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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허영호의 찌르기

제15회 삼성화재배 결승에 진출한 허영호 7단 스토리

2010-12-05 오전 10:51:46 입력 / 2010-12-05 오전 11:03:48 수정


▲ 허영호는 중국의 구리를 상대로 오는 7일(화) 삼성화재배 우승에 도전한다.

S#1. 허영호가 간다

이제 허영호다.
허영호 7단이 오늘(12월 5일) 중국 베이징으로 출격한다.
아시안 게임과 농심배의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무대에 삼성화재배의 히어로 허영호가 떴다.
상대는 구리.
최근에는 콩지에보다 한발 뒤쳐져있지만 구리는 여전히 정상급의 최고수다.
준결승에서 박정환을 2:0으로 누르고 올라온 허영호는 우승확률을 묻는 질문에 40%라고 대답했다.
구리는 50%라고 했다.
둘 다 겸손한 대답을 했지만 세계대회 결승에 처음 진출한 허영호가 10%를 덜 썼다.
그러나 두 기사의 상대전적은 1승 1패.
작년 비씨카드배에서 구리가 이겼고, 올해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는 허영호가 이겼다.
바둑과는 관계없지만 번외로 2009년 2월 바투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는 허영호가 구리를 2:0으로 물리친 적 있다.
철벽의 구리지만 허영호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상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구리와 만났을 때 왠지 질 것 같지 않았다.

“박정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상하게 편하더라고요. 어렵지 않게 이길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대로 허영호는 구리를 가볍게 꺾었다.
연구가 있었다는 뜻 아닐까?

"큰 부담은 없습니다. 최근에 중국리그 기보를 많이 연구했거든요. 콩지에나 구리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국내기사들보다 편합니다."

밑질 것 없는 승부, 어쩐지 허영호가 일을 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성 예측이 뇌리를 스친다.
허영호, 올해 57승 16패(78%) 이세돌과 박영훈 다음에 랭크된 3위이며 12월 랭킹으로는 이세돌, 원성진, 최철한, 박정환에 이어 5위에 올라있는 강자다.

큰 대회 타이틀을 보유한 적 없어 존재감이 크진 않으나 홍익동 바닥에서는 허영호의 결승 진출에 그럴 때도 됐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준수한 외모에 깔끔한 패션 감각,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쿨한 화술이 돋보이는 25세의 청년 허영호.
그를 보면 삼총사의 달타냥이나 쾌걸 조로가 떠오른다.

검법이 부드럽고 기민한 느낌이랄까?
이세돌은 화려한 반달 검,
최철한은 묵직한 로마 양날 검이라면 허영호는 가볍고 경쾌한 펜싱 검으로 연상된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박정환과의 준결승 3번기에서 두 판 내리 승점을 따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게 입증된다.

“예전의 구리는 아니던데요. 구리는 감각이 좋아서 초반 포석을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그립니다. 그리고 중반전에 빠른 수읽기로 우세를 확보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중반전에 실족을 하는 경우가 잦더군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우승 가능성을 40%라고 낮춰 말했지만 허영호는 구리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S#2. 다크호스

1986년생. 한전에 다니는 아버님이 바둑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바둑을 배우게 됐고, 두다 보니 기재가 남달라 광진구 이레 바둑교실을 거쳐 한국기원 원생이 됐다.
2001년 입단해 줄곧 승률 70%대를 기록했으니 큰일을 낼 법도 한데 이상하게 타이틀과 인연이 없었다.
2003년 명인전과 천원전 본선에 올랐고 오스람코리아배 신예연승최강전 결선에 진출했으며 그 어렵다는 농심 신라면 배 대표로 뽑혔고, 2006년 비씨카드 배 신인왕전에서 원성진을 제압하고 우승했다.
그때가 분수령이었다.
이상하게 기세가 뻗어가지 않고 기나긴 슬럼프가 찾아왔다.
프로가 되고 나니까 성취동기가 사라지고 그러니 바둑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는데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때 대학에 진학했다.
경기대 중문과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새롭게 사귀고 넓은 세상을 보았다.
대학과 바둑을 병행하려니 열심히 뛰어야했다.



“저는 후배들에게 틈만 나면 대학에 가라고 충고합니다. 당연히 두 마리 토끼를 쫒아야 하므로 정신없지요. 그러나 그렇게 바빠야 몸과 마음이 항상 긴장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대학진학이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바둑을 보는 눈도 그만큼 넓어진 것 같구요.”

허영호는 대국이 없는 날 강남 신사연구회에 나간다.
그곳에서 주로 중국기사들의 기보를 연구한다.
신사연구회의 멤버는 쟁쟁하다.

원성진, 최철한, 박정환, 김지석, 강동윤, 윤준상, 박정상, 김주호, 고근태, 박승화.

우리 바둑의 에이스 급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그곳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다 보니 차세대 기수들끼리 서로 훤하게 알게 됐고 중국의 유행정석도 궤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허영호가 유명세를 치른 것은 바둑기전보다 바투게임이 먼저였다.
제1회 바투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깜짝 우승하면서 언론매체에 오르내렸고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것.
바둑에 게임의 요소를 접목시킨 바투는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첫 대회에서 거액의 우승 상금을 획득한 허영호의 이름 석 자가 뚜렷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놀라운 건 허영호가 바투대회에 나가면서 단 한 판도 연습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주최 측 온미디어에 아이디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 2009년 2월. 바투 인비테이셔녈 결승전 경기 모습. 허영호는 박지은을 꺾고 우승상금 2500만원을 획득했다.

“그냥 이미지로 바투라는 게임의 특성을 파악했습니다. 11줄이니까 집에 대한 개념이 한 눈에 들어오잖아요. 게다가 포인트 제도가 가미되어 바둑판 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보통의 경우 프로기사들은 바둑 안에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거기 얽매이면 바투는 어렵습니다.”

바둑판 외적인 요소부터 살폈다는 허영호의 설명이 맵시 넘친다.
확실히 천재 형이 분명하다.
묻지 마 히든으로 절정의 감각을 과시하며 바투 계에 바람을 일으켰던 구리도 허영호를 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바투가 됐건 오목이 됐건 승부사들은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때의 승부가 제15회 삼성화재 배 결승전에서 데쟈뷰로 리플레이되기를 소망해본다.


S#3. 정상에 오르면 멀리 보인다




허영호의 최근 4년간 랭킹 순위변화다.
올해 그의 승률은 무려 78%, 년초 11위에서 11월 랭킹 5위까지 올랐다.
허영호가 어느 시점에 이기는 법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그 누구와 만나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가득한 속내도 밝혔다.

“제 기풍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엷은 게 참 싫어서 두텁데 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다른 기사들이 말하길 실리적 기풍이고 엷다고들 말합니다. 또 어려운 대목에서 저는 싸움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사들이 보기에는 분쟁보다 쉽게 타협을 택한다고 평합니다. 제 생각보다는 밖에서 보는 시각이 아무래도 객관적이겠죠. 기본적으로 저는 유연하게 바둑을 두려고 노력합니다.”

결승전의 임전소감을 밝히는 허영호 7단의 마지막 결론은 ‘유연’이었다.
승부의 부담을 떨쳐버리고 유연하게 구리와 수담을 즐기다 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 오지 않겠느냐는 대답이었다.
젊지만 경솔하지 않고 생각이 깊은 청년 허영호.
그가 제대로 사고 한 번 치기를 기원한다.
한 번 정상에 오르면 사방팔방 넓은 세계가 내다보일 것이다.
한 번 거기 오르면 더 넓은 시야가 트일 것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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