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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흐른다

가평으로 떠난 사랑의 밥차 2탄

2011-05-13 오후 3:50:38 입력 / 2011-06-07 오전 11:20:48 수정

S#1. 생각의 강물이 모여서

참 묘한 스케줄이었다.
어린이날과 맞물려 아마추어 시니어 기사들과 동행해 제주도 바둑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다음날 그들이 지지옥션 시니어 여류대항전에 출전했다.
지지옥션대회 전야제 만찬장에 필자도 참석했는데 강명주 회장과 승순선 여류바둑연맹 회장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타이젬 스페셜 ‘봄날은 온다’와 ‘봄날은 간다’를 통해 소개된 시니어 기사들의 여행기가 화제에 올랐는데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

“시니어와 여류기사들이 대전을 펼치는데 시니어들만 응원하시면 됩니까? 여류기사들도 바둑 팬들게 소개해줘야 공평하지요.”

그러자 ‘여류’ ‘여성’이란 단어만 나와도 귀를 세우는 승순선 회장이 적극 동조한다.

“우리 예쁜 딸들도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답니다.”


▲만찬자리에서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이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러자 지지옥션의 강명주 회장도 동조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면 어버이날 특집으로 여류기사들이 사랑의 밥차 행사에 나가 설거지 봉사를 좀 하시죠.”

그 한 마디 대답에 일이 착착 돌아가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은 양재호 사무총장까지 거들고 나섰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한국기원 차원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 테이블의 화제는 그렇게 이어졌다.
바둑 기사들은 팬들의 관심과 후원자들의 사랑을 먹고 활동한다.
좋은 내용의 바둑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겠지만 아무래도 주기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꾸 다양한 형태의 '나눔'을 실현하자는 거였다.

"그러면 제가 날을 잡아 연로한 어르신들을 모실 테니까 강회장님께서 가평 지지밸리 연수원을 협찬하시고 승회장님께서는 여류기사들과 달려와 설거지를 하시죠."

아주 짧은 시간에 뜻이 모아졌다.
바둑계는 이래서 좋다.
생각이 흘러 모이고 긍정의 댐을 이루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지지밸리를 찾은 90여명의 노인대학 학생들.

S#2. 노인대학 봄 소풍

가평 유명산 계곡에 지지밸리가 있다.
지지옥션 연수원을 그렇게 부른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잣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숲의 정기를 느끼게 해주는 곳. 지지옥션 바둑대회 장소로도 쓰여 바둑계 모임이 자주 이뤄지는 곳이다.

5월 12일. 90여 명의 어르신들이 지지밸리를 찾았다.
노인대학에서 필자와 함께 십 년을 보낸 분들이라 스무 번째 소풍을 온 셈이다.
사흘 동안 내렸던 비가 개어 계곡물은 콸콸 넘쳤고 바람은 따뜻했으며 유명산은 신록의 기운이 가득했다.
도시를 떠나 대자연의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소풍의 의미는 채워질 테지만 거기에 동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어르신들의 표정이 훨씬 밝아질 것이다.




▲이날 지지밸리를 찾은 어르신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기 시합,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보물찾기, 장기자랑, 퀴즈대항전, 비석치기, 자치기, 오자미 던지기 등등 레크레이션을 총동원해 어르신들의 승부욕과 추억을 자극한다.
그런 욕구들이 폭소를 부르고 웃는 만큼 노화를 방지하리라 믿는다.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노인대학은 연한(年限)의 제한이 없다. 65세에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데 보통 10년 이상씩 다니게 되니 석사 박사 학위를 몇 번씩 따고도 남는다.


S#3. 설거지라도 할게요

점심 무렵 지지옥션 바둑대회 여류대표들과 여성연맹 임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오자마자 할당된 임무는 밥차의 배식과 커피 타기.
유명산의 풍치를 감상할 틈도 없이 어르신들 틈으로 투입돼 진땀을 흘린다.


▲배식을 돕는 승순선 여성바둑연맹 회장(사진 맨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여원(세번째).


