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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돌아오라 소렌토로!

한상대 세계바둑사, 이탈리아 2편

2012-05-20 오전 11:52:11 입력 / 2012-05-22 오전 9:13:51 수정


▲ 나폴리

1. 1983년 이탈리아

1) 나폴리

이야기는 다시 1983년 3월로 돌아간다. 로마에서 5일을 묵은 후 우리식구와 서봉수사범은 로마를 떠나 나폴리(Napoli)에 갔다. 나폴리에는 도둑이 많다고 하여 로마에서 한번 당한 뒤라 잔뜩 긴장했다. 스파게티 집에서 식사하면서도 자동차가 보이는 곳에 앉아서 했다. 유명한 스파게티 집이라는데 맛이 내가 호주에서 단골로 다니는 집만 못하다. 나폴리가 세계에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우선 더러운 곳이 너무 많다.

▲ 나폴리 시내

▲ 나폴리 중심가 뒷 골목 앞 바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자세히 보니 모든 환경도 아름답고 건물들도 멋진데 이탈리아 경제가 이 도시 관리를 못한 거 같다. 100년전에는 아주 아름다웠으리란 생각이 든다. 인구는 4백만. 우리는 폼페이를 화산폭발로 덮어버린 베수비오 산에 가서 케이블카로 산 정상 분화구에 갔다. 커다란 분화구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 신기하다. 이 케블카에서 '후니쿨리 후니쿨라'란 노래가 생겼다. 폼페이는 수리 중이라 못 들어갔다. 기대가 컸었는데.

▲ 소렌토. 바다 건너 베수비오 산이 보인다

2) 소렌토

나는 지체 않고 곧장 소렌토(Sorrento)로 갔다. 어려서 부터 '돌아오라 소렌토로'란 노래를 부르며 동경해 오던 곳이다. 소렌토에는 산 중턱 언덕에 마을들이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어느 작은 호텔에 묵었는데 아침에 여자들 노래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보니 우리 호텔 옆이 오렌지 과수원이다. 아침 햇살은 화사하고 오렌지 따는 여인들이 싱그러워 보인다. 코발트 푸른 색 바다 저 편으로 어제 올라갔던 베수비오가 보인다. 미풍에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이방인은 남국의 정취에 도취하고 만다.

이탈리아에선 자식을 낳으면 성악무터 시켜보고 안되면 다른 걸 시킨다는 말대로 전 국민이 노래를 좋아한다. 북유럽과는 딴판이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음악을 좋아하여 호주에서 멜본대학 음대 성악과를 또 다녔다.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많이 배워서 바둑쟁이가 기원에 간 것처럼 이탈리아의 노래부르는 분위기 속에서 신이 났다. 음식점이나 관광명소에서 제일 많이 듣는 곡은 '돌아오라 소렌토로'와 '먼 산타루치아'다.

3) 카프리 섬

우리는 카프리(Capri) 섬에 가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떠나자 얼마 안되어 한때의 사람들이 합창을 시작한다. 보니까 어느 사람 지휘하에 10여명 되는 사람들이 노랠 부른다. 아는 곡이길래 나도 끼어들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지휘하던 50대 남자가 지휘를 멈추더니 나보고 혼자 노래를 해 보라고 한다. 지금 부른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Core 'ngrato)'을 다시 불렀다.

끝나자 "부라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나를 안고 여자들은 내 볼에 키스를 하고 난리다. 이 때부터 1시간 30분동안 내 독창을 섞은 합창이 이어졌다. 이 사람들은 음악을 전공 안한 순수한 아마추어들이다. 그래서 그들 목소리가 훈련 안 받은 생소리들이다. 그런데도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는 다 합창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우리 정서가 담긴 판소리 창(唱)을 부르기는 커녕 듣지도 않을까?. 국악도 맛을 알면 발달된 음악인데….

