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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영국챔피언 별명은 '공포의 천원'

영국 1인자 매튜 맥페이든 6단 항상 첫 점을 천원에 둬

2010-09-26 오후 12:47:01 입력 / 2010-09-26 오후 12:44:54 수정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Westminster Palace) 상, 하원이 다 이 곳에 있다

1983년 4월이었다. “서봉수씨라고 하면 바둑 두는 서명인 말씀입니까?” 런던에서 서명인이 항공표를 잃어버려 내가 대한항공에 전화했을 때다. 지점장이 자기는 기원2급인데 서명인을 꼭 자기 집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그 날 저녁 KAL 지점장 집에 가서 그가 나에게는 두 점, 서명인에게는 4점으로 둔 것이 영국에선 나의 첫 바둑활동(?)이었다.

서명인과 두 달 가까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마지막으로 영국에 왔다. 두어달 전 서명인은 나와 이홍식 충암이사장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내 유럽 여행계획을 듣더니 “제 평소 소원이 그런 여행입니다” 하길래 내가 그를 유럽여행에 초청했다. 당시 그는 조훈현국수에게 전관왕을 내어주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 세 명과 서명인이 유럽일주를 함께 하게 되었다.

서명인은 처음 유럽의 풍물을 접하면서 놀란다. 유럽역사, 각 나라, 각 도시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서 그에게 서서히 변화가 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강의를 하다가 우리 집 사람과 친해 지길래 나는 운전에만 전념하고 집 사람에게 강의를 맡겼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놀라움이었다. 여행하면서 서명인이 강의를 백 번 이상 들어서 자기 머리에 쥐가 날뻔 했다고 한다.

내가 서명인에게 놀란 점은 사람이 애처럼 순수한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본능추구도 애처럼 한다. 바닥까지 정직하고 바닥까지 체면치례가 없다. 그는 기초학습이 없어 상식이 꽝인데 비해 놀랄 정도로 어려운 말도 잘 알아 듣는다.

여행 중 서명인이 나에게 바둑에 대해 한 말들: “제 가슴을 X-Ray로 찍어보면 조훈현에게 당한 상처로 퍼렇게 멍들어 있을 겁니다”. “조훈현은 제가 모르는 바둑의 어떤 것 한가지를 더 알고 있는데 그게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그 걸 제가 터득하면 조훈현도 와그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한 조훈현이 최고 천재입니다” “응씨배에서도 누가 컨디션이 좋으면 싹쓸이하는 기사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최근에 내가 서명인에게 그 얘길 했더니 자기는 엑스레이 건은 기억을 못 하겠다고 한다. 무슨 기억력이 들은 나는 기억을 하는데 말한 본인이 기억을 못하다니.....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서명인은 신들린 사람처럼 바둑이 갑자기 강해졌다. 7개 모든 기전의 도전자가 되더니 첫 3개의 타이틀을 조훈현에게 탈취했다. 이 기세라면 전관왕도 가능할 것 같다.

서명인이 유럽 여행 중 담배도 끊고 정신과 육채가 충전이 잘 되어 있을 때다. 유럽여행의 약발이 아직 듣고 있는 상태에서 서명인은 곧 천하를 양분했다. 서명인이 갑자기 강해진 사실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여행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명인이 다시 담배를 피고 사람들과 술자리도 같이하고, 야통도 한다는 말이 들리더니 연승행진은 3개기전에서 그친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런던의 옥스포드 거리

‘신사의 나라’ 영국은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나라다. 영국은 의회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역사에 공헌을 했다. 그런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해 저지른 죄가 큰 나라다. 한반도보다 조금 큰 나라가 19세기에는 전 세계의 26%를 식민지로 만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화를 누렸다. 19세기에는 전 세계의 83%가 유럽에 편입된다. 그 때 해양제국주의를 앞 세운 영국이 침략세력의 주역이었다.