▲맛있게 드세요. 착한 바둑아가씨가 탄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우리들의 마음으로 차린 식탁, 어르신들의 표정이 더 풍성하다.


▲배식을 마친 후 먹는 점심은 꿀맛.

▲참외를 깎고 있는 강다정과 이를 바라보는 김여원.

배식을 마친 뒤 가장 늦게 밥을 먹는다.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야 하는데 막내 강다정의 칼질이 영 위험해 보인다.
'손을 베이지나 않을런지' 바라보는 김여원의 눈빛에 또 다시 여자팀의 끈끈한 정이 오간다.


▲점심 식사 후 어르신들은 다시 즐거운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즐거운 레크레이션 타임.
흥겨운 음악과 함께 노래 게임이 시작됐는데 바둑 팀에게는 설거지 특명이 떨어졌다.


바로 엄청난 분량의 빈 그릇!


▲설거지 하는 여류기사들.

집에서도 설거지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여류기사들.
그러나 오늘만은 흔쾌히 접시를 닦는다.
100개가 넘는 접시, 국그릇, 수저들…. 그러나 함께 하기에 즐겁다.


▲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연맹 임원들.

자꾸 설거지가 늦어지자 여성연맹 임원들이 거들고 나섰다.
한 시간 정도 접시를 닦고 허리를 편 그녀들이 어르신들의 게임에 초대되었다.

▲송예슬이 신발던지기를 하고 있다.

신발 멀리 던지기-
타이젬 회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송예슬은 감추어 온 신발던지기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이십 대의 파릇파릇한 기사들보다 여성연맹 임원들의 다리 힘이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청 멀리 나갔다.


▲선물을 전달하는 여자기사들.

신발을 멀리 던져 상품을 받는 기사들.
여성바둑 인들이 어르신들께 준비해 온 선물을 증정한다.
타이젬에서도 따로 준비한 소정의 선물을 전달했다.


▲이야기하며 걷는 여자기사들.

S#4. 지금이 바로 봄이다


지지옥션 시니어 여류대항전이 올해부터 아마추어 기사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프로들은 12명, 아마추어들은 8명씩 출전한다.
그런 잔치에 초대된 아마추어 여류기사들의 마음가짐은 비장하다.
8명 각자에게 물어보니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저씨들에게 질 수 없죠!" 지지옥션배를 위한 긴급 회의.

“그래도 우리는 젊잖아요!”

제주도에서 시니어 기사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는 판수가 많잖아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으니까 유리하지 않을까요?”

프로들의 격돌만큼이나 아마추어 성대결도 흥미진진하다.
아니나다를까 지지옥션의 뚜껑을 열어보니 2:2로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떠나기 직전 어르신들과 함께.

모처럼 따스한 봄날 단합대회를 겸해서 밥차 봉사를 나온 그녀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들과 함께 어울린 어르신들도 아주 흡족해했다.

“바둑 두는 아가씨들은 왜 그렇게 예쁘지? 바둑을 얼굴로 두는감?”
이렇게 조크를 던지는 분도 계셨다.
바둑 재능 봉사가 아닌 궂은 일 봉사였지만 그렇게 무엇인가 찾아서 하는 행위도 중요하리라.
노인대학 어르신들에게 이 하루는 봄날의 절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지밸리를 찾아온 여류들에게도 이 하루가 좋은 기운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P.S)
작년 12월 사랑의 밥차 행사 도우미로 나섰던 문도원2단이 말했다.
"무의탁할머님들께 마음이라도 드리고 오니 정말 기분이 좋고 표현할 수 없는 기를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곧장 정관장에 출격해 신들린 7연승을 올렸다.^^

5월, 타이젬은 바둑여행을 자주 떠날 예정이다.
제주도와 가평을 거쳐 다음 주에는 남도 바둑기행을 가고자 한다.
기전(棋戰) 소식만 가득한 초기화면은 좀 답답하지 않은가?
기사들의 전적만 바둑콘텐츠가 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바둑 팬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 그 곳이 바로 바둑계가 되고 중심이 되는 것.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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