▲ 카프리 항구(여기서 정상 안나카프리까지는 11km쯤 된다)

내가 노래할 때 서사범은 뱃머리 반대 편에 서 있었다. 카프리 항구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면서 서봉수 9단이 "노래 소리가 파도와 바람을 타고 저 있는데까지도 잘 들리던데요" 하며 웃는다. 카프리에 도착해서다. 우리 목적지 안나카프리까지 11km라고 한다. 택시와 값을 흥정하고 있는데 누가 오더니 나에게 "당신이 Singer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나는 저기 있는 버스 운전수인데 우리차를 빌린 단체가 당신 일행 4명을 태워주라고 해서 왔다. 버스 값은 공짜지만 대신 올라가는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는 다시 몇 곡을 버스 안에서 불렀다.

▲ 카프리(Capri) 섬

목적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뭘먹을까 궁리 중인데 우리 옆에 있는 꽤 큰 호텔의 지배인이란 사람이 나에게 왔다. "당신 일행 식사를 대접할테니까 호텔에서 노래 몇곡 부르라"고 한다. 나는 호텔 식사를 얻어먹는 대신 또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우리와 같이 온 일행 외에도 다른 관광객 수십명이 더 있었다. 동양인이 자기네 노래를 부르는게 신기했나 보다. 내 노래가 이렇게 환영받을 줄이야. 이탈리아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기회만 있으면 자랑한다.

호텔에서 나와서 이 섬의 정상까지는 다시 케이블카로 올라가야 한다. 집사람이 높이 매달린 케이블카를 보더니 위험해 보인다며 아이와 같이 밑에 남겠다고 한다. 나와 서사범 둘이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장관이다. "우리 가족도 데려올 걸. 그런데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내 코 앞에 경치가 하필 서사범이야? 예쁜 여자라도 있어야지….' 애매한 서봉수 9단만 구박했다.

▲ 안나카프리(섬의 정상)에서 필자와 서사범 내려다 보이는 경치

4) 피사

피사에 갔을 때다. 사탑을 향해 가다가 길을 잃었다.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로 답한다. 마침 사탑 그림엽서를 산 게 있길래 물어 볼 때 그 그림을 보여주니까 누구나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 준다(궁측통). 사탑에 올라가는게 힘들다며 서사범은 아래에서 오람이랑 놀고 있겠다고 한다. 우리만 올라가는데 탑이 기울어져 아래로 쏠렸다가 올라갔다가를 여러번 반복하며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놀이공원에 온 것 같다.

피사탑에서 내려다 보니까 서봉수 9단이 잔디밭에 누워 있다. 우리아이는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 "서사범이 몹시 지쳐있구나" 서봉수 9단은 시간만 나면 승부와 야통, 담배에 찌들은 심신을 쉬려고만 한다. 얼마전 마지막 남은 명인을 조훈현 9단에게 빼앗기고 전관왕을 내어주는 과정에서 진이 빠졌을까? 그래도 서봉수 9단이 유럽여행 중에 담배를 끊은지 여러날 되었다.

내가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 바둑판을 꺼내 한판하자고 하면 언제나 마지못해 응했다. 하루종일 운전하는 나보다 더 지쳐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몬테칼로 카지노에서 내가 "여기가 세계적인 도박장"이라고 하자 자기가 세계적 고수와 포카를 한판 붙어보고 싶다며 흥분한다. 처음으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맸다. 내가 "우리 둘이다 2백불씩만 잃고 떠나자"며 2백불만 주머니에 넣으라고 했다. 그러나 도박장에 가니까 포카는 저녁 7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떠나자고 하니까 서사범은 기다리고 싶어한다. 집사람이 “모래가 제 생일인데 파리에서 생일축하 저녁을 하기로 했잖아요. 그냥 떠나세요” 하니까 마지못해 떠난다. 포카 얘기가 나와서부터 도박장에 갔을 때까지 서사범은 어느 때 보다 생기가 돌고 살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몰래 2천불을 속 주머니에 감추고 있었다. 세계적인 도박사들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한판 붙어볼 생각이었다. 내가 “이 사람은 정말 승부사 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2. 북구와 남구

유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서로가 달랐다. 알프스 북쪽의 잿빛 하늘과 촉촉히 젖은 날씨는 사람을 사색적으로 만든다. 애수(哀愁)와 멜랑콜리(Melancholy)에 쉽게 젖어든다. 감정도 자연스럽게 짙어진다. 특히 차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다니면 선율이 주변과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여름 날씨도 하늘이 흐리고 추웠다. 7월에도 스웨터를 입고 다닌 날이 많았다.

