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사
영길오빠는 헛점 투성이 - 영국 3편
이강욱·강경랑·안영길의 영국 에피소드
2010-12-16 오후 4:04:42 입력 / 2010-12-16 오후 5:29:20 수정

▲ 런던의 밤
1. 큰 사건
런던 교외 포터스 바(Potters Bar)에 있는 연합교회 건물이 영국 마인드 스포츠 본부다. 여기서 영국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 일어난 사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어느 남녀를 향해 차 한대가 갑자기 전 속력으로 돌진했다. 두 명을 깔아뭉개기 위해서다. 그러나 본인들이 용케 피해서 사고는 간신히 면했다. 바둑대회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사연인즉 차를 몰고 들어온 사람은 여자의 남편. 자기 집에 놀러 오던 바둑친구와 자기 아내가 눈이 맞아 아내가 집을 떠나자 눈이 뒤집힌 남편이 저지른 일이다. 서양에선 취미생활을 부부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그녀를 대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 우리 보다 훨씬 가깝다. 그래서 치정 극이 벌어질 확률이 더 높다.

▲ 사건이 일어난 바둑대회장이던 런던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
나와 친했던 영국챔피언 테리(Terry Stacy)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미망인이 남편의 바둑친구와 재혼했다. 멜본에서 내 아파트 옆 방에 살던 멜본심포니 바이올린 주자가 있다. 자기와 바이올린 공부를 같이한 친한 친구를 러시아에서 불러와 한 집에서 묵으며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일했다. 그런데 그 친구와 자기 아내가 눈이 맞아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다. 퇴근해서 집에 오니까 아내가 떠난다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가구는 트럭으로 다 싣고 가버렸다. 그 후에도 그들은 한 오케스트라에서 계속 일했는데 둘 사이에 험악한 관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1970년대 멜본음대 내 성악교수는 부인이 30년 전 이태리에서 자기를 따라 다니던 남자와 집을 나갔다. 그 녀가 52세 때였다. 어릴 적 교수와도 친구였던 그가 은퇴한 후 호주에 놀러 오겠다고 해서 안심하고 자기 집에 묵혔다고 한다. 교수가 대학에 출근하고 나면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면서 남자가 30년 전 실패한 사랑을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그 다음날 너무 풀이 죽어 있는 M 교수를 내가 위로하는데 애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몇 달 후 도망간 자기 부인 보다 20년은 젊은 여자제자와 동거에 들어 간 55세의 M 교수가 모양도 내고 미용관리도 한다. 그 대학원 여학생은 평소에 밉게 놀아서 내가 밥맛 없어하던 여자였다. 사람마다 용도가 다 있는 가 보다. ^^
서양인들은 자기 배우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가 드물다. 싫다고 떠나는 사람은 깨끗하게 보내 주는 걸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국바둑인의 행위는 극단적인 편에 속한다. 영국바둑회장 론 벨(Ron Bell) 박사에게 내가 영국바둑사상 제일 큰 사건이 뭐냐고 묻자 웃으면서 해준 얘기다.
바둑인끼리 살인할뻔한 이 교회에서 첫 주한영국대사 배가 열린다. 내가 런던대사관에서 조대사, 벨회장과 합의를 얻어 낸지 5개월 만이다. 이번에는 내가 안영길, 이강욱 프로기사와 여자연구생 1조 출신인 강경랑 사범을 대동하고 참가했다. 안영길 사범은 두 번째 영국방문이다. 8월 23일 우리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까 론 벨 영국회장이 나와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먼저 영국에서 여행할 차를 공항에서 한대 빌리고 론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런던 서쪽 테임스 강변에 있는 리딩(Reading)이란 곳이다. 내가 영국 측에 우리 숙소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는데 협회자금이 딸리니까 회장이 자기 집으로 때우는 거다.
론이 부인과 대학원생 딸을 소개하는데 딸은 부인이 첫 번 결혼에서 얻은 딸이라고 한다. 론을 친 아버지처럼 따른다. 론이 나와 여러 번 만나 가까운 친구가 되면서 자기 사생활 얘기도 다 나에게 한다. 첫 날 저녁은 론이 쏘았다. 론 네 집 근처 테임스 강(江)가까지 걸어가서 분위기 좋은 펍(Pub)에서 했다. 완전한 영국식이다. 나와 경랑이에게는 방 하나씩 주고 영길이와 강욱이는 응접실 소파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첫 날 곤하게 잘 잤다.