국토면적은 24만 3천 6백 평방 킬로 미터, 2010년 영국인구는 6천 2백만 명, 1인당 소득은 약 3만 6천불이다. 1차대전을 계기로 영국과 유럽은 미국에게 세계최강국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지금도 영국지식층은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 때는 경제위기를 겪으며 2등 국가란 평도 받았지만 대처수상이 이룩한 경제발전을 계기로 또 한 번 세계최고의 국가로 “발 돋움”을 위한 몸짓을 하고 있다.

1983년부터 내가 영국에 갈 때마다 매 번 무언지 풍성해 지는 느낌이다. 지금은 문화, 경제가 활성화 되어 물가만 안 비싸면 살아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국에서 돈을 벌면 그만큼 쓸 수 있겠지만…… 그들은 옛 영광의 자존심에서 깨어나 ‘새 영국’의 저력을 보여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보인다.

▲런던(London)

1994년에는 나와 친한 영국챔피언 테리 스테이시(Terry Stacy)를 만나려고 영국 바둑협회에 전화했다가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몇 년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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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9년부터 세계대회에서 만나거나 나와 바둑을 둔 영국 챔피언, 명지대 국제바둑학술대회에서 만난 옥스포드 대학의 해리 펀리(Harry Fernley) 교수를 비롯한 바둑 지식인들을 통해 영국 바둑계와 나는 접촉은 꾸준히 있어 왔다.


▲북 런던클럽

2004년에 나는 내 제자 김선기(바둑교실운영) 아마6단, 홍승희(바둑TV PD) 아마 4단과 북 런던클럽에 가서 교류전을 한 일이 있다. 런던 바둑클럽 5개 중 그 날은 북 쪽 클럽에서만 연다고 해서 그리로 찾아갔다. 클럽 멤버 중Macelee라고 “Go4go(http://www.go4go.net/v2)”를 운영하는 사람과도 바둑을 두었다. 다음 날 우리는 옥스포드 대학까지 갔었으나 바둑클럽 만나는 날이 이틀 후라고 해서 나는 해리와 만나고 제자들에겐 대학 구경만 시켜주고 돌아왔다.

그 후 2006년에 와서야 나는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바둑활동을 시작하게된다. 여류프로 한해원, 이하진 사범을 대동하고 영국엘 갔다. 당시 우리가 유럽을 기차로 여행할 때라 배를 타고 영국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오는 날이 마침 프랑스 철도파업일이라 그 날 칼레(Calai) 가는 기차가 한편 밖에 없었다.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그 걸 타고 칼레까지 와서 페리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갈 수 있었다. 칼레에서 같은 EU 국가인데도 영국 입국수속을하고 따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페리호 내부가 너무 크고 좋아 하진이가 “교수님, 이거 배 맞아요?”한다. 도버에서 런던은 일반 버스로 갔는데 파리에서 런던까지 1 인당 150 유로쯤 들었다.


▲한해원, 이하진 사범

영국의 해리 펀리(Harry Fearnly)는 2003 러시아 쌍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2회 바둑 학술대회와 2005년에 명지대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 영국 대표로 왔었다. 그래서 학술대회 의장이던 나와 친해 졌다. 그가 우리 일행을 계획에도 없던 영국 여행을 하게 만들었다. 해리는 내가 독일, 프랑스에 있는 동안 많을 땐 하루에 10번도 전화를 한다. 자기가 영국 체류비는 책임 질 테니까 오기만 하면 되다는 얘기다. 그는 40년 전 옥스포드 대학생 시절 바둑 부에서 영국 최강자 맥훼이든과 스태이시 등을 바둑을 가르친 사람이다. 해원이와 하진이는 영국에 간다니까 무조건 좋아한다. 영국에 오니까 의사소통이 잘 되어 아주 편하다.

해리가 최근 런던 한인 촌인 뉴 몰든(New Malden)에 바둑회관이 유럽 최초로 세워졌다고 한다. 거기에 한국 바둑인들도 우리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도 독일에서 그 바둑회관 뉴스를 듣고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해리는 뉴 몰든 한인 바둑회에도 매일 연락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도버에서 일반 버스를 타고 런던의 빅토리아 역에 내려 마중나온 김용훈 씨와 만났다. 그는 바둑회관을 만든 장본인이며 런던에 산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바둑, 골프, 노래를 수준급으로 하는 멋쟁이다.


