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방에서 상고를 나와 수산업에 뛰어들었다.
중부시장에서 출발해 가락동 시장이 오픈할 때 조미 김과 멸치유통으로 조선시대의 허생(許生)처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늘 웃음기 가득한 관상이 좋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필자와는 GBC 동기로 함께 활동했는데 처음엔 그가 왜 바둑을 좋아하는지 몰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연구생 강병권이었다.
아마대회에서 곧잘 정상에 오르며 성적을 내는데 프로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며 그는 가슴아파했다.
아들이 스무 살을 넘으면서 강금채 회장은 장고에 빠졌다.
어려서 반짝이는 기재가 있어 바둑을 시켰는데 혹시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나 바둑만 공부하고 성장해 온 아들은 바둑 이외에 세상물정을 아는 게 없었다.
그것이 바둑지망생 아버지들의 공통된 아픔이리라.
그래서 강회장은 바둑학교를 생각했다.
서울 곳곳을 다니며 학교 부지를 살폈다.
아들에게 바둑학교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애가 끓는 부성애를 읽었던지 아들은 2012년 기어이 입단에 성공했다.
그날 강 회장은 아들을 만나자마자 등에 업고 몇 바퀴 돌았다.
평생의 숙원이 풀린 날이었다.
“아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저 고생길을 권하고 등 떠밀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아들이 프로 가 되었으니 힘닿는 데까지 응원하고 밀어줘야죠.”
그런 내력이 있어 강 회장의 바둑 사랑은 유별났다.
바둑 모임의 리더로 앞장서며 바둑계의 요청에 마다하는 법 없이 마음을 보탰다.
중국 명사들과의 바둑교류전이나 몽골 바둑 보급행사에 참여해 바둑계의 원군으로 활동했다.
S#3. 이젠 즐기고 싶다
강금채 회장은 타이젬 마니아이다.(4단~5단)
매일 오전 사무실에 출근하면 타이젬 대국실로 들어와 바둑을 둔다.
그의 기풍은 어설픈 이창호 류로 통한다.
“상대와 엉켜 부딪히는 게 싫어요.”
그는 체질적으로 몸싸움을 싫어한다.
그냥 서로 한 수씩 두면서 구획을 정리하자는 기풍이다.
그래서 사석이 없는 바둑이다.
“며칠 전에 아들과 모처럼 바둑을 뒀지요. 다섯 점을 깔고 뒀는데 반상에 제 돌들이 거의 전멸했습니다. 와따, 프로 바둑이 세긴 세더구만요.”
타이젬 4단과 5단을 오가는 기력인데 프로기사 아들에게 손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기분이 묘하던데요? 아들 실력을 확인해서 좋기는 한데 제 바둑이 그렇게 엉망이었던가 싶으니 살짝 화도 나고 하하하.”
강금채 회장은 앞으로 타이젬 바둑을 더 많이 즐길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좋은 바둑대회를 후원하기 위해 사업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아들, 1등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바둑을 즐기면서 네 길에 만족하면 아빠는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