▲ 론 네 집 아침식사 토스트와 각 종 시리얼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니까 론이 차(茶)를 준비해 놨다. 영국식이다. 대화하며 내가 차를 다 마시면 곧 다시 채워준다. 도자기처럼 생긴 주전자에서 따라주는데 아주 맛있다. 영국인은 모든 수분의 50%이상을 차를 통해 섭취한다. 우유를 탄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일은 영국문화의 큰 부분이다. 다즐링 (Darjeeling), 잉글리쉬 브랙퍼스트(English Breakfast), 얼 그레이(Earl grey) 등은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마시는 차인데 영국에서 차 전문 집에 들어 가 보니까 차가 300종이 넘는다. 17세기부터 식민지인 인도, 실론 등에서 나오는 차를 마시며 차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고 한다. 영국사람들에게 차를 못 마시게 하면 정신적 공황이 금방 찾아오지 않을까?
영길이를 영국사범으로 보낼 생각이 있어서 그 문제를 3명이 의논하는 동안 강욱이와 경랑이는 동네 산책을 보냈다. 영국과 협상 중에 호주의 국가사범인 오송생 9단이 타계했고 나는 영길이를 호주사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호주는 나의 제 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산책에서 돌아 온 강욱이와 경랑이가 “교수님, 너무 아름다워요” 한다. 아침을 먹은 후 나는 지체하지 않고 스톤헨지를 향해 떠났다. 유럽은 차가 기어 달린 매뉴얼뿐이라 영길이가 운전을 못 한다. 한국에서 자동만 했다고 한다. 강욱이는 면허 조차 없다. 그래서 1,500km가 넘는 이번 여행의 운전은 나 혼자만 하게 된다. ㅠㅠ

▲ 솔스베리 거리(강경랑, 이강욱)
론 네 집이 런던 서쪽 끝이라 시내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안 걸려서 좋다. 고속도로를 3시간쯤 달려 인구 5만 명의 마을 솔스베리(Salisbury)에 도착했다. 스톤헨지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솔스베리 대성당에는 의회민주주의의 효시(嚆矢)라는 대헌장(Magna Carta – 1215년 존왕이 서명) 원본 네 개 중 하나가 있다. 여기 것이 제일 잘 보존 되었다고 한다. 또 음악가 헨델이 묵었던 곳이라고 해서 내가 1994년에 일부러 와 본 곳이다. 이 곳에서 대성당, 시내 구경과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스톤헨지로 갔다. 내가 94년에 왔을 때는 차를 바로 옆에 주차시키고 돌 위에도 올라갔는데 지금은 입장료를 받고 돌 위엔 못 올라가게 한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2,500년 전쯤 세워졌으리라고 추측한다. 용도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신석기, 청동기 유물이 많이 발굴되는 지역 복판에 있다. 커다란 돌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심이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종교적 제단으로 쓰인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돌도 이 지역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4~50 km는 떨어진 지역에서 나오는 돌이다. 그 먼 곳에서 원시인들이 어떻게 이 큰 돌을 여기까지 운반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 돌무더기는 평야를 차로 달리는데 갑자기 앞에 나타나 사람을 흥분시킨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스톤헨지(Stonehenge)

▲ 스톤헨지에 대해 설명하는 오디오를 내가 듣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한의 중심지였던 전라북도 고창에 고인돌이 1만 5천 개쯤 있다. 전 세계의 이런 돌문화 유산 전체의 반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이 돌들의 가치를 몰랐을 때다. 무식한 어느 고창군수가 벌판에 있는 고인돌을 트랙터와 트럭을 동원해 바다에 버렸다. 밭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은 고창 고인돌은 스톤헨지처럼 유네스코문화재로 등기되었다. 내가 3명에게 “너희들이 이 곳이 무슨 목적으로 쓰였는지 직감이 가는 대로 말해봐라” 했더니 평소 조용하던 강욱이가 갑자기 “집이요” 한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모두들 웃었다. 이 발언 한 마디로 강욱이는 계속 구박을 받는다. 특히 한참 웃을 나이인 고교생 경랑이는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참씩 웃는다.
다음은 나의 단골 방문지인 옥스포드 대학이다. 스톤헨지에서 멀지 않다. 역시 내 친구 해리(Harry Fernley)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돌봐준다. 반년 전 보다 해리가 훨씬 건강해져서 보기도 좋고 내 마음도 편하다. 나는 늘 하던 순서대로 옥스포드대학을 우리 일행에게 먼저 구경시켜준 후 클럽에 가서 다면지도기를 알선했다. 지난 번처럼 ‘FCUK’ 란 교회를 클럽으로 바꾸어 놓은 곳에 가서 저녁도 먹고 바둑도 두었다. 오늘도 해리가 쏘았다. 런던에서 론이 와서 우리와 합류했다. 론은 자기 아들이 옥스포드에 있으니까 핑계만 있으면 오는 것 같다. ^^ 나도 우리 아들에게 똑 같이 한다. 그 게 아버지 마음인가 보다. 나는 이 날 모르고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우고 반 나절을 방치했다가 80파운드가 넘는 벌금딱지를 받는다.

