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기상대
'90後 태풍'에 휩쓸린 한국바둑
바이링배 이어 BC카드배에서도 중국세에 크게 밀려
2012-04-01 오후 4:25:25 입력 / 2012-04-02 오후 2:39:20 수정
해마다 봄이면 중국대륙에서 불어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황사. 그런데 바둑계에는 좀 더 일찍 황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2월 농심배과 황룡사배 등 남녀 국가단체대항전에서 중국에 참패했던 한국바둑이 3월 들어서도 바이링배과 BC카드배 등 매머드 세계대회에서 잇달아 참패하여 바둑계 전체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황사돌풍'에 온통 휩쓸렸던 3월을 진단해본다.

▲ 제1회 바이링배 전경.
[바이링배] 상위랭커 줄줄이 탈락…중국에 8대22로 크게 밀려
◇…세계 최대규모로 새로 출범한 바이링(百靈)배 통합예선과 본선 1회전(64강전)에서 한국은 중국세에 크게 밀렸다. 3월 10~12일 중국기원에서 열린 1회 바이링배 세계바둑오픈 통합예선에서 한국은 87명의 출전 선수 중 불과 12명만 생존,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적지에서 수백명의 중국기사들과 겨루는 불리한 조건이었다고는 하지만, 며칠 앞서 열린 BC카드배 통합예선에서 중국이 57명 출전해 20명이 본선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부진이었다. 특히 단순한 수치 외에도 강동윤, 원성진, 김지석, 허영호, 윤준상 등 내로라 하는 국내 상위 랭커들이 중국의 신예 저단진 기사들에게 줄줄이 탈락한 것이 뼈아팠다.
그리고 '한국의 열세' 구도는 이틀 후 속개된 본선 64강전 결과 여실히 반영됐다. '중국 22 : 한국 8 : 일본 2'. 16명의 본선 진출자 가운데 8명이 32강전에 오른 사실만을 본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애써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중국세와 거의 1대3의 맞대결을 벌여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초대 바이링배 우승을 향해 한국은 상당한 험로를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세돌(왼쪽) vs 당이페이
[비씨카드배]이세돌-이창호, 중국 10대 신예들에게 잇달아 충격패
◇…바이링배가 '황사돌풍'의 예고편이었다면 며칠 후 벌어진 BC카드배 32강전은 그 완결편이라고 할까. 3월 16~20일 벌어진 4회 BC카드배 32강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이세돌과 이창호가 중국의 10대 신예들에게 잇달아 무너진 것을 비롯, 한·중 대결에서 1승10패로 일방적으로 밀린 끝에 16강에 단 3명만 살아남는 세계대회 사상 역대 최악의 '참사'를 당했다. 양이(兩李) 외에도 김지석과 허영호 등 상위 랭커들이 줄줄이 탈락한 가운데 16강에 살아남은 기사는 국내 기사간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박영훈(10위)과 백홍석(12위), 그리고 유일하게 한·중 대결에서 승점을 따낸 이원영(24위)이 전부.
특히 1인자 이세돌과 '영원한 우승후보' 이창호가 이름도 생소한 중국의 10대 신예 미위팅(96년생, 중국 42위)과 당이페이(94년생, 52위)에게 연이어 패퇴한 3월 18일은 '검은 토요일'로 불릴 정도로 충격파가 커서 국내바둑계와 팬들은 공황상태에 빠질 정도였다. 일시에 두 기둥을 잃은 탓인지 한국 선수들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이후 한·중 대결에서는 단 한 판도 건지지 못했다.
국내 바둑계 위기감 고조…입단제도 개편 등 비판과 대안 쏟아져
◇…이번 BC카드배 참패는 32강전에 앞서 3월초 열린 통합예선과 64강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기는 했다. 박정환, 최철한, 강동윤, 원성진 등 상위랭커들이 대부분 탈락한 가운데 한·중 대결 7승12패로 크게 밀린 것. 하지만 32강전의 '1대10' 참패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지진'이었다.
바이링배와 BC카드배 참사 이후 위기감이 절정에 달한 국내 바둑계에서는 비판과 자성의 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이창호, 이세돌 등 몇몇 천재들의 활약에 힘입어 세계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한국바둑이 안이한 정책으로 신진 육성과 저변 확대에 실패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인데, 그 대안을 둘러싸고는 여러 이견이 분분하다.
이번에 발군의 활약상을 보인 중국 ‘90后 세대’를 의식한 듯 우리도 어린 나이에 입단할 수 있도록 입단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비롯하여 △바둑영재 발굴 △세계대회 시간제도에 걸맞게 속기전 지양 △공동연구제도 확충 등 갖가지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는 중국처럼 10대 기사들을 집체훈련시켜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들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나 어울리는 인위적 정책들이어서 21세기 한국의 현실에는 부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바둑의 강세에 대해 "우연의 결과일 뿐 아직 중국은 한국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토로한 중국대표팀 위빈 감독의 소감은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는 "최근 이어진 바이링배와 BC카드배에서 중국 기사들이 대승을 거둔 것은 우연"이라면서 "이런 대승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제도나 규정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담담해 했다.
▲ 이창호(왼쪽) vs 미위팅.
