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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문뚜기가 떴다!

정관장배 역전의 요정 문도원

2011-01-13 오전 10:56:27 입력 / 2011-01-13 오후 1:21:53 수정



S#1. 경쾌한 다섯 걸음, 그러나 뜨거운!


퐁퐁퐁퐁퐁-
조약돌이 수면 위로 나는 물수제비처럼 그녀가 달린다.
벌써 다섯 번이나 튀었다.
그녀의 도약은 경쾌하지만 사실 과정은 뜨겁고 처절하고 눈물겹다.
신묘년 새해 벽두에 중국 항저우를 무대로 연출되고 있는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드라마가 당찬 신인 문도원의 열연(熱演)으로 흥행몰이를 하고있다.

오후 세시부터 퇴근시간 무렵까지 한반도의 바둑 팬들은 좌불안석, 좀처럼 편안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단 한 판도 편하지 않은 문도원의 바둑.
그러나 묘하게 뒤로 갈수록 반전의 클라이맥스와 함께 기어코 이겨내는 바둑.

▲종국 후 문도원(오른쪽)이 무카이 치아키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아아! 이 끈적끈적한 뒷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난전의 연속이라 날마다 미심쩍으면서도 어느새 우리는 그녀를 믿고 있으며 후반에 그려지는 찬란한 추월의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바둑이라면 죽고 못 사는 오빠부대, 삼촌부대들이 그렇게 끙끙 앓고 있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만 스무 살의 문도원이 새해 아침 바둑을 통해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중이다.

'포기하지 마세요. 반드시 어딘가에 활로가 있을 겁니다.'

연승전의 묘미는 꼭 누군가 박차고 나가는 연승의 폭주에 있다.
매년 스타가 탄생했는데 이번에 문도원이 야무지게 연승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러나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부끄러운 속내를 밝힌다.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는 문도원.

"내용이 깔끔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상대의 실수 덕분에 이겼습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뼈저린 자아비판이라는 걸 어머니께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확인한다.

"이렇게 연승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바둑 내용이 너무 엉망이어서 편치 않아요."

진정성이 가득한 고백이라 더욱 아름다운 프로 문도원.
어리지만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흑백 하모니가 아름다운 악보를 남기고 싶은 열망이 자연스럽게 연승의 신화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벌써 출전자 삼분지 일이 지워진 정관장 대진표에서 중국과 일본의 대기선수들은 꽤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뭐 저런 스타일이 있담? 어떻게 뚫어야 되지?"

차라리 상대가 화려한 고수라면 지키고 기다릴 것이고 지더라도 부담이 없는데 국제무대에서 이름도 생소한 문도원과 상대하려니 왠지 답답할 것이다.
투박한 듯 보이지만 한발 한발 추격해오는 지구력이 만만치 않다.
개미지옥이 연상되는 기풍.
나를 이기려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라.
문도원의 기보는 그렇게 읽힌다.
새해의 문턱에서 그녀가 19로에 땀땀이 새기는 역전의 스토리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순수한 집중’에 있으리라.


▲ 한살 어린 동생 김혜림과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문도원.

S#2. 부산의 퍼즐 소녀

문도원은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림조각 맞추기 퍼즐에 신통한 재주와 집중력을 보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애 희한하네. 혹시 영재 아닐까?'

부모들은 대개 그런 희망 성 환상을 품는다.
어머니 장태경 씨는 그런 도원이를 바둑교실에 보냈다.
부산의 이정상 바둑교실 원장이 첫 스승이다.
낯가림이 심한 도원이는 바둑교실에 가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바둑돌만 만졌다.
내성적인 성격이 더 심화 될 것 같아 다른 학원에도 보낼까 싶었는데 도원이는 오로지 바둑만 좋다고 했다.
도원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IMF 위기로 KT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일을 찾았는데 번번이 여의치 않았다.
그 어려운 와중에도 도원이는 대구의 김동수 사범 문하에서 바둑공부를 계속했다.
기재가 보인다는 김동수 사범의 진단에 부모들은 막연하게 바둑 책에 적힌 저자에게 연락했다.
프로기사 강만우 9단이었다. 강 9단이 도원이를 테스트하더니 싹수가 있다고 평하며 장수영 도장을 추천해주었다.
가족들은 도원이의 미래를 위해 무작정 상경을 결심했다.
도장이 가까운 갈현동에 자리를 잡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둑공부를 시작했다.



"도원이는 지금까지 제 기억에 단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여본 적 없었던 것 같아요. 좀처럼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지만 말없이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거든요."

도원이는 연구생이 되었을 때 지독한 슬럼프를 맞았다.
또래로 박지연, 이슬아 등 뛰어난 친구들이 있어 시원하게 그 벽을 넘기 어려웠다.
연구생 3조에서 4조로 강등한 날 도원이는 무표정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보더니 조심스레 다가와 품안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런 딸을 안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원아. 힘들면 바둑을 그만 둬도 좋아. 넌 지금부터 공부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도원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거면 우리가 왜 서울로 왔나요? 끝까지 해볼게요."