▲ 옥스포드 바둑클럽 식사(교회를 클럽으로 바꾼 곳)


▲ 식사 후 지도대국
해리가 나에게 “작년에 옥스포드 바둑회원 한 명이 타계했는데 내일이 1주기이다. 여기서 한 시간 반 걸리는 버킹햄(Buckingham) 그의 동생 알렉스(Alex) 집에서 추모모임이 있다. 대사배가 모레니까 버킹햄도 구경할 겸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나는 바둑회원 추모 자리라 길래 호기심에 가기로 했다. 버킹햄이 궁전 이름 말고도 마을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해리의 신세를 안 지려고 버킹햄 가는 길에 있는 비스터 마을에 숙소를 예약을 해 두었다고 거짓말하고 옥스포드를 떠났다. 옥스포드는 비싸다. 그런데 비스터에 오니까 숙소가 없다. 한 시간쯤 헤맨 후 할 수 없이 내가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이 무전기로 찾아주어 간신히 그 근처 고속도로 입구에 있는 모텔에 묵을 수 있었다. 값은 옥스포드의 반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비스터(Bicester) 쇼핑가로 나갔다. 수 십 개의 명품 점이 거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이 따로 있다. 작년 해원이, 하진이와 왔을 때 ‘클라크’ 구두 한 벌을 39파운드에 샀는데 사이즈가 안 맞는다. 1 년 동안 안 신고 있다가 가져 왔다. 점원에게 말하니까 “영수증을 달라”고 한다. “없다” 니까 “그럼, 매니저를 만나라”고 한다. 내 설명을 듣고 매니저가 나에게 “맞는 사이즈가 있느냐?”고 한다. 내가 “있다” 며 미리 봐 둔 걸 가져오니까 선선히 바꿔준다. 내가 보기에도 내가 가져온 미색 구두는 때가 묻어 있어 미안하다. 거기에다가 현재는 이 구두가 세일이라 32파운드다. 차액 7파운드까지 준다.
이 때 경랑이가 오더니 “교수님, 제가 가방 하나를 샀는데요. 제 영어로 통했어요” 하며 자랑한다. 외국의 첫 경험이 신기한 한참 좋을 나이다. 내가 경랑이에게 “너는 행운아인 줄 알아라. 내가 고등학생 때는 외국여행은 상상도 못했다. 부모님에게 감사 드려라” 했다. 한국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한 시간 반 거리의 런던에서도 한국교민이 많이 찾아 온다. 내가 차 한잔 마시고 앉아 있으니까 우리 일행이 쇼핑을 마친 후 다 모인다. 우리는 버킹햄으로 향했다.

