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일본 여대생에게 작업거는 '안사범'
한상대 교수의 세계바둑사 영국 2편
2010-11-12 오후 7:53:36 입력 / 2010-11-12 오후 8:52:19 수정
▲ 버킹엄(Buckingham) 궁전
▲ 보초 교대식
<영국 한인 바둑회>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새벽 7시에 떠나 런던 히드로(Heathrow)공항에 도착하니까 아침 9시도 안됐다. 한인 바둑회 김용훈 부회장과 김기훈 총무가 마중 나왔다. 새벽 네시까지 바둑 두다가 눈을 조금만 붙힌 후에 나왔다고 한다. 이른 아침인데 미안하다. 우리는 곧장 나의 숙소인 김부회장네 집으로 갔다. 오늘은 비가 와서 밖에 나가 활동하기가 불편해서 우리는 바둑을 두기로 했다. 나는 작년에 와서 바둑을 한판도 안 두었다. 미녀기사 한해원, 이하진에게 한 수 배우느라고 나는 보이지가 않았을 것이다.
▲ 뉴 몰든 한인타운
오늘은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제일 상수다. 바둑에 굶주린 그들이 마구 덤빈다. 나는 안영길, 이정우 두 사범이 올 때까지 20판 이상 두게 된다. 김부회장과 3판, 속기파인 서병일회장과 김총무와는 각자 10판쯤씩 두었다. 이 중에서 김부회장이 다루기가 가장 까다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앞뒤 안 가리고 막 싸우는데 김부회장은 달랐다. 그는 싸우면서도 적당히 몸을 사릴 줄 알았다. 그는 평소 얼굴표정에도 조심성이 보인다.
내일은 안영길, 이정우 사범이 도착하고 모레는 베를린에서 우리 집 사람이 온다. 그 사람은 한국정부 위탁연구를 위해 영국에 온다. 나와는 서로 스케줄이 달라 각자 프로그램이 끝나는 4~5일 후에나 만날 것 같다. 공무가 끝난 후 우리부부는 같이 영국을 자동차로 일주하기로 되어 있다. 나는 바둑과 대화로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나는 김용훈씨 집 3층에서 계속 묵게 된다.
아침 11시까지 바둑을 두다가 날이 개이자 김 부회장이 나에게 “영국에서는 해가 났을 때 골프를 쳐야지 안 그러면 기회를 노칩니다. 저희가 두 시간만 골프를 치고 올테니까 교수님은 김총무와 바둑 좀 두고 계세요” 한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동안 안사범 일행이 도착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 섰으나 “잘 들 치고 오세요” 했다.
<안영길, 이정우 사범>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도 못 되어 안사범이 전화를 했다. “교수님 여기 런던 근처에 어느 작은 공항에 도착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한다. 나와 바둑을 두고 있는 김사장은 차가 없다고 한다. 내가 “여기가 뉴몰든(New Malden-한인 촌)이니까 너희끼리 기차로 찾아 와서 도착하면 전화해라” 했다. 안사범이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 후에는 “정말 잘 찾아 올까? 하는 걱정으로 바둑 수가 잘 안 보인다.
“하기는 영길이는 지난 1년 이상 나에게 영어를 배웠으니까 그 정도는 문제 없겠지” 하면서도 속으론 계속 불안하다. 조금 후에 골프장에 갔던 일행이 돌아 왔다. 내가 걱정 하니까 김부회장이 “젊은 사람들이라 잘 할 겁니다” 한다. 두 시간쯤 되었을까? 안사범이 전화로 “저희들 뉴 몰든 역에 도착했는데요” 한다. 그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길 잃은 아들을 찾은 기분이다. 하긴 두 사범이 호주에 사는 내 아들 오람이와 동갑 내기들이다. 역에 가니까 한쪽 입구에는 영길이가 다른 쪽 입구에는 정우가 서 있다. 내가 어느쪽으로 올지 모르니까 나름대로 두 명이 머리를 굴려 양쪽을 다 봉쇄하고 있었다. “너희들 어디나 던져 놔도 살아 남겠구나” 내가 신통해서 한 마디 했다.
▲ 뉴몰든 한인촌 ▲ 월드컵 한국팀 응원
뉴 몰든에는 한국교민 2만명이 넘어 살고 있다. 유럽 최대의 한인촌이다. 교민사회의 인구가 2만명쯤 되면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업종이 대개 있게 마련이다. 이번 바둑행사 스케줄이 오늘은 한인촌, 내일은 옥스포드 대학, 모레는 런던 북쪽 쎄인트 올반스. 글피는 다시 한인촌인데 이날은 런던에 사는 영국인을 많이 부르기로 했다. 마지막 날엔 숙소도 런던 시내로 옮기고 중심가를 관광한 후 지도기는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일본인 바둑클럽에서 하기로 했다. 내가 이 곳 영국, 한국 바둑인과 의논해 가며 결정한 프로그램이다.
<영국인>
영국인은 논리적이고 공정(Fair)한 면에서는 세계최고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섬나라 근성을 갖고 있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면에서 일본과 공통점이 있으나 일본과는 다르다. 덜 막혔다. 나는 영국이 역사적으로 유럽의 수 많은 나라와 얽히며 경쟁을 해온 저력이 일본보다 장점으로 작용하는 걸로 본다.
