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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둑배

그대들은 펄럭이는 깃발이다

K바둑배 대륙간 아마바둑 최강전

2011-10-29 오후 5:38:25 입력 / 2011-10-29 오후 7:54:34 수정


▲K바둑배 대률 간 아마바둑최강전 전경 모습.

S#1. 2호선 왕십리 역사(驛舍)에서

잔치가 끝났다.
지켜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스무 명 남짓의 외국인 청년들은 복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흘에 걸친 제1회 K바둑 배 대륙 간 아마바둑최강전은 유럽 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생소한 이름의 대회일 것이다.
지난 주 포항에서 열린 국무총리 배 세계 아마바둑대회와 연관해서 급조한 대회가 아닐까 추리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소규모로 지하철 역사 광장에서 진행된 대회이므로 어차피 주최 측은 과대포장의 홍보효과를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의 생각이며 그들이 만들어 낸 콘텐츠다.
이 대회는 한·중·일 바둑강국을 제외한 제3세계 바둑 인들을 위한 마당이다.

▲대륙간 대회 모습.

국무총리배는 일정이 빠듯해서 마음껏 바둑을 즐길 수 없었다.
바둑에 굶주린 외인부대원들은 성적보다 원 없이 바둑을 두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소박하지만 마음이 담긴 선물을 장만한 것이 바로 대륙 간 아마바둑최강전이다.
실마리는 지난 여름 유럽 바둑 콩그레스에서부터 시작됐다.
헝가리에서 바둑 보급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성래 사범과 K바둑 윤여창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다.

윤여창 : 고생 많습니다. 제가 거들어 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김성래 : 바둑 둘 기회만 많으면 됩니다.
윤여창 : 성의껏 돕겠습니다. 외국 청년들을 규합해보시지요.
김성래 : 일부러 모두 부르기는 벅차니까 국무총리 배 세계대회 때 한국에 들어오는 국가대표 급 선수들을 대상으로 작은 대회를 만드는 게 어떨까요?
윤여창 : 알겠습니다. 능력 닿는 대로 추진해보겠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유럽팀.

이렇게 만들어진 자리에 그들이 앉은 것이다.
유럽, 아시아, 월드연합 3개 팀으로 나뉘어 대항전이 펼쳐졌다.

유럽팀 : 감독 김성래 리타(헝가리) 파볼(슬로바키아) 벤자민(독일)
두산(세르비아) 온드레이(체코)

아시아 팀 : 감독 이강욱
다니엘(인도네시아) 춀몬(몽골)
보라와트(태국) 알리(이스라엘) 시앙(싱가포르)

월드엽합 팀 : 감독 김승준
가브리엘(아르헨티나) 안토니(캐나다)
곤잘레스 젤라야(멕시코) 세풀베다(칠레) 쉐플러(남아공)

▲6연승을 차지한 슬로바키아의 파블 6단(사진 가운데)과 대회관계자들의 기념촬영.

전체적으로 기량이 높은 유럽 팀이 예상대로 우승을 거두고 300만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슬로바키아의 파볼(6단)은 파죽의 6연승을 거둬 연승상금을 받았다.



S#2. 한국의 식탁, 그리고 마이너리그

그들을 위해 K바둑에서 만찬을 준비했다.
왕십리 한국기원 부근의 갈비 집.
파란 눈의 청년들이지만 젓가락질이 서툴지 않았다.
바둑돌을 만져 본 친구들은 이미 동양의 문화에 친숙하므로.
한국의 음식이 푸짐하고 달콤하다는 평이 나온다.
늘 듣는 이야기지만 한국인들의 따뜻한 인심도 감동적이라고 한다.


▲회식자리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선수들.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시켜요.”
베푸는 이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주는 이 받는 이 모두 서로에게 고맙다면서 술잔을 부딪친다.
일본이 일찍부터 해외에 바둑을 보급했기에 외국인 바둑 고수들의 정신 고향은 대부분 일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 바둑계가 기지개를 켜면서 중심축도 열도에서 반도로 조금씩 이동하는 분위기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대륙 간 바둑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하나같이 친한 파로 여겨진다.

▲K바둑 윤여창 대표/K바둑 관계자들

K바둑 윤여창 대표는 식탁의 외국 청년들을 애틋한 눈길로 계속 바라본다.
필자는 그의 마음을 얼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스카이 방송이 전파를 날릴 때부터 바둑채널을 맡아 무진장 마음 고생하면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내력을 우리는 안다.
바둑계의 큰손 바둑TV와 경쟁다운 경쟁도 제대로 못해보고 음지에서 숨죽이며 잠행한 그 허전함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그는 마이너 리그의 외국인 청년들에 대한 느낌이 각별하리라.

윤여창 : 마이너 채널이란 점 일부러 거부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분명히 바둑계에 기여할 역할이 있습니다. 차별화해서 우리 길을 찾을 겁니다. 오늘 끝난 이 대회도 계속 이어가고 다음 달에는 기전규모 2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시니어 기전을 주최할 계획입니다.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동참하기로 했지요.

대규모 시니어 기전을 준비한다는 말에 귀가 뜨인다.
실력지상주의의 바둑계에 흘러간 노장들을 위해 판을 펼친다는 것.
그 역시 마이너 리그에 해당된다.
괜찮은 방향으로 느껴진다.
프로는 상금이 전부라는 말도 있지만 바둑 콘텐츠는 역시 스토리텔링이 가미되어야 흥미로운 법이다.
치열한 승부의 도표도 중요하지만 낭만적인 수담의 악보도 그립다.
K 바둑의 고군분투에 바퀴 한 쪽이라도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S#3. 바둑이 고프다
만찬이 끝나고 선수들은 한국기원 지하 라운지로 하나둘씩 모였다.
그리고 대뜸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격식도 없고 상대도 아무나 좋았다.
사진을 찍던 필자도 그들의 손짓에 이끌려 바둑을 두어야 했다.
멕시코, 몽골 선수와 상대해 두 판 다 졌다.
인터넷 기력이 필자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기풍들이 호방하고 정석에 능했다.
하수지만 3만 판의 실전을 겪은 백전노장의 다양한 꼼수가 거의 전부 파울 볼로 빗나갔다.
책을 많이 봤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기원의 문이 닫힐 때까지 실컷 바둑을 두고 인사동 게스트하우스로 몰려갔다.
숙소 역시 K 바둑에서 예약해주었다고 했다.
오늘 그들은 일제히 출국한다.
떠나는 여객기 안에서 한국의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아주 많이 그리워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둑의 세계화는 이런 작은 배려에서 이루어진다.
푸른 눈의 청년들 그대들은 모두 펄럭이는 바둑의 깃발들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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