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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앙상블을 위하여

- 대한바둑협회 안성문 전무 스토리

2012-01-03 오전 11:28:26 입력 / 2012-01-03 오후 2:26:14 수정


S#1. 새로운 오케스트라 지휘자

함장, 영화감독, 오케스트라 지휘자.
남자로 태어나면 한번쯤 해봐야 할 직업들이다.
그 직업들의 공통점은 '리더 쉽'일 것이다.
지난해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취임할 때 인물포커스는 방향타를 쥔 선장으로 묘사했다.
2012년 새해를 맞아 대한바둑협회 안성문 신임전무를 소개한다.

▲ 대바협 안성문 전무.

컨셉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
아마추어 바둑계에 아름다운 앙상블을 끌어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붙인 타이틀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전인적(全人的)이다.
악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며 기존의 틀을 바꾸려는 개혁의 메시지를 실현해야 한다.
연주자들은 같은 악보를 봐도 단원 개개인의 개성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곡 해석의 통일과 표현의 일치를 위해 지휘자는 연주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조화롭게 만들어낸다.
바둑협회 실무를 이끄는 전무에게 똑같이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세대별 연맹단체와 16개 시도협회를 산하에 둔 바둑협회의 조직은 의외로 방대하다.
바둑을 사랑하는 모든 아마추어들이 바둑에 관해 다양한 해석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뤘으면 좋겠다.
대바협 전무가 바둑행정의 악보를 미리 해석해 멋지게 지휘봉을 저었으면 좋겠다.

▲ GBC 바둑최고위 과정 수업을 참관 중인 안성문 전무.

S#2. 바둑으로 이어진 행로

60년대 초 대전의 어떤 건설현장에서 매몰사고가 발생했다.
공사를 지휘했던 현장감독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했다.
식솔을 이끌고 무작정 상경해 북가좌동 야산에 터를 잡았다.
50년 전 그 사건이 한 소년의 운명을 바둑계로 이끌게 된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소년은 대전에서 성장해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북가좌동에 살게 된 소년 안성문의 스타트라인이다.
유년시절 그의 가족사는 그렇게 어두웠다.

▲ 필자에게 유년시절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안성문 전무(왼쪽).

부모는 장사를 하러 늘 나갔고 네 명의 누나들은 학교에 다녔다.
홀로 남은 막내아들은 방에 앉아 사방 벽에 도배된 신문지를 읽었다.
어린 소년에게 신문의 세계는 난해했지만 방문이 굳게 잠겨있어 그렇게 세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소년의 오른발에 이상신호가 왔다.
신경성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발 전체가 불처럼 달아오르고 관절이 삭으면서 신경조직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부모는 아들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용하다는 한의원과 부흥회를 찾아다녔다.
수술비가 부족해 큰 병원을 가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영세민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서울대학병원 이한구 정형외과 원장을 만나 대수술을 하게 된다.
기형적으로 굽어버린 다리를 펴게 되고 완전치는 않으나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의사는 소년에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 후배가 되거라.”
은인의 한 마디가 소년의 가슴에 성취동기로 박혔다.
소년은 성장해서 충암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동네에 그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불편해 엄마와 누나들이 가방을 들고 등굣길을 도왔다.
어려서 신문벽지를 읽던 내력이 있어 공부는 잘했지만 교련이나 체육시간에는 나무그늘 아래 앉아 친구들을 지켜봐야했다.
사춘기에 그는 늘 우울했고 슬펐다.


