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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못 배우면 안 보이고, 안 보이면 못 느낀다

한상대 세계바둑사, 이탈리아 편

2012-04-21 오전 11:55:19 입력 / 2012-04-22 오후 1:17:48 수정


▲ 카프리 항구 이탈리아

이탈리아(Italia)

1. 연구생과 기초학습

83년 3월. 내가 헝가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왔을 때 메시지가 왔다. 다른 말 없이 비행기 도착시간만 적혀 있다. 나는 우리집 사람이 아들놈과 오는 줄만 알고 공항에 그 시간에 나갔다. 그런데 서봉수사범이 사람들 속에서 걸어나오고 있지 않은가? 반갑고도 놀라웠다. 그 당시만 해도 외국에 나오는 약속을 하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완전히 기대는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 전에 서울에서 서사범을 내 동생에게 소개해 주고 동생에게 "내가 헝가리에 먼저 들어 갔다가 독일로 나오니까 한달 후 서 사범을 프랑크푸르트로 보내라"했는데 서사범이 정확히 한 달 되는 날 도착한 것.

몇 시간 뒤 우리 가족이 도착했다. 집사람이 내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한다는데 놀란다. 저 멀리서 염세적 표정을 하고 서있는 서사범을 쳐다보며 "우리끼리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저 사람은 누군데 인상이 별로네요. 정말 저 사람하고 같이 여행 해야 하나요?" 한다.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바둑을 조-서 시대라고 하는데, 그 중에 서가 저 사람이야. 내가 초청했으니까 이제부터 손님으로 잘 대해야 돼"라며 나는 마음 안 내켜하는 집사람을 설득했다.

우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에 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거쳐 이태리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서사범은 유럽 도시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우리 부부가 감탄을 하면 자기도 그 느낌에 동참한다.

▲ 프랑크푸르트

잘츠부르크를 떠나 6~7시간을 달려 우리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영어로 하면 이태리의 베니스에 도착했다. 베네치아 (Venetia)에 온 서봉수사범은 아름다운 물의 도시에 반한다. 대운하(Grand Canal)를 배로 통과하며 "좋습니다" 하며 웃는다. 그는 자기 감정의 섬세한 표현 없이 보통 이런식으로 짧게 말한다. 내가 "베네치아는 인간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히고 괴테가 사랑한 도시" 라고 말하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니까 '혹시 괴테를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이 건너편에 보인다

▲ 곤돌라(Gondola),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

그래서 내가 "지금 우리가 가는 도시는 피렌체(Firenze)라고 르네상스가 일어난 도시인데 단테, 다빈치, 미켈란젤로, 갈릴레오가 활약한 천재들의 도시"라고 하니까 서사범이 "지금 나온 이름을 저는 하나도 모르는데요"한다. 내가 기가 막혀 "바둑만 둔 친구들이 기초학습이 워낙 약해서 문제구먼"하며 우리집 사람에게 "나는 서사범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줄 모르겠으니 알아서 해 보라"고 넘겼다. 나는 운전을 해야 하기도 했다.

집 사람이 서사범에게 아주 쉽게 르네상스에 대해 신(神) 중심 세상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한다. 천재들에 대한 소개도 했다. 그런데 얘기를 들으면서 예상 외로 서사범이 유럽문명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만 한다. "조금 무식해서 그렇지 머리가 좋은 사람임엔 틀림이 없구먼"하며 나는 서사범을 놀렸다.

이틀도 안 돼 집사람과 서사범이 친해져서 재미있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부터 차 안에는 웃음이 넘치는 여행이 계속된다. 여행 중 서사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서양문명에 대한 강의를 40여일 동안 100번 이상 우리 부부로부터 듣는다. 서사범은 서서히 자기가 모르고 살았던 엄청난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사실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기초학습이 부족하면 지적 호기심도 부족하고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부족하다.