▲ 알프스 산맥(붉은 선 내)

이에 비해 알프스 남쪽은 햇살이 밝고 따뜻했다. 많은 터널을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에 오면 밝은 태양이 눈부시다. 오! 나의 태양(O Sole mio)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이탈리아에 있으면 실내에 있기가 싫어진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공기 속에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요소가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거리에 사람이 많은가 보다.

러시아의 음산한 회색 하늘 속에 살다가 태양이 밝은 이탈리아를 방문한 차이코프스키는 밝고 화려한 ‘이탈리아 기상곡’을 작곡한다. 그는 아낙네들이 빨래하면서 부르는 멜로디를 채취해서 이탈리아 기상곡 테마 멜로디로 썼다. 그 곡만 들으면 내가 알고 있는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다.

▲ 독일 튀빙엔(Tubingen) old town

유럽의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도 내가 가장 감명 받는 곳은 고도시(古都市 old town) 부분이다. 17~18세기 집들이 늘어선 곳을 돌아 다니노라면 “어떻게 3~4백년전에 이렇게 아름답게 지엇을까?” 그 거리 분위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어 버린다. 또 유럽의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독일어를 쓰는 곳이면 잘 산다는 사실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다른 부분의 유럽 보다 더 잘 정돈되고 부유했다.

▲ 독일 로텐부르크(Rothenburg). 내가 좋아해서 여러번 찾아간 중세 도시

▲ 우리 부부가 로텐부르크 마을을 돌아보고 있다.

유럽의 건축물들은 자연과 잘 어울려 오히려 주변 산천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적이 많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의 건축물들은 주변 자연을 손상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자연은 세계 어디에다 내놓아도 뛰어나게 아름다운데...... 우리나라는 발전이란 미명 하에 나라를 망쳐놓은 부분이 많다. 전쟁 후 경제발전만 강조하다가 보니까 건축미학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였을까?

3. 이탈리아 사람

한국민과 성격이 비슷한 면이 많다. 우선 같은 반도국가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점으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한국은 유교를 이탈리아는 카톨릭을 근거로 가족중심적이다. 쉽게 감정적이고 낭만적이 된다. 특히 양국민이 다 노래부르기를 무척 좋아한다. 대신 경우가 밝지 못해서 신뢰감이 떨어진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아는 사람에게는 우선순위 관계없이 일을 처리해 주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기는 커녕 특권으로 안다.

▲ 베네치아(Venezia)

한국인도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은 못 따라간다. 특히 이탈리아인들은 말할 때 손짓을 동반한다. 어느 스파이가 아무리 고문을 해도 고백을 안했는데 알고 보니 손을 묵어 놓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내가 네 사람이 서 있는 곳에 가서 길을 물었더니 네 명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말하는 걸 경험한 일도 있다.

우리 아이가 애기 때 이야기다. 이탈리아 상점에 들어가서 우유병에 우유를 넣어 달라고 하면 주인이 “오! 예쁜 아기(O! Bello bambino)“라고 하며 와서 아이를 안아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 애기가 얼마나 예쁘냐?”며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우유 값은 그냥 수퍼에서 살 때보다 5배는 요구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가게에 들어갔을 때 주인은 아무말 않고 우유병부터 뜨거운 물에 소독해 주고 우유를 가득 넣어서 준다. “얼마냐?”고 하니까 “나도 아이가 있다”며 돈을 절대 안 받는다.

로마인은 속이고 나폴리인은 거짓말을 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나에게 주의를 주며 한 말이다. 그러나 북쪽은 인종도 다르고 선진 유럽에 가깝다. 이탈리아 인들은 성질이 급하다(Short tempered).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걸 보면 미친 사람들 같다. 앞 차가 조금만 얼쩡거려도 160km에서 1미터 간격으로 앞으로 끊고 들어 온다. 손을 치켜들고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추월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작은 일로 쉽게 약속을 어기고 잘못은 인정하기 보다는 변명을 잘한다. 그 대신 정(情)이 많다. 독일과는 정반대다. 그런데도 내가 독일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어느 이탈리아인이 “거긴 기계나 살 곳이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한다. 그럼 이탈리아가 사람이 살 곳이란 말인가?.