이 건 내 혼자 생각인데 영국인은 창조(Creation)보다는 보급(Distribution) 쪽에 더 소질 있다. 음악만 해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바흐, 브람스, 슈만, 하이든, 바그너, 영국에서 활약했던 헨델까지도 다 독일계다. 영국에 엘가, 퍼셀, 브리튼 등이 있으나 유럽대륙의 음악가만큼 비중이 없다. 그러나 그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수준은 내가 보기로는 영국이 최고다. 내가 아끼는 클래식 음반도 영국 프로덕션이 제일 많다.
미술가도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과 피카소까지 거장은 다 유럽인이다. 물론 영국이 배출한 수 많은 사상가, 과학자들은 세계사에 큰 획을 긋지만 예술분야의 대가 배출이란 면에서는 유럽대륙보다는 처진다. 그러나 예술활동은 앞선 인상이다. 파리에서 만난 두 영국 할머니가 나에게 “파리가 비 문화적이라 너무 실망했어요, 런던은 매일 오페라를 볼 수 있는데 여기는 시즌에만 볼 수 있다고 해요. 그 밖에 여러 문화활동이 런던에 비해 뒤 처졌어요. 세계 문화수도는 파리가 아니라 런던이에요” 하며 강력하게 주장하던 생각이 난다.
최근 특기 할만한 일은 영국 날씨다. 내가 과거에 온 6번은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특히94년 10월엔 나 혼자 차로 10일간 영국을 도는데 9일 동안 비가 왔다. 2006년 이후부터는 90%가 화창한 날씨였다. 어느 영국인이 나에게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영국도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 한다. 공기가 맑고 햇살이 강해 유난히도 눈이 부신다.
▲ 영국의 구릉
영국은 산보다 평야와 구릉이 많아서 그런지 인구 6천만에게 공간이 충분해 보인다. 국토의 많은 부분이 잔디로 덮여 있다. 어떨 때는 진 초록 색깔의 풀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자동차도 우리나라가 1천만대 돌파 할 때 영국은 2천만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교통체증이 안 보인다. 도시의 출퇴근 시간에 차는 많으나 계속 움직인다. 하긴 요즘 런던 시내 중심지를 자동차로 지나려면 통행료 8유로(1만 4~5천원)를 내야하고 출퇴근 시간에는 전철, 버스 값이 평소 보다 비싸진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가 자기네 언어를 보존하고 이중언어구조를 유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스코트랜드에 가니까 돈도 다르다. 또 영국은 측량단위(measuring unit)가 달라 사람을 혼동 시킨다. 거리는 킬로미터(km) 대신 마일(mile), 무게는 파운드(pound)와 스톤(stone), 돈은 파운드(pound) 와 펜스(pence), 온도는 화씨(Fahrenheit),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법적으로는 미터법(metric unit)이 사용되기로 결정이 났다는데 실현은 안되고 있다.
<바둑행사>
1. 교민바둑
오늘이 첫 바둑행사다. 한인회관에서 동포끼리 하는 일이라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서병일회장이 사주는 식사를 맛있게 먹고 한인회관으로 갔다. 서회장은 이 곳에서 식당, 식품점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최근 사업규모를 줄였다고 한다. 한인회관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피아노가 있길래 안영길 사범의 반주로 내가 노래를 연습했다. 안사범은 체르니 40번 이상을 친 실력이 탄탄한 피아노 연주자다. 한인 바둑인이 모인 후 내가 우리 가곡 한 곡을 부른 후 다면기를 시작했다. 이 곳 MBC 기자가 나와서 취재를 한다.
▲ 서회장 네 식품점 ▲ 그 안에 있는 식당
한국인은 지도기가 한판 끝나고 나면 곧 다시 돌을 판 위에 갖다 놓고 다른 판을 기다린다. 그 동작이 사범이 거절하기 힘들게 만든다. 그래도 미안한지 “다른판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잖아요” 한다. 한 사람이 다시 시작 하면 다른 사람도 새로 시작 한다. 그래서 해결 책은 “열시까지입니다”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11시가 다 되어야 끝난다. 한번 달아 오른 바둑 열기에 들뜬 바둑회원들이 밤에 나를 찾아왔다. 그들과 나는 이날 새벽 2시까지 바둑을 두며 대화를 했다.

2. 옥스포드대학 바둑회
어제 해리(Harry Fernley)가 나에게 전화로 “두 사범이랑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옥스포드에 와 달라”고 한다. 다음 날 우리는 빅토리아 역에서 옥스포드행 버스를 탔다. 2층 버스인데 아래 층에는 응접 소파처럼 테이블에 서로 마주보고 앉는 자리가 있다. 우리는 거기에 앉았다. 내가 두 사범에게 영국역사, 옥스포드대학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니 벌써 옥스포드에 왔다. 1시간 30분이 걸렸다. 역에는 해리가 나와 있다. 그런데 그가 손을 떨고 있고 몸 상태가 아주 안 좋다.
금방 나는 “아! 해리가 심장 마비를 일으켰었구나” 하는 걸 그냥 알겠다. 말 하는 목소리, 식은 땀을 흘리는 걸 보니 너무 안 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차로 런던에 우리를 데리러 오질 못했구나” 아니면 데리러 올 사람인데. 얼마 전 네덜란드에 갔을 때 17년 동안 바둑회장을 한 롱엔(Jan Rongen)씨가 심장마비로 안 나왔다. 두명이 다 바둑계에 공헌이 큰 지도자들인데 안타깝다. 그리고 보니까 두 명의 비만 수준이 비슷하다.