그런데 서사범은 왕성한 호기심을 보인다. 질문도 대세점을 때리고 급소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연구생 출신 제자들에게 유럽지도를 놓고 '영국이 어디 있는지 가리켜 보라'고 하면, 대부분 영국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 중 몇 명은 유럽지도를 처음 본다고 한다. 내가 학교를 안 보내고 자식들을 도장에 보내 바둑공부만 시키는 부모들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지대 바둑학과 내 교실에서 'Do you?'를 읽으라니까 Do를 '도'라고 발음하고 you는 읽지 못하는 연구생 출신을 보았다.

내가 중국 항주기원에 가본 일이 있다. 거기엔 연구생들이 오전 12시까지 역사, 국어, 영어, 수학등 일반과목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바둑공부를 한다. 항주국제바둑대회에서 10세 전후의 중국 연구생들이 20세 전후의 우리나라 연구생들에게 호선으로 밀리질 않는 걸 보고 내가 놀랐다. 연령적으로 10년 차이가 난다. 그들이 몇 년 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을 이기는 10대 그룹이 된다.

인간의 집중력은 만 13세부터 19세 사이인 틴에이지(Teen age)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그 때 프로기사로 전성기를 누려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바둑신동들이 자기가 연구생 몇 조에 속해 있다는 얘기나 하는 나이다. 우리나라는 왜 기초학습을 동반한 바둑 교육을 하지 못할까? 왜 10세 전후의 입단자를 배출하지 못할까? 필시 교육방법이 문제이고 입단제도가 잘못되었기 쉽다.

정규교육을 통해 기초지식을 못 쌓으면 인생에서 놓치는 게 너무 많아진다. '지식의 진공(Intellectual vacuum)'상태는 인간개발 측면에서 보면 비극이다. 못 배우면 안 보이고 안 보이면 못 느낀다. 정신적 부분 지진아가 된다. 체계적인 공부를 못하면 성인이 되어 미신에 빠지거나 비현실적인 UFO 같은데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바둑영재에게 정규교육도 시키고 조기입단을 못하면 본인을 위해 얼른 방향전환을 해주어야 한다.

▲ 피렌체 베끼오 다리

2. 천재들의 고향 피렌체

피렌체 베끼오(Vechio) 다리 옆 젤라토(Gelato) 아이스크림 집에서 서사범에게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의 대표작 '신곡'과 그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얘길 해주었다. 단테는 9살 때 자기 아버지 친구의 딸 12세의 베아트리체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10년 후 둘은 다시 만난다. 단테는 독서가 취미인 지식인이 되었으나 키가 작고 얼굴은 못 생긴 청년으로 성장했다. 단테는 자기의 동물적 매력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 작업에 못 들어간다. 대신 상사병 환자가 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난 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가 태어난 이래 빛의 하늘이 자체의 공전에 따라 아홉 차례 똑같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맘에 그리던 영광스런 여인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녀를 베아트리체(Beatrice)라 불렀다.-

얼마 후 결혼한 베아트리체가 베끼오 다리를 건너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단테는 하루도 빠짐 없이 5년 동안 교각 뒤에 숨어서 훔쳐본다. 요즘엔 이런 행위가 스토커(Stalker)로 몰리겠으나 중세엔 숭고한 정신적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미화되었다.

▲ 단테, 피렌체

▲ 베끼오 다리

▲ 두번 째 만남, 다리 위(양 옆에 보석상이 많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흑사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급사를 한다. 이 때부터 단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된다. 단테는는 신곡(Comedia Divina)에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그를 구원하여 천당으로 편력하는 천사역에 베아트리체를 쓴다. 짝사랑으로 누구를 이렇게까지 지독히 사랑할 수가 있을까?

단테는 신곡에서 자기보다 1300년전쯤 세상에 온 두 명의 JC를 서양문명의 두 줄기로 보았다. 한 명의 JC(Julius Caesar)는 로마의 명문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다른 JC(Jesus Christ)는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서 태어나 정신적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힘과 과학으로 대표되는 카이사르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선린정신을 가르친 예수로 서양문명은 양분된다고 단테는 보았다.

