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2 오전 9:13:08 입력 / 2012-10-02 오전 10:05:29 수정
S#1. 또 다른 한류
그녀는 예뻤다.
그녀가 바둑판 앞에 앉자 후쿠야마의 바둑애호가들은 핸드폰 폴더를 열어 사진을 찍기 바빴다.
프로에 입단하면서 배우기 시작한 일본어도 소통에 보탬이 됐다. 바둑통신사로 적격이었다. 인기 만점이었다. 문화회관 홀의 콘서트에서 그녀는 아리랑을 불렀다. 지켜보던 누군가 한국의 아이돌 가수냐고 물었다. 맑고 고운 미성에 시원하게 뻗는 고음을 들으면 그리 착각할 만도 했다.
▲ 콘서트에 아리랑을 부르는 김혜림
그러나 반상에서 그녀는 한국 여류바둑의 강미(强味)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일본 프로기사 회장 토모코 여사를 가볍게 눌러주었고 다면 기에서도 시커멓게 깔고 둔 아마추어들에게 마성의 흔들기 신공을 과시했다.
▲ 조선통신사 기념대국, 상대는 토모코 일본 프로기사회장
항상 싱글벙글 웃는 낯이라 주변이 환했다.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스물 한 살의 김혜림 초단을 지켜본 일본의 바둑 팬들은 한류의 또 다른 기운을 실감했을 것이다.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모처럼 엄마와 동행해서 기분 좋았고 일본 바둑 팬들의 성원이 따뜻했습니다. 아름다운 토모노우라의 풍경도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환영행사에서 그녀는 그렇게 인사했다.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은 자신에게도 약이 된다. 때로 이런 여행이 가라앉은 일상을 환기시켜 주기도 하는 법. 단발머리 새내기 숙녀 김혜림의 일본여행을 소개한다.
▲ 2012년 조선통신사 김혜림과 유창혁
S#2. 바세바의 깃발
김혜림은 바둑청춘들에게 대장으로 통한다. 지난 해 가을 그녀는 페이스북에 '바세바(바둑으로 세상을 바꾸자)' 모임을 만들었다. 뭐 이름처럼 거창하게 운동하자는 모임이 아니라 바둑을 사랑하는 젊은이들끼리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고 지내자는 취지였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호응했다. 며칠 만에 이백 여명이 모였고 일 년이 지나자 무려 오백 여명에 달하는 큰모임이 되었다. 일찍이 바둑계에 이런 움직임은 없었을 것이다. 김혜림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저 알고 지내자고 던진 메시지에 오백 명이 모일 줄 몰랐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바로 바둑 청춘들의 갈망 아니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수업과정, 도장이나 학교, 혹은 동아리 그룹으로 나뉜 바둑계에서 청춘들이 하나로 응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각각 개성이 다르지만 바둑 청춘이란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부둥켜안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김혜림의 ‘바세바’ 깃발은 그런 젊음의 갈망 한복판에서 선명하게 나부낀 거였다.
▲ 김혜림
영등포 정맥기원에서 바세바 창립 모임을 가졌을 때 100여 명이 모였고 이제 일 년이 되어간다. 이세돌이 자신의 동정을 알리고 원성진이 생일 축하 인사를 하고 안성준, 형준 형제가 야구 소식을 올리고 바둑학과 학생들이 다양한 물음을 던지며 연구생 소녀들이 신곡을 올리며 각종 바둑행사 사진이 업데이트되는 바세바 페이지. 소통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모임이 되었다. SNS모임인지라 집행부도 없고 정관도 없다. 그냥 모임을 기획한 김혜림 초단을 회원들이 대장이라고 불러준다. 그런데 바세바를 만들고 나서 그녀는 열병을 앓았다. “지난 겨울에 심하게 흔들렸어요. 내가 뭘 하고 있지? 그런 의문이 자꾸 드는 거예요. 바둑 공부도 안 되고 성적도 하향 선을 그리고 가볍게 제안한 바세바의 덩치가 커지면서 엄청 부담이 되더라고요.” 바세바의 깃발을 높이 쳐든 주인공으로서 모임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이 그녀의 중심을 흔든 건 아니었을까? “혜림이가 바둑에만 집중한다면 좋은 성과를 올릴 거야.” 연구생 시절 그녀를 지도했던 장수영 사범의 말이다. 기재(棋才)를 짚으면서 동시에 바둑 이외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염려한 예측이다.
▲ 바다를 바라보는 혜림
실제로 그녀의 관심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기타를 배우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며 인문학 독서를 즐긴다. 페이스북을 통한 인맥 네트워크 역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위해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될 터. 그런 호기심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지만 성장통의 원인 아닐까? (2012년 10월 3일 12시 홍대 앞 카페 에틱에서 바세바 회원들의 번개 모임이 있다.)
▲ 어머니와 함께
S#3. 바람에 날려
김혜림은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자매처럼 손을 잡고 다니는 그녀들. 어머니는 항상 활짝 웃는 딸이 사랑스럽다고 한다. “저는 혜림이가 지금 좋은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둑도 사람이 하는 건데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세상 넓은 것을 알아야 바둑의 이치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딸의 다양한 관심사를 지지하고 있었다.
▲ 바다를 보는 모녀
토모노우라의 취선도는 그 지역 주민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곳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만나는 곳, 그래서 기가 강한 지점이라고 한다. 관광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인생이 바뀌는 곳’이어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곳이 바로 오색암(五色岩)이었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이어서 취선도에는 지층의 단면이 노출되어 있고 다양한 암석들이 용암으로 녹아 흐르다 굳어진 명소다. 오색암에서 포즈를 취한 김혜림은 과연 삶의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었을까 궁금했다.
▲ 오색암에서
“뭘 바꾸고 싶었어?” “힛,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겨울에 많이 마음 고생했는데 봄부터 이상하게 편해졌어요.” “계기가 있었을 텐데?”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그냥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러면 취선도에 괜히 왔네? 인생이 바뀌는 곳이라는데 다시 어지러워지면 어떡하지?” “그런가요? 어쨌든 이 번 여행은 재충전이 된 것 같아요. 돌아가면 더 치열하게 공부할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또 활짝 웃는다.
▲ 밤 방파제에서
토모노우라 조선통신사 행사가 끝난 밤에 우리 통신사 일행은 밤늦게까지 기나긴 방파제를 함께 걸었다. 유창혁과 박상진, 그리고 동행한 부모들과도 친해져서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바둑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낯선 일본 땅에서 바둑보다 고픈 게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