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시내에는 구단시타(九段下)라는
거리가 있다. 거기에 일본기원이 있다. 일본기원
건물을 지을 때 거리 이름까지 고려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재미 있다. 우리 식으로 풀자면
구단(九段)은 전문기사의 최고 단위인데,
그 아래라니.
큰 건물은 아니다. 10층이 안 되니 높지도 않고,
바닥 면적도 100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정도니
넓은 것도 아니다. 지하는 창고로 쓰는데 바둑용
품들이 잔뜩 쌓여 있다.
바둑회관 건물로만 치자면 우리가 선배다.
종로2가 관철동에 한국기원 건물이 세워진 것은 1967년이다. 당시에는 주변에서
제일 높고 그럴 듯한 건물이었다. 건물이 세워진 후 얼마 있다가 일본 바둑계의
거물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이 한국을 찾아와 한국기원 건물을 보고는 정말
부럽다면서 감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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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한국기원은 관철동을 떠나 1994년 홍익동으로 이사를
갔다. 관철동 시절 바둑동네에서 살던 사람들은 사랑하는 관철동 건물을 한국
현대바둑의 요람으로 추억할 수 있기를 희망했으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관철동은 젊은이들이 먹고 즐기는 거리로 변했고, 옛 한국기원 회관은, 퇴락한
상태로나마 건물은 남아 있으나 추억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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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의 고령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바둑문화연구가 이승우
선생이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일본기원이 지하창고를 개조-수리해 바둑의
전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둑과 바둑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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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사에 공적을 남긴 네 사람의 이름을 제1차로 올려놓았으며 앞으로 매년 4명씩
추가한다고 한다. 최초로 바둑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간 네 사람은 누구일까.
1번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다. 초대 본인방(本因坊) 샨사(算沙), 제4대
본인방 기성(棋聖) 도사쿠(道策), 제17대 본인방 기성
슈사쿠(秀策)가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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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영웅 도쿠가와는 바둑을 사랑해, 바둑의 고수 샨사를 군승으로 앉히고
'본인방'이라는 성(姓)과 녹봉을 내렸다. 1602년의 일이다. 이후 본인방 가문은
20세기 초엽까지, 300년 동안 수없는 명인-고수를 배출하면서 일본 바둑계를
이끌었다. 본인방은 일본 근대 바둑의 상징이자 기관차였다. 그 단초를 열어 준
도쿠가와와, 근대 바둑과 바둑 전문화의 개조(開祖)인 샨사가 첫차를 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둑사의 뉴턴과 같았던 도사쿠가 그 차에
동승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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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쿠는 그 눈부신 기재(棋才)로 일찍이 차기 본인방 장문으로 내정되었으나
콜레라에 걸려 33세로 요절하는 바람에 정식으로 본인방 장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를 본인방이라 부르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의 별명은 또 있다.
'영원한 프린스'다. 그게 더 걸맞은 별명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프린스 슈사쿠는
본인방의 봉우리 중에서도 뭇 봉우리들을 압도하는 걸출한
봉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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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아마 우 칭위엔 9단이, 바둑사의 기성 세 사람 가운데, 도사쿠-슈사쿠의
뒤를 잇는
마지막 기성으로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우 칭위엔 9단이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면 이번에 같이 올랐을 것이라는 소리도 있으나 단견이다.
일리 있다
해도 장강의 거품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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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국의 실력이 제일이고, 중국이 한국을 바짝 따라오고 있으며, 일본은
정체와
서행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보여줄 것이 있고, 보여줄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근대 바둑은 편린만 남아 있고 현대 바둑은 역사가 짧다.
문화는
역사가 말을 한다는데, 쌓아가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면 역사는 물리적
시간이 될
뿐이고, 물리적 시간 위에서 문화의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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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구[바둑평론가