그 두 명이 다 자기가 사랑하던 제자의 배반으로 죽는다. 단테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반하는 행위를 가장 증오했다. 더욱이 두 JC 를 배반한 브루투스와 가롯 유다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둘을 지옥 33층 제일 밑바닥에 쳐넣었다. 신곡을 읽은 많은 사람이 "왜 부루투스 같은 훌륭한 인물이 지옥 제일 밑바닥에 있나?"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2차대전 중 피렌체로 떠나는 폭격편대장을 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이 부른다. 그는 피렌체 지도를 펴 놓고 "여기 아르노(Arno) 강을 건너는 다리가 8개 있는데 그 중 베끼오 다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전설이 묻어 있는 인류의 문화재다. 이것만은 폭격하 지 말아라"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베끼오 다리는 천년전 돌다리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베끼오 다리에서 우리는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그런데 서사범이 날 찍어준 사진은 쓸만한게 한장도 없다. 나의 전신과 그 앞에 땅을 많이 넣고 정작 뒷 배경 다리는 안 보이게 찍었다. 내가 사진이 나온 후, 마구 구박하자 서사범이 "제가 사진을 처음 찍어 본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한다. 할 수 없이 여기엔 2008년에 찍은 내 사진을 실었다.

로마로 오는 도중 성(聖) 프란체스코의 고향 아씨씨(Assisi)에 들렸다. 우리는 성당에서 성 프란체스코 무덤에 들리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고색이 창연한 좁은 돌담 길은 내가 12세기 중세마을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유럽에서 독일의 로텐부르크(Rothenburg)와 아씨씨는 나에게 중세를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다. 그의 일생을 읽으면 '이 사람은 정말 신앙인이었구나'를 알 수 있다. 현재 성직자들은 내 눈엔 사이비가 너무 많다.

▲ 아씨씨(Assisi) 성 프란체스코(Sanit. Francesco)의 고향

로마에서 첫 날은 자동차가 도둑에게 습격을 받아 정신 없이 보냈다. 다음 날 우리는 콜리세움에 가서 한국 신부의 안내로 카타콤을 돌았다. 이 지하무덤은 총 길이 560km로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때 집회장소로 쓰인 곳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갇혀있다가 순교한 토굴 감옥에도 가 봤다. 천정에 쇠창살 구멍이 있어 음식을 받아 먹도록 되어있다. 작은 비석에 베드로 십자가는 거꾸로 그려져 있다.

그 다음날 교황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바티칸 베드로 성당 미사에 참가했다. 교황 주변을 방탄 유리로 둘러싼 모습이 기분을 착잡하게 만든다. 로마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탄 이탈리아 남자와 서사범이 눈이 마주쳤다. 서사범이 미소를 띄우니까 그 남자가 서사범이 귀엽다고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이탈리아 사람 눈에는 서사범이 정말 귀여울까? 그 때 쑥스러워 하던 서사범 이 아마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안 했을거다. 목격자인 내가 지금 터트리는 거다.

3. 찬란한 이탈리아 문화

“이탈리아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이며 서양문명의 역사다” 로마는 3차례에 걸친 카르타고와 전쟁(BC264~BC146)에서 이긴 후 지중해의 패권을 잡는다. 그 후 로마는 수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하였다. 특히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아프리카, 영국, 스페 인, 중동의 시리아까지를 포함한 대제국을 건설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와 질서가 유지되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부터 하는 말이다.

로마는 식민지와 비슷한 속주를 착취하면서 번영을 누린다. 당시 고속도로 격인 아피아(Apia) 가도는 확장공사를 안 했는데 지금 내가 차로 달려도 멀쩡하다. 초기 기독교는 다신교인 로마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나 점차 신도수가 늘어난다.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392년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유럽의 모든 나라는 로마문명과 기독교라는 두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망했으나 비잔티움 제국으로도 불린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계속되었다.

