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그녀의 집은 어디일까?
-루이나이웨이 9단의 귀향
2011-12-01 오전 11:34:02 입력 / 2011-12-01 오후 1:24:58 수정
S#1.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루이, 그녀는 한국을 언제나 '내 집'으로 불렀다.
나의 집이라는 표현이 참 애틋하다.
외국인으로서 언어구사가 독특할 수도 있지만 루이 그녀가 강조하는 ‘내 집’의 어감은 발 딛고 있는 이 땅, 바둑을 원 없이 둘 수 있게 해준 이 땅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들린다.
그녀가 12년 8개월의 한국체류생활을 끝내고 중국으로 돌아간다.
11월 30일. 귀국을 결정하고 나서 그녀가 후배이자 동료였던 여자 기사들과 기자들을 초청해 밥을 샀다.
필자는 그녀가 주최하는 자리인지도 모르고 송별식 현장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식사 도중 루이가 다가와 속삭인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맘껏 시키세요."
▲박지연에게 술을 따르는 장주주(사진 맨 왼쪽). 장주주는 부지런히 테이블을 돌며 여류기사들이 식사를 잘 하는지 챙겼다.
그녀의 남편 장주주 9단도 분주히 테이블을 오가며 술을 따르고 음식을 권한다.
한 끼의 식사로 마음을 전부 표현할 수 없겠지만 부부는 성심껏 손님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넨다.
아! 가슴 속에 뭔가 뜨거운 느낌이 치밀어 올라온다.
다정다감한 부부의 표정이 저리 아름다울 수 없다.
1990년 조국을 떠나 객지생활을 전전하다 한국에서 둥지를 틀고 승부사로서 절정의 불꽃을 태운 루이나이웨이.
까마득한 시절 중일 수퍼대항전에서 중국 측 선봉장으로 출전해 이름 석 자를 세계바둑 사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던 장주주.
그들이 기나긴 방랑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편은 상하이에 바둑도장을 차렸고 아내는 베이징에서 국가대표로 활동하게 된다.
루이, 그녀의 별명은 철녀(鐵女).
막말로 떴다 하면 올킬이었다.
여자바둑계 타이틀을 휩쓸다시피 했고, 성(性)의 영역을 넘어 국수위까지 획득한 적 있었다.
조훈현, 이창호 사제가 주름잡던 시절, 철녀가 끼어들어 가공할 화력을 퍼부으며 파천황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여류국수도 아니고 전통의 국수위가 루이에게 넘어가던 날 바둑계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존중했다.
그녀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녀의 도발을 신선한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를 스파링 상대로 우리의 낭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여자바둑은 최강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대항전이 벌어질 때 루이가 중국대표로 출전하게 되면서 소소한 잡음도 있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였다.
그녀가 이 땅을 '내 집'으로 표현한 것처럼 그녀 역시 우리의 기사였다.
▲떠나는 루이에게 인사말을 전하는 여자기사들.
S#2. 참 좋은 언니
루이를 좋아하는 기사들의 이유는 비슷하다.
오로지 바둑밖에 모르는 그 열정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루이의 외모는 어떤 만평에도 소개되었듯 화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를 아름답다고 표현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녀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은 기꺼이 그 형용사를 붙인다.
송별식 자리에서 여자 기사들이 차례로 일어나 인사를 전했다.
"너무 아쉬워요. 그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박지은)
"저는 개인적으로 이대로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결승전에서만 루이 사범님한테 13패를 당했으니까요. 복수를 해야 하는데 가시다니요. 그래도 떠나가신다니 앞으로 제가 중국으로 원정을 가겠습니다."(조혜연)
"저는 루이 사범님이 참 섭섭했었습니다. 마인드스포츠 대회에서 중국의 송롱후이한테 금메달을 뺏기고 은메달에 머물렀는데 루이 사범님이 너무 기뻐하시는 걸 봤거든요. 그렇지만 이젠 그런 감정 없습니다. 사범님 중국 가셔서 지금까지 해 오신 것처럼 바둑 열심히 두시고 건강하세요."(이민진)
"루이 사범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신다고 했을 때 참 설렜습니다. 참 많이 배웠고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하는데 가신다니 아쉽습니다.”(이정원)
"저는 처음에 루이 사범님께서 중국가신다고 밥 먹자 하셔서 의아해했습니다. 중국 가시는데 왜 밥을 먹지? 그랬거든요. 그런데 아주 귀국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여자 기사들이 루이 사범님의 사진첩을 책으로 만들어 선물해 드릴 생각입니다."(김효정)
▲루이는 여자기사들을 챙기면서 살짝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장주주 9단은 기사들의 소감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 없었다.
후배기사들의 인사말을 듣고 난 루이가 일어섰다.
“고마워요. 한국의 후배들은 전부 다 너무 귀여워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인사말은 짧았다.
그녀를 지켜보는 여자 기사들의 표정도 애틋했다.
적어도 그 순간 그녀들은 하나였다.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둑이란 이름 아래 모두가 하나였다.
▲장주주 루이 부부
S#3. 이별도 축제다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누군가 곁을 떠난다는 것, 허전하다.
그러나 서로에게 희망이 보이는 이별은 축제일 수 있다.
세계 여자 바둑계의 큰 별 루이나이웨이는 중국에 가서도 빛을 발할 것이다. 올해까지도 우리 여자바둑계 타이틀을 몽땅 거머쥔 루이는 아직도 절정이다. 정상에서 떠나는 여운이 짙다.
아마 중국에 가면 그곳의 여자바둑계 지형도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 여파로 중국 여자 기사들이 자극을 받으리라.
마찬가지로 그녀가 빠진 우리 여자 바둑계 역시 출렁일 것이다.
거인의 존재는 그런 것이다.
그녀의 날개를 펴게 해준 것은 한국의 개방성이다.
루이 장주주 부부에게 한국은 어떻게 기억될까?
부부는 몇 년 전에 공동으로 자서전을 펴냈다.
그 책의 제목이 [우리 집은 어디인가?]였다.
조국을 떠나 오래 방랑생활을 해온 부부의 물음표.
그들의 집은 바로 바둑을 둘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곧 그들의 집이 확실했다.
.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