그때 바둑이 눈에 들어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둑부를 두었던 충암학원이었다.
소년은 바둑부 교실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바둑을 익혔다.
위로 허장회, 강만우, 조대현, 문용직 등의 선배들이 있었다.
중2때 1급에 도달했다.
학교에서만 바둑을 둔 게 아니었다.
응암시장의 백련기원에 나가 밤이 깊을 때까지 바둑을 즐겼다.
중3때 지도사범인 김수영이 프로기사 연구생을 권유했지만 누나들이 미래의 직업으로 마땅치 않다며 만류했다.
그래도 다리가 불편한 소년에게 바둑은 유일한 탈출구이자 도피처였다.
충암고를 졸업하고 그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다리를 고쳐준 의사와의 약속을 지킨 거였다.
명문대에 들어갔어도 그 흔한 미팅 한 번 해보질 못 했다.
음악다방에 들어가 팝을 들었고 TV 명화극장을 섭렵했다.
다방과 극장 기원이 그에게는 낙원이었던 것이다.

▲여자기사 후원의 밤에서 행운상에 당첨된 안성문 전무.

S#3. 바둑계와의 인연

서울대기우회에 들어가니 박치문, 신병식 등 쟁쟁한 선배들이 그를 반겨주었다.
두 선배가 바둑계에서 부모 역할을 하며 길을 이끌어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취직시험을 보았는데 쉽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장애가 걸림돌이었다.
면접시험장은 늘 공포의 체험장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시험 감독관들에게 불완전한 걸음을 보여줘야 했을 때의 민망함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박치문 선배의 소개로 해동화재에 입사했다.
역시 바둑 팀이 있는 회사였다.
유건재, 안관욱, 김성래, 조병탁 등과 함께 막강 해동화재 바둑 팀을 이루면서 기획실에 근무했다.
보험업이 따분하게 스타일에 맞지 않아 5년 만에 사표를 쓰고 나와 문화예술기획사에 들어갔다.
역시 이번에도 바둑계의 선배 권해만 씨와 함께였다.
음악가 안익태 선생의 악보를 입수해 제1회 안익태 음악회를 열었다.
92년에 이광구 선생과 함께 바둑계 최초로 주간바둑신문을 만들어 기자로 활동했다.
그때 취재경력으로 93년부터 서울신문 패왕전 관전필자로 관전기를 쓰기 시작했다.

▲ 바둑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안성문 전무.

그리고 95 바둑TV가 개국하면서 PD가 되었다.
[초점국 퍼레이드][명사초대석][프로아마 시도대항전] 등 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99년 바둑TV 통폐합 때 편성본부장이 되어 방송제작을 총지휘했다.
2001년 엠게임(넷바둑) 사장으로 임명돼 인터넷 바둑과 인연을 맺었다.
수익모델이 없던 넷바둑에서 VOD서비스를 강화하고 동시접속자를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바둑계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를 두루 누비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은 안성문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 길 끝에 안성문은 지난해 가을 대한바둑협회 전무로 부름을 받았다.

▲ 대바협 직원들의 회의 모습.

S#4. 하모니는 마음에서 우러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카리스마와 섬세함을 갖춰야한다.
음표 하나 음과 음 사이의 여백, 들숨과 날숨의 변화까지 읽어야하고 음이 조금만 이상해도 눈길을 보내는 본능이 요구된다.
연주자는 물론이고 후원자와 관객 사이에서 원만한 긴장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전체 상황을 미리 읽고 예비 박을 암시하는 손짓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바둑협회의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쇼날 리그의 활성화, 한국기원과의 관계, 각 연맹체와 시도협회의 조화, 등등 과제가 산적해있다.
당연히 지휘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모두 함께 가야 한다.
안성문 신임 전무의 역할은 바둑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즐겁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통일된 바둑계의 악보를 해석해내는 일이라고 본다.
다사다난하고 많은 이해가 얽힌 바둑계지만 그 어떤 분야보다 마니아 층이 확실한 곳이 바둑계다.
기분 좋으면 안 될 게 없고 해내지 못할 일이 없는 세계 아닐까?
백마 탄 초인(超人)까지는 아니라도 아마추어 바둑계의 응집력을 따뜻한 하모니로 표현해 낼 줄 아는 지휘자의 등장을 기대한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바둑 책을 보았고, 소외를 달래기 위해 바둑판에 몰두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행로를 걸어온 바둑인이기에 비장의 악보를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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