▲ 바티칸 궁전(Vatican Palace) 성 베드로 광장

이탈리아(로마)는 정치, 경제, 건축, 문화, 예술 모든 방면에서 다른 유럽지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문학은 희곡과 시부문에서 꽃을 피운다. 희곡 중엔 비극도 있고 희극도 있다. 플라우트스는 일생 100여편의 희곡을 썼는데 섬세하고도 사실적인 표현은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베르길리우스란 시인은 14세기초 사람 단테가 신곡을 쓸 때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압피아누스란 역사학자는 24권으로 된 로마사를 남겼다. 이 책에서 로마의 정복사, 스파르타쿠스 노예봉기, 이탈리아 동맹전쟁,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간 싸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싸움 등을 사실적이고 재미있게 기술했다. 카이사르도 문장가여서 갈리아 전쟁기를 남겼다. 로마는 법학도 발전하여 바비앙을 비롯한 5대 법학자들의 저술은 현대 법율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 자연과학, 농학도 발전하여 로프리니는 37권으로 된 ‘자연사’를 남겼다. 건축이 특히 발달하여 궁전, 신전, 대회랑, 주 랑, 아치문이 즐비한 곳이 로마다. 거기에다가 개선문, 목욕탕, 돌로 만든 수로(水路)는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을 보여준다. 특히 원형경기장은 3층으로 관중 5만명을 수용했다.

▲ 원형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베스파시아누스 시대인70 – 80 AD 건축

로마 역사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빼놓을 수가 없다. 교양과 미모를 겸비하고 야심에 찬 그녀는 22세에 53세의 카이사르를 유혹해 아들을 낳고 이집트 왕녀로 입지를 굳혔다. 카이사르가 죽자 이번엔 그의 부장이었던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매혹당한다 . 그녀와 동방제국을 건설하여 로마로부터 독립을 획책한다. 카이자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이에 반대해 BC 31년에 악티움해 전에서 안토니우스군을 격파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에게 "그대 아버지를 봐서라도 내 시체를 욕되게 하지 말아달라" 는 유서를 남기고 39세에 코브라에 물려 자살한다.

로마는 볼거리가 너무 많다. 로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BC 2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한 판테온(Pantheon)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건축물을 교회로 사용했기 때문에 2천년이 넘은 시간에 건물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예수의 탄생을 전후하여 로마는 공화정(共和政)에서 제정(帝政)으로 전환한다. 서기 96년에서 180년에 이르는 5현제(賢帝) 시대에 영토도 최대로 늘리고 전성기를 구가한다. 당시 로마는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였다. 후기 로마가 권력 다툼과 사치에 빠지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4. 10여년 만에 만나는 처제

2008년 우리 가족만 유럽여행 중이었다. 집사람이 독일에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사는 처제에게 전화했다. 처제가 "언니 내가 5일 후엔 남미로 떠나는데 그전에 와서 나도 보고 며칠 같이 지내. 우리 없는 동안 우리집에 살면서 이 곳을 베이스로 유럽 이곳저곳 을 돌아다녀" 한다. 우리는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새벽부터 계속 달렸는데도 중간 눈덮인 알프스를 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우리는 14시간만인 밤 9시가 돼서야 밀라노 처제집에 도착했다. 처제가 반가워서 괴성을 지르며 집사람과 껴안고 돌아간다.

식당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집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다 먹었다. 도미니크가 부자라 처제는 아주 잘 살고 있다.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에 사업체를 갖고 양 쪽을 몇 달씩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다. 이탈리아에도 별장이 있고 우루과이에도 있다. 처제가 20여년전 언니가 사는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이탈리아에서 온 유학생 도미니크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생활 20년에 아이가 없어 고민하다가 처제가 46세에 임신에 성공하여 아들을 낳았다. 50세에 아버지가 된 도미니크는 아들이 보고 싶어 일찍 퇴근한다고 한다. 처제네 응접실에 큰 그림 하나가 인상적이어서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물어 보니, 처제가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처제는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는데, 작품이 꽤 좋다. 자기 집에 여분의 침실이 있는데도 도미니크는 우리를 그 근처에 있는 고급 호텔에 투숙시킨다. 도미니크가 영어를 잘 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 밀라노 신도시, 구도시

여기에서 3일간 집 사람은 처제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나는 오람이와 둘이서 밀라노를 탐사했다. 오람이가 "여기가 롬바르드족 (Lombards) 중심지고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가 여러번 정복한 곳인가요?" 한다. "그래,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라고 물으니, 오람이가 "아버지가 명지대에서 '서먕문화의 이해'를 강의할 때 제가 자주 청강했잖아요. 그 때 들었어요" 하며 "저기에 영어로 여기가 롬바르디 주의 수도라고 써 있어요"한다. 우리가 명지대 켐퍼스 내 교수관사에서 7년 이상 살아서 바로 집 옆에서 내가 강의할 때는 오람이가 가끔 청강을 했다.