▲ 옥스포드 대학 1
우리가 정오쯤 도착했기 때문에 내가 우선 옥스포드 관광부터 하자고 했다. 해리가 숙소에 짐부터 갔다 놓자고 한다. 두 사범은 옥스포드 바둑회 존(John) 네 집에 묵고 나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로 데려간다. 중국인이 경영 하는 국수집(Noodle house)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옥스포드 관광에 나섰다. 안내는 70살쯤 된 존이 주로 했다. 존은 깡마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몸은 젊은이 같다.
▲ 옥스포드 대학 2

▲ 예수교회 대학
첫 장소는 예수교회(Church of Christ)였다. 1524년 헨리 8세 때 9세기부터 수도원이었던 이 곳을 옥스포드의 대학 중 하나로 만들었다. 추기경 울시(Thomas Wolsey)가 첫 학장이었다. 울시는 13세에 옥스포드대학 입학, 헨리 8세 때 첫 수상을 지낸 천재였다. 그러나 왕비 캐서린의 시녀 ‘검은 눈동자의 앤 볼린’을 사랑하는 헨리 8세가 그녀와 결혼하게 만들라는데 성공 못 하자 처형된다.
▲ 헨리 8세와 앤 볼린 ▲ 그들의 딸 엘리자베스 1세
그 뒤를 이어 수상이 된 유토피아 작가 모어(Thomas Moor)도 같은 운명이 된다. 세 번째 크롬웰(Thomas Cromwell)이 영국이 로마교황청과 사이가 나쁜 걸 이용하여 성공회(Anglican Church)란 교파를 만들고 드디어 앤 볼린과 결혼을 성공시킨다. 영국의 성공회는 더 이상 로마 교황청의 간섭이 필요 없게 되었다. 운명의 세 수상의 이름이 다 토마스라는 사실은 우연한 일치였다. 이 후 헨리 8세는 왕비 2명을 목 잘라 죽이며 6번 결혼을 한다.
▲ 해리포터를 찍은 홀. 초상화가 많이 걸려있다
이 곳 식당은 “해리 포터”를 찍은 장소라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 곳이다. 초기에 생긴 이 대학은 영국수상만 13명을 배출했다. 해리포터를 찍은 식당 홀(Dinning Hall)에는 졸업생 중 유명인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올려 놓은 엘리자베스 1세, 감리교 창설자 요한 웨슬리, 내가 학생 때 열심히 그의 책을 읽던 정치철학자 존 로크, 빅토리아 여왕 때 명 수상 글래드스톤 등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거물이 많다.
▲ 래드포드 대학(Radford College) ▲ 쉘도니언 극장/졸업식장 (Sheldonian theatre)
해리는 우리와 같이 다녔으나 어느 장소엘 도착 하면 내가 그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게 했다. 존이 우리 셋을 데리고 안내한 후 돌아 오는 식이다. 계단을 올라 여러 곳을 다닌 우리 보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 해리가 땀을 더 많이 흘린다. 이에 비해 나이가 많은 존은 날라다닌다.
존이 설명 한다 “초기 옥스포드 학자들은 스페인에 가서 이슬람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워와서 이 곳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초기엔 교수 한명에 학생 한 두명씩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곳 건물 내의 아치 모양,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설계는 다 회교사원에서 배워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스승이었습니다”
▲ 하이(High) Street. Oxford University ? 옥스포드의 중심가
우리는 옥스포드 거리로 나왔다. 작년에 하진이가 사 입은 옥스포드 윈치타를 같은 가게에 가서 나와 영길이가 한 벌씩 사 입었다. 잘 걷지 못하는 해리를 생각 해서 두 사범에게 옥스포드를 걷다 오라고 하고 나는 해리와 카페에 들어 가서 얘기를 나누었다. 말 하기도 힘들어 하는 해리가 안쓰러웠으나 요즘 외로운 그에게 우리가 온 것이 흥분 되는 일인 것 같이 보인다. 해리는 나에게 영국 바둑인 하나 하나와 그들에 얽힌 얘기를 쉬지 않고 한다.
영국 바둑협회 론 벨(Ron Bell) 회장이 오늘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청했다. 그 동안 우리는 부지런히 옥스포드를 봐야 한다. 먼저 해리 사무실 8층에 가서 대학교 전경을 봤다. 두 사범이 “처음에 와선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옥스포드가 좋아지는데요” 한다. 다음엔 존이 와서 유명한 보들리(Bodley) 도서관에 우리를 특별 초청 한다고 한다. 12세기부터 모은 책이 있는 곳으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전사한 1598년에 개관한 도서관이다. 6백만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고 책 선반의 연장 길이가 188km나 된다. 연구목적으로 허락 받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다. 존이 이 도서관 설립과정을 연대, 인물을 빠지지 않고 세세히 설명해 준다.
▲ 보들리 도서관
나는 옥스포드가 이번이 네 번째 인데 여기는 못 와 본 곳이다. 신분증을 맡기고 명찰을 단 후에 우리는 들어 갔다. 옥스포드에 50년을 산 해리도 못 들어 가 본 곳이다. 그러나 나는 해리에게 무리를 말고 밑에 층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들어가니까 몇 백년 묵은 오래된 책이 선반마다 가득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 조차 엄숙하다. 두 바둑사범도 “여기에 들어 온 건 영광인데요” 하고 속삭인다.
이 밖에도 존은 옥스포드 내 건축물이면 무엇이던지 상세히 설명을 해 준다. 그의 옥스포드 영어, 잘 정리된 설명은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나는 두 사범에게 부지런히 통역해 주었다. 우리는 많은 골목을 다녔다. 저 건물은 얼마 인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눈에는 오래 된 건물이다. “얼마나 되었느냐”고 하니까 “2백 년 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 옆 건물은? “7백 년 되었다”고 한다.
