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을 먹으면서 부자의 바둑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인터뷰가 이렇게 흘러가면 재미없다는 기자의 엄살에 송중택 씨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한번은 상훈이가 일하는 아주머니와 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만화책을 빌려왔어요. 그런데 만화책을 깜박하고 반납을 안 한 것이에요. 그때 집으로 독촉 전화가 와서 들켰죠. 또 간혹 이불 속에서 노트북을 하기도 하고…. 사실 저는 다 느끼고 있는데 눈감아 준 적도 많죠. 어쩌다가 한번 따끔하게 혼내기만 했지요. 매번 잡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시각장애인인 자신의 '원죄' 때문에 상훈을 엄하게 키우지는 못했나보다. 그래서 바둑이 점차 늘면서 도장 원장님이 엄격하다는 소문을 듣고 맡겼는데 그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단다.
부모의 시각과 다른 것이 스승의 시각. 상훈는 어떤 아이였을까. 김희용 원장에게 물었다. "중3때 연구생에 떨어지는 등 하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이번에 또 떨어지면 삭발하자면서 맘을 잡았어요. 그런데 또 떨어진 것입니다. 약속대로 삭발을 했는데, 다른 애보다 상훈이가 너무 서럽게 잠들기 전까지 울었어요. 그래서 '아픔을 잊지 말고 열심히 하거라' 민머리를 매만져 주었어요. 그 이후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했어요."
김원장에게 또 한마디를 더 걸었다. 상훈이 바둑이 어떻습니까? 싸움바둑이라고 하던데요. "수읽기가 세고 전투력이 강합니다. 생떼 같은 말을 잡으러 가는 특이한 바둑이예요. 도장 연구생 2군이었을 때도 1,2조 형들의 대마를 잡곤 했죠. 팬들은 되게 좋아할 바둑이죠."'정말 그래?' 기자가 상훈을 힐끗 쳐다보니 눈치를 채고 대답한다. "요즘 구리와 조한승 사범님 기보를 많이 봅니다. 아무래도 정돈이 잘 된 바둑이니까요."
"조한승 바둑이 매끄럽지!" 역시 시각장애인 세계챔피언인 아버지 송중택은 전문가 수준이다. 좀 늦었지만 그의 기력을 물어보았다. 빛조차 감지하지 못한다는 소위 전맹(全盲). "한국기원 아마5단, 일본기원 아마7단인데, 타이젬에서는 5~6단 왔다 갔다 합니다. 타이젬이 젤 어려워요. 하하."
타이젬? 타이젬 얘기 좀 해주세요. ID공개할 수 있습니까? "앞도 안 보이는데 공개하면 어떻습니까. 하하. 자나 깨나 바둑 둔다고 ID도 '자나깨나'입니다. 지금은 5단인데 대국하기가 좀 어려워요. (아니, 타이젬에서 대국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첨인데?) 저는 누군가가 바둑판 좌표를 옆에서 불러주거나 점자바둑판에 놓아주는 등 도움을 받아야 둘 수 있어요. 그런데 20분 이상은 길다고 느끼는 지 잘 안받아줘요. 어떨 땐 단수를 못 봐서 수십 집이 날아가는데도 이(홍복) 사범이 안 가르쳐 줘요. 상훈이도 가끔은 대국을 도와줍니다."(이날 상훈도 당장 프로가 된 기념으로 (P)자를 달았다. 혹시 유저여러분께서 낮선 (P)를 보게 되면 격려 바란다.)
여기서 또 소개할 사람이 있다. 이홍복 사범은 전국아마대회인 서울시장배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준우승 경력이 더 많았던 아마 강자. 송중택 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7년째란다. 그러고 보면 아마대회에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인데, 송씨의 바둑사범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단다. 송씨 말로는 "우리 가족보다 우리 가족을 더 잘 아는 분"이란다. 그 또한 프로 상훈을 있게 만든 공신이다.
▲ 과거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송중택 부자. 맨 오른쪽은 17년간 송씨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아마강자 이홍복.
송중택 씨에게 바둑은 무엇?
"희망. 그것만 두고 있으면 다 잊으니까."
앞으로 남은 포부는? "국내에 없는 시각장애인바둑대회 개최하는 것. 시각장애인 바둑동아리도 만드는 것."
인터뷰가 끝나는 분위기가 되자 아들 상훈은 아까 유보했던 기자의 질문에 초읽기에 몰린 듯 답변을 주르르 내놓는다.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끄덕끄덕) 중3에서 고1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 힘들게 키워줬는데 한마디 해야지? 부모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가 손을 꼭 잡는다.)
아빠 기풍이 좀 어때?대성할 바둑인 것 같아요. (에끼, 이놈아!)
치명적인 장애도 가족사랑의 힘으로 승화시켰고, 이제 아들이 그 운전대를 잡으려 한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드라이브가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