▲ 비스타(Bicester village) 매장 거리 – 옥스포드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버킹햄에 도착하니까 아직 11시 밖에 안 되었다. 약속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다. 마침 오늘이 주말이라 이 곳에 벼룩시장이 섰다. 우리는 시골마을 시장에 갔다. 물건이 싸니까 사범들이 이 것 저 것을 산다. 나는 CD 몇 장을 샀다. 한 장에 우리 돈으로 3천원쯤 한다. 이 걸 여행하면서 계속 듣고 다녔다. 여기서 구경한 후 우리는 알렉스 집으로 갔다. 우리는 그의 식구들을 먼저 만났다. 고인의 어머니가 생존해 있다. 이 집에서 50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모임장소는 뒷마당이다. 오늘 참석자들이 먼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아 준다. 바둑을 아는 사람들이라 고수들의 방문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옥스포드에서 해리도 왔다.
가든 B-B-Q 추모모임에서 나는 고인 얘길 들었다. 바둑을 무척 사랑하던 회원이었다. 형제가 20년 간 옥스포드 바둑클럽엘 빠지지 않고 나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와인을 약간 섞은 과일펀치를 잘 먹자 그들이 자꾸 만들어서 대접한다. 식사 후 이 근처에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고등학교가 있다고 해서 나는 젊은 사람들을 다 보냈다. 나는 남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 시간 후쯤 일행이 돌아와서 학교가 너무 좋아서 감명 받았다고 한다. 경랑이가 나에게 “영길이 오빠가 통역을 맡았는데 못 믿겠어요. 특히 1년 학비가 1억 3천만 원이라는데 교수님이 확인 좀 해 주세요” 한다. 내가 물어 보니까 1천 3백만 원이다. 경랑이가 또 웃기 시작한다. 영길이는 이 건으로, 강욱이는 스톤헨지를 집이라고 한 일로 경랑이에게 단단히 약점이 잡혔다.

▲ 버킹햄 벼룩시장

▲ 1주기 추모 모임

▲ B-B-Q 먹은 후에 해리와 함께

▲ 고등학교에 간 팀
대사배가 열리는 포터스 바(Potters Bar)에 가는 길에 세인트 올반스(St. Albans)에 가서 영길이의 짐을 내려 놓기로 했다. 이 때는 영길이가 영국사범으로 올 계획이었다. 가는 길에 영길이에게 수동 운전연습을 시키기로 했다. 어느 시골 벌판에 차를 세우고 나만 차에서 슬그머니 내렸다. 조금 후 차가 움직이는데 한참 껄떡대기만 하더니 다시 선다. 그 때 놀란 경랑이가 차에서 뛰어 내린다. “왜 저희에게 내리라고 안 하셨어요? 교수님은 영길이 오빠 운전 솜씨를 알고 미리 내리셨죠?” 한다. 내가 “나는 알고 내렸고 촌놈인 너와 강욱이는 혼 좀 나라고 일부러 놔 두었다” 하니까 경랑이가 “교수님은 의리가 없으세요. 저 무지 놀랐어요” 하더니 깔깔댄다. 영길이가 영어에 이어 경랑이에게 두 번 째 허약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처음 쇼핑센터에 들어가서 “여긴 왜 이렇게 어둡니?” 했더니 경량이가 “교수님, 선글래스 벗어 보세요” 해서 벗으니까 환하다. 경랑이가 웃기 시작한다. 세인트 올반스에 오니까 왔던 곳이라 정이 들어서 반갑다. 마이크네 집에 냉장고 만한 영길이의 짐을 내려 놨다. 마이크(Mike Cockburn)가 안사범이 영국에 오면 첫 3개월은 자기가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은 캠브리지 대학 회원 한 명이 또 3개월을 약속했다. 이 짐은 영길이가 호주로 가는 바람에 이 집에서 몇 달간 묵게 된다. 짐만 부려놓고 우리는 곧장 대사배가 열리는 포터스 바로 갔다.
마인드 스포츠 센터라 여러 게임이 있는데 바둑도 그 중 한 종목이다. 나는 ‘오셀로’라는 게임을 한 동안 구경했다. 중국 아마 6단인데 일본서 살고 있다는 여자사범이 강욱이를 보더니 반가워 한다. 일본서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강욱이가 일본 말을 아주 잘 한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일본말로 소통하니까 듣기가 좀 이상하다. 론도 대회장소에 도착했는데 상위기관인 유럽연맹 회장 토니 앳킨스에게 막 지시를 한다. 알고 보니 토니가 영국에서는 협회 부회장이라고 한다. 이 날밤 론과 우리는 같은 호텔에 투숙했다. 오늘도 긴 하루였다.