이탈리아가 배출한 인물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얼른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에사르부터 중세 신곡 저자 단테, 천재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군주론 저자 마키아벨리, 동방견문록 저자 마르코 폴로,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이탈리아 통일의 3걸인 가르발디, 마치니, 카부르,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푸치니, 도니제티, 성악가 카루소, 노벨상 수상자로 페르미연구소로 유명한 페르미 등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 유네스코 문화유산 현장. 로마는 어디를 파도 문화재가 나온다

5. 생각 못했던 장애물

이탈리아 한국대사의 협조를 얻어냈으나 생각도 못한 다른 장벽이 앞을 가로 막았다. 이탈리아 바둑협회가 없어진 것이다. 두 쪽이 났는데 어느 쪽도 협회기능을 안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는 쓴 입 맛을 다시며 이탈리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2011년 초에 나와 아는 레오나르도(Leonardo)가 연락해왔다.

그는 역삼동에 있던 내 바둑영어교실에도 자주 왔었다. 협회가 하나로 재 출발했고 자기가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달 후쯤 한국대사배를 치르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개최 일을 2012년 4월 14~15일로 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대바협에 새로 들어온 안성문 전무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1년에 3백만원씩 국제 바둑활동비로 나에게 지원하던 걸 끊겠다는 내용이다. “그럼, 2011년 5월에 내가 유건재 사범과 체코에 가서 쓴 경비는 11월에 후불로 나오기로 되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하여간 이젠 아무 지원도 없습니다” 한다.

대바협 조건호 회장이 나에게 준 언약을 어기고 갑자기 지원을 끊고 쓴 돈까지 안 주겠다는 결정이 무슨 이유일까? 대바협이 돈에 쪼달리나?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국제바둑 활동을 그 돈보다 더 많이 활발히 해 왔는데. 중단할 땐 거기에 합당한 이유를 밝히는 법인데 그런 것도 없다.

이 무렵 이탈리아협회에서 개최일을 정하고 한국측 의견을 물어왔다. 대회일정에 한국 바둑팀의 지도대국과 강의도 다 정해놓고 대회 창설자로 내 인사말도 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내가 그 편지를 대바협으로 보내니까 그런 건 나보고 알아서 정하라고 한다. 자기넨 바둑팀 파견에만 관여하겠다고 한다.

홧김에 다 된 대사배 하나를 없앨 수도 없고 해서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에게 지원을 청했다. 나는 못 가도 프로기사 한명이라도 보내달라고 했다. 3주 후쯤 양총장이 나에게 전화하여 “날자가 촉박하여 직원들 얘기가 이번엔 좀 힘들다고 합니다” 한다. 내가 그 얘길 레오나르도에게 전했더니 그가 “한국 바둑강자의 지도다면기, 복기, 강의 프로그램이 다 짜여있고 홍보를 그렇게 많이 했으니 아무라도 와야 한다”며 너무 곤란해 한다. 나는 한국기원을 통해 유럽 사범 중 한명이라도 가도록 해 달라고 했다.

이틀 후 양총장이 전화하여 “윤영선 사범은 그 주말에 독일 바둑대회에 참가하고, 스페인의 오은근 사범은 자기가 주최하는 세미나를 열고, 황인성 사범은 네덜란드 바둑대회에 참가하러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곤란합니다” 한다. 세명이 다 내 제자라 본인이 가기 싫다고 하면 나라도 전화로 강요를 할텐데 다 선약이 있어 못오는 입장이라 속수무책이다. 할 수 없이 레오나르도에게 그대로 전했다. 나와 양총장 입장에선 최선을 다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 후 화가 난 레오나르도가 며칠 내로 보낸다던 여기에 실을 이태리 바둑계 사진과 내용이 오질 않는다. 나는 지난 주에도 레오나르도를 달래는 이멜을 보냈는데 답변이 없다. 레오나르도가 화를 풀고 보내주기만 바라고 있다. 그가 자료를 보내주면 바둑 얘기가 들어간 ‘이탈리아 3’ 편을 쓸 생각이다. 그가 친한파인데 내년엔 한국대사배 자체를 안 열까봐 걱정이다.