▲런던의 밤

런던 시내 남쪽에 있는 한인촌은 차로 한 시간쯤 걸린다. 약 2만 명의 한국인이 이 곳에 집결해 산다. 저녁 시간이라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갔다. 김선생이 먼저 한인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 가길래 우린 저녁 식사 전에 무얼 사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문이 또 있고 그 안이 식당이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도록 되어 있다. 갖가지 생선회가 나오고 진수 성찬이다. 알고보니 이 곳 서사장이 바둑회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식을 안 먹은 지 하루만 지나면 한식을 찾는데 해원이와 하진이는 전혀 다르다. 빵과 서양 음식을 너무 잘 먹는다. 살이 찐다고 걱정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한번은 기차 안에서 두 명이 점심 용이라며 빵을 잔뜩 사왔다. 내가 깜박 졸고 일어나서 빵을 먹으려고 찾으니까 두 명이 서로 얼굴만 처다 보다가 갑자기 깔깔대고 웃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까 그 많은 빵을 내가 조는 사이에 둘이서 다 먹어버렸다.

저녁 식사 자리에는 런던 한인 바둑회 멤버들이 다 모였다. 저녁 식사 후에 우리는 바둑회관으로 걸어서 갔다. 김선생 부인이 경영하는 박준 미용실을 거쳐 안 채로 들어가면 방이 있고 거기가 바둑회관이다. 3~40 명 정도가 간신히 바둑을 둘 수 있는 작은 곳이지만 바둑 전용회관이 유럽에 처음 생겼다는데 의의가 크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한인 바둑회 멤버들을 상대로 다면 기를 두었다. 두 명이 바둑을 두고 나서 나에게 “한국 분들은 다 싸움 바둑이예요” 하며 웃는다. 우리 숙소는 베아트리체(Beatrice-천주교명) 아줌마네 집이다. 남편이 바둑 광이라 부인까지 고생이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교민신문 '영국생활'의 발행인 서동현 아마4단의 안내로 시내 관광을 나갔다. 어제 김선생도 벤츠를 몰고 왔는데 오늘 차도 벤츠다. 교민 사회에서 벤츠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 시내로 가는 도중 리치몬드 공원(Richmond park)을 지나가는데 공원 규모가 커 해원이와 하진이가 놀란다. 왕실 소유지다. 부자 촌을 거쳐 시내로 들어간 후 우리는 중국 촌 근처에 주차를 시켰다. 여기서부터는 다 걸어서 다녔다.


▲피카딜리 서커스(Picadilly circis)


▲리전트(Regent) 거리

피카딜리 광장에서 출발하여 리전트 거리의 고급 상점들, 옥스포드 거리만 돌아다니는데 4시간쯤 걸렸다. 중간에 카페도 가고 서사장이 경영하는 '아싸'라는 한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다. 식당은 크지는 않지만 천장 전체가 거대한 태극기 그림으로 된 곳이다.

“런던이 실증 난 사람은 삶에 지친 사람이다”라는 사무엘 존슨의 말처럼 런던에는 가 볼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없어 버킹엄 궁전, 런던 브리지, 웨스트민스트 사원, 국회의사당 등을 차로만 대강 보고 부지런히 뉴몰든으로 돌아 왔다.

