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스페셜
하얀 사슴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 제주 바둑기행 2부
2012-04-23 오전 9:49:02 입력 / 2012-04-23 오전 10:42:41 수정

▲ 1100m 지도
S#1. 1100고지에 묻힌 純情
제주시에서 중문으로 넘어가는 1100도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2횡단도로라고 불렀죠.
도로의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해발 1,100미터에 달하며 그 자리에 휴게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 안내판과 휴게소 백록상
휴게소 바로 옆에 하얀 사슴(白鹿) 상이 보입니다.
사슴은 멀리 1,950미터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응시하고 있지요.
백록이란 단어는 제주를 상징합니다.
옛날에 제주의 효자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라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짙은 안개에 길을 잃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얀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 뒤를 쫒았지요.
사슴이 멈춘 곳에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개와 함께 사슴도 사라졌습니다.
효자는 그 연못의 물을 떠서 어머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치유됐다고 하지요.
그 연못이 바로 백록담입니다.
효(孝)의 주제를 담은 백록의 설화에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 한라산 백록상
먼 산을 바라보는 사슴의 포즈가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저 자리에 백록상을 세운 이가 제주의 대표적인 낭만기객 이동일(李東一) 씨입니다.
제주시에서 동일내과 병원을 개업하고 평생 인술을 베풀며 제주 기우회와 함께 바둑을 즐기다가 올해 1월 22일 별세한 분입니다.
▲ 백록 상 뒷면 석판의 글
백록 상 뒷면 석판에 새겨진 글을 유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끝자락에 제주 토박이 이동일 원장의 이름이 보입니다.
석판의 글 내용에서 '타국'과 '낯설은 객지'라는 대목이 바로 이동일 원장의 행로를 암시합니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 오사카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어려웠던 때라 무척 외롭고 힘들었는데 현지의 교포들 중 제주 향우회가 결성되어 어린 학생들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학비를 대주던 교포들의 모임이 '백록학우회'였다네요.
청소년 시절 고향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공부를 한 이동일 원장은 해방 이후 전남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어 귀향했습니다.

▲ 이동일 증명사진
제주시에 자리를 잡고 의사로 활동하면서 이동일 원장은 '백록'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애씁니다.
겉으로 표 나지 않게 어려운 이들을 자주 돕고 특히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 전남대 학술림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전남대 학술림의 면적은 5천 평에 달합니다.
이동일 원장이 모교에 기증한 숲입니다.
▲ 산에서 본 제주 시가지
"베풀며 살아라. 지금 너희들이 가진 것은 누군가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일 원장의 유언입니다.
그 자신이 선배들의 사랑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을 언제나 고마워했습니다.
그렇게 나눔과 베품의 인간적 유대관계를 이 원장은 ‘백록정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한마음 병원
올해 1월 22일 이동일 원장은 제주시 한마음 병원에서 몇 달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눈을 감았습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병원인데 이례적으로 이 병원의 원장이 이동일 원장의 대학후배였는데 입원 기간 동안 원장이 직접 병간호를 하고 몸을 씻겨주고 장례식 때는 관을 들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군요.
뿐만 아니라 장례식장에는 제주도의 노기객(老棋客)들이 사흘내내 자리를 지켰습니다.
1976년부터 이동일 원장은 제주기우회를 만들어 30여년 동안 바둑 벗들과 수담을 나누어 왔습니다.
매달 이동일 원장 자택에서 바둑대회를 가졌다고하니 대단하지요.
그는 입원해 있으면서도 아들이 구해준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 바둑을 즐겼다고 합니다.
아이디가 '제주흰사슴'이었지요.
▲ 백록 상과 아들
1,100고지 백록 상 아래 이동일 원장의 유품이 묻혀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시던 바둑용품과 책, 돋보기 등을 태워 그 재를 묻었다고 합니다.
이동일 원장의 차남 이태엽 씨가 아버님의 숨결을 느끼는 중입니다.