▲ 토스카나(Toscana) 2012 바둑대회 토스카나대회

6. 한국대사배

한국대사배는 내가 2002년부터 세계각국을 돌며 10여 개국에 창설했다. 그 목적은 대사배를 통해 한국개최 세계대회 선수선발전을 겸함으로써 2중 홍보효과, 한국바둑 세계화, 위상강화, 바둑 올림픽종목 가입, 개최국 바둑인과의 유대강화, 친목도모, 한국 바둑사범 세계진출 교두보(취업), 한국행 바둑수업자 증가, 중국계 득세로 침체상태인 재외한인동포 바둑계 활성화를 겨냥한 대회다.

2003년 상페테르부르크 유럽대회 후에 곧장 1천km가 넘는 모스크바로 달려가서 한국대사관측과 식당에서 협의하던 일. 독일과 네덜란드에 가서 대사관측과 식사하면서 취지설명, 협조를 부탁하던 일. 프랑스, 영국 대사를 찾아가서 부탁하던 일, 대사배 준비를 위해서 전세계를 돌면서 나 나름대로 노력했다. 나 아는 사람이 핀란드나 체코 대사로 나간다면 서울서 식사하면서 부탁하고 서울에서 재외공관장회의가 열리면 대바협 조건호회장과 찾아가고 하면서 이루어 놓은 대회다.

내 후배가 외통부 차관이 되었을 때, 구주국장이 지인일 때면 내가 대사배 건으로 외통부를 드나들었다. 지금도 10여개국이 대회를 개최하나 한국대사가 바둑을 못 두는 사람으로 바뀔 때마다 안 열겠다고 하면 그 대사를 설득하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이번 이탈리아 한국대사배는 제 1회라 한국바둑팀을 못 보낸 게 못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이제는 한국기원이 외통부, 문체부와 협조해 공식적인 행사로 대사배를 자리매김 해 놓으면 좋겠다.

알프스 북쪽의 유럽은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실내 보드게임을 하기에 알맞다. 북유럽 바둑을 강하게 만든 이유가 날씨라고 나는 본다. 별명이 돼지들 PIGS(Portugal, Italia, Greece, Spain)인 태양이 밝은 나라 바둑은 다 약하다. 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 바둑역사를 살펴 보자.

▲ 피렌체가 수도인 토스카나 2012 대회 입상자

7. 이탈리아 바둑역사

1960년대 시작한 이탈리아 바둑은 1970년대 중반에 협회가 탄생한다. 그후 바둑인구의 증가와 함께 클럽들이 생겼다. 이탈리아 바둑연맹(The Italian Go Federation (Federazione Italiana Gioco Go, FIGG)이 1989년에 창설되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기구로 본격적 역할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럽연맹(EGF)과 일본에 있는 국제바둑연맹(International Go Federation (IGF)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국제활동을 했다.

2천년대에 들어와서 이탈리아 바둑협회는 두동강이가 난다. 다른 기구인 AGI가 자기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천명하고 나섰다. 유럽연맹 정기총회에서 이 조직이 인정을 받자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1996년과 2006년에유럽대회를 유치했는데 이 때는 두 기구가 협조를 하여 행사를 치루었다. 2011년에 와서 FIGG로통합되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로 태어난다. 과거 일본지향적 활동에서 한국과 중국이 새로운 바둑 중심국이 되어 방향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회장단, 임원진
2012년 3월 현재 임원진 (Officials of FIGG as of March 2012)
회장: 레오나르도 달 조보(Leonardo Alberto Dal Zovo)
부회장: 포스치(Roberto Foschi), 베르토크(Davide Bertok), 페데리코(Ken Federico)
총무: 파르톤(Maurizio Parton)
재무: 귤리아토(Leonardo Giuliato)
이사: 메타(Carlo Metta), 기우린(Stefano Giurin), 로마노(Andrea Romano)

이탈리아 다음 편에서 계속…..
TYGEM /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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