13세기 경 지중해 항구도시들은 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다. 이런 지역이 이탈리아를 비롯해 많이 생긴다. 항구가 없는 독일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독일이 배출한다. 황제는 지위만 있지 바다 건너 들어온 진기한 물건은 구경 도 못하는 형편이 됐다. 제국의 지배지역 중에도 이탈리아 북쪽에 사는 롬바르드 족은 세금은 안 내고 반항만 잘 했다. 프리드리히 1세는 군대를 끌고 와서 이 곳을 여섯 번이나 정복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결국은 롬바르드족이 총 단결해서 레가노 전투에서 황제의 군대를 격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애기가 울면 "저기 호랑이가 온다" 하지만, 이태리에서는 "저기 발바로사(Balbarossa-붉은 수염)가 온다" 한다. 기사 중에 기사로 알려졌던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 전쟁을 지휘하다가 소아시아 지역 어느 강에서 익사를 한다. 50kg이 넘는 철갑옷이 말위에서 미끄러져 빠진 그를 물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만능이었던 그의 손자 프리드리히 2세는 내가 중세 유럽 왕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교황이 십자군전쟁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자 그는 이집트 술탄을 찾아가 유창한 아랍어로 친구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순례의 길을 평화적으로 확보하고 많은 선물을 받아 가지고 돌아온다. 속 좁은 교황은 시기심으로 회교도와 친한 그를 이단으로 몬다. 근세왕 중에는 프러시아의 계몽군 주인 프리드리히 2세를 내가 가장 좋아한다. 그는 볼테르와 친했으며 '나는 국가의 제일의 공복'이라고 자처했다. 내가 공교롭게도 두 명의 프리드리히 2세를 좋아한다.

처제가 "밀라노는 산업도시라 형부가 심심해서 싫어하실 거에요"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였다. 보상심리 때문인지 밀라노의 스칼라 오페라(La Scala Opera) 극장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런던의 코벤트 가든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다. 내가 어려서부터 오페라 판을 보면 '라 스칼라 공연'이 많아서 동경하던 곳이다. 뉴욕, 파리와 함께 세계 3대 패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 스칼라(La Scala), 오페라 극장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보기 위해 마리아 성당으로 갔다. 손상이 간 벽화 를 몇 년에 거쳐 복구한 후 다시 공개 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란 책이 2천 5백만부 이상 팔리며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부터 미리 예약을 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말해 주는 비밀 메시지가 '최후의 만찬' 그림 속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예약을 안 했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당했다. 지금 예약해도 4일 후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 최후의 만찬

우리는 최후의 만찬은 포기하고 곧 두오모로 갔다. 내가 4년 전에 왔을 때는 수리 중이라 많은 부분이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모습을 거의 다 내 놨다. 두오모 광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젊은 아랍청년이 옥수수 알로 비둘기를 불러서 나와 오람이 팔에 앉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한다. 거절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한다. 그리고 20유로(약 3만원)를 요구한다.

거절하니까 다가오더니 내 팔을 위협적으로 잡는다. 그 때 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무섭게 하고 강한 태도로 나갔더니 멈칫 한다. 내가 2유로만 주면서 가라고 했더니 그들은 그것만 받더니 사라진다. 이런 청년들은 대개 불법 체류자라 경찰이 오거나 문제가 확대되는 걸 자기네가 더 겁을 낸다.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동구유럽, 아랍계, 아프리카 등지에서 합법, 불법으로 많은 인구가 서구유럽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주로 3D(Dangerous, difficult, dirty) 직종에 종사를 하지만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이 들은 서구유럽의 가장 큰 골치 덩어리가 되었다.