▲ 대회장

▲ 우승결정판 경랑 VS 베이 거 ▲ 대사배 트로피

▲ 벨 회장과 필자 ▲ 안사범에게 한 수 배우는 영국챔피언 베이 거

▲ 마인드 스포츠 중 바둑 대회장 ▲ 영길이 반주로 내가 축가를 부른다

▲ 시니어와 주니어 부를 전승으로 우승한 오픈 챔피언 강경랑(시상은 영국 마인드 스포츠 회장)
첫 날 대회는 마인드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바둑대회였다. 경랑이가 베이 거(Bei Ge) 영국챔피언을 이기고 전승으로 우승했다. 17세라 청소년부도 동시에 우승한 결과가 되어 트로피를 두 개 탔다. 연구생 출신이라니까 누구나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회 후 사범들의 지도대국이 있었다. 나도 론과 한 판 두었다. 다 끝난 후 론과 토니가 협회 공금으로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한다. 우리는 터키식당에 가서 푸짐하게 먹었다.
식사 중 영국의 바둑발전을 위해 한국과 협조할 방법을 의논했다. 토니는 유럽연맹 회장이라 유럽 문제를 나와 상의한다. 바둑인구 증가방법이 언제나 주요 이슈다. 그들은 바둑 선진국 한, 중, 일과 손을 잡고 이 일을 수행하고 싶어 한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도 세계화를 제대로 하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국제 프로그램의 재평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을 끊임 없이 해야 한다. 프로가 못 된 젊은 강자들을 세계화에 활용해야 한다. 바둑 계의 쓸데없는 주스는 다 짜 내버리고 고인 물은 새 물로 갈아 주어야 한다.

▲ 영국 한국대사 배에 참가한 아시아계 프로 - 아마 강자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포터스 바 쇼핑센터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론과 카페에서 장시간 대화를 했다. 서양인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영국인과 대화를 하면 합리적이다. 자기 생각을 논리에 실어 전개하는 실력이 한국인 보다 앞섰다. 대화문화가 발달된 사회에서 자라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서열사회라 인간관계가 종적 질서를 유지한다. 자연히 1대1의 대화가 거북한 경우가 많다. 횡적 질서의 인간관계를 가진 서양인들과 대화를 하면 답답하지가 않다. 자기 의견에 대해 똥 고집이 없다. 이 날 우리는 호텔로 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한국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내가 만든 대회라 나로선 보람을 느낀다. 개회식 사회는 토니 앳킨스가 본다. 개회사는 대사를 대신해서 최문화원장이 대독했다. 최원장이 5개월 전보다 협조적이다. 오늘은 상냥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영국인들이 바둑을 진지하게 대하는 걸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대회창설자인 내 인사말에 이어 론 벨 영국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내가 사범들을 소개하는 걸로 개회식이 끝났다.

▲ 런던 시내 구경(코벤트 가든)

▲ 런던 시내
우리가 버킹햄에 가느라고 런던 구경을 아직 못 한 걸 론이 안다. 나에게 “지금 오전 10시니까 런던에 기차로 가서 사범들에게 시내구경을 시켜 주고 폐회식이 있는 저녁 6시까지 오라”고 한다. 나는 곧 런던으로 떠났다. 우리는 피카딜리 역에서 내린 후 피카딜리 광장 – 리전트 – 옥스포드 – 채링크로스 - 트라팔가 광장 – 웨스트민스터사원 – 코벤트가든 – 차이나타운을 4~5시간 동안 걸어서 돌았다. 런던 중심가는 거의 다 커버한 셈이다. 경랑이가 “교수님, 런던에는 높은 건물이 서울보다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도 서울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다워요” 한다.

▲ 미술관

▲ 트라팔가(Trafalgar) 광장. 저 밑에 경랑이가 앉아 있다.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시간을 많이 보내 6시 폐회식에 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서둘러 지하철로 킹스 크로스(Kings Cross) 역에 왔다. 다시 포터스 바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러 역원에게 “포터스 바(Potters Bar)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저 쪽으로 가라며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소를 가르친다. 내가 다시 말하니까 그 때서야 웃으며 “관광객인 줄 알았다”고 하며 플랫폼 번호를 말해 준다. 포터스 바 역에 내리니까 6시 10분 전이다. 대회장소까지는 약 1km다. 우리는 뛰기로 했다. 대회장 정문을 들어서면서 발 밑에 턱을 못 보고 내가 걸려서 넘어졌다. 뛰다가 넘어졌는데도 다행이 별로 안 다쳤다. 숨을 몰아 쉬며 우리는 폐회식장에 들어 갔다.

