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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봄날에 노래하라

대불대학교 바둑학과를 가다

2011-05-26 오전 11:37:13 입력 / 2011-05-26 오후 12:58:17 수정


▲영암 월출산

S#1. 國手의 길, 가운데로

호남은 한국바둑의 지형도에서 국수(國手)들의 봉우리가 첩첩 들어선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에 조남철 선생과 이창호, 그리고 전남에 김인, 조훈현, 이세돌이 국수의 계보를 잇는다.

백두대간에서 서남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소백의 맥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월출산으로 용솟음치는 곳.
그 자리가 바둑의 명당이 된다.

월출산이 서북풍에 깎여 기암괴석의 병풍을 두른 북사면(北斜面) 영암에 신묘하고 화려한 기풍을 자랑하는 조훈현이 배출됐고, 따스한 남도의 햇살을 받아 숲이 우거진 남사면(南斜面) 기슭 강진에 두텁고 신중한 기풍의 김인이 배출됐다.

그 산맥이 목포 앞바다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 고개를 쳐든 곳이 바로 신안이다.
잠수함처럼 상대가 움직임을 포착하기 어려운 이세돌의 기풍을 필자는 풍수로 짐작한다.



강진, 영암, 신안으로 갈리는 삼거리 한복판이 영산강 하구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 바둑학과를 품은 4년제 대학이 서 있다.
대불대학교 바둑학과.
그 땅 끝 지방대학에 어떤 연유로 바둑학과가 개설됐을까?

▲대불대학교 박종욱 교수.


▲바둑학과 강의실

바로 스포츠학부의 박종욱 교수가 바둑의 미래를 내다보고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아주 우연하게 한 사람의 열정에 의해 바둑학과가 만들어지고 바둑을 공부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모인 것이다.

그러나 바둑의 지도와 국수들의 산맥을 조망한다면 이를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바둑 사를 주도한 국수 세 사람의 고향 영암, 강진, 신안으로 갈라지고 합쳐지는 한가운데의 삼호 땅에 대학 바둑학과가 생겼으니 말이다.


▲대불대 전경

영암에는 수백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바둑의 전당이 세워지고 강진에는 세계 시니어 바둑대회가 열리며 신안에는 바둑리그 팀이 만들어졌으니 이쯤 되면 바둑 성지 트라이앵글로 명명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뿐만 아니라 강진에는 40년 동안 바둑 사를 연구한 바둑서지학자 안영이(安玲二,) 선생이 거주하니 빛이 더한다.
감히 당대 최고의 국수들과 안영이 선생의 이름 아래 줄을 서기 황송하지만 필자 또한 대불대가 자리한 영암 출신이다.
어렸을 때 대불대 옆으로 흐르는 수로에서 숭어도 잡고 망둥이와 게를 잡으며 자랐다.

월출산을 바라보고 영산강 수로에서 뛰놀던 소년이 청춘의 먼 길을 돌아 바둑여행을 통해 옛터를 걷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어떤 운명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인연으로 대불대를 찾는 감회는 각별했다.


▲대조루 강의

S#2. 바둑 활성화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불대 캠퍼스는 축제로 요란했다.
축제 마지막 날 스포츠학과를 대상으로 필자의 특강이 잡혀 있었다.
주제는 ‘바둑 활성화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
미디어란 TV와 케이블, 신문과 잡지, 인터넷으로 압축되지만 그 중 매체와 독자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미디어는 단연 인터넷일 터.
특강을 기획한 박종욱, 이병두 교수의 주문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필자는 정장대신 두건과 셔츠 차림으로 강단에 섰다.
편하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위력을 사례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볼거리 위주의 아이돌 음악에서 영혼을 뒤흔드는 진정한 가창력의 세계로 대한민국 음악계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미디어의 힘이고 역할이리라.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빈잔'과 '여러분'을 열창한 임재범으로부터 우리는 영웅서사적인 스토리를 읽는다.
음악과 바둑의 세계는 판이하지만 바둑에서도 미디어 매체에서 뛰는 이들이 단순히 기전 소식만을 쫒아 다니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바둑 팬들에게 깊은 울림과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한다면 조금씩 우리의 바둑문화의 토양도 기름지게 되고 저변도 확장되리라 믿는다.
그런 취지에서 '타이젬스페셜'을 통해 따뜻한 바둑 이야기를 써왔노라 토로했다.


▲이날 강의에는 전남바둑협회 임원 20여명이 함께 참석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적어도 몇 명의 친구들이 가슴으로 공감한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강의를 하러 왔다지만 필자는 거꾸로 학생들에게 자꾸 물었다.

"바둑 재미있니?"
"앞으로 이 길에서 어떤 가치를 찾고 싶니?"
"지방이라 불편한 점은 없니?"
"공부는 어떻게 하니?"

▲기숙사 08학번 모임-치킨 먹는 장면


▲대불대의 청춘남녀. 왼쪽부터 채현기, 함영우, 송예슬. 대불대의 에이스 함영우는 채현기 송예슬과 조를 이뤄 전국체전 페어 부문에서 2연속 우승했다.

뻔한 물음이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재미있어요. 학과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니까 날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기분입니다.”
“지방이라 교통은 불편하지만 대신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친구들과 하루 종일 함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의가 깊은 편이죠.”

