress) 개최
- 1년에 1회 바둑 정기총회를 개최
- 국제 대회에 나갈 프로와 아마추어 선발
- 프로기사 활동 지원
- 국제 바둑연맹의 회원 역할
- 랭킹을 컴퓨터로 처리, 관리, 유지
- Web Site 운영
- 지방 클럽 후원
- workshops과 이벤트 개최

●미국대회(US Go Congress)
2010년 대회는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의 콜로라도 대학에서 7월 31일~8월 8일 사이에 개최한다. 8일 동안 대회기간에는 메인 토너먼트 외에도 프로기사의 강의, 지도기가 있고 이 밖에도 많은 재미있는 바둑 활동이 있다. 대회기간 중 하루는 ‘미친 바둑(Crazy Go)’ 대회가 있다. ‘4 명 대회’, ‘3-D 바둑’, ‘조커(바둑모양 카드 사용)’. 3 명이 두는 ‘젠(Zen) 바둑’, ‘같은 색깔 바둑(컴퓨터로 둔다)’, ‘큰 판 바둑(23줄)’, ‘마법과 나선형 바둑(Hex and Spiral Go)’ ‘연기(連棋)’, ‘팀 대회’가 있다. 대회 기간 동안 ‘바둑 노래’ 시상식도 있다
바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키우기 위해 준비한 방식들이다. 이런 활동들이 바둑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 바둑대회는 최강자를 뽑는 행사 보다 바둑축제 형식으로 치러진다. 가족이 함께 와서 같이 즐기고 그 근처 여행도 한다. 2011년은 LA에서 개최 예정이다.
☞관련사이트 바로가기

▶잉창치배(應昌期杯 ING CUP)
대만의 바둑 애호가이자 재벌인 잉창치(應昌期) 씨는 바둑 세계화에서 공으로만 따진다면 이와모토 9단과 호선쯤 된다. ‘잉창치배’는 그가 1988년에 500만 달러를 출자하고 100만 달러의 상금으로 창설했다. 그는 이 돈으로 상해의 번화가 난징루(南京路)에 건물을 샀는데 이 건물의 값이 많이 올랐다. 그 건물에서 나오는 집세로 새로운 대회자금으로 쓰고 있다. 잉창치배 대회는:
• 4년마다 열려 ‘바둑 올림픽’으로 불린다.
• 최대상금(우승 $US 400,000) 대회다.
• 규칙: 일반적인 바둑 룰과는 달리 덤이 6집반이 아니라, 8점이다(전만계점).
• 한국의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등이 우승한 바 있다.
• 한국이 여섯 번 중 다섯 번을 우승하여 세계최강임을 확인 시켜준 기전.
• 대만이 일본에 이어 세계 바둑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잉씨배 우승자(Winner) 준우승(Runner Up) 연도
▶ Ing 보조금
1993년부터 AGA는 응창기 바둑재단으로부터 매년 보조금을 받는다. 이 자금으로 다음 행사를 주관한다.
북미 마스터스 대회(The North American Masters Tournament)
북미 잉씨배 대회(The North American Ing Cup)
레드먼드 컵 대회(The Redmond Cup)
미국 청소년 컵 대회
AGA 여름 캠프(The AGA Summer Camp)
이 외에 바둑판, 교본, 초보자 세트, 브로셔를 지원한다. 대만에서 들어오는 이 자금이 미국 바둑을 발전시키고 있다
▶ 클럽(Clubs)
미국에는 300 개쯤 클럽이 있다. 3~4 명이 나오는 클럽부터 50 명 이상 회원을 가진 클럽까지 다양하다. 주로 동, 서 해안에 집중되어 있고 한중일 아시아계는 자기네끼리 바둑을 두고 클럽엔 안 나오는 인구가 대부분이다. 각 클럽은 자기네 대회를 따로 연다.

▲필자와 고대혁(김명완 9단 침실) 허신 씨가 안영길 8단에게 두 점으로 이긴다.
▶미국 아마강자
앤디 류(Andy Liu, New York), 지에 리(Jie Li, Virginia), 커티스 탕(Curtis Tang, California), 고대혁(Dae Hyuk Ko, California), 에릭 류(Eric Lui, Maryland)가 AGA가 2010 현재 강자라고 지명한 사람들이다. 한국인 한 명에 나머진 다 중국사람이다


▲초급 반(급조 어린이 반)

▲식사 시간 /침실
▶ 보급 활동(Promotion activity and schemes)
AGA의 자매기관인 미국 바둑재단(American Go Foundation(AGF)은 청소년에게 바둑을 보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새로 바둑 클럽이 생기는 학교, 도서관, 청소년 프로그램에 바둑세트를 제공하고, 재정지원을 하며, 지도교사의 자문에 응해 준다. AGF는 한편 청소년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AGF는 독립된 기관이지만 같은 목적을 위해 AGA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미국 바둑 명예회(American Go Honor Society (AGHS)는 청소년 팀 대회와 다른 대회들을 지원한다. 이 회의의 특징은 고등학생들이 운영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AGA 및 AGF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GA에는 청소년 코디네이터(기획/진행 책임자)로 폴 바칠론(Paul Barchilon)이 있다. 그는 미국의 청소년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그는 AGF의 부회장이기도 하며 청소년 웹사이트의 웹 마스터이기도 하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청소년 바둑 육성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전국 클럽회원 중 공립학교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로 바둑을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 지방 클럽은 AGA와 협력하여 바둑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이 중에도 ‘벚꽃 축제(Cherry Blossom festivals)’와 ‘아니메 대회(애니메이션의 일본말 Anime convention)’가 유명하다. AGA의 출판물 ‘바둑으로 가는 길(The Way to Go)’은 매년 8만부 이상을 인쇄하여 바둑 시범장소에서 무료 배포한다. 바둑에 대한 광고는 비싸기 때문에 잘 못 싣고 있는 실정.