▲ (좌) 앳킨스 유럽회장, 최문화원장, 베이 거 영국챔피언, B조 우승자, 필자, 강경낭, 이강욱, 안영길사범, 벨 영국회장
지도다면기까지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까 마음이 홀가분하다. 론이 나에게 “런던에 가서 비싼 호텔에 묵을 필요 없이 우리 집에 가서 지난 번처럼 하루 더 자자”고 한다. 나는 그 제안을 고맙게 받았다. 론 네 집에서 우리끼리 편 내기 바둑을 두었다. 내일 벨기에 브루셀에 가서 좋은 카페에 가서 한잔 사기다. 내일은 여행하는 일 외에 별다른 일이 없으니까 우리는 마음 편하게 바둑을 즐겼다. 그런데 나와 영길이 조가 강욱이 경랑이 조에게 지고 말았다.
내가 약한 것이 패인이었다.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기회에 내가 그 걸 못 보고 다른 곳엘 두고 말았다. 삼천포로 빠진 거다. 강욱이와 경랑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내일 벨기에 브루셀에 가면 프랑스에서 파비앙(4단)이 와서 기다리기로 되어 있다. 론과 차 한잔 한 후 우리는 잠자러 들어 갔다. 론이 곧 은퇴하고 스코틀랜드에 가서 살기로 했다고 한다. 다음엔 그리로 놀러 오라고 한다. 나도 한국에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영국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잔 내기로 한 연기바둑
2010년 11월 현재 영길이는 호주국가사범으로 자리를 잡았고 영주권도 취득했다. 시드니 한인 촌에 ‘안영길 도장(Young Go Centre)’을 큼지막하게 개장했다. 영어도 잘 한다. 이제 장가만가면 된다. 강욱이는 베트남 호치민 시에 사범으로 있으면서 베트남 바둑계를 활성화 시키고 있다. 경랑이는 네덜란드에서 바둑사범으로 일 하고 있다.
<영국바둑역사>
1. 지도자
첫 영국대회가 1968년 옥스포드의 예수대학에서 열렸다. 내가 전편에 소개한 해리포터 촬영장이다. 36명이 6라운드 접바둑대회로 열렸다. 여기 정기총회에서 데릭 헌터(Derek Hunter)가 총무로 선출된 후 17년간 봉사한다. 그 후 단 세 명의 총무만 바뀐다. 맥페이든(1978~1982), 토빈(1982~1985), 앳킨스(1985~2002) 등이다. 이 중 맥페이든은 영원한 챔피언으로, 앳킨스는 유럽바둑연맹회장으로 바둑계에 공헌한다. 앳킨스도 18년간이나 총무로 일했다. 한편 홀스(Mark Halls)는 재무를 맡아 20년 동안 일한다. 이들 덕에 영국협회는 안정된 성장을 한다.
1971년 존 바스(john Barrs)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영국 바둑계는 충격에 빠진다. 그는 영국 바둑계의 대부였고 지존이었다. 로즈(Fransis Roads)가 새 회장에 선출된다. 노년의 로즈는 2010년 11월 ‘김인배 시니어 바둑대회’에 가는 길에 부산에서 나와 만나 저녁을 같이 보냈다. 로즈 때부터 바둑계는 바스 혼자 결정해 오던 일을 이사회에서 합의로 결정하게 된다. 로즈회장 이 후 영국회장은 히친스(Bob Hitchens 1976-1977), 달리(Andrew Daly 1977-1978), 카슬다인(Brian Castledine 1978-1979), 매닝(Toby Manning 1979-1983), 그랜빌(Richard Granville 1983-1985), 토빈(Norman Tobin 1985-1991), 릭스(Alex Rix 1991-1999), 벡스필드(Alison Bexfield 1999-2001), 고스(Simon Goss 2001-2006) 등이 역임한다.
2006 - 2009년 친한파 론 벨(Ron Bell) 회장을 거쳐 2009년 현 회장 다이아몬드(Jon Diamond)가 취임했다. 70년대에는 2년제를 적용하여 자주 회장이 바뀌었다. 그러나 카슬다인 회장이 폭포절벽에서 추락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임기2년제는 없어진다.

▲ 매튜 맥페이든/ 존 다이아몬드 / 론 벨 / 토니 앳킨스
2. 정기총회
영국전국대회 첫 주말에 언제나 정기총회가 열린다. 전국대회에 속기전(Lightning tournament)을 사이드 이벤트(Side Event)로 넣고 스위스 맥마흔 제도로 대회를 운영하는 결정 등을 이 회의에서 한다. 모든 참가자가 끝까지 바둑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제도는 제 4회 리즈(Leeds) 대회 때 채택 된다. 이 후 이 제도는 많은 수정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이 제도는 뉴욕바둑클럽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나 영국이 고친 것을 미국이 역수입 한다. 그래서 맥마흔제도는 영국이 발명한 제도가 된다.