저녁 7시에 해리가 옥스포드에서부터 와서 우리일행과 한인 바둑회 간부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너무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바둑회 간부들도 다 부부동반으로 나왔다. 해리가 쏘기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까 400유로가 넘는다. 나와 김선생이 나서서 300유로로 줄였다. 이런 경우엔 한 턱 내는 사람이 바가지를 써서 불쾌해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한인회관에서 다면기




▲서회장(앉은 사람), 김용훈씨(빨간타이), 서사장(하진이 옆)

우리는 장소를 옮겨 한인회관으로 갔다. 이 곳에 런던에 사는 영국 바둑인들이 오기로 되어 있다. 밤 8시에 약 20여 명이 모였는데 유럽 바둑 연맹 회장인 토니 앳킨스(Tony Atkins)와 다음 주부터 영국 바둑 회장이 될 론 벨(Ron Bell)박사도 왔다. 그들은 바둑은 안 두고 나와 한-영 바둑교류 문제로 대화만 나누었다. 해리가 나를 소개하는데 옥스포드 영어라 듣기가 참 좋다. 나는 해원이와 하진이를 소개했다. 곧 이어 해원이와 하진이가 약 10명씩 나누어서 다면기를 두었다.

그런데 영국 사람이 너무 많이 와 어제 바둑을 둔 한인 바둑회원들이 바둑을 못 두고 구경만 했다. 우리가 숙소로 돌아오니까 밤 11시가 넘었다. 그런데 한인 바둑회 간부 6~7명이 찾아 들어온다. 오늘 다면 기를 못 둔 사람들이다. 프로와 바둑을 두고 싶어서 바둑 세트도 몇 개 가져왔다. 그들이 바둑을 두자고 요청 하니까 해원이와 하진이가 마지못해 응한다.

이들은 새벽 한시가 넘도록 두 명과 바둑을 두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낮에 그렇게 많이 걸어 다니고 조금 전까지 몇 시간에 걸쳐 다면 기를 두었는데…. 생각 좀 해 주어야지. 이 날 무리한 것이 다음 날 해원이가 몸살 기운으로 빌빌거리게 만든다. 한국에 와서 해원이가 "그 땐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모처럼 프로와 바둑을 두고 싶어서 애기가들이 그런 것이라 이해가 되요" 하며 웃는다.

아침에 해리 차로 우리는 옥스포드로 향했다. 나는 가는 길에 옥스포드 남 쪽 솔스버리 근처에 있는 스톤힌지(Stone Henge)에 들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거석(巨石) 문화재다. 그런데 베아트리체 아줌마가 해원이와 하진이에게 옥스포드에서 20분 거리 북 쪽에 있는 비스타(Bicester)란 명품 아울렛에 가라고 충고를 했다.

거기에 가면 쇼핑을 싸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이 두 명이 벌써 해리에게 거길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뒀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는 “스톤힌지에 가는 게 저희들에게 훨씬 좋은 경험일텐데” 하면서도 모른척 해 주었다. 그 곳에 가니까 정말 물건이 쌌다. 내가 런던에서 69유로에 산 똑같은 구두가 39유로다. 홧김에 내가 한 켤레를 더 샀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구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해리 펀리 교수 옥스포드 관사 앞

옥스포드에 와서 차를 해리 관사 앞에 세우고 옥스포드 투어버스를 탔다. 해원이가 몸이 안 좋아 차 안에서 자기만 한다. 옥스포드를 한 바퀴 돈 후에 내가 하진이에게 “해원이가 몸이 안 좋으니까 네가 강자들을 맡으면 내가 하수들을 맡아 다면기를 두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해원이가 “제가 두겠어요. 자고 났더니 좀 나아 졌어요” 한다. 해원이의 자세가 진짜 프로다. 하긴 프로하고 두어 보겠다고 먼 길을 온 영국 하수들이 아마추어인 내가 두면 김 샐 것이 뻔하다. 교민들이 해원이를 아는 건 당연하지만 많은 유럽인들이 알고 있는 건 놀라웠다. 바둑TV의 위력이다.