오히려 도원이가 엄마를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역경을 딛고 입단한 문도원이 정관장배를 통해 '역전의 여왕'으로 통쾌한 승전보를 쓰고 있으니 내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뒤집기는 연구생 시절부터 그 바닥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다.
입단하기까지 둔 모든 바둑이 거의 역전승이었으며 프로에서 거둔 승리도 역전승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포석이 약해 그런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문도원의 네비게이션에 입력된 바둑의 행로가 그런 방식이라는 뜻이다.
퍼즐을 풀면서 자극을 받고 단련된 그녀의 두뇌가 빠르고 편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
생존의 본능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생각해보라. 세상은 넓고 뛰어난 천재들은 많다.
출력이 강한 차종과 스피드 경쟁을 하면 엔진이 과열될 게 뻔하다.
그러니 미로의 코스, 사하라 사막의 다카르 랠리나 진흙탕길 코스로 이끌어 끈기 있게 표지판을 보고 좌표를 찍으며 마지막 순간에 스퍼트를 하는 방법. 이 선택이 진화를 거듭하며 마침내 정관장배에서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S#3. 메뚜기보다 요정이 어울린다.


문도원은 지금 중국에서 날마다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고 있다.
벌써 엿새째 혼신을 다해 큰 승부를 치르고 있지만 아침햇살을 맞는 그녀의 표정은 유리창처럼 맑고 밝다.
정관장 한국대표 팀원들의 격려가 든든하고 대국 장소에서 마주치는 중국, 일본 기사들의 묘한 눈빛도 즐길 만하다.
호텔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면 고국의 오빠 삼촌부대들이 보내는 응원 메시지에 감동한다.
하루아침에 밀려든 이 놀라운 기적이라니!
혼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게 미안해 팀원들을 보면 머리부터 긁는다. 그러나 똘똘 뭉친 팀원들은 착한 1번타자 도원이의 심성을 잘 알기에 어깨를 두드려준다.

"쭉쭉 밀어버려. 우린 괜찮아. 앉아서 우승상금 받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왕십리의 무여회 연구실 분위기도 날마다 뜨겁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바둑 때문에 멤버들 모두 심장이 벌렁거리고 혈압의 상승 하강 그래프가 극심하게 요동친다고 한다.
타이젬에도 문도원 팬들이 부쩍 많아졌다.

'오늘은 또 그녀가 어떤 줄타기 마술을 보여줄까?'

베팅 4구간의 묘미를 기다리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녀를 메뚜기라 부른다. 유재석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친근하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투혼에 걸맞지 않다.
이민진이 '정관장의 여신'이고 이슬아가 '광저우의 요정'인데 '메뚜기'는 좀 약하지 않은가?
두 사람의 이미지를 합성해 필자는 '정관장의 요정'이라 문도원을 칭하고 싶다.


▲ 노래교실 선곡 도우미로 나선 문도원.

지난 12월에 필자는 문도원, 김혜림과 함께 온양의 어르신 쉼터를 찾아가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 문도원은 노래방기기 번호입력담당을 맡아 어르신들의 쇄도하는 요청을 친절하게 받았었다.
식판도 나르고 떡과 선물도 나눠드리며 하루를 보냈다.
상경하는 차안에서 그녀에게 제안했다.

"정관장배에서 2승만 올리면 타이젬포커스로 밀착취재 들어갑니다."
"정말이죠? 꼭 해버리고 말겠어요. 그 이상이면 어떡하실 건가요?"

그때만 해도 그 이상까지는 상상이 가지 않아 2승을 조건으로 걸고 말았다.
그런데 문도원, 이 앙팡테리블, 팜므파탈, 무서운 숙녀가 조건의 따블을 때리면서 경쾌하고 낭랑한 협박 문자를 날려온다.

"내기, 기억하시죠? 그렇지만 봐드릴게요. 중국 현지에서 김지은 언니가 사진도 예쁘게 찍어주고 잘 소개해주고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마세욤. 후훗"

역시 착하다. 그러나 묘하게 감겨오는 이 부담감은 무엇일까?
약속은 지켜야 마땅하지.
반복되는 철야작업으로 머리숱은 하염없이 헐해지고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유리창 틈으로 스며드는 시베리아 기단의 한기에 곱은 손가락 비벼가면서 나는 밤새 그녀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라면 백발이 되는 그날까지라도 즐거울지니.
정관장의 요정 문도원의 상큼한 눈웃음, 뜨거운 투혼에 틀림없이 모든 바둑 팬 여러분들도 1월이 즐거우리라.

[P.S] 오늘 6차전도 문도원 2단이 승부를 떠나 아름다운 기보를 그릴 수 있도록 타이젬 가족 여러분들께서 응원 메시지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정관장 보는 재미를 위해 T머니 3억 걸겠습니다. 
문도원으로 삼행시도 좋고, 정말 힘이 솟는 격려 메시지 남기신 분들 두루 선정해서 나눠보지요.


장원 1명 : T머니 1억포인트
우수 2명 : T머니 5천포인트
장려 100명 : T머니 100만포인트

 
TYGEM / 글 김종서/사진 김지은/편집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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