중국 10대 신예 '90後' 급부상…이세돌·이창호 등 거함 잇달아 격침
◇…바이링배와 BC카드배을 거치며 크게 부각된 그룹이 이른 바 중국의 10대 신예들을 일컫는 '90後 세대(1990년대 이후 출생자를 가리키는 중국내 신조어)'다. 특히 BC카드배에서는 이세돌과 이창호 등을 꺾으며 16강 가운데 5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세를 보인 이들은 중국기원이 '타도 한국'을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온 바둑영재 교육의 산물이다. 이미 세계 정상급과 맞먹을 정도의 출중한 기량은 물론, 어린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승부처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위기관리 능력까지 두루 갖추어 향후 세계바둑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이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이세돌, 이창호, 구리 등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던 여느 선배들과는 달리 아무리 강자를 만나도, TV 생중계 대국에서도 좀체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집단 합숙을 하며 혹독하게 조련받은 데다 중국리그 등 무수한 실전경험으로 커리어를 쌓은 것이 그 저력의 원천으로 분석된다.


▲ 바이링배, 비씨카드배에 이어진 또 한 번의 참사, 초상부동산배.
[초상부동산배] 정예 한국팀, 1.5진 중국팀에 3대7로 완패
◇…바이링배, BC카드배 참패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은 한·중 단체전에서 또 한번 패배의 쓰라림을 곱씹었다. 3월 23~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회 초상부동산배 한·중 바둑단체전에서 한국은 종합전적 3대7로 패배했다. 5대5 맞대결에 2라운드 대항전으로 벌어진 이번 대회에서 조한승(주장) 박정환, 최철한, 원성진, 김지석, 이지현으로 팀을 꾸린 한국은 중국(콩지에, 스위에, 천야오예, 퍄오원야오, 판팅위, 펑리야오)에 1라운드에서 2대3으로 진 데 이어 2라운드에서도 1대4로 밀렸다. 랭킹 1위 이세돌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한국팀이 대표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정예인 반면, 중국 대표팀은 랭킹 1~4위가 모조리 빠진 가운데 랭킹 20위권의 10대 기사(판팅위, 펑리야오)까지 참여한 '1.5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충격적인 완패였다 .
중국에서는 한국팀의 최상위랭커 박정환과 최철한을 연파한 스위에와 펑리야오(2승)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된 가운데 감독 재량으로 특별 선발된 판팅위도 제 역할을 해내 또 한번 '90後'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 미위팅(왼쪽)을 꺾은 박정환.
[춘란배] 오랜 부진 씻은 승전보…한_중대결서 4대1로 모처럼 우위
◇…2월부터 두 달 내내 지속돼온 한국바둑의 연전연패에 그나마 한 줄기 서광을 비춰준 것이 춘란배였다. 3월 28일과 30일 중국 장쑤성에서 열린 9회 춘란배 1·2회전에서 출전 선수 6명(랭킹 1~6위) 가운데 4명이 16강에 오르는 선전을 보였다. 특히 다섯 판이 한·중 대결로 펼쳐진 16강전에서 모처럼 4승1패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박정환이 지난 BC카드배에서 자신에게 첫 판 탈락의 수모를 안겨주었던 미위팅에게 4주 만에 통쾌한 설욕전을 거둔 데 이어 농심배 이후 컨디션 조절 실패로 한동안 부진했던 김지석도 난적 구리를 제압하는 기염을 토했다. BC카드배 탈락 이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디펜딩 챔피언 이세돌도 분풀이하듯 치우쥔의 대마를 때려잡으며 지난해 후지쯔배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춘란배가 한국바둑 부활의 발판이 될지 주목된다.
○날씨로 보는 기사 기상도●
이세돌 (∴ 안개)
대국 수에서도, 성적 면에서도 ‘1인자’답지 못하다. 농심배와 초상부동산배 등 국가단체전에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1인자’위상에 적지 않은 흠결.
박정환 (○ 맑음)
BC카드배 첫 판 탈락이 아쉽지만, 그래도 각종 기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맥심배와 KBS바둑왕전에서 거푸 우승하며 벌써 2관왕! 올 시즌 몇 관왕 하려나~.
최철한 (● 흐림)
십단전을 제외하고는 국내외 기전에서 연이어 부진하다. 십단전 우승에 실패하면 자칫 머지않아 'No.3'에서도 밀려날 위기.
이창호 (/// 장마)
BC카드배 연승으로 살아나는가 싶었는데, 16세 중국 신예에게 발목잡히며 다시 가라앉았다. 한국바둑이 돌연 위기에 빠진 데는 정신적 지주였던 그가 무너진 탓도 있으리라.
강동윤 (//비)
‘한국리그용’ ‘속기용’이란 딱지를 언제 떼려나. 랭킹 4위에 걸맞지 않게 국제기전 성적이 너무 부진하다. 타이틀 따본 지도 오래됐고…. 십단전에서 갈증 풀수 있을지.
판팅위 (○ 맑음)
‘중국랭킹 24위’가 믿기지 않게 발군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중국 대표 감독이 특별 선발할 정도로 믿음을 얻고 있으니, 머잖아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를 듯.
TYGEM / 志石居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