▲ 필자(왼쪽)와 제주 바둑인 김석범씨
S#2. 제주 바둑 지킴이
그날 밤 필자가 묵고 있던 펜션에 제주의 원로 바둑인 한 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팔순을 넘긴 김석범 씨는 이동일 원장과 함께 제주기우회 창단 멤버로 오랜 세월 바둑을 지켜 왔습니다.
부산의 수산대학을 다닐 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서울의 피난민들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 왔습니다.
그때 바둑을 갓 배웠던 김석범 씨는 우연히 부산의 한 거리에서 기원 간판을 발견합니다.
들어가 보니 조남철 국수께서 운영하던 기원이었다네요.
그 자리에서 김석범 씨는 조남철 국수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강2급까지 도달했습니다.
나중에 전국 규모대회에 나가서 3위까지 입상한 적 있는데요.
그때 우승자가 조남철 국수의 수제자인 고 김수영 사범이었습니다.
국수로부터 정통 바둑을 배운 김석범 씨는 제주도 성산포 수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촌형인 이동일 원장과 함께 기우회를 만듭니다.
▲ 조남철 국수의 제자 김석범 씨
이동일 원장은 회장으로, 김석범 씨는 사범으로 쌍두마차가 되어 30여 년간 바둑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이동일 원장 가문은 원래부터 바둑 고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제주기우회 초창기 멤버들이 쟁쟁했습니다. 경찰서장, 의사, 조합장,교장 등등 지역의 유지들이 많았어요. 기우회비도 연회비를 선불로 받았는데 모두 척척 냈지요. 이동일 원장께서 사비를 털어 월1회 정기 바둑대회를 자택에서 개최했는데 그 대회가 중단되지 않고 거의 최근까지 지속되어 왔으니까 대단한 일이죠. 원장님의 애향심과 바둑 사랑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 바둑판을 보는 식구들
S#3. 추자도 세 자매를 아시나요?
작년 타이젬 스페셜로 소개된 '당신은 사랑의 힘을 믿나요?'편 기억하시는지요?
☞ '당신은 사랑의 힘을 믿나요?'편 바로가기
그때 추자도의 세 자매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그 세 자매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동일 원장입니다.
이동일 원장의 차남 이태엽 씨는 뜻하는 바가 있어 추자도로 이주해 수산물 가공사업을 하는 중입니다.
이태엽 씨는 바둑에 취미가 없어 아버님의 바둑 혼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세대의 딸들이 바둑에 매료돼 한꺼번에 셋 전부가 추자도를 떠나 서울의 이세돌 도장에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서도 자녀들을 이처럼 바둑지망생으로 뒷바라지하기 힘든데 이태엽 씨는 흔쾌히 딸들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그 배경에 바로 아버님 이동일 원장의 유전자가 있었던 겁니다.
이동일 원장은 생전에 타이젬에 소개된 손녀들의 기사를 읽으며 허허허 연신 웃음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손녀들을 잘 길러 훗날 제주도 바둑 지킴이가 되도록 해라.”
▲ 세 자매
비 내리는 주말 추자도 세 자매를 만났습니다.
언제나 밝고 씩씩한 아이들입니다.
▲ 바둑도장에도 사슴이 있었다.
이세돌 도장을 찾아갔는데 우연하게도 그 곳에 사슴 상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백록정신’을 들려주었습니다.
▲ 큰딸 이유경, 둘째 이유민, 막내 이시연
이 세 자매가 이동일 원장의 '백록정신'을 증거합니다.
▲ 제주도에서 만난 하얀 사슴과 갈색 거북.
S#4. 에필로그
제주도에서 만난 영물 '갈색 거북'과 '하얀 사슴'
아직도 잔잔하게 가슴에 파장이 남아 있습니다.
바둑계는 참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바둑계 사람들은 자꾸 바둑계가 좁다고 느끼는 듯싶습니다.
승부의 속성이 강하지만 바둑은 사람과 사람의 체온이 오가는 인연의 고리이기도 합니다.
수천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담의 인연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인연의 지도를 그리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따뜻합니다.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