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5 오전 10:00:44 입력 / 2011-07-25 오후 2:51:18 수정
▲ 땅끝마을 해남
고즈넉한 분위기가 머무는 땅끝마을 해남에 도착했다. 처음이 아니다. 필자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국수전 도전기가 열리던 때에 신이 나서 구경하러 온 적이 있다. 바둑 친구들과 맛있는 해산물도 먹으며 관전을 하던 행복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것이 해남에 대한 유일한 기억.
▲ 해남기우회 회원들과 단체사진.
전통이 깊은 해남기우회를 만났다.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해남기우회의 회원수는 3~40명. 유동적이긴해도 늘 자리를 지키는 수가 3~40명이면 규모가 꽤 크다. 동호회의 평균 연령은 50대. 20년 동안 수담을 나눠온 터라 고등학교 친구들 만큼이나 진한 우정을 과시한다. 아마도 타이젬 유저들은 이런 해남기우회의 분위기를 꽤 부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명선철(왼쪽)씨와 서능욱.
대국을 하는 명선철 씨는 해남 바둑보급의 선두주자다. 7년 전에도 필자와 만났던 터라 몹시 반가웠다.
명선철 씨는 열심히 산다. 물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명선철씨는 자신의 사업도 바쁠텐데, 바둑교실까지 운영한다. 무척이나 바삐 움직인다. 그런데 사실 말이 바둑교실이지 바둑 보급을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지사배를 해남에 유치하려면 선수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선수육성차원에서도 명선철씨의 바둑교실은 해남의 큰 힘이다. 바둑계에 명선철씨처럼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것이 동호회 원정대의 바람이다.
▲ 대국 중인 명선철씨.
명선철씨는 타이젬 5단 기력으로, 80년대초 어깨너머에서 바둑을 배웠다. 우리는 흔히 이런 바둑을 '동네바둑'이라고 부른다. 동네바둑으로 타이젬 5단이면 약하진 않다. 하지만 학생지도를 하려면 정석도, 포석도 알아야 했다. 이론으로 무장해야 올바르게 아이들의 바둑을 다듬어 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 바둑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명선철씨다. 친하게 지내는 오규철 사범이 종종 해남으로 책을 보내주기도 한다고. 바람직한 사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무는 아름다운 나의 섬 완도에서 김원 프로에게 지도 대국을 받았다. 평소 TV에서 즐거이 해설을 듣던 김원 프로와 수담을 나눈다니 설레임이 가득했다. 실제로 보니 외모는 곱상하게 잘생겼는데, 판 위에서는 무섭기 짝이 없다.
▲ 김원 vs 명선철(왼쪽)
나는 아름다운 곳에 살아서 그런지 오오다케처럼 아름답게 바둑을 뒀다. 그런데 이번 대국은 힘 한 번 못써보고 급소만 된통 얻어 맞고 끝났다. 그래도 내가 해남의 대푠데 이렇게 무너지면 안되겠다 싶어서 반항도 해봤다. 역부족이었다. 내 바둑을 열심히 응원하는 우리 회원들에게 미안했다.
▲ 관전 중인 해남기우회 회원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 식상한 말이지만, 진심이다. 해남은 워낙 예뻐서 다시 한 번 발길이 닿을거라 확신한다. 그땐 우리 바둑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일취월장하여 나 대신 설욕전을 펼쳐주길 바란다.
▲ 대국이 끝나고 한 컷. 해설은 서능욱이 맡았다.
이 먼길을 걸음해줘서 동호회 원정대에 정말 고맙다. 바둑이라는 아우라를 이곳에 풍겨주어 해남이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내게 이번 경험은 꽤 낭만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