우리는 해리가 예약해 놓은 옥스포드의 어느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꽤 고급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 음식에 대한 평이 나쁘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얇은 책이 영국 요리 책'이란 농담이 생겼다. 그런데 이 식당의 맛은 너무 훌륭하다. 시간이 조금 남는 틈을 타서 우리는 옥스포드 셔츠와 모자를 샀다. 해리가 해원이와 하진이를 데리고 카페에 들어간 동안 나는 뮤직숍에 들려서 모짜르트의 코시판 투떼 영국 글라인본 프로덕션을 찾았으나 재고가 없다고 해서 못 샀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 여기오면 꼭 사려고 노리던 건데……


▲옥스포드대학교

옥스포드는 1130년 학자 같은 왕 헨리 1세 때부터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헨리 2세도 여기에 살면서 1167년에 본격적인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은 법학, 수사학, 의학, 철학 등 4 과목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단과 대학만도 무려 37개나 된다. 대학 자체가 도시이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이 대학 분위기에 너무 감명 받는다. 오래된 돌 건물만이 만들어 낼 수있는 묵직한 분위기가 있다. 거기에다가 구석구석에 이끼가 끼어있고 고색이 창연하다. 건물 내부에 쿼드랭글(Quardrangle)로 불리는 잔디밭이 있어 더욱 분위기를 돋운다. 여기에선 2~3백 년 된 건물은 새 건물 취급을 받는다. 7~8백 년 이상 된 건물이 수두룩하다. 대영제국 전성기 특히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영국은 세계최강국이었다. 당시 세계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옥스포드와 켐브리지 출신들이었다.


▲옥스포드 대학 / High Street Oxford


▲옥스포드대학 바둑부


▲지도 다면기

영국의 1인자 매튜 맥페이든(Matthew Macfadyen) 6단은 단골 영국 챔피언일뿐 아니라 유럽의 강자다. 그는 항상 첫 점을 천원에 두면서 몇 차례 유럽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한 때 '공포의 천원'으로 서양인들 사이에서 다케미아 9단의 세력 바둑과 버금 가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오늘은 그의 부인과 와서 곧 있을 페어(Pair) 바둑대회를 준비한다면서 하진이에게 5점을 놓고 두고 있다. 둘이서 의논을 안하고 번갈아 두면서 하진이에게 완승을 거뒀다. 하진이가 “워낙 단단하게 두어서 중반 이후 판을 흔들 곳이 없어서 제가 던졌어요” 한다. 맥페이든을 내가 처음에 얼른 몰라본 건 그가 전에는 수염투성이었는데 면도를 해서 딴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나에게 와서 자기가 수염을 깎았다며 말을 걸어와서야 알았다.


▲옥스포드 바둑클럽 회원들

대학교 컴퓨터학과 2층에서 약 20명이 다면기 지도를 받았다. 나는 유럽 회장 앳킨스, 해리와 함께 옆 방에서 차를 마시며 내년에 한국 대사배 개최 문제, 영국에 바둑 사범 보내는 문제, 바둑 TV, Internet 한국바둑 보급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다. 타이젬 평균 접속 숫자를 말하고 한, 중 프로들 대부분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놀란다. 나에게 그런 타이젬이 왜 영어화 안 하느냐고 묻는다. 서양 바둑인의 약 90%는 일본이 운영하는 KGS(Kiseido)에서 인터넷 바둑을 둔다. 이 사이트에서 자기네끼리 채팅도 많이 한다.


▲옥스포드 바둑클럽(카페)에서 해리와 수담

다면기 후에 우리는 옥스포드의 밤거리를 걸어서 바둑클럽이 모이는 카페에 갔다. 옥스포드에서 제일 비싼 카페라고 하는데 교회를 카페로 개조한 곳이다. 스테인 글라스가 벽면을 차지하고 천정이 높다. 생음악도 있다. 멋있는 줄은 알겠는데 아늑한 맛은 없다. 나가는 문 옆에 낮은 나무 벽장 같은 게 있는데 바둑 용품을 넣어 두는 곳이라고 한다. 바둑회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숙소는 기숙사의 일부인데 약 300년 된 방이다. 내가 해리의 부담도 덜어 줄 겸 우리가 기숙사에서 자겠다고 국제전화로 말했다. 해원이와 하진이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해 마다 열리고 있는 유럽 대회 등 서양 바둑 대회는 참가자 모두를 기숙사에 묵는다. 나는 교수기숙사 해원이와 하진이는 학생기숙사로 갔다. 다음 날 아침식사는 7백년된 홀에서 했는데 분위기가 끝내주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사범 안 부르나요?” “1년간 어학연수 오는 방법은 어떻게 되죠?” 시간이 흐를수록 해원이와 하진이가 옥스포드에 점점 반한다.