▲ 옥스포드 대학 내 상점 거리

▲ 옥스포드 대학의 가을/겨울
벨 회장은 작년 이 맘 때 새로 영국회장이 된 사람이다. 컴퓨터 박사다. 이번에 내가 한국 대사배 개최문제로 온다고 하니까 벌써 2주 전쯤 나에게 오늘 옥스포드에서 저녁을 초청 한다고 했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세상살이 얘기만 주로 했다. 바둑얘기는 유럽 바둑연맹 회장인 토니 앳킨스(Tony Atkins)가 곧 오니까 두 사범이 다면기 두는 동안에 따로 얘기 하자고 한다.
▲ 저녁식사 자리 ▲ 상점 앞
바둑 모임에는 한 10여명만 나왔다. 작년 숫자의 반이다. 해리가 몸이 안 좋아 연락을 덜 하고 선약이 있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대사배 바둑대회와 사범파견 문제논의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다면 지도기에 앞서 내가 인사말에서 “오늘 이 두 사범은 바둑 실력도 한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며 특히 두 명이 다 미남자에 겸손해서 매력적인 청년” 이라고 소개 했다. “그러나 승부사라 다면기에선 한 판이라도 져 줄지는 모르겠다” 고 하니까 전부 웃는다.
강자 열명만 바둑을 두고 나머지는 관전하겠다고 한다. 다섯명씩 다면기를 두게 한 다음 나와 회장 두 명은 옆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사업 얘기를 시작했다. 우선 내가 제시한 주영한국 대사배에 관한 조건이다.
<한국대사배>
1) 목적
- 한국바둑 세계화, 위상강화
- 바둑 올림픽종목 가입노력
- 한국개최 세계대회 선수선발전을 겸함으로써 2중 홍보효과
- 영국 바둑인과의 친목도모, 유대강화
- 한국 바둑사범 세계진출 교두보(취업과 보급)
- 한국 행 바둑수업자 증가
- 재외한인동포 바둑계 활성화(중국계 득세로 침체 상태) 등이다
두 명이 열심히 받아 적는다.
▲ (좌 앞줄) 앳킨스 유럽연맹회장, 벨 영국회장, 필자, 안사범, 일본학생, 이사범
2) 영국 바둑협회(British Go Association)가 할 일:
- 대회 장소 제공
- 대회 홍보, 조직 및 대회 운영
- 주영 한국 대사관과 협조
- 한국 방문단 숙/식 제공 혹은 일부 협조
- 한국 프로기사 다면기, 지도기, 해설회 준비
- 현지 한인바둑회와 협조하여 활동, 친목강화
3) 주영 한국대사관의 역할:
- 대사배 컵 및 부상(주영 한국기업체에서 협조?) 제공
- 대사 참가 (개회사, 시상, 폐회사)
- 영국 바둑협회와 긴밀한 협조(대회 준비)
- 개막식 리셉션 다과 제공
- 한상대교수 및 프로기사 방문단에 협조
- 홍보
4) 대한 바둑협회의 몫:
- 국무총리배대회에 대사배 우승자 초청(항공료, 체재비 제공)
- 이 대회 창설자(한상대) 현지 파견
- 국제 바둑보급사 파견(추후)
- 현지 한인 바둑인을 활용 교민사회 바둑활성화에 도움
이 밖에 한국기원 몫은 이 행사에 프로기사 파견이다.

나는 대사배개최를 위해 2002년부터 전 세계를 돌며 사전작업을 해왔다. 5 년 전부터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핀란드, 스페인, 호주 등이 비슷한 조건으로 대사 배를 치르고 있고 이 밖에 영국, NZ, 등과 동구권 몇 나라에서에 개최의사를 밝혔는데 금년에는 영국과 체코만 더 참가한다. 독일 경우 한국대사배의 인기가 높자(매년 산-수지 궁(宮)에서 개최) 일본 측이 죽었던 일본 대사배를 부활.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다. 벨 회장은 나와 내일 런던에서 한국대사관을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5) 바둑사범 파견문제
바둑사범 문제로 내가 영국측에 한 요구 사항은:
- 6개월~1년 간 숙식제공
- 영어공부 협조
- 개인이나 그룹 지도 알선
- 계약 기간은 1년에 양자 합의시 연장가능 등이다
▲ 일본 여대생에게 작업 들어가는 안사범 ▲ 끝이 안 나는 복기(Endless Reviw)^^
이날 이 두 명은 전승을 했다. 끝나고 정우가 나에게 와서 “영길이 형이 복기를 안 끝내요” 한다. 보니까 키가 크고 예쁘게 생긴 일본 여학생에게 혼자 복기를 해 주고 있다. 치수는 석점. 그녀는 아마 6단으로 어려서 2년 동안 원생을 했다고 한다. 지도다면기 후에 우리는 밤의 옥스포드 분위기를 즐기며 바둑클럽으로 걸어서 갔다. “FCUK”란 곳인데 교회를 사서 내부만 바(Public bar)로 고친 곳이다. 스테인 글라스 벽과 분위기가 마치 교회 안에서 술을 마시는 꼴이라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곳이다.