▲ 밀라노 두오모

▲ 두오모 광장

이 곳 두오모는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5백년에 걸쳐 완성한 위대한 건축물이다. 이탈리아는 북쪽은 잘 살고 남쪽은 못 산다. 북쪽 사람들은 키가 크고 머리도 노랗다. 게르만 족과 켈트 족이 많아서 그렇다. 남쪽 사람들은 라틴계라 땅딸막 하고 눈썹과 머리색깔이 짙고 까맣다. 북부 산업지대의 중심지 밀라노는 인구 4백만의 대도시로 로마보다 크고 부자다.

▲ 거의 수리가 끝난 두오모, 비들기가 오람이 팔에 앉았다.

▲ 두오모와 오페라를 연결하는 아케이드, 아케이드 입구

▲ 두오모 첨탑

돔(Dome)의 이태리 말인 두오모(Duomo)는 대성당을 뜻한다. 유럽 대 도시들은 자기네 두오모에 자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밀라노의 두오모도 그 중 하나다. 로마가 전 유럽을 지배 하면서 서기 천년 경에는 유럽 전체가 기독교문명으로 통일 된다. 그 때부 터 각 대도시는 자기네 총력을 기울여 두오모를 짓는다.

유럽을 여행하려면 두오모와 많은 성당을 필연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밀라노가 서양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는데 중요한 장소가 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는 313년 자기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같은 해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로마가 기독교를 믿는데 자유를 허용한다. 기독교인 박해도 중단하고 몰수한 재산도 돌려 주었다. 그는 325년에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주제해 3위 1체 설을 확정 짓는 일도 한다.

그는 동로마제국을 재건하고 확장하여 비잔티움을 수도로 삼고 자기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바꾼다. 동로마제국은 서로 마제국이 멸망하고도 천 년을 더 존속하다가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한다. 회교도가 이 도시를 차지한 후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꾼다. 동로마제국은 성상(聖像)을 부인하는 그리스정교를 설립하고 러시아에 전파해 러시아정교도 세운다. 그리스정교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성인으로 추앙한다.

▲ 두오모와 오페라 극장 사이의 아케이드

오람이와 쇼핑가를 걷는데 겨울 세일이 시작되어 모든 게 50% 할인이다. 오람이가 자기가 입고 있는 초록색 점퍼가 'North Face 550'인데 800은 더 얇고 가벼운데도 아주 따뜻하다고 한다. 겨울에도 속에 티셔츠 하나만 가볍게 입고 다닐 수 있다며 나에게 자꾸 옷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더니 스포츠 옷 가게에 들어가자고 한다. 내가 거절 하니까 그럼 한 번 보기만 하자고 한다 . 들어가서 오람이가 입은 걸 보니까 550보다 덜 투박하고 옷 질감이 아주 좋다. "제가 정장이 없어서 아버지가 한 벌 사주겠다 고 벌써부터 하셨잖아요. 이걸로 대신 사 주세요" 한다.

그런데 값이 220유로나 된다. "제가 여행하면서 다른 데서 절약 하겠어요" 나를 계속 설득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사 주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맞다. 내가 골라준 색은 거절하고 오람이는 검은 색을 택한다. 서양 속담에 "머리를 깎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옷을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고, 말(馬)을 사면 한 달이 행복하고, 결혼하면 일년이 행복하고, 정직하면 일생이 행복하다"는 말대로 오람이가 일주일쯤 행복해 한다.

"네가 조금 더 날씬해 보인다" 하면 아주 좋아한다. 이 놈이 은근히 미용관리를 하는 걸 그 동안 내가 눈치를 못 챘었다. 자기가 유럽으로 오면서 새로 사 입었다는 초록색 점퍼를 나에게 주면서 "이건 아버지 드릴게요"한다. 이 점퍼를 입어 보니까 이태까지 입었던 옷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볍고 따뜻하다. 몸도 아주 편해 옷을 입은 거 같지 않다. 이 후로는 나도 이 옷만 입게 되었다.

밀라노는 좁은 거리를 다녀도 짙은 문화가 묻어있다. 그리고 건물들도 아름답다. 누가 밀라노가 심심하다고 했는가? 나와 오람이는 밀라노를 즐겼다. 헤어지면서 처제가 운다. 집사람도 운다. 그 걸 보며 나와 오람이는 눈으로 미소를 교환했다.