▲ 영국의 최고봉 스코틀랜드의 벤 너버스(Ben Nevis 1,343m)산 영국엔 높은 산이 없다
3. 유럽대회(EGC)
1966년 런던 유럽대회 이 후 여러 번의 유럽대회를 영국이 치른다. 1971년 브리스톨(Bristol), 1976년 캠브리지(Cambridge), 1983년 에딘버러(Edinburgh), 1992년 캔터베리(Canterbury)가 유럽대회를 개최한다. 2001년 아일랜드(Ireland) 더블린(Dublin) 유럽대회도 영국협회의 협조로 개최한다.

▲ 2차 대전 당시 독일에게 폭격 당한 런던
4. 전국대회
전에는 전국대회처럼 지방대회도 하루 3라운드로 이틀 대회를 운영했으나 1970년 웨쎅스(Wessex)대회에서 제한시간을 줄이고 하루 4회전 대회를 만든다. 현재 약 20개의 지방 바둑대회가 하루 만에 끝내고 있다. 그러나 런던 오픈은 4일, 만체스터, 웨일즈, 스코틀랜드 대회는 이틀에 걸쳐 열리고 있다.

▲ 영국바둑대회


▲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워털루 전투
▲ 영국 국기(Union Jack) ▲ 국장
5. 바둑홍보
후지쯔와 도요타 유럽예선이 주요 국제행사였다. 1997년부터 마인드 스포츠 대회에 바둑이 참가한다. 첫 런던오픈은 제국대학(Imperial College)에서 열렸다. 런던바둑센터가 이와모토 9단의 스폰서로 개관 되고 1978년까지 다우시(Stuart Dowsey) 와 미첼(David Mitchell)이 운영한다. 이 센터가 연 동안이 전성기였다. 언제나 바둑을 둘 수 있고 지도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둑을 홍보하고 바둑세트와 서적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런던의 비싼 사무실 값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아쉽게도 문을 닫는다. 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동안에 바둑회원은 천명을 넘어서고 TV와 라디오에서도 몇 번 바둑이 소개된다.
▲ 영국 바둑계 기록을 보관한 상자들
▲ 테임스(Thames) 강(江)
6. 영국의 단(段)
영국 단위는 유럽과 수준을 같이 한다. 영국 6단인 맥페이든이 유럽 챔피언을 4번 우승한다. 유럽 단은 일본, 미국 단 보다 세다. 유럽에선 한국 단이 세계에서 제일 세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아마 단도 세고 프로 초단은 일본 9단보다 세다고 혀를 휘두른다. 그런데 지난번 해외파견 프로기사를 전부 8단으로 올리기로 한 한국기원 처사는 나는 이해가 안 간다. 유럽엔 아마 7단까지 있어 그들 보다 단이 높아야 한다는 관계자 얘기다. 그러나 프로 뒤에는 4P, 9P하는 식으로 끝에P자를 붙이니까 구별이 금방 된다. 해외엔 중국 프로 저단 자들도 많은데 그들에게 지는 8단은 왜 만든 건지……
▲ 현대식 건물의 런던 시청
7. 영국 바둑계의 과제
1980~90년대에는 바둑클럽 수가 50~60개에 회원은 500~600명에 머문다. 정체기다. 1만 7천 명의 바둑인구를 더 늘리는 게 영국바둑협회(BGA)의 당면과제다. 한, 중, 일 프로기사들의 방문, 1989년 일본 명인전, 2002년 일본 기성전 도전기 개최는 바둑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TV에 바둑이 가끔 나타난다. 한국대사배도 생겼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이다. 그래서 바둑과외교실, 청소년 대회를 중요시하고 있다. (http://www.britgo.org/bga)
▲ 런던교(橋) 빌딩(London Bridge Building) ▲ 과거와 현대(Gherkin building)
8. 역대 챔피언
챔피언 결정전은 존 바스의 독주시대를 지나 1960년대부터는 챔피언과 도전자의 5번기가 정착됐다. 1993~1996년 챔피언 장(Shtai Zhang)은 영국에 거주한 중국의사였다. 70년대 후반부터는 맥페이든이 장기집권이 시작된다.
영국 역대 챔피언과 5번기 성적

▲ 영국지도
여기서 영국 편을 마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
TYGEM / 한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