▲ 옥스포드 대학의 밤
입구에 있는 신발장 같이 생긴 푸른 나무장 안에는 바둑세트가 가득 하다. 누구나 꺼내와서 바둑을 둘 수 있다. 일본 여학생도 우리 건너편 쪽에서 영국인과 바둑을 두고 있다. 론 벨 회장의 아들 알렉스도 왔는데 일본에 가서 영어 원어민 선생을 2년간 하면서 바둑을 많이 두었다는데 2단 정도를 두고 있다. 안사범과 해리는 해리 명함에 나와 있는 해리가 만든 사활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으로 바쁘다.
조금 후에 일본 여학생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사진 좀 같이 찍자고 부탁하여 몇 장 찍었다. 우리가 “영길이가 만약 이 곳에 사범으로 오면 작업 하기 바쁘겠네” 하니까 영길이가 “저 학생은 일본으로 곧 돌아 간데요” 한다. 나와 정우가 “벌써 그 것까지 알고 있어?” 하는 뜻으로 웃으며 눈길을 교환했다. 우리는 이 곳에서 한 동안 바둑도 두고 한잔씩 한 후 각기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 10시에 해리가 내가 묵는 게스트 하우스로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일어나 보니 7시다. 샤워를 하고 8시에 식당엘 내려 가니까 영국식 아침을 먹는데 베이컨, 소시지, 계란 등 너무 기름져 보여 안 먹고 토스트 두 조각에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 걸어서 이 곳 저곳을 돌아 다니다 보니 열시가 가까워 온다. 내가 해리에게 전화로 나 있는 곳을 알리고 데리러 오라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먼데까지 걸어 갔느냐”고 놀란다. 오늘 두 시에 세인트 올반스(St. Albans) 바둑클럽에서 마이크(Mike Cockburn)가 우리를 데리러 온다.
▲ 1954년 바둑클럽이 처음 시작된 단과대학 건물
해리는 옥스포드의 각 단과대학을 설명 하면서 이 대학은 바둑과 관련이 없으나 이 대학은 바둑 모임이 60년대에 있었고…… 하는 식으로 모든 걸 바둑과 관련지어 설명해서 우리를 웃겼다. 단과대학이 37개나 된다. 우리는 1954년 옥스포드의 첫 바둑 모임이 이루어 진 대학과 방에도 가 봤다. 12시부터 점심을 하기로 되어 있으나 나는 이 곳에서 열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시판 뚜떼(Cosi fan Tutte)” 아리아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점심은 간단히 때우고 콘서트에 갔다.
▲ 코시판 뚜떼의 한 장면
주연이 6명 나오는 이 오페라는 내가 아주 좋아해서 세 시간짜리 전 곡을 1백 번 이상 들었다. 교수는 하녀 데스피나 역을 맡았는데 노련하나 목소리가 나이 탓으로 좀 허약하다. 알폰소 노인 역을 맡은 대학생은 저음은 약했으나 연기와 음악 실력이 좋다. 특히 미숙하나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를 보는 일은 즐겁다. 이 밖에 두 남녀 주인공은 대학원생, 대학생 혼성팀이다. 곡 해석이 학구적이고 연기도 좋았다. 역시 옥스포드 음대 작품이라 실망을 안 시킨다. (모차르트와 “코시 판 뚜떼” 한장면)
<세인트 올반스(Saint Albans)>
오페라가 끝나고 나오니까 마이크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 차를 타고 옥스포드에서 한시간 반쯤 걸리는 세인트 올반스로 갔다. 런던 북 쪽 30km 지점이다. 인구는 10만도 못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천여 년 전에 지은 세인트 올반스 성당이 있다. 중세에는 순례지 중 하나여서 자부심이 있다. 2천년 전쯤에는 로마가 지배하여 마을을 세우기도 했다.
▲ 세인트 올반스 성당(St Albans Cathedral)
마이크네 집은 2층인데 위에 침실이 셋 있어 내가 한방, 두 사범이 하나, 마이크가 하나를 썼다. 혼자 살고 있는 마이크의 나이가 50쯤 되어 보이는데 집을 보니까 분위기가 가족이 살다가 홀아비가 된 것 같다. 혹시 바둑 때문에 이혼 당한 케이스? 그러나 물어 보지는 않았다. 저녁이 되어 바둑클럽엘 갔다. 마이크 네 집에서 1~2분 거리다. 마이크가 “우리 골목은 150년 밖에 안 되었으나 바로 바둑클럽이 모이는 앞 골목은 6백년이 되었다”고 한다.
▲ 15세기 시계탑 ▲ 로마시대 성벽 자리
바둑클럽엘 가는데 정말 오래 된 집들이 보인다. 이 곳 펍(마을 술집)은 작으나 아늑한 곳인데 들어서니까 시끄럽다. 오늘이 이 마을 밴드가 생 음악을 하는 날이란다. 약 20명 정도가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연주를 한다. 음악 수준은 낮고 리듬이 단순 했으나 10대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 층이 함께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바둑 클럽은 그 중 방 하나를 빌려서 사용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명 두명씩 회원이 모인다.
그 중에 여장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중국계다. 추운 날 팝 전체에서 혼자 스커트를 입고 머리를 노랗게 물감 들여 길게 늘어트렸다. 립스틱도 바르고 웃고 얘기 하는 모습은 여자 같은데 가끔 웃음 소리나 말 소리에 남자가 섞여 있다. 뒤에서 보면 어깨도 넓고 다리에 알통도 굵다.