▶고스트 바둑왕(ヒカルの碁, 히카루노고)의 영향
바둑을 소재로 한 만화책. 홋타 유미가 글을 쓰고 오바타 다케시가 그림을 그렸다. 한 소년이 바둑을 알게 된 뒤로 여러 명의 고수를 만나면서 조금씩 프로기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전편 23 권으로 각국어로 번역되어 출판. 이 만화가 전 세계의 청소년에게 미친 영향은 말도 못한다. 이 만화 때문에 바둑을 배우게 되었다는 젊은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망가(일본어로 만화)’란 말을 서양인이 다 알게 되었다.
이 만화가 나온 지 오래된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1603~1867) 시절 통치자 장군 앞에서 어성기를 두던 조와, 인세키, 슈사쿠 등의 고수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얽힌 ‘토혈국(吐血局)’이나 ‘이적수(耳赤手)’ 같은 재미있는 일화들을 근거로 착상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는 더욱 이색적으로 먹혀 들어간 듯하다.


▲‘2010 서머세트 바둑켐프’ 프로기사 제니 쉔(2PJennie Shen)이 사범으로 갔다
▶바둑 캠프, 세미나, 교류전
(Baduk camps, seminars, friendship matches)
‘2010 서머세트 바둑켐프’ 프로기사 제니 쉔(2PJennie Shen)이 사범으로 갔다
매년 미국 바둑대회 개최 전 일주일 동안 어린이를 위한 캠프를 갖는다. 금년에는 7월 17일~24일 뉴저지 서머세트(Somerset)에서 열려 캐나다, 유럽 등과 교류전을 가졌다. 교류전에 대해 해마다 다른 나라의 관심과 참가인원이 증가하고 있어서 AGA는 더 많은 나라와 인터넷 교류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AGA회장 애브램슨이 나에게 “한국 클럽 중 미국과 교류전 의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로가 된 사샤가 유럽에서 인터넷으로 ‘한국식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제자 60여명과 내 바둑영어교실 제자들이 교류전을 갖기로 합의했다. 현재 교류전 방법에 대해서 열심히 사샤와 이메일을 교환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기원 영어 사이트 ‘Wbaduk’에서 두 번, 일본이 운영하는 ‘KGS’에서 두 번을 두고 최강부는 호선, 그 다음부터는 접바둑을 두는 식으로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 출판물(Publications – Periodical / non periodical)
요즘 들어 전세계 바둑인으로부터 부쩍 인기가 좋아진 ‘주간 E-Journal’, 1만 5천 명 이상이 애독하고 있다. 과거에 유명했던 다른 바둑 사이트가 E-Journal이 나온 이후 다 죽어 버렸다. (http://www.usgo.org/e-journal-subscribe.php) 그 외 출판물은 ‘AGA 바둑저널’을 비롯 수십 종류가 있다. 다음 사이트에 자세한 목록이 있다. ☞관련사이트 바로가기

▲‘LA 한인 촌에 있는 나성(LA)기원 내부(실 평수 100평)
▶ 미국 교민사회 바둑
70~80년대 미국을 석권하던 한국 바둑은 지금은 빛이 바랬다. 그 이유 중 몇 가지만 들어 보겠다.
1) 왕년의 강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둑을 안 둔다. 이 중 많은 사람이 골프나 여행 등 다른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2) 한국인 이민이 거의 중단 되어 교민인구가 안 늘고 그나마 새로 오는 인구 중 젊은 층이 바둑을 못 둔다.
3) 교민들이 자녀교육에 방해가 될까봐 바둑을 안 가르치고 가르칠 사범도 없다.
4) 중국 이민이 몰려 오고 그들은 젊은 층이 바둑을 둔다
미국에는 200만 명이 넘는 교민이 살고 있는데, 바둑인구가 이처럼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은 애석한 일이다. 그 배경에는 모국 바둑계가 사후관리의 관심도 힘도 없었던 것이 한 몫 했다. 필자가 미국 1 편과 2 편에서 교민사회 바둑에 대해 정보를 달라는 광고를 냈으나 애석하게도 미국 교민 바둑인 중 아무도 응한 사람이 없었다. 미국교민 중에 내 칼럼을 읽는 인구가 꽤 있다. 지금이라도 소식을 전해주면 고맙겠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미국 지도

▲국기/국장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바둑이 어떻게 보급되느냐에 따라 세계 바둑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국에 체계적으로 바둑을 보급할 때가 온 거 같다. 바둑강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자. 미국 편을 여기서 마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7)276-5878)
TYGEM / 한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