영국 바둑 역사(History of the British Go Association)

영국인으로 바둑을 최초로 배운 사람은 존 바스(John Barrs 1014~1971)였다 그 가 15세인 1929년 운동용품을 파는 중국 가게에서 바둑세트를 산 것이 동기다. 그는 다음 해 런던 린튼 하우스(Linton House)에 ‘바둑(圍棋) 클럽(Weich Club)’을 만들었다. 이 클럽은 회원 약15 명으로 1936년까지 계속되었다.

존은 원래 역도선수다. 그는 1948년 영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는 인생을 바둑과 역도에 올인한 사람이다. 1953년 존은 라스커 박사가 쓴 바둑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에게 연락한다. 라스커는 미국 바둑저널(American Go journal)을 존과 영국 바둑 인들에게 보내준다.

존은 1953년에 영국 바둑협회(British Go Association)를 창설한다, 존은 유럽 바둑연맹 창설에도 관여하고 유럽연맹회장이 된다. 이 후 독일에서 주로 개최된 유럽바둑대회(EGC)에 영국선수들이 자주 출전하게 된다.


▲런던의 대중교통 버스 붉은 색 2층, 택시 검은 색, 지하철 노란 색

런던클럽은 성장하여 1960년 대에는 회원이 50명이 된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 요시오 카네코, 테이지 호소노와 요시로 아키야마가 그들이다. 다른 클럽들도 나라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1965년에는 존 바스(Barrs)가 추산하기론 2000명의 영국사람들이 바둑 두는 법을 알았다. 그렇지만 100명 정도만이 회비를 지불하는 BGA의 회원이었다.

존은 BGA의 초대 회장이며 영국인으로 초단증을 받은 첫 유단자다. 그와 스타인(Neil Stein)은 팀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일본에 간다. 존은 회원 중 다이아몬드 리같은 젊은 사람이 실력이 빨리 늘어 곧 그를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당시 동양인 선생이 없었으며 영어로 된 교재역시 적었다. 그래서 발전 속도도 빠를 수 없었다. 당시엔 바둑을 전국에 알리는 일도 어려웠다.

하지만 1965년 옥스포드의 굿박사가 “New Scientist”에 발표한 논문한편이 영국 바둑역사의 큰 활력소를 주었는대 그것은 바둑룰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당시 얀 다이아몬드(Jon Diamond)라는 강자가 혜성 같이 나타난다. 1965년 첫 영국챔피언을 뽑았는데 세명의 강자인 바스(J. Barrs), 다이아몬드(J. Diamond), 콜린 어빙(Colin Irving) 사이에 더블리그로 열렸는데 다이아몬드가 4승 전승으로 우승한다. 첫 영국 바둑대회에 챔피언에 오른 후 그는 탄력을 받아 무적을 자랑하며 1977년까지 챔피언으로 장기집권을 한다. 그는 2010년 현재 영국바둑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1966년 런던의 에이버리힐(Avery Hill) 대학에서 영국에선 처음으로 제 10회 유럽바둑대회가 열렸다. 국내대회는 1967년 옥스포드대학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오후에 2회전만 하는 대회였다. 이 해에 첫 영국바둑저널이 복사기로 100매를 뽑아서 참고도도 없는 기보와 함께 나왔다. 1982년 영국바둑 웹사이트에 추억의 기사로 이 기보가 다시 소개된다. 이 때의 기사를 보면 캐임브리지Cambridge), 브리스톨(Bristoll), 에딘버러(Avery) 대학 등 영국에 바둑클럽이 6군데가 있었다. 이 클럽들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이 무렵 개인클럽이나 단체가 영국바둑협회(BGA) 산하로 활동을 개시한다.

영국 2편에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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