5. 대사 관광 안내원

밀라노에서 김중재대사에게 전화했더니 내일 오후에만 시간이 있고 그 후 어디를 며칠 다녀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일 오후 김 대사가 퇴근하기 전에 로마까지 가서 만나야 한다. 이탈리아 한국대사배 바둑대회 개최에 대한 확답을 받아 내야 한다. 우리는 서둘러 새벽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는 돈을 받는다. 우리나라와 값이 비슷한 것 같다. 북부유럽은 받는 나라가 한군데도 없는데.

이탈리아에서 벨기에 번호판을 단 벤츠를 타고 다니면 도둑에게 공격의 표적이 된다. 잠깐을 세워도 주차빌딩 안에 세워야 한다. 그 경비도 만만치 않다. 25년 전에 내가 독일 번호판을 단 BMW차를 로마 호텔 밖 길에 세워놨다가 공격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한 번으로 충분하지 두 번 다시는 표적이 되지 않으리라.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외국차가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서 털리지 않고 돌아가면 창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게 한다.

김대사는 나에게는 같은과 직속후배이고 집 사람에게는 4년 간 같은 반 친구다. 나에게 "선배님 말씀은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한다. 김대사는 대구 사람인데 세계육상대회 유치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유치에 성공하는데 주역을 했다. 자기 고향에 큰 일을 하나 해주었다. 집 사람이 "육상대회를 유치한 공으로 이태리대사가 되었다"고 놀리니까 김대사가 나에게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하고 부인한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외통부에서 뭘 했느냐?"고 했더니 "구주(유럽)국장이었습니다" 한다. 내가 "그럼 이태리대사가 될만하네" 하고 두둔해 주었다.

우리는 김대사에게 바둑대회를 열어달라고 부탁이 아닌 강요를 했다. "그래야죠. 누구 부탁이신데. 거기다가 로마까지 오시고" 답변을 받자마자 집사람이 "우리가 로마까지 왔는데 뭘 대접하겠냐"며 이번엔 협박을 한다. 김대사가 "숙소에 가 계시면 제가 회 의만 끝내고 그리로 모시러 가겠습니다"한다. 주차관계로 우리차는 대사관에 세워두고 대사관 차로 숙소에 돌아와서 좀 쉬었다. 유럽에서 운전은 오람이 혼자 했지만 여러날 계속 여행 중이고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거리도 만만치않아 약간 피곤해지려고 한다.

▲ 마죠네 성당(Santa Maria Maggione), 로마 거리

우리 숙소가 유명한 산타 마리아 마죠네 성당 바로 옆이다. 나는 오람이와 성당과 숙소 주변을 30분쯤 걷고 돌아왔다. 독일에서 삔 내 발이 밀라노까지는 통증이 좀 있었으나 이제는 다 나아서 걷는데 불편이 없다. 새로운 곳을 본다는 건 언제나 사람을 흥분시킨다. 여행엔 피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나 그건 기분좋은 피로다. 우리 방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김대사가 들어 선다.“ 저녁식사는 한식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한다. 나에겐 너무 반가운 소식이다. 저녁식사 중에도 육상대회 유치 얘기만 나오면 김대사가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자기도 보람을 많이 느끼나 보다.

식당에서 나와 김대사가 로마 거리를 안내한다. "제 일생에 처음 관광 가이드를 하는 겁니다"하길래 "나도 대사 안내원은 처음" 이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바티칸궁전, 스페인광장, 천사의 궁, 코르소 거리 상가를 돌면서 같이 하루 밤을 보냈다. 과거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가 이제는 인구 3백만의 평범한 유럽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를 열흘에 볼 수는 있어도 6개월에는 못 본다"는 말처럼 유물이 무궁무진하여 세계에서 유네스코 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다.

▲ 우리 가족과 김대사. 한국식당, 밤의 바티칸 궁전

5. 우리 식구끼리만 관광

대사배 협조를 약속받은 후에 느긋한 마음으로 우리는 숙소에 와서 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식구끼리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나는 이탈리아에 세번째 오지만 아주 어릴 적에 온 오람이는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 없다. 아침에 대사관 차가 왔다. 우리는 대사관 가는 중간에 위치한 트레비(Trevi) 분수에서 내리고 차는 보냈다. 전에 내가 감명 받았던 분수는 지금도 같은 모습이다. 오람이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라고 했더니 오람이도 "그렇겠네요"라 답한다.