그(그녀?)가 정우에게 접근을 한다. 와서 웃으며 “우리가 같은 성(性) ‘Lee’씨끼리니까 잘 해 보자”며 추파를 던지며 악수를 청 한다. 작업에 돌입하는 거 같다. 악수 하는 정우 모습이 맛이 완전히 갔다. ‘Gay’ 를 경험 못해 본 그는 겁 먹은 얼굴이 분명하다. 이 일 이후로 정우가 삐끗 만 하면 내가 “너 이렇게 하면 그 중국 남자에게 갖다 준다” 하면서 협박을 하게 된다. 그는 3급쯤 둔다고 했다.
▲ 마을 최강자 4단(오른쪽) & 초단에게 다면기 ▲ 마이크와 안사범.
마이크는 안양 ‘기린아 도장(원장 김항)’에서 두 번이나 체류하면서 공부를 해서 실력이 탄탄하다. 이 나이(49)에 바둑을 배우려는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히트를 친 건이 있어 앞으로 몇 년은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책방도 운영했었다. 그의 집은 사방에 책이 쌓여 있다. 나중에 내 여자 제자 중 박국화, 김빛나가 이 집에 와서 한 동안 묵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마이크가 벌써 아침 거리를 사다 놨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세인트 올반스 관광을 나섰다. 화창한 날씨에 햇빛이 밝다. 먼저 유명한 세인트 올반스 교회(Saint Albans Abbey)엘 갔다. 4세기부터 있던 교회는 전쟁과 지진으로 여러 번 파괴 되었고 현 교회가 완성 된 것은 1879년이라고 한다. 총 길이 348피트로 영국 교회 중 가장 길다고 한다. 그 안에 칸막이 같이 공사를 해서 미사 보는 장소가 5군데쯤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고 기념품점, 자선단체가 물건을 팔기도 한다.
우리는 성당을 나와 큰 잔디 밭에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나왔다. 안사범이 백조와 거위를 많이 찍는다. 뜸북새를 몰라 보길래 알려 주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뜸북이는 노래로만 들어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수를 지나 우리는 옛 로마 마을 터로 왔다. 사방 2km로 둘러 쌓인 성벽 안이 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성벽자리만 조금 남아있다. 지난 2천년 동안 아무 규제 없이 로마 성벽이나 건물을 마구 허물어 교회, 학교, 개인 집을 짓는데 써서 옛 로마 마을이 없어졌다. 마이크가 발굴을 하면 아직도 로마 마을 대부분이 복구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곳 건물의 많은 부분이 로마 돌로 지은 것이 보인다.
▲ 마이크네 골목 ▲ 호수
그 옆에 있는 6백년 된 펍(Pub)은 원래 닭 싸움 하던 곳이란다. 나무 건물인데 천장이 낮아 176cm인 나도 자주 구부려야 한다. 키가 작은 안사범만 꼿꼿이 서서 다닌다. 웨이터가 나오는데 키가 190cm는 되어 보인다. 이 친구는 머리를 숙이고 다니거나 몸을 이상하게 꼬고 다닌다. 목 디스크 걸리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내가 “영길아, 여기가 네가 일할 장소다. 저 친구는 직업을 잘못 택한 거야. 너는 가끔 점프를 해도 되겠다” 하며 놀렸다. 우리는 발길을 마을 중심가(Village centre)로 돌렸다.

▲ St. Albans Cathedral 세인트 올반스 성당
마이크 네 집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찰스 디킨스” 펍이 있는데 정말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가 단골로 오던 곳이라고 한다. 내가 어릴 때 그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드나들던 곳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마을 구경을 마친 우리는 마이크 차로 한 시간 이상 달려 다시 한인촌으로 왔다. 점심을 먹으러 우리는 한인회관 근처에 있는 케밥(Kebab) 집엘 들어갔다. 양 고기를 돌려 가며 굽던 젊은 친구가 우리에게 맛을 보라며 고기를 잘라서 준다. 우리는 이 집에서 네 명이 식사를 시키고 소프트 드링크까지 한 캔씩 마셨다.
그러면 보통 20파운드 이상 나온다. 그런데 아까부터 웃으며 우리에게 친절하던 젊은 친구(터키 계 같았다)가 8파운드 80만 내란다. 네 명이 4~5 파운드짜리 점심에 1파운드 캔을 4을 마셨는데 반 값이다. 내가 “계산 잘못 한 것 아니냐?” 고 하니까 웃으며 “계산이 맞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8.8파운드만 내고 나왔다. 횡재는 했는데 무언지 찜찜하다.^^
▲ New Malden 한인 촌 - 한국 축구응원단
한인회관에 오니까 한 시간 이상 시간이 남는다. 나와 안사범은 노래를 연습하고 이사범과 마이크는 바둑을 두었다. 조금 후 김부회장을 비롯 한인 바둑회 회원이 나타나기 시작 한다. 나중엔 영국 사람들이 온다. 벨 회장도 왔다. 내일 아침 9시에 대사관에 들어 가는 일로 긴장도 되고 나와 상의를 더 하는 게 목적이다. 오늘은 대부분이 영국 바둑인들이다.
시작 전에 나는 안사범 반주로 3백년전 이태리 작곡가 부오논치니의 “검은 눈동자(Pupille nere)”라는 노래를 부르고 지도 다면기에 들어 갔다. 영국인 회원 한명이 나에게 오더니 “부오논치니는 바로크 음악가 중에 헨델의 라이벌로 불렸는데 그의 작품은 처음 들어 본다. 노래해 주어서 고맙다” 라고 인사 한다. 누구나 바로크 음악의 대가라면 바하와 헨델을 드는데 당시에는 부오논치니가 헨델의 라이벌로 알려져 있었다. 서양 바둑인은 거의가 지적수준, 문화수준이 높아 이런 전문적 음악지식을 가진 사람까지 바둑회에 섞여 있다.
