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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부친 편지

- 여류기사회 가평 워크샵

2011-09-09 오후 1:58:25 입력 / 2011-09-09 오후 4:00:09 수정

▲ 이날 (왼쪽부터) 문도원, 오정아, 김은선, 김나현, 김효정,배윤진, 김선미, 김혜림, 이민진, 김혜민, 김채영이 워크샾에 참여했다.

S#1. 가평으로의 초대

아침 바람이 쌀쌀합니다. 가을인가 봅니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에 적어두었던 엽서를 다시 꺼내 읽어봅니다.
여류기사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한국의 여류기사들, 몰라보게 강해졌습니다.
연초 마지막 여류국가대항전인 정관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지옥션 배에서도 시니어 선생님들을 앞서 있으며 각종 프로기전 본선에서 강력한 남성들과 핸디 없이 기력을 겨루고 있습니다.
바둑이 스포츠의 영역을 기웃거리는데 남녀의 성 구분이 없이 경쟁해야 하니 참 어렵다는 걸 이해합니다.

입단의 관문도 비좁고 프로 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걸 역시 압니다.
그럼에도 서른 명 남짓한 여류기사들의 존재는 바둑계의 소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날 그대들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군부대 보급 활동으로 전방을 누볐고 낙도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다녀왔다지요.
그런가하면 바둑동호인들의 축제에 조건 없이 달려가 춤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평으로의 초대는 그런 열정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 가평의 '클럽피쉬'펜션.
 
▲ 가평 북한강.

S#2. 북한강에서

북한강변의 풍치 참 시원했습니다.
바둑판 앞에서는 냉철한 이성의 눈빛 번뜩이던 여류기사들이지만 쾌속의 물보라 앞에서는 마냥 어린애들처럼 괴성을 지르더군요.
그렇게 여름내내 쌓인 스트레스 훌훌 털어버렸다면 다행스런 일입니다.



▲ 보트를 타며 신이 난 여류기사들과 필자.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북한강 한복판에 첨벙 떨어졌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처음에는 공포가 엄습했겠지만 이내 구명조끼의 부력에 감사했을 겁니다.
그리고 강물의 온도가 의외로 따뜻하지 않았나요?
바둑계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약육강식의 승부세계라 하지만 알고 보면 곳곳에 구명조끼도 있고 따뜻한 팬들의 성원도 있을 테니까요.

▲ 오자미 던지기를 하는 여류기사들.

S#3. 도전 골든벨

청백 팀으로 편을 갈라 투호와 오자미 던지기를 했습니다.
단순한 게임인데 희한하게 계속 동점이 나와 연장전을 펼쳤지요.
반집승부였지요.
역시 프로기사들답게 장난으로도 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 골든벨에 참여한 여류기사들의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은선, 김채영, 김혜민, 문도원이 상품을 획득했다.

실내에서 본격적으로 지식대결을 펼쳤습니다.
퀴즈와 그림 표현, 도전 골든벨까지-
준비한 문제는 많았지만 탈락자가 많아 몇 번이나 패자부활전을 하다가 까르르 웃고 칠판을 접었지요.
나참, 바둑 두느라 머리 쓰는 것도 지진 나는데 휴양지까지 와서 머리를 굴리라니요!
그렇지만 모두들 수리력 하나는 신통방통하더군요.
덧셈 곱셈 문제는 단번에 죄다 적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행시 백일장이 압권이었습니다.
재치가 가득 넘치는 사행시가 많았지만 여류기사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주부 김은선에게 장원이 돌아갔습니다.

▲ 노래를 부르러 노래방에 들른 여류기사들.

자기 소개와 더불어 노래 한 곡씩 불렀던 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막내 김채영과 오정아부터 나이 역순으로 경연이 시작됐는데 희한하게 위로 올라갈수록 가창력보다는 과격한 율동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민진과 배윤진의 충격적 웨이브의 동선(動線)은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으며 김혜민의 도발적인 퍼포먼스는 절대비밀로 지킬까합니다.^^

▲ 낮의 파라솔 토크.

S#4. 파라솔 토크쇼

밤새 선착장 파라솔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맏언니이자 여류기사회 회장인 김효정은 한국기원 이사까지 맡아 해야 할 일들이 가득한데 신혼주부로 자녀출산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선배들의 진솔한 고해(告解)가 계속 됐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정도로 어렵다는 입단 관문을 뚫고 바둑계의 꽃으로 피어난 그녀들에게도 아픔은 많았습니다.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
성적에 대한 압박감.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뇌까렸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일순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자존심 강한 프로들 사이에 금기나 다름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녀들의 현실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간단치는 않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당시에 그 자리에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 밤의 파라솔 토크.

다만 시간 좀 흐른 지금 그대들에게 편지를 빌어 몇 마디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적어도 바둑의 세계에서 최상위 단계에 오른 영광의 주인공들입니다.
사람의 영광에 순수한 기쁨만이 허락되는 건 아닙니다.
아픔과 상처와 번민도 수반되어 운명처럼 다가온 영광이겠지요.
이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사는 사람은 끝까지 실패하지 않고 사는 이가 아니라 번번이 실패를 거듭해도 조용히 힘차게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프로기사들은 자기가 자기에게 부과한 목표만큼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조금은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바둑을 대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우리 바둑계의 한 부분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타이젬의 많은 바둑 팬들은 언제나 그대들을 응원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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