▲빛광회 부시샵 수담예찬, 고문 하얀유나

▲전남바둑협회 이만구 회장의 격려사.


S#3. 남도의 바둑가족

대불대 캠퍼스에는 5월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바둑학과 강의실에서는 바둑 인들만의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지방대학의 강점은 바로 지역 인들과 소통이 활발하다는 것.
전남바둑협회 임원들과 여성연맹, 목포지부와 영암지부 그리고 타이젬 동호회 빛광회에서 대거 찾아와 학생들을 격려했다.


▲주민과 학생들의 바둑 장면 이모저모

같은 지역에서 바둑을 매개로 주민들과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그림은 보기에 흐뭇했다.
바둑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대학을 찾아와 학생들의 등을 토닥거려 주고 기꺼이 삼촌과 이모되기를 자청하니 실로 고마운 일.
바둑 실력이 강한 학생들은 반상에서 주민들의 멘토가 되어 일대 일 수담과 복기로 보은했다.

▲대불대 바둑학과 미녀삼총사,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그녀들을 남학생들은 무척 아낀다.


▲함께 해 더욱 흥겨운 뒤풀이.

바둑을 마치고 남도의 인심이 흥건한 회식이 준비되었다.
수박과 토종돼지 수육, 겉절이 김치, 막걸리 등의 메뉴로 차려진 식탁.
거기에 바둑에 관한 이야기가 양념으로 얹어지며 바둑잔치는 깊어진다.


▲이만구 회장이 학생대표에게 격려금을 전달한다.

▲행사를 마치고 떠나는 학생들, 교수님께 90도로 인사를 한다. 요즘 대학가에서 이런 장면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바둑은 예의를 갖추는 데서 시작한다.

잔치 뒤 끝에 또 다시 바둑이 벌어진다.
타이젬 4단 실력의 아줌마 학생이 필자에게 도발해 와 두말없이 붙었다. 목포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바둑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초가 단단한 느낌이다.
정석으로 흘러가면 정통파를 극복하기 어렵지.
더욱이 아줌마들은 정신 사납게 흔들어 줄 필요가 있다.
희대의 꼼수와 함정수를 총동원해 반상에 추상화를 그려댔다.

그런데 아마계의 고수 함영우가 옆에 앉아 수순을 기록한다.
내 생애 누군가 옆에 앉아 수순을 기록하고 있는 장면은 처음이다.
그 강의실에서는 항상 그렇게 모든 바둑을 기록하는 게 법이라고 한다.

▲기록지를 보이는 아줌마. 그리고 대불대 전용기록지

망했다.
타이젬 물 4단 김 작가의 헛다리 짚기 초식은 일대 일에서만 위력을 발휘한다.
기록하는 순간 허풍과 만용의 블러핑은 낱낱이 드러나고 말 터인데 - -;;
아니나 다를까 함영우는 기록을 하면서 연신 피식피식 웃는다.


▲족구

S#4. 아파하는 너희가 언제나 중심이다

해질녘 학생들과 편을 나눠 족구시합을 했다.
진 팀의 멤버들은 타이젬 대국실에서 필자가 지정하는 회원들에게 기보해설과 강의를 1년간 해주는 조건.

이긴 팀은 타이젬 정회원권 1년 치를 증정하는 조건이었다.
학생들 중에 타이젬 9단이 많아서 정회원권을 선물하면 대국실이 활성화되리라는 필자의 계산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내기의 조건이 아니라도 승부는 언제나 치열한 법.
승패는 분명히 갈렸지만 어느 쪽도 불만 없는 한판이었다.

밤이 깊어 우리는 축제가 절정인 캠퍼스로 나갔다.
학과대항 노래자랑경연이 펼쳐지고 초대가수 쥬얼리의 공연이 자정까지 이어졌다.
캠퍼스 포장마차에서 밤이 깊도록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에 진출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과연 바둑은 어떤 길을 열어줄 것인가?
바둑계를 오래 지켜보아도 아직 명료한 길을 발견하지 못 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한없이 밝았어도 가슴에 그늘 한 자락들 간직하고 있는 듯싶었다.

그래, 바둑이 너희들에게 무엇을 안겨 주겠는가?
너희들이 길을 만들어 나가야지.
바둑으로부터 얻으려 하지 말고 너희들이 바둑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렴.
그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꿈을 털어놓았다.
전영규는 프로에 입단해 승부사의 길을, 함영우는 학문으로, 송예슬과 이상헌은 입단을 목표로, 전태용은 바둑매체의 기자로, 이현철은 아버지의 바둑교실을 물려받아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칠 생각이라고 했다.

▲자취방 라면

“작가님, 여긴 호텔이 없습니다. 누추하지만 제 자취방으로 가실래요?”
함영우가 대불대 캠퍼스 외곽에 붙어있는 자취방으로 안내했다.
아이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며 밤을 보냈다.
바둑계의 일각에 이처럼 꿈을 조각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바둑이라는 명제에 기꺼이 청춘을 불사를 만큼 뜨거운 성취동기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대불대의 바둑사관생도들이여.
이 아름다운 봄날 우리의 짧은 만남이 열정의 스파크를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시간으로 기억되겠는가?
주춤거리지 말고 뛰어라. 그리고 이 봄날을 노래하라.
아파하는 너희가 곧 세상의 중심일지니.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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