한참 바둑을 두고 있는데 우리 집 사람이 찾아 왔다. 자기 공식일정을 끝내고 나와 합류 하려고 온 것이다. 영국에 도착한지 나흘 만에 처음 만났다. 바둑이 끝나고 나는 런던시내에 집 사람 호텔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두 사범은 바둑회 김 총무가 데리고 내일 아침 9시에 한국 대사관에 오기로 했다. 밤은 늦고 비는 오는데 김부회장 네 집에 가서 내 짐을 갖고 런던까지 기차로 한 시간은 가야 한다. 짐을 실은 후 김 부회장이 런던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벌써 12시인데 사양해도 막무가내다. 내가 저지르는 민폐가 크다. 할 수 없이 그 차로 시내 Earl’s Court에 있는 “Lord Kensington Hotel”로 왔다. 집 사람이 지난 나흘간 묵었던 곳이다.
다음날 나는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한국대사배 바둑대회 문제로 나와 영국 바둑협회장이 찾아 온다니까 입구의 직원이 대사가 자기 말고 문화원장을 대신 만나라고 했단다. 나는 최문화원장실로 갔다. 최원장은 나에게 한국대사배 바둑대회는 공문을 받은 일도 없고 아직 결정 안 된 사항이라고 한다.
▲ 한국대사관 회의실
이 때 벨 영국 바둑협회장, 한인바둑회 김총무, 두 프로기사가 도착했다. 우리는 2층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모두 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취지 설명을 하자 최원장이 “교민회에서도 대사배 축구대회를 열어 달라고 합니다. 형평성을 고려 해서 한 쪽만 하기가 힘듭니다” 한다. 내가 “이 건 영국인과 같이하는 국제행사입니다. 교민사회 행사와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국위선양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는 한국바둑이 세계최강인 것도 모르고 있다.
나는 한편 김 총무에게 작은 소리로 “최원장과는 안 되겠고 대사면회를 내가 꼭 해야겠으니까 지금 나가서 정식으로 비서에게 신청해 달라”고 했다. 김총무는 사업인으로 100킬로가 넘는 체격에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조윤제 대사는 서강대 경제학 교수로 있다가 대사로 왔다. 대사를 5분만 만나도록 허락을 받고 내가 들어갔다. 나와 자기가 서로 친한 교수를 찾아 내자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면회시간도 늘어났다. 우리 일행 중 벨회장만 들어 오도록 허가를 받았다.
조대사가 “롯데호텔 재외공관장 모임에서 대바협 조건호회장으로부터 얼핏 들었습니다. 아직 공문이 온 것이 없는데 받으면 회의를 통해 결정 하겠습니다” 한다. 내가 “저도 그 때 조건호회장과 같이 롯데호텔에 갔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대사배 얘기를 꺼내기는 좀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저만 그냥 나왔죠” 그도 형평성 얘기를 하길래 내가 다시 대회 성격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벨 회장도 조대사에게 대사배를 개최할 경우 영국측도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전 송서기관과 전화통화 후 대사배에 관한 이메일을 보냈는데도 대사가 내용을 확실히 모른다. 조대사도 최원장도 바둑을 못 둔다고 한다. 관계자가 바둑을 두는 것 하고 못 두는 차이는 크다. 바둑인이면 협조를 적극적으로 한다. 프로기사 두 명이 인사만 하겠다는데도 거절 당했다. 약 20분간 대사와 내가 대화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밑에 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결국은 대사배를 개최하기로 합의를 보아 나는 만족했다. 우리가 일어날 때 조대사가 “조건호회장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한다.
▲ 벨회장, 조대사, 필자.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런 얘기를 자세히 한번 해 본 거다. 내가 주영한국대사관을 비난할 생각은 없음을 알기 바란다. 조나탄과 ‘Litz Hotel’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30분 지각을 했는데 조나탄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 조나탄은 오늘 저녁 일본 바둑클럽 행사를 주관하는 친구다. 대학원생인데 바둑은 초단이다. 그가 “Kings Cross에 호텔을 잡아놨다”고 한다. 내 방 하나와 사범들 방 하나다. 자기네가 지불하는 거다. 내가 “나는 그 근처에 있는 우리집 사람 호텔에 가서 잘 테니까 두 사범만 재워 달라”고 했다.
▲ 리쯔호텔 앞에 모인 일행.
우리는 우선 시내 중심가인 피카딜리 근처로 왔다. 두 사범이 짐을 등에 지고 다니길래 내가 먼저 호텔에 가서 체크인 하고 오라고 했다. 조나탄은 두 명을 Check-in만 해 주고 치과 약속이 있어가고 두 사범이 지하철로 금방 돌아왔다. 처음 온 외국 도시에 적응력이 아주 빠르다. 일본회관 위치를 확인한 후 우리 부부와 두 사범이 런던 관광을 시작했다.
▲ 피카딜리 역 앞. 두 사범이 짐을 두러 가고 있다
나는 일행을 버스 2층에 태우고 먼저 리전트(Regent St.)가(街)와 옥스포드(Oxford St.)가를 돌았다. 어느 도시에 대한 감을 잡는데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게 도움이된다. 집 사람은 영국 경제가 침체 했던 예전에 오고 24년 만에 다시 왔다. 집 사람이 “영국이 옛날 보다 훨씬 활기가 있고 번창해졌네요’ 하며 놀란다. 나는 작년에 한해원, 이하진 사범과 걷던 코스를 역으로 걸었다. 중심가에 일본회관이 있기 때문이다.