'Three coins in the fountain'이란 영화는 이 분수를 소재로 한 내용인데 내가 어려서 봤다. 각기 문제를 앉고 있는 세 미국 여인이 이곳에 와 소원을 빌고 그것이 해결된다는 내용으로 나는 기억한다. 오람이에게 내가 1유로짜리 동전을 주면서 "너도 뒤로 돌아 이걸 던지며 소원을 말해봐라"했더니 소원이 없단다. 내가 그럼 "아버지에게 더 착한 효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면서 던져봐" 했더니 오람이가 "동전이 아까워요"한다. 이 놈이 생각보다 구두쇠네. 아니면 효자가 되기 싫던지. 분수 안에는 아침인데도 벌써 동전이 많이 보인다.

▲ 부자(父子)가 트레비 분수를 보고 있다, 연인들 부탁으로 한장 찰칵

▲ 트레비 분수를 배경으로

트레비 분수를 떠나서 우리는 판테온(Pantheon) 신전 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골목들에 이태리의 오랜 문화가 묻어 있다. 낡은 집, 좁은 거리에 개성 있는 상점들이 많다. 문화가 짙으면 음식과 욕이 발달한다고 한다. 이탈리아가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도가 그렇다.

▲ '얘 코가 내 코 보다 높네' 판테온으로 가는 골목에서

판테온은 2천 년도 넘는 헬레니즘(BC313~AD30) 시대에 지은 건물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된 후에 다신교 시절 건물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는데 이 건물은 거의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너무 육중하게 지어서 허물려고 해도 엄청난 공사여서 일까? 건물을 그대로 놔두고 성당으로 전환시켰다. 르네상스를 겪으면서 로마인들의 고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새 삼 발견한다. 2천 년도 넘는 그 옛날에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건물을 지었을까? 나는 이 건물을 대할수록 더 상상이 안 된다.

▲ 판테온 신전

천사의 성(Angel's Castle)은 오페라 토스카(La Tosca)의 무대로 유명하다. 오페라 마지막 장면에서 토스카를 탐하는 경시 총경 스칼피아를 죽인 후 그의 부하들에게 쫓겨 성 꼭대기까지 도망 온 토스카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까 "스칼피아, 지옥에서 만나자"며 소리지르고 뛰어 내려 자살한다. 천사의 성은 원래 테베레강 옆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묘(廟)로 지었다. 서기 135년부터 5년에 걸쳐 완성했다. 원통 모양인데 책자에 보니까 길이 30m의 원뿔모양 건물을 세우고, 그 위에 에트루리아식으로 흙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무덤에는 여러 황제가 매장되어 있다. 로마제국 붕괴 후엔 요새나 감옥으로 쓰였고 지금은 무기박물관이 되어있다. 산탄젤로(성 천사라는 뜻)라는 명칭은 590년 페스트가 유행하였을 때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성의 꼭대기에 칼을 든 대천사 미카엘이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 후 한 동안 페스트가 안 돌았다고 한다.

▲ 천사의 성

천사의 성을 떠나 우리는 베드로 성당과 교황이 있는 바티칸으로 걸어 갔다. 바티칸은 로마시내에 있는 교황이 통치하는 세계최소의 독립국이다. 인구 약 천명. 일명 로마교황청이라 한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Saint Peter's Basilica)은 다시 봐도 그 규모와 건물 자체에 방문객이 압도당한다.

단연 교회의 왕 중 왕이다. 높은 천정, 넓은 공간도 그렇고 대리석이 색깔 별로 분배되어 커다란 모자이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판 것만 해도 엄청나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은 돈으로 이렇게 호화스러운 성전을 짓는 것이 정말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 예수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는데 교황과 추기경들이 입은 화려한 복장은 어떻게 설명될까? 나는 이해가 안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기중기도 없는 옛날에 지었을까?

▲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광장
TYGEM / 한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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