▲ 런던 리전트(Regent) 거리
▲ 런던 옥스포드(Oxford)거리
▲ 런던 아이(London Eye)
런던은 로마가 “론디니움”이란 요새를 서기 43년에 건설했을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도시다. 산업혁명과 함께 급성장을 했고 19세기에는 ‘세계의 수도’였다. 유럽연합국 도시 중 가장 크며 올림픽을 세 번 개최하는 유일한도시이다. 런던에는 300개가 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대영제국 박물관(British Museum Great Court), 테이트(Tate)미술관이 있고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런던 아이(London Eye)가 있다. 우리는 걷다가 이집 저집을 들어가기도 하고 힘들면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런던이 역동적이고 저력있는 도시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 일본회관 다면기. 나만 조나탄과 1:1로 두어주고 있다
▲ 일본 회관 지도다면기.
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본회관에 왔다. 두 사범이 나에게 “한국회관 보다 훨씬 고급이네요” 한다. 서양도시의 대부분 일본회관은 시내 중심부 비싼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나라에 나와 있는 일본기업체들이 합동으로 얻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인회관은 교민사회가 집중 된 지역에 교민들 주머니로 해결 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 수준 차이가 나도록 되어있다. 일본회관에 일본인은 다나까씨 한명 뿐이다. “일본경제 침체기간 동안 다 귀국했습니다. 한 때는 일본 바둑인 30명쯤이 항상 나오던 때도 있었습니다” 다나까씨 얘기다. 바둑 세트도 한인회관 것 보다 훨씬 고급이다.
다나카씨와 중국인 한명이 프로에게 4~5 점을 놓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7~9점 치수다. 1단이라는 조나탄만 프로에게 8점으로 전승을 하고 나와 개인전도 두 판 다 이기 길래 치수를 5점으로 줄이니까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싸워야 할 땐 싸우면서도 집을 지킬 줄 아는 것을 보니 초단 이상 실력이다. 영국 바둑인 중 2단 두는 폴(Paul)은 한국회관 모임에 두 번 다 오고 일본회관에는 초단 두는 17세의 딸까지 데리고 왔다. 프로에게 지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판도 노칠 수 없다는 자세다. 한인회관에서 프로에게 진 판을 나에게 복기해 가며 내 의견을 물어보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저 친구는 우리들 모임에도 항상 딸을 데리고 나타나요” 한다.

지도대국 후에 모두가 두 블럭 떨어진 차이나타운으로 걸어가서 중국식당엘 갔다. 우리가 25명이라 두 테이블로 나누어 앉았다. 나는 우리 부부와 프로 두 명이 한명씩 나누어 앉도록 했다. 나와 안사범이 앉은 테이블에 동석한 중국 친구는 한국바둑 소식이 나 보다 밝다. 최근 기전소식도 모르는 게 없다. 안사범도 놀랜다. 내가 기력을 물어 보니까 3단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바둑이 한국바둑을 곧 추월할 거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 한다.
30년 전에는 내가 서양에 가면 바둑고수는 거의가 한국인이었다. 20년 전에는 중국인이 섞이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는 그들이 최 강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바둑인은 저 뒤 어디에 숨어 있고 그들이 판 치고 있다. 한국 젊은 층 바둑인구 감소, 이민자 수 감소, 중국인 세계진출이 가져 온 현상이다. 아직 한국인은 중국인 보다 경제력, 언어능력 등 현지화에 앞 서 있기 때문에 그 장점을 살려 우리 동포 바둑계를 활성화 시키는데 한국바둑계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오늘 저녁으로 모든 공식행사가 끝이 났다. 우리 일행 모두가 긴장이 풀려 피곤해 한다. 이사범이 나에게 “이제 큰 짐을 던 것 같아요. 해외 바둑계를 보고 느낀 점이 너무 많았어요. 저도 한국에 가면 교수님에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다. 원래 이 두 명은 내일 아침에 한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마음을 바꾸어 우리 부부가 자동차로 영국 일주하는데 합류하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마음 편히 영국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너무 신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우선 예약해 놓은 차를 큰 놈으로 바꿨다. 우리는 비스타 마을, 스톤힌지, 웨일스 주 수도 카디프, 스코트랜드의 로카비, 산엽혁명이 시작된 글라스고, 스코트랜드 주 수도 에딘버러를 거쳐 리스, 쉐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래트포드 등을 돌아 런던으로 돌아오는 긴 여행을 했다. 운전은 이정우사범이 주로 했다. 지면관계로 사진만 몇 장 소개한다. 이 여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내 칼럼에 나온다.
http://www.tygem.com/Column/cboard/viewpage.asp?pagec=7&seq=9924&gubun=C033

▲ 산업혁명이 시작된 글라스고 거리
▲ 에딘버러 성에서 매년 개최되는 영연방 군악대회(Military Tatoo)
▲ 에딘버러 성(전체가 돌로 되어 견고하다)
▲ 에딘버러 성 들어가는 길
▲ 에딘버러 성 내부
▲ 성루에서 16세기 대포. (아래)성을 떠나며 입구에서, 성을 나와서.
▲“정우야, 나 만큼 키를 줄여” (쉐익스피어 생가 - 우측 두 번째) 스트렛포드(Stratford)
